[고궁] 봄날의 궁궐, 과거와 현재를 잇는 'K-헤리티지'로 재탄생하다
[고궁] 봄날의 궁궐, 과거와 현재를 잇는 'K-헤리티지'로 재탄생하다
  • 이은주(서울신문 기자)
  • 승인 2024.04.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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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궁중문화축전 개막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은 지금 전 세계에서 각광받는 K-콘텐츠를 통해 이미 입증됐다. K-팝 그룹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우리의 고유한 DNA에서 비롯된 문화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세계로 뻗어가는 한류를 타고 다시 재해석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인 우리의 문화유산인 고궁이다. 지난 2020년 9월 BTS가 조선 시대 왕의 즉위식을 거행했던 근정전 앞에서 한복을 입고 펼친 공연 실황이 미국 NBC 〈지미 팰런 쇼〉를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됐고 국악기 대취타를 전면에 내세운 곡 〈대취타〉를 발표한 BTS 멤버 슈가도 조선 시대 궁궐을 배경으로 한 뮤직비디오로 K-팝 팬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요즘 한복을 입고 고궁을 거니는 K-팝 팬들이 부쩍 늘어난 이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궁중문화축전’의 의미는 남다르다. ‘궁중문화축전’은 서울의 5대 고궁(경복궁·창덕궁·덕수궁·창경궁·경희궁)과 종묘 일대에서 개최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문화유산 축제다. 지난해 봄·가을 2회에 걸친 축전에 총 67만 5,000여 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방문했고, 2015년부터 2023년까지 9년간 누적 관람객은 무려 530만 명에 이른다.

10주년 기념 슬로건으로 ‘함께한 궁중문화 함께할 국가유산’을 내건 이번 축전은 지난 4월 27일부터 5월 5일까지 열렸다. 5대 궁에서는 조선 궁궐 문화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공연, 체험, 참여 행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궁뮤지컬-세종, 1446.

경복궁: 근정전 배경으로 뮤지컬과 음악회 열려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임금이 사는 궁궐)이었던 경복궁에서는 마치 조선시대로 향하는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각종 공연과 전시가 눈길을 끌었다. 올해 첫선을 보인 ‘고궁음악회-100인의 치세지음’은 100명의 대금, 가야금, 해금 연주자가 참여해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웅장한 조선 왕실 음악을 들려줬다. 치세지음治世之音은 세상을 다스리는 음악이라는 뜻으로 조선의 궁중음악이 지향한 바이자 음악으로 세상을 화평하게 만들고자 했던 조선시대의 ‘여민락’ 정신이 담겨있다. 정악·산조·창작곡을 새롭게 구성하고 이지영(가야금), 김정승(대금), 노은아(해금) 3인의 명인이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고궁뮤지컬-세종, 1446’은 지난해 봄 궁중문화축전에서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하며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세종대왕이 왕이 되기 전 충녕대군 시절부터 왕이 된 후 한글을 창제하던 과정을 담아낸 이 공연은 작품 속 실제 무대인 경복궁 근정전에서 펼쳐져 큰 감동을 줬다.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한글 창제에 대한 의지를 놓치 않았던 세종의 애민 정신과 창의와 혁신에 대한 노력은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전했다. 배우 정상윤, 남경주, 박소연을 비롯해 총 80여 명이 출연진이 실감나는 연기를 선보였다.

관람객이 조선 시대 ‘궁궐 새내기’가 되어 전통복식을 입고 조선 시대 궁중문화를 즐기는 체험형 프로그램인 ‘시간여행, 세종’도 경복궁에서 첫선을 보였는데 관람객들의 호응이 높았다.

궁중음식·무예·무용·회화 다양한 궁중 일상을 체험해 보는 이 행사에는 5일간 총 1,600명이 참여했다. 특히 국왕과 왕비, 왕세자와 세자빈이 경회루, 향원정 등 경복궁의 대표 장소를 산책하는 모습을 재현한 ‘왕가의 산책’은 외국인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흥례문 광장에는 마련된 무형 유산 전승자 공예품부터 전통문화상품, 궁중다과 등을 판매하는 야외시장 ‘K-헤리티지 마켓’으로 축제 분위기를 돋웠다.

고궁뮤지컬-세종, 1446.

창덕궁: 10주년 기념 전통공예 전시
배우 박해일이 오디오 가이드 맡아

창덕궁에서는 궁중문화축전 10주년을 맞아 특별 전시 ‘공생: 시공간의 중첩’이 열렸다. 공생共生을 주제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통한 시공간의 중첩, 궁과 전통공예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기획 전시다.

빛, 색, 먹 등 세가지 주제로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한지장·단청장 등 무형유산 5종목의 작품을 포함한 총 24점을 선보였다. 배우 박해일이 전시의 오디오 가이드로 참여해 창덕궁 곳곳 전각의 모습과 전시 작품의 해설을 생생하게 담았다. 전시를 맡은 구병준 감독은 “창덕궁 인정전과 선정전, 성정각 등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600년 이야기가 한 공간에 뭉쳐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정신과 느낌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궁궐 걷는 법』의 저자 이시우 작가와 함께 창덕궁에 담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보는 ‘아침 궁을 깨우다’도 새로 선보였다. 관람객들은 ‘왕과 왕비의 봄날 산책길’을 콘셉트로 오전 8시부터 2시간 동안 창덕궁의 전각과 후원 영역까지 평소 걸어보지 못한 특별한 코스를 걸어보며 창덕궁의 아침을 온전히 만끽했다.

공생-시공간의 중첩_창덕궁.

창경궁 물빛연화·관람객 사로잡아

창경궁에서는 4대 궁궐 야간탐방을 완성하는 ‘창경궁 물빛연화’가 첫선을 보였다. 창경궁 대춘당지와 소춘당지 일원에서 이이남 작가가 참여한 화려한 미디어아트가 펼쳐졌다. 진입로에서는 순차적으로 켜지는 수목 등을 통해 타임슬립 분위기를 연출하고 산책로를 따라 펼쳐지는 빛의 터널 등 빛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가 눈길을 끌었다. 이이남 작가는 “물빛연화는 물은 모든 것을 통하게 하며 모든 것을 비추고 모든 것을 품는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면서 “창경궁을 흐르고 있는 물길에 빛을 비춰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고즈넉한 밤에 맑은 물처럼 영롱한 빛을 통해 창경궁 600년의 시간을 걷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같은 공간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공생-시공간의 중첩_창덕궁.

 

덕수궁: 고종의 취미 생활 체험하는 ‘황실취미회’

덕수궁은 관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에 방점을 뒀다. 정관헌에서는 열린 ‘황실취미회’에서는 고종의 취미와 여가 생활을 체험해 보는 기획이 돋보였다. 고종이 즐겼던 ‘가배커피’ 추출 시연을 보고 시음해 보고, 조선 황실의 당구장을 모티브로 한 ‘옥돌’을 직접 체험하면서 황실의 취미를 엿볼 수 있었다. 고종이 사랑한 음악도 들어 보고, 사진 촬영 등을 할 수 있는 소규모 행사 ‘궁중놀이방’도 관람객들의 참여도가 높았다. 덕수궁을 비롯해 경복궁, 창경궁, 경희궁에서 열린 ‘궁중문화축전 길놀이’는 신나는 축제 분위기를 돋웠다.

2024 궁중문화축전. 사진제공_한국문화재재단.

경희궁: 조선시대 서궐로 불린 경희궁의 역사를 찾아서

경희궁 곳곳에서는 조선시대 서궐로 불렸던 경희궁의 역사와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 ‘경희궁을 만나다’가 관람객을 맞았다. 경희궁의 역사과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어린이 맞춤형 활동지와 키트를 개발해 제공하는 등 고궁에 대한 교육적 가치를 높였다.

봄날의 고궁은 낮뿐만 아니라 밤에 보면 더 매력을 뿜어낸다. 해가 지고 고요한 밤에 전문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4대 궁궐을 탐방하는 야간 기행은 올해도 국내외 관람객의 높은 인기를 끌었다. 경복궁의 역사와 문화, 조경은 물론 궁중음식까지 체험하는 ‘경복궁 별빛야행’에는 200여 명의 관람객이 참여했고 ‘창덕궁 달빛기행’에서는 상량정, 영화당, 연경당에서 각 장소별 특화된 전통예술공연을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덕수궁의 밤의 석조전은 대한제국역사관 전시를 관람하고 접견실에서 뮤지컬 ‘고종-대한의 꿈’을 보면서 살아 숨 쉬는 우리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다.

덕수궁_길놀이SNS.

한편 이번 행사를 기획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단은 올해 봄·가을 궁중문화축전 행사에 100만 명 이상의 관객 참여를 목표로 세웠다. 이를 위해 관람객들이 별도의 예약 없이도 현장에서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상설 프로그램을 대폭 늘리고, 외국인 관객 유치를 위해 글로벌 예약 시스템을 도입했다. 경회루 특별 관람 등 일부 프로그램에 외국인 대상 회차도 별도로 마련했다.

최영창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지난 1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체험 프로그램을 대폭 늘려 조선 궁궐의 매력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국내외 관람객들이 우리 국가유산에 깃든 역사와 전통을 즐겁게 체험하고 깨닫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은주 서울신문 기자 겸 유튜브 크리에이터. 연세대학교 불문과·동대학원 영상학 석사. 한국 방송대상 심사위원 역임. 유튜브 채널 〈은기자의 왜 떴을까TV〉 진행. 저서 『왜 떴을까: ‘K-크리에이티브’ 끌리는 것들의 비밀』.

 

 

 

* 《쿨투라》 2024년 5월호(통권 11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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