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언캐니가 사랑스러워질 때: 리너스 반 데 벨데의 예술
[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언캐니가 사랑스러워질 때: 리너스 반 데 벨데의 예술
  • 강수미(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24.05.0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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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유혹

한국의 감상자에게는 다소 낯선 현대미술가 리너스 반 데 벨데Rinus Van de Velde가 아트선재센터와 스페이스 이수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가졌다.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I Want to Eat Mangos in the Bathtub》(2024. 3. 8. - 5. 12.)가 그것이다. 전시 제목에서 벌써 손가락으로 으깨지는 노란 망고의 녹진한 달콤함과 백색 욕조에서 몸을 담그고 있을 때의 나른한 휴식이 연상된다. 그런데 리너스에 따르면, 20세기 유럽 회화예술의 거장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가 밝은 햇빛과 푸른 물빛으로 반짝거리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에서 그림그리기를 소망해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해, 달, 구름이 동시에 흘러가는 것을 보며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 떨어지는 담뱃재 때문에 목욕물은 점점 끈적이고 탁해지며…I WANT TO EAT MANGOS IN THE BATHTUB WHILE WATCHING THE SUN, MOON AND CLOUDS GO BY AT THE SAME TIME. THE BATH WATER IS GETTING STICKY AND MURKY FROM THE CIGARETTE ASH FALLING…”라고 말이다. 하지만 마티스가 정말 그 말을 했는지는 확인이 어렵다. 다만 오늘의 우리는 그 생각을 리너스가 종이 위에 오일 파스텔로 그린 추상화에서 읽을 수 있다. 〈나는 욕조에서 해와 달,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망고를 먹고 싶다…〉(2023)가 그것이다. 화면의 90%는 노란색과 연보라색 오일 파스텔로 유화 특유의 끈적거리고 강렬한 터치를 표현한 색면이 차지하고, 아래쪽 10% 흰 여백에는 위의 영어 문장이 손 글씨로 쓰여 있다. 말하자면 하나의 그림에 이미지와 텍스트가, 리너스와 마티스가, 화가의 회화적 제스처와 출처가 불확실한 인용문구가 공존한다. 또 그 그림은 말을 했다고 전해지는 마티스의 ‘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리너스의 ‘나’, 그 작품을 보고 문장을 읽는 수많은 감상자의 ‘나’를 공존시키고 중첩시킨다. 그러니 기왕에도 좀 낯선 현대미술가 리너스 반 데 벨데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역으로 점점 더 그와 그의 작품을 알고 싶어진다.

리너스 반 데 벨데, 〈나는 욕조에서 해와 달,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망고를 먹고 싶다…〉, 2023, 종이 위에 오일 파스텔, 140x116cm
ⓒRinus Van de Velde, Courtesy of Gallery Baton

리너스 또는 리너스

리너스는 1983년 벨기에 태생이다. 현대 미술가답게 그는 회화, 드로잉, 조각, 설치, 영상 등 여러 시각예술 장르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수작업부터 멀티미디어작업까지 표현 매체를 종횡무진 해가면서 작품을 완성한다. 전시에서는 그러한 작업들이 모여서 시각언어의 다양성과 가벼운 밀도, 표현 기법의 변주와 내러티브 구조로 짜인 하나의 종합미술이 된다. 그런데 리너스는 이와 반대로도 설명할 수 있는 작가다. 그는 르네상스 이후 유럽 회화의 정통성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벨기에의 미술가답게 세부적으로는 작은 붓 터치나 색채 구사부터 넓은 의미에서는 페인팅의 취향과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꽤 유럽적이고 상당히 회화적이다. 리너스 자신이 여러 곳에서 밝히듯이, 그는 회화사 거장들의 성취를 존중하며 자신 또한 비슷한 미의식을 갖고 작업해온 덕분이다. 사실 리너스는 국가와 도시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글로벌 미술계에서 바삐 활동하는 동시대 미술가들의 루틴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활동한다. 그가 말하길, 자신은 앤트워프를 거의 떠나지 않고 하루 종일 작업실에서 작업하며 “모종의 사고 실험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칸트가 쾨니히스베르크를 결코 떠난 적 없이 근대 철학의 정점이라 할 3대 비판서(『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를 쓴 사실을 떠올리면 과할까? 하지만 나는 리너스가 칸트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리너스는 물리적인 이동과 물질적인 새로움을 추구하는 대신 사유 혹은 상상을 통한 가상의 여행, 과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탐구, 생각의 힘과 행위의 실천을 결합하는 자기만의 체계를 가졌다는 점에서 칸트와 비슷한 면이 있다. 어쨌든 리너스가 현대 미술가로서 다원적인 작업과 전시를 하면서 동시에 유럽 회화 예술의 전통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는 점은 그의 미술에 양면성으로 특성화된다. 이때의 ‘양면성’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거나 대립하는 속성이 아니라 일종의 거울처럼 서로를 반대로 비추면서 상호 내용을 교환하는 면모다. 핵심을 말하자면, 리너스는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 회화사 속의 화가, 작품, 양식과 가상적으로 대화하며 작업한다. 또 그는 작업실 밖으로 나가지 않은 채 자연광 아래 펼쳐지는 허구적 풍경과 사건을 그림으로 그린다. 그리고 자신의 마스크를 쓴 인물이 다른 시간과 공간을 떠돌며 생활하고 예술 활동을 하는 영상, 하지만 그것이 현실의 아티스트 리너스에 관한 것인 영상을 제작한다. 리너스는 이를 “평행 우주”라거나 “허구적 자서전” 같은 개념으로 설명해왔는데, 이는 얼핏 상투적인 용어로 들리면서도 리너스에게 들어맞는 표현이기도 하다.

《리너스 반 데 벨데: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 아트선재센터 설치 전경.
사진: 강수미

언캐니가 사랑스러워질 때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전시는 유럽의 회화적 특성이 돋보이는 페인팅들, 키치미술처럼 의도적으로 소박한 재료와 헐거운 스타일을 채택해 만든 소품들/조각들, 극영화처럼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영상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물론 모두 리너스의 작품들이다. 하지만 전시 전체는 그런 작품들을 선형적이거나 유기적으로 배열하는 대신 일종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처럼 이질적인 혼합과 불협화음의 질서로 보여준다. 그래서 감상자는 자신이 얼핏 앞뒤가 안 맞는 장면을 연출하는 어느 B급 영화세트장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고, 국제비엔날레의 한 섹션을 볼 때 이국적인 낯섦과 컨템포러리아트의 진부함이 묘하게 뒤섞였던 경험을 기억해낼 수도 있다.

리너스 반 데 벨데, 〈라 루타 내추럴〉, 2019-2021, 단채널 비디오, 13분 34초, 3.edition of 3 and 2 A.P.
ⓒRinus Van de Velde, Courtesy of Gallery Baton

나와 맥락은 다르지만 평론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티몬 칼 칼레이타Timon Karl Kaleyta가 리너스의 작업을 ‘언캐니uncanny’라는 키워드로 포착했던 것도 그런 이질성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1919년 제시한 정신분석학 개념에서 유래한 그 용어는 친숙한 것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져 두려움이 엄습할 때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겪는 불쾌감과 불안을 뜻한다.1 다만 현재는 생성형 AI 기술 분야부터 일상의 현상에 이르기까지 분야나 증상을 가리지 않고 대충 ‘기이하거나 기괴하다’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그런 언캐니를 티몬은 리너스의 작품들에서 중요한 지각 상태로 꼽았다. 티몬에 따르면 리너스의 회화와 드로잉, 그리고 3부작 비디오인 〈마을 사람들The Villagers〉(2019), 〈라 루타 내추럴La Ruta Natural〉(2021), 〈하루의 삶A Life in a Day〉(2023)이 모두 언캐니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럴까? 티몬은 리너스의 개별적인 작품들에도 언캐니한 측면이 있지만, 무엇보다 미술가 스스로 자신이 작품을 구상하고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을 관객에게 폭로한다는 점에 언캐니가 유발된다고 말한다. 그대로 인용하자면 “그의 작품에서 진정 언캐니한 지점은, 반 데 벨데가 전례 없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세계 속에서, 우리가 상관해서는 안 될, 숨겨져 있어야 할 무언가를 불시에 맞닥뜨리게 된다는”2 것이다. 티몬이 말하는 그 ‘무언가’가 바로 예술가의 내밀한 창작세계다. 나는 티몬의 관점과 접근법이 꽤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리너스는 앞서 썼듯이 의도적 양면성, 혹은 평행 우주나 허구적 자서전이라는 자신의 창작 전략을 숨기는 대신 그 자체를 작품의 내용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는 우리로 하여금 잠깐 미술의 비밀과 창조의 금기에 접촉한 것 같은 싸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리너스의 미술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감각 지각적 상태가 언캐니에서 끝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좀 더 정교하게 분석해보면 감상자의 느낌은 불쾌감과 두려움의 범위를 벗어나 사랑스러움과 독특한 매력 쪽으로 넘어온다. 그때 사랑스러움과 매력은 친숙한 것이 약간의 변화/변주에 힘입어 어딘가 그리우면서 새롭고, 분명히 실재할 것 같은데 허구 혹은 환상으로 구현됐을 때 발휘된다. 리너스는 그 메커니즘을 매우 영리하게 구조화한 작가다. 예를 들어 리너스의 페인팅 다수는 19-20세기 유럽회화의 양식사적 특징과 시각적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참고한다. 낭만주의, 인상주의, 표현주의 등.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에밀 놀데, 마티스, 에드바르 뭉크 등등. 그중 ‘외광파plein-air’의 영향을 의식적으로 강조한 그림들이 다수 전시에 나왔다. 하지만 실제로 리너스가 일대일로 베끼거나 차용한 대상 회화는 한 점도 없다. 또 화가의 아틀리에가 아니라 야외로 나가 자연의 직접적인 빛 아래에서 그림을 그릴 것을 주창했던 외광파를 추종하면서도 리너스는 그런 외광파 스타일의 그림을 작업실 안에 틀어박혀 그렸다. 무엇보다 리너스가 그림 하단의 흰 여백에 손으로 또박또박 써넣은 텍스트 —때로는 독일 표현주의 화가 “에밀”(놀데)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때로는 뭉크가 살고 작업했던 고립의 작업실을 묘사하는 것처럼— 가 만들어진 서사라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그 서사가 전적으로 허구는 아니다. 리너스는 미술사의 객관적 사실들을 참조하기도 하고 화가와 관련해서 전해져오는 이야기, 화풍, 모티프들을 고려해서 그림을 그리고 텍스트를 써넣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그의 회화작품들은 익숙한 것의 새로움, 기존의 것과 연결되지만 약간 다른 것, 처음 보지만 봐왔던 것 같은 이미지, 가공했지만 있었을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완성한다. 이러한 점이 바로 리너스의 작품 감상을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리너스 반 데 벨데, 〈친애하는 에밀, 나는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2023, 종이 위에 오일 파스텔, 110x73cm
ⓒRinus Van de Velde, Courtesy of Gallery Baton

현대미술이 이렇게 좋은가

나는 이번 리너스의 국내 개인전이 새로운 예술향유자 또는 변화하는 미술관객의 취향 및 감상능력에 부합하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사실 팬데믹 이후 현대미술에 관심 많은 이들, 현대미술 컬렉터를 자처하는 이들이 무척 많아졌다. 미술관과 갤러리에 연령과 성별을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넘치고, 소셜 미디어에서 가장 주목 받고 매력적인 콘텐츠가 대체로 시각예술의 감각적 코드에 맞춤인 경우만 떠올려도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이처럼 현대미술이 일상에 범람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현대미술이 어려워서 싫고 어려우니 거리를 두는 대신 어려워서 더 멋지고 어려우니 한껏 다가서 보겠다는 감상자들의 태도다. 리너스의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전은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으로 동시대 새로운 관객을 끌어들인다. 요컨대 한편으로 리너스의 그림들은 앞서 썼듯이 유럽 회화전통의 계보를 잇고 있는 듯한 충실함과 작가만의 작업 구조가 평행 우주처럼 연동해서 감상자의 지적이고 심미적인 욕구를 자극한다. 다른 한편으로, 리너스의 영상들은 미술가로서 자신을 모델로 해서 허구적 자서전을 완성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창작의 비밀스러움과 그것의 노출을 동시에 즐길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게 욕망의 자극과 기회의 제공이 맞닿아 작용하기에 관객들은 현대미술의 어려움을 좋은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리너스 반 데 벨데: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 설치 전경.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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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운하임리히(unheimlich)’를 영어권은 ‘언캐니’로, 국내 번역본은 “두려운 낯설음”으로 옮겼다. 프로이트는 그 “감정은 공포감의 한 특이한 변종인데,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오래전부터 친숙했던 것에서 출발하는 감정이다...어떤 조건들이 주어졌을 때 친숙한 것이 이상하게 불안감을 주고, 공포감을 주는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라고 썼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두려운 낯설음」, 『예술, 문학, 정신분석』, 정장진 역, 파주: 열린책들, 2012, pp. 405-406.

2 티몬 칼 칼레이타, 「언캐니의 늪에서」, 『리너스 반 데 벨테.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 전시도록, 아트선재센터, 2024, p. 67.
 


강수미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 다수의 저서, 평론, 논문 발표. 주요 연구 분야는 동시대 문화예술 분석, 현대미술 비평, 예술과 인공지능(Art+AI) 이론,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및 비평.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봉사센터 센터장, 서울특별시 박물관미술관진흥정책심의위원회 위원, 한국미학예술학회 기획이사 및 편집위원, 《쿨투라》 편집위원.

 

* 《쿨투라》 2024년 5월호(통권 11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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