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10] 시간의 사색가, 조용필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10] 시간의 사색가, 조용필
  • 유성호(본지 주간, 한양대 국문과 교수)
  • 승인 2019.06.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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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험으로서의 ‘시간’

  조용필 노래를 움직여가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시간’이다. 과거로부터 발원하여 현재의 열정을 가능케 하고 미래의 희망으로까지 번져갈 시간의 항상적 흐름이야말로 그의 모든 노래를 감싸고 있는 어떤 원체험일 것이다. 일찍이 공자는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흘러감이란 과연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말했다. 그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시간의 속도감을 강물의 비유를 들어 강조한 것인데, 아마도 그는 삶에서 시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한 이로서 첫 손에 꼽힐 것이다. 그런가 하면 노벨문학상을 탔던 콜롬비아 소설가 마르케스는 “흐르는 시간은 모든 것을 황폐화한다.”라고 말했다. 빠르게 흘러간 시간 뒤에 남는 것은 절대적 무상無常이요 폐허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은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속도의 양감量感을 통해 차가운 잔해를 남기며 흘러갈 뿐이다. 영화로 만들어져 설경구의 빛나는 연기를 기억하게 해주었던 김영하의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주인공은 “무서운 건 악惡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것을 이길 수 없거든.”이라고 말하는데 이 역시 시간의 절대권력을 고백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을 배경으로 한 조용필의 노래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7집 앨범 ‘여행을 떠나요’에 실린 노래 <어제 오늘 그리고>와 <미지의 세계>는 모두 하지영이 작사하고 조용필이 작곡했다. 발매일은 1985년 4월 10일이었다. 역시 그 두 사람이 각각 작사하고 작곡한 <그대여>와 <여행을 떠나요>도 함께 실린 이 앨범에는 유독 조용필이 작곡한 노래가 많았는데, <눈물로 보이는 그대>(양인자 작사), <나의 노래>(양인자 작사),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엔>(조용필 작사), <아시아의 불꽃>(소수옥 작사)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조용필은 1985년 11월 15일에 8집 앨범을 낸다. 7개월여라는 짧은 시간에 새로운 차원의 미학을 펼친 것이다. 여기에는 그 의 대표곡인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바람이 전하는 말>, <그 겨울의 찻집>이 실렸다. 그 바람에 1985년은 결국 이 앨범으로 기억되는 해로 남았다. 그래서 그의 7집은 다음에 당도해야 할 커다란 광장에 이르기 위한 골짜기 같은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지의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의 사색가 조용필의 목소리가 의젓하고도 역동적으로 들어있다.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어제 오늘 그리고>는 맨 앞에서 ‘인생길’을 불러온다. 우리가 떠나고 지나고 귀착해야 할 삶의 ‘길’ 말이다. 일찍이 펠리니F. Fellini의 아름다운 영화 <La Strada>, 시내트라F. Sinatra의 장중한 노래 <My Way> 등은 ‘길’을 상징 차원까지 각인한 명품들이다. 프로스트R. Frost의 가편 <The Road not Taken> 역시 ‘길’을 뚜렷한 시적 심상으로 들려준 바 있다. 화자는 가을날 숲에서 두 갈래 길을 만나면서 망설인다. 그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그 가운데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게 보이는 길을 선택한다. 도전과 개척의 의미를 품은 이러한 선택은, 다른 길에 대해 다음 날을 위하여 남겨두는 행위를 수반한다. 물론 이 갈림길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를 의심하면서 말이다. 결국 그는 노경老境에 이르러 자신이 선택한 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회상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길’은 인생론적 선택과 해석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상징으로 다가온다. <어제 오늘 그리고>는 바로 그 ‘길’에서 시작된다.

 

바람소리처럼 멀리 사라져갈 인생길
우린 무슨 사랑 어떤 사랑 했나.
텅 빈 가슴 속에 가득 채울 것을 찾아서
우린 정처 없이 떠나가고 있네.
여기 길 떠나는 저기 방황하는 사람아
우린 모두 같이 떠나가고 있구나.
끝없이 시작된 방랑 속에서
어제도 오늘도 나는 울었네.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어떤 날은 웃고 어떤 날은 울고 우는데
어떤 꽃은 피고 어떤 꽃은 지고 있네.
오늘 찾지 못한 나의 알 수 없는 미련에
헤어날 수 없는 슬픔으로 있네.
여기 길 떠나는 저기 방황하는 사람아
우린 모두 같이 떠나가고 있구나.
끝없이 시작된 방랑 속에서
어제도 오늘도 나는 울었네.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버린 것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남은 것은 무엇인가

  이 노래는 “바람소리처럼 멀리 사라져갈 인생길”을 호명한다. 바람도 마찬가지이지만 ‘바람소리’란 정말 흔적도 없이 사라져갈 것이다. 그 덧없는 인생길에서 우리는 끝없이 사랑했고, 떠났고, 방랑했고, 울었고, 찾았고, 버렸고, 잃었고, 무엇인가를 남겼을 것이다. 숱하게 일고 무너졌을 시간 속에서 우리는 “텅 빈 가슴”을 채우려 했을 것이고, 정처 없이 모두 함께 길을 떠났을 것이다. 끝없이 이어져왔을 그 시간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어제도 오늘도” 찾고 버리고 잃고 남겨온 연쇄 속에서 규정한다. 2절로 넘어가면 웃음 과 울음의 교차, 개화와 낙화의 반복, 미련과 슬픔과 방황과 떠남의 연속을 통해 다시 어제, 오늘 그리고 언제라도 찾고 잃고 버리고 다시 찾고 잃고 남은 것을 물어간다. 그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걸어온 길의 덧없음을 잘 보여주지 않는가. 하지만 그 덧없음이 흔히 말하는 허무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남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을 걸어 우리가 잃고 버린 것도 있지만 찾고 남긴 것 또한 분명한 흔적으로 있으니, 조용필의 노래는 시간의 가혹한 흐름 속에서 삶을 궁극적으로 긍정하는 힘을 내장하고 있는 것이다.

  삶은 흔히 ‘길’에 비유되곤 한다. 그것은 삶의 과정을 적절하게 은유하면서 순간순간 우리에게 불가피한 선택지로 다가온다. 만약 우리에게 평탄한 하나의 길만 부여된다면 삶이란 얼마나 단조로울 것인가. 하지만 삶이라는 길은 가파름과 신산함을 포함한 긴장과 활력을 가진다. 우리는 고비마다 그 길의 선택에 자긍을 가진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을 따라 어제도 오늘도 길을 잃고, 걷고, 찾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멀지 않은 미래에 무언가를 찾은 시간을 마음 깊이 회상하게 될 것이다.

 

이 순간을 영원히

정성 들여 걸어온 길을 뒤로 하고 조용필의 노래는 이제 ‘미지의 세계’라는 미래를 향한다. 그 시선과 상상력은 오랜 시간의 경험을 미래적 창조의 힘으로 바꾸어간다. 이는 조용필의 의식 속에서 한없이 솟아나는 어떤 희망의 영감이기도 할 것이다. <미지의 세계>는 알 수 없는 시간을 바라보고 견인하는 미래 지향의 노래다. 이 노래를 통해 조용필은 로커로서의 면모를 회복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간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도 이 노래가 나오는데, 금성사 오디오 CM송으로 쓰인 이 곡을 배우가 따라 부르는 장면에서이다.

 

이 순간을 영원히 아름다운 마음으로
미래를 만드는 우리들의 푸른 꿈
오오오 오오오
하고 싶은 이야기 노래로 만들어요.
우리는 모두 다 사랑하는 친구들
오오오 오오오
아 아 아 노래를 사랑의 노래를
미지의 세계를 찾아서 떠나요
사랑의 노래를 멈추지 말아요.
언제나 끝이 없어라 알 수 없는 질문과 대답
저 넓은 하늘 끝까지 우리들의 사랑을 노래해요
오오 오오

 

머물 곳을 찾아서 낯선 곳을 찾아가서
미래를 만드는 우리들의 푸른 꿈
오오오 오오오
가슴으로 느끼며 마음으로 얘기해요
우리는 노래를 사랑하는 친구들
오오오 오오오

 

아 아 아 노래를 사랑의 노래를
미지의 세계를 찾아서 떠나요
사랑의 노래를 멈추지 말아요.
언제나 끝이 없어라 알 수 없는 질문과 대답
저 넓은 하늘 끝까지 우리들의 사랑을 노래해요
오오 오오

 

미지의 세계를 찾아서 떠나요
사랑의 노래를 멈추지 말아요.

  호쾌한 목소리가 한순간도 가라앉지 않고 곡이 끝날 때까지 유지되는 이 벅찬 노래는, “이 순간을 영원히”라는 첫 구절로 어느새 집약된다. 어쩌면 이 구절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로망이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시를 쓰는 모든 이들의 존재 형식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마음으로/미래를 만드는” 꿈 역시 그러한 예술적 충동의 원질이요 에너지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노래로 만들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모여 “사랑의 노래”를 멈추지 않고, “미지의 세계” 를 찾아 떠나는 일련의 과정은, 다가오지 않은 시간을 앞당기면서 젊음을 역동적으로 펼쳐가자는 선명한 권면을 담고 있다. <어제 오늘 그리고>가 다분히 회감回感의 성격을 띤다면, 이 노래는 “알 수 없는 질문과 대답”을 끝없이 던지면서 “저 넓은 하늘 끝까지” 사랑을 노래하자고 독려하는 거칠 것 없는 예감豫感의 속성을 가졌다. 비록 순간적으로는 “머물 곳”을 찾지만, 마음은 항상 “낯선 곳”을 찾아가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꿈은 그래서 “가슴으로 느끼며 마음으로 얘기”하는 동질감을 만들어낸다. 젊음만이 가능한 이러한 연대감은 언제나 끝이 없는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나는 “사랑의 노래”를 멈추지 않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미지의 세계”를 찾아나선 이들이 훗날 부르게 될 인생론이 어쩌면 <어제 오늘 그리고>일 것이다. 조용필 인생론의 생성-성장-귀착-회상의 끊임없는 운동이 이렇게 노래마다 편편이 흩어져 있는 셈이다.

 

노래는 역사를 발가벗기는 것

  멕시코의 유명한 시인 파스O. Paz는 언젠가 “시는 역사를 발가벗기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시 말하면 시는 역사의 추상성과 폭력성을 구체화하면서 그야말로 삶의 맨얼굴을 만나게 해준다는 뜻이다. 시를 통해 발가벗겨진 삶의 맨얼굴은 ‘시간’이라는 가혹하고도 부득이한 물질을 두르고 있다. 그리고 시는 시간의 필연적 흐름과 소멸의 운동이 초래하는 힘과 슬픔, 깊이와 역동성을 암시해준다. 우리는 조용필 노래의 존재론 역시 의미론적 투명성과 진정성을 동시에 꾀하면서 이러한 시간의 흐름과 소멸의 운동을 실증함으로써 역사를 발가벗기는 경험을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뒤돌아볼 겨를 없이 질주해가는 시간의 아폴론적 활력은 문명과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장밋빛 미래에 대한 예견까지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남긴 어둑한 그늘도 만만치 않아서, 우리는 존재론적 소외와 상실을 목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디오니소스적 혜안을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시간을 받아들이고 사유해간다. 그렇게 시간은 우리에게 수많은 ‘길’과 ‘세계’를 열어주 고 흘러간다. 이때 조용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시간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자신만의 노래로 들려주는 사색가로 다가오는 것이다.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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