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집 속의 詩] 이정란 시인의 「물의 나이테」
[새 시집 속의 詩] 이정란 시인의 「물의 나이테」
  • 이정란(시인)
  • 승인 2024.05.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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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나이테

이정란


내 몸이 내 것이 아님을
관망하는 유리컵

한 모금씩 줄어든
물의 테두리를 그려놓는다

불 켜진 방 안처럼 들여다보이던
찻물 위 연꽃 송이는
날개 다 펼친 채 죽어 있다

들릴 듯 말 듯 입술을 대보는
가느다란 동심원들

한 층 한 층 밟고 내려가면
시간의 바닥이 밟힌다

발소리에 놀라 동그랗게
몸을 마는 고요

기점이자 종점의 바닥을
조용히 짖는다

- 이정란 시집 『나는 있다』 (여우난골) 중에서

 


이정란 서울 출생, 1999년 《심상》 신인상에 당선해 등단했다. 시집 『어둠.흑맥주가 있는 카페』 에세이집 『사랑하는 날 아침에는』 『간이역 풍경』 『시비로 만나는 아름다운 시』 등이 있다.

 

* 《쿨투라》 2024년 5월호(통권 11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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