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19금 닭강정의 난감한 장난질: 〈살인자 ㅇ 난감〉, 〈닭강정〉
[드라마 월평] 19금 닭강정의 난감한 장난질: 〈살인자 ㅇ 난감〉, 〈닭강정〉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4.05.0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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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족의 달이다.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과 성년의 날 그리고 부부의 날까지 달력에 적힌 기념일을 하나하나 다 챙기다 보면 지갑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은, 그런 ‘난감한’ 달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 드라마를 왜 보고 있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한 회가 끝나면 다음 회를 연이어 시청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나의 소중한 시간을 인정사정없이 쪽쪽 흡입해버리는, 그런 ‘난감한’ 매력의 드라마 두 편이다. 〈살인자 o 난감〉과 〈닭강정〉.

‘난감한’ 19금의 세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 o 난감〉은 제목 그대로 난감한 드라마다. 청소년 시청 불가의 19금인데, 선정성이나 폭력성 차원에서 19금이라기보다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청소년이 시청하지 않았으면 하는 독특한 19금이다. 각색에 참여한 김다민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의도적으로 뒷맛이 약간 찝찝하게 썼다고 하는데, 그 의도가 고스란히 잘 전달되어서 더욱더 문제적이다.

드라마 초반, 사적 복수를 다른 여느 드라마와 결을 같이 할 것으로 보이던 〈살인자 o 난감〉은 시청자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신하며 마이 웨이를 걷는다. 주인공 이탕은 정의로운 영웅처럼 묘사되지 않고 그의 살인은 시원시원한 사이다 맛의 사적 복수로 미화되지 않는다. 김다민 작가가 말한 그 찝찝한 맛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발산하기 시작하는 것은 오히려 이탕이 살인자의 살인자를 내세워 (우리가 칭송해 마지않던) 다크 히어로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부터다.

살인이 지나치게 쉽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나 쉽게 죽는다. 한 마디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의 매듭이 살인이다. 살인으로 시작되고 살인으로 끝나는 이야기. 등장인물 간의 갈등은 오래 지속되지 않고 금세 살인으로 봉합된다. 새로운 갈등이 발생하지만 또 다른 살인으로 금방 덮여 버린다. 드라마가 하나의 연쇄살인이다.

죄책감. 이것은 우발적 살인을 하게 된 보통의 사람들이 갖는 보통의 감정이다. 보통의 윤리이자 보통의 상식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이탕은 자수하러 가는 길에 소매치기를 당해서 제출하려던 증거물이 다 사라진다. 두 번째 살인에서도 살해당한 사람의 집에 있던 반려견이 그 사람의 피를 핥는 과정에서 이탕의 지문이 없어져 버린다. 자수하려고 해도 증거가 ‘스스로’ 없어지는 기괴한 상황 앞에서 살인자도 난감하고, 수사관도 난감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드라마 밖의 시청자도 점점 난감해진다. 극강의 난감함 속에서 살인에 대한 죄책감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다.

대한민국의 ‘난감한’ 미래

참을 수 없는 살인의 가벼움보다 더욱더 우리를 난감하게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살인과 살인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난감한’ 교차 편집이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세 개의 장면이 연이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방에 못을 박기 위해 망치를 들어 올리는 이탕의 모습과 살인을 위해 망치를 드는 이탕의 모습,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 구타를 당하던 순간 손을 꽉 움켜쥐던 이탕의 모습이 교차 편집된다. ‘지금 여기’의 살인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현재와 환상이 어지럽게 엇갈리며 스스로 그들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들 사이의 서사적 개연성을 찾아내는 건 오로지 난감한 얼굴로 드라마를 시청하는 우리들의 몫이다.

우발적으로 첫 살인을 한 이후로 주인공 이탕의 삶은 180도 달라진다. 아니,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지극히 평범해서 오히려 소심하고 유약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는 이상한 의미로 특별해진다. 살인자의 살인자. 그는 자신에게 악인을 판별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다크 히어로의 정체성을 덧입는다.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죽어 마땅한 악인을 직접 응징했다는 뜨거운 정의감에 의해 점점 휘발된다. 그런데 그는 왜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것일까. 무엇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특별함은 그의 ‘지극히 보편적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10대 고등학생 학창 시절에서 비롯된다. 이탕은 학교폭력의 피해자다. 2023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5만 9천 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되었다. 5만 9천 건의 학교폭력. 5만 9천 명의 ‘이탕’이 존재한다. 10대 시절 경험한 학교폭력은 향후 그 사람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드라마에 등장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각기 다른 사건으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는 서로의 원인과 결과가 되어 서사적 개연성을 스스로 정립해나간다. 고등학생 이탕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꽉 쥔 주먹은 대학생 이탕의 살인 도구가 되어 사람을 죽인다. 폭력의 피해자는 폭력의 가해자가 되고 슬픔의 주먹은 분노의 망치가 된다. 대한민국 10대 청소년이 경험한 폭력이 과연 학교폭력뿐이었을까. 봄만 되면 대한민국을 노란색 눈물로 잠기게 하는 세월호 참사를 포함해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들이 그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십 년 후, 이십 년 후, 그들의 아픔과 슬픔이 우리 삶에 어떤 상흔을 남길지, 우리 미래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두렵고 무섭다. 가시적인 상처가 없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과관계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도 있겠지만 그것이 사건의 이유였는지 모르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과거의 살인과 현재의 살인이 교차편집된, 다른 듯 같은 모습의 ‘이탕’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의 ‘난감한’ 미래를 알게 되었다는 건 저주일까 축복일까. 굴레일까 기회일까.

닭강정의 ‘난감한’ 도발

또 다른 의미에서 난감한 드라마가 바로 넷플릭스 오리시절 시리즈 〈닭강정〉이다. 공개되고 나서 호불호가 강한 드라마로 유명 혹은 악명이 자자했다. 볼 사람은 이미 다 봤고, 보지 않을 사람은 끝까지 안 볼 드라마. 그래서 소개가 무의미하지만 그럼에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 마성의 드라마.

1회당 30분으로 10부작 총 300분. 다섯 시간. 한 번에 몰아보기에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주의사항이 있다. 약간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드라마가 갑자기 시시해진다.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나 자신도 시시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계속 집중하며 봐야 한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 소수를 향한 매니악한 취향과 감각의 드라마. 집중하는 만큼 재밌다. “이상해. 계속 보게 돼.”

왠지 재미있다고 생각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 재미없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드라마 대사를 통해 이병헌 감독의 주입식 교육을 받아 재밌다고 느끼는 것은 아닌지 헷갈릴 수도 있다. “자기 얼굴이 아닌 상대방 눈을 바꾸게 한다.” 이병헌 감독 특유의 코믹한 가스라이팅 때문에 드라마가 재밌게 느껴지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 역시 〈닭강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누군가 이런 대본을 쓴 것도 놀랍고 누군가 이런 대본을 보고 투자를 결정한 것도 놀라웠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건 이런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보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이병헌 감독은 영화 〈드림〉의 실패로 안정적인 선택을 하기보다는 도전을 택했다고, 사명감이 아닌 개인의 재미를 선택했다고 하는데, 이게 바로 진정한 아티스트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마이 웨이. 정말 감독 하고 싶은 거 다 했구나. 인생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구나. 이병헌 감독의 위험한 실험정신을 목도하며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대리 경험하는 것은 의외의 수확이다.

〈닭강정〉은 이병헌 감독의 세계관 대통합 ‘이병헌 유니버스’의 탄생을 널리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이병헌 감독의 최고 흥행작이자 ‘치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 〈극한직업〉. 드라마 〈닭강정〉은 제목부터 한국인이 사랑하는 치킨의 흔적이 짙게 난다. 달콤한 양념치킨의 핑거푸드가 바로 닭강정이다. 영화 〈극한직업〉과 드라마 〈닭강정〉 사이에는 오묘한 평행이론이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다. 내용을 알고 봐도 좋은 드라마가 있고 모르고 봐야 좋은 드라마가 있는데, 〈닭강정〉은 철저히 내용을 모르고 봐야 재밌다. 어처구니가 없는 서사 전개의 맛이 좋다. 드라마계의 ‘민트초코’ 맛이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살짝 이야기해보자면, 드라마 〈닭강정〉에서 중요한 키를 가진 인물이 바로 정효봉이다. ‘효봉’ 한국 사람으로서는 흔하지 않은 이름.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병헌 감독의 작품에서는 굉장히 흔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멜로가 체질〉에서도 ‘효봉’이 등장한다. 여주 3인방과 한집에 사는 남자. 그 남자의 이름이 ‘이효봉’이다. 영화 〈드림〉에서도 효봉이 나온다. 이번에는 ‘정효봉’이다. 이쯤이 되면 이병헌 감독의 페르소나는 ‘효봉’이다. 효봉. 뭔가 진지하면서 웃기고 귀여우면서도 근엄한 느낌이다. 효봉 유니버스.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아는 이병헌 감독의 ‘난감한’ 세계관이다. “이상해. 계속 보게 돼.” 난감하다. 난감해.

 

사진 제공 넷플릭스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두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이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과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하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여러 권의 책이 있다.

 

* 《쿨투라》 2024년 5월호(통권 11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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