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감독] 호기심과 응축된 단호함의 시선
[김보라 감독] 호기심과 응축된 단호함의 시선
  • 김준철(시인,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6.01 0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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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김보라 감독

 

 

 <엘에이 아시아 퍼시픽 필름 페스티벌>에 관한 소개를 할 계획으로 급하게 엘에이 다운타운에 위치한 사무실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사라 킴을 만났고 그녀를 통해 행사 담당자와 이메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수차례 행사 관련 인터뷰를 하던 중에 한국인 감독을 인터뷰할 수 없을까 물었고 뜻밖에 영화 <벌새> 김보라 감독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영화 <벌새>는 김보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이미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며 한국 독립영화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수작이다.

 성수대교가 붕괴되었던 1994년을 무대로 중학생 은희가 마주하는 사건과 사회적으로 진행되어지는 문제들 사이에서 ‘나’라는 작은 아이가 90년대를 관통하는 성장담을 그리고 있는 영화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14플러스섹션 그랑프리상, 이스탄불 영화제 국제경쟁부문 대상인 골드튤립상, 베이징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 뉴욕에서 열린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는 국제경쟁부문 대상을 포함하여 여우주연상, 촬영상 등 3개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이 영화제의 경우, 9·11 사태 이후 미국트라이베카 지역 사람들의 정신적, 경제적 회복을 위해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를 포함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만들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이번 엘에이 아시안 퍼시픽 필름 페스티벌에서도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주말 저녁, 가족과 시간을 보내던 중 그녀와 연락이 닿았고 다음 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리에 급
하게 김 감독이 머무는 산타모니카 인근으로 달려가게 되었다.

이렇게 급하게 인터뷰를 부탁드렸는데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이번 영화제에서도 상을 받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네. 어제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엘에이 아시안 퍼시픽 필름 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열린 영화제를 포함해서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김 감독의 <벌새>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먼저 궁금합니다.

우선 많은 해외 거주하고 있는 한국 분들이 관람을 해주셨습니다. 그 분들의 반응은 우선 과거 당신들이 지나온 8-90년대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공감과 성수대교 붕괴라는 사건에 대해 많이들 감정적 공유를 해주셨습니다. 물론 성장담의 영화이기에 아이들의 이야기 자체의 여정에도 많은 긍정적 소통을 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외국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마찬가지로 유년의 시절에 대한 원형적인 감정에 공감하여 감상해준 것 같습니다. 또한 모든 나라에는 그 나라의 한 시대에 공감하게 되는 큰 사건들이 있다고 봅니다. 일본은 쓰나미, 이탈리아의 다리붕괴, 또 미국의 9·11 같은…….


아무래도 아픔에 비례하는 공감적 반응이 많았겠네요. 그럼 김 감독님은 앞으로도 이러한 형태의 영화를 계속 만들 예정이신가요? 감독님이 바라는 영화적 앵글이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한동안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인간에 대한, 즉 사람과의 관계에서 파생되어지는 에너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그 에너지라는 것이 여러 결이 있겠지만 저는 생명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력이요? 조금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그러니까 사실 인간이라는 동물이 굉장히 연약해 보이고 쉽게 무너질 것 같지만 항상 고통과 역경을 결국 견디고 일어선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적으로도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저는 이 역시 결국 일어섰고 또 일어설 것이라 믿습니다. 즉, 어렵고 힘든 불행한 고리를 연결하고 있는 또 다른 희망적 연결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가 담고 싶은 이야기들이구요.


독립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그것도 단편이 아닌 장편으로 만든다는 것이….


맞아요. 지금 생각해봐도 어떻게 그 많은 고비를 지나왔는지 아득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번 <벌새>의 경우2013년에 미국 Mac Dowell Colnny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입주하면서 시나리오 초고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에 서울 국제 여성 영화제, 메가박스, 영화진흥위원회 등에서 힘을 얻고지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부산 국제 영화제 아시아 시네마 펀드, 선 댄스 영화제 Feature Film Program, 미국 독립영화 협회IFP 내러티브 랩 등의 도움으로 후반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말씀만 들어도 그 무게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독립영화나 순수영화가 관객에게 어필되기 참 어려운 시기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영화에 대한 준비나 계획도 있으신가요?


글쎄요. 일단 어느 정도의 그림을 그려놓은 상태이지만 말씀드렸듯 그 과정이 녹록치 않으니 생각만으로도 한숨이 나오는 것 같네요. 사실 이런 영화계의 문제는 제가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라도 생각됩니다.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좋은 글을 쓰고 진심어린 이야기를 만들어서 영화로 보여드리는 것이고 그 안에 담긴 제 바람이 많은 관객들에게 닿아서 변화에 물결이 된다면 바랄 게 없겠죠.


좋은 말씀이네요. 그 어떤 계획보다 좋은 것 같습니다. 덧없는 소원이나 허황된 계획이 아닌 솔직하고선명한 계획인 것 같습니다. 영화를 만드시는 과정에서 그런 경제적인 어려움이 아닌 영화판 안에서의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사실 한국에는 아직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여성감독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한국 영화 제작 여건도 남성적인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그것은 작게는 술자리의 농담이나 촬영장의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들조차도 여성들의 감성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당연히 여성들이 기회를 가지기 어렵고 또 환경도 열악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주위에 영화과를 나온 여성들조차 아예 그런 생각을 접는 경우를 많이 접했습니다. 롤모델조차 찾아보기 어려운거죠.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분위기를 바꿔서 제가 듣기로 이제 곧 <벌새>가 한국에서 개봉하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8월에 개봉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많은 상영관을 잡을 수 없겠지만 많은 관심을 가지고 격려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벌새>를 미국에서는 볼 수 없을까요?


현재 미국 개봉도 논의가 거의 끝난 상태이긴 합니다. 일단 한국에서 좋은 반응이 있어야 힘을 받을 것 같습니다.


정말 미국에서도 김 감독님의 작품을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짧은 시간이지만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보라 감독과의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의 눈을 떠올린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가진 깊은 호기심과 그 안에 응축된 단호함.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을 정확히 알고 또 거기에 맞는 걸음으로 선명하게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할리우드 리포트에서는 그녀와 그녀의 작품에 대해 “감각적이고 예리하게 관찰하며 단호하고 정직한 영화Sensitive, keenly observed and unflinchingly honest”라고 평했으며 트라이베카 영화제, 조 야닉은 “한국 문화와 관습을 부드럽게 비판하고 있다”며 데뷔작임에도 그녀가 얼마나 단단한 시선을 지녔는지에 감탄했다.


 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녀는 이 작은 한걸음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많은 걸음을 걸어 왔는지… 그리고 그런 그녀의 걸음이 이미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그녀의 또 다른 두 번째, 세 번째, 더 많은 걸음들을 위한 남모를 더 많은 노력들 위에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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