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욱 작가의 와인 인문학] 상파뉴
[고형욱 작가의 와인 인문학] 상파뉴
  • 고형욱(작가, 와인평론가)
  • 승인 2019.06.01 0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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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mpagne

  샹파뉴Champagne와 샴페인은 같은 말이다. 부르고뉴와 버건디, 피렌체와 플로렌스와 마찬가지로 현지 지명과 영어식 지명의 차이일 뿐이다. 샹파뉴 지방의 중심지는 랭스Reims. 백년전쟁 당시 잔다르크는 황태자에게 권해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올리게 한다. 이를 통해 왕위 계승권을 획득한 황태자는 샤를 7세로 즉위하면서 정통성을 인정받게 된다. 13세기에 완공된 대성당 서쪽 정문 옆에 서 있는 ‘천사의 미소’ 조각상이 행복한 표정으로 방문객들을 반긴다. 샹파뉴 지방은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 무역권이 중부 유럽 전체로 확장되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일 년에 여섯 차례 열리는 정기 시장에는 전 유럽의 상인들이 몰려들었다. 플랑드르의 양모, 동방의 향신료, 프랑스의 와인 등이 유럽 전역으로 팔려나갔다. 지금은 이곳에서 만든 샹파뉴가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샹파뉴라고 부르든, 샴페인이라고 부르든 기포가 솟아오르는 한 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기분이 들뜬다. 샹파뉴가 주는 행복, 즐거움이다.

  20년 넘게 프랑스에 살던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친척들이 즐겨 마시는 샹파뉴 몇 병을 들고 왔다고 한다. 와인 수입업자 한 분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현지 샹파뉴를 마셨다. 튤립 모양 샹파뉴 글라스를 가득 채운 황금빛 액체. 그 사이로 끊임없이 보글거리며 올라오는 기포들. 샹파뉴는 마시지 않고 보는 것만으로도 시각적인 풍미를 만족시켜 준다. 샹파뉴에서는 포도를 일일이 사람 손으로 수확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포도 수확철이 되면 장관을 이룬다. 잘 익은 포도송이들, 이랑 사이 사이로 펼쳐진 사람들의 띠가 포도밭 전체로 이어진다. 샹파뉴는 투명한 황금빛을 띄지만 청포도로만 만들지는 않는다. 가장 많이 심어진 품종은 화이트 와인용인 샤르도네이지만, 적포도인 피노 누아와 피노 뫼니에르도 적지 않게 심어져 있다. 샤르도네는 맛의 집중도와 견과류의 향기를 부여하고, 피노 누아는 깊이감과 미묘한 향을 선사한다. 세 가지 품종을 적절하게 블렌딩해서 균형미가 뛰어난 샹파뉴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샤르도네만을 써서 만든 것은 ‘블랑 드 블랑’(Blanc de blancs, 화이트에서 온 화이트), 적포도만 사용해서 만든 특별한 샹파뉴는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 블랙에서 온 화이트)라고 부른다. 문학적인 표현이니 칼라에서 오는 느낌을 연상하시길!

  중세 시대의 와인 전통을 이어나간 것은 수도원이었다. 샹파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수도승 동 페리뇽Dom Pérignon이다. 그는 태양왕 루이 14세와 같은 해인 1715년에 죽었다. 후각이 발달했던 그는 포도 맛을 보면서 여러 품종을 블렌딩하는 시도를 처음으로 했다. 또한 솟아오르는 기포 때문에 병이 터지지 않도록 코르크로 밀봉해서 샹파뉴를 안전하게 보관 숙성시켰다. 동 페리뇽 이전에도 스파클링 와인이 있었다고 하지만 제조 기술을 혁신적으로 바꾸면서 그는 샹파뉴의 아버지로 불린다. 국내에서도 고급 샹파뉴의 대명사로 알려진 동 페리뇽. 그의 이름은 샹파뉴의 고급 상표로 남아서 영원히 빛난다.

  동 페리뇽은 샹파뉴를 마시면서 “나는 별을 마시고 있소!”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샹파뉴 지방에 19,000여 군데의 포도 재배자가 있다. 그중에서 자기 상표로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 적어도 5,000곳에 이른다. 그런 생산자들이 샹파뉴 한 가지씩만 만드는 게 아니다. 등급별로 여러 종을 만들기도 한다. 한밤중에 우리가 볼 수 있는 별이 몇 개나 될까. 숫자가 헤아려지지 않는다. 별처럼 많은 샹파뉴를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마실 수 있는 걸까! 다 마시겠다는 욕심은 버리고 별 자체의 빛남과 기포를 즐기자. 루이 15세 시절 살롱 문화를 주도했던 마담 퐁파두르 Pompadour가 남긴 말도 잊히지 않는다. “여자가 마셔도 추해지지 않는 유일한 술은 샹파뉴다.” 그게 바로 샹파뉴의 매력이다.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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