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비어 있는 강렬함, 평양냉면 같은 쳇 베이커의 음악
[재즈] 비어 있는 강렬함, 평양냉면 같은 쳇 베이커의 음악
  • 김철수(재즈피아니스트, 광운대 교수)
  • 승인 2024.06.04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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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 게츠와 쳇 베이커

재즈와 평양냉면은 뭔가 생뚱맞은 조합 같지만 ‘평양냉면’ 외에 그 사람의 음악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그 사람은 바로 쳇 베이커다. 쿨 재즈의 대표 아이콘이자 노래하는 트럼페터로 잘 알려진 쳇 베이커는 재즈계의 평양냉면 같은 존재이다. 처음 접하면 ‘이게 뭐지?’ 싶다가도 시간이 지난 뒤에 슬금슬금 다시 생각나는 그런 매력을 가진 존재. 그의 음악은 어디 하나 강하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구석이 없다. 그럼에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고 선명하게 기억되며 결국 다시 찾아 듣게 된다. 그래서 누가 재즈 음반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쳇 베이커의 《Chet Baker Sings》를 권한다. 물론 처음에는 좀 심심할 수 있다는 핑계 같은 경고와 함께 말이다.

《Chet Baker Sings》가 발매되었던 1954년은 이제 막 쿨 재즈1라는 새로운 스타일이 세상에 등장하며 재즈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주던 시기였다. 빙 크로스비나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중후하고 한층 멋을 부린 노래에 익숙한 세상에 스물다섯의 잘생긴 백인 청년은 기존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노래와 트럼펫 연주를 보여주었다. 그 흔한 바이브레이션도 거의 하지 않은 채 아무런 꾸밈없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뚜렷한 구분이 가지 않는 미성의 목소리로 흔들림 없는 호흡의 전례 없는 창법을 담아낸 음반이었다. 비웃는 사람도 많았다. 호불호가 갈렸지만 쳇 베이커 인생의 역작이 되었고 재즈 애호가들에게 역대 가장 위대한 재즈 음반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앨범은 총 여덟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A면에는 〈But Not For Me〉, 〈Time After Time〉, 〈My Funny Valentine〉, 〈I Fall In Love Too Easily〉, B면에는 〈There Will Never Be Another You〉, 〈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 〈The Thrill is Gone〉, 〈Look for the Silver Lining〉이다. 자작곡 없이 모두 대중적인 스탠다드 재즈 넘버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한 해 전, 53년에 발매된 베이커의 전작 《Witch Doctor》에서 들려줬던 빠르고 화려한 비밥2 사운드는 단 한 트랙에도 담겨 있지 않다. 모두 미디엄 템포 혹은 발라드 넘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즉흥연주보다는 각 트랙의 테마를 부각시켰다. 쿨 재즈 대표 명반이라 불리는 데이브 부르백의 《Time Out》이나 마일스 데이비스 《Birth of Cool》의 사운드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듣기 쉬운 상업적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음악이지만 확실히 ‘쿨’하다.

음반의 성공은 2년 뒤 몇 곡을 추가해서 리이슈 음반 발매로 이어진다. 기존 곡들에 〈Like Someone in Love〉,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 〈My Buddy〉등 총 6곡이 추가되었는데 이중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는 쳇 베이커 전기 영화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 후반부에 에단 호크(극중 쳇 베이커)가 직접 노래하는 명장면으로도 유명한 곡이다. 특히 악기 없이 목소리 혼자 시작하면서 반음씩 하행하는 피아노가 등장하는 편곡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실 별 기술을 요하는 편곡도 아닌, 그저 비우고 절제하기만 하면 될 것 같은 편곡임에도 세련미가 느껴지는 건 다시금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 정갈하고 품격이 느껴지는 평양냉면의 육수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여담으로 영화의 에단 호크 버전의 편곡 역시 이를 따르고 있는데 중간에 트럼펫 솔로로 넘어가는 부분에 쳇 베이커의 버전과는 다르게 전조를 주며 음악을 담당했던 테란체 블랜차드의 개성을 담은 부분이 인상적이다.

 

본 기사의 전문은 추후 공개됩니다.

 


1 40년대 말에 등장하여 50년대에 성행한 재즈의 서브 장르로서 쉔베르크나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현대 클래식 음악적 사운드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40년대 주류 재즈 스타일을 차지하던 비밥과는 반대로 차분하고 냉소적인 사운드를 갖고 있다하여 쿨 재즈라 불린다. 브라스 편곡에서도 다소 클래식 현악기적 접근을 하며 기존 재즈 브라스 밴드 특유의 스윙 섹션 느낌이 많이 축소되었다.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발달하여 웨스트 코스트 재즈라고도 한다. 대표 아티스트로는 제리 멀리건, 데이브 부르백, 쳇 베이커, 마일스 데이비스 등이 있다. 쳇 베이커는 52년부터 53년 까지 제리 멀리건 밴드의 트럼펫 주자로 활동하였던 이력이 있다.

2 스윙 빅밴드 시대 이후 등장한 재즈의 서브 장르이다. 40년대 성행하였고 대중음악이었던 재즈를 예술음악의 영역으로 진입시킨 장르이다. 대중성을 중시하던 스윙 빅밴드 재즈에서의 제한된 연주에 반발로 시작된 음악이다. 연주자들은 직업 연주인 스윙 빅밴드 연주가 끝난 후 작은 재즈 클럽에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연주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일종의 즉흥 연주 콘테스트를 갖기 시작했는데 이를 잼 세션이라고 한다. 비밥 음악은 잼 세션을 통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으며 이른바 모던 재즈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장르가 되었다. 한마디에 보통 두 개 이상의 화성이 존재하고 업 템포의 빠른 스윙 리듬을 기반으로 한다. 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가 대표 뮤지션이다. 쳇 베이커는 찰리 파커와도 잠시 협연했던 적이 있다. 본문에 언급한 53년 음반 《Witch Doctor》에서는 베이커의 비밥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김철수 재즈피아니스트, 광운대학교 교수

 

* 《쿨투라》 2024년 6월호(통권 12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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