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박지은 작가와 연상호 감독의 쌍방구원 버디물: 〈기생수: 더 그레이〉, 〈눈물의 여왕〉
[드라마 월평] 박지은 작가와 연상호 감독의 쌍방구원 버디물: 〈기생수: 더 그레이〉, 〈눈물의 여왕〉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4.06.0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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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성 없는 전쟁이 바로 이런 것일까. 지상파 드라마와 OTT 시리즈의 대격돌. 비슷한 시기에 각각 자신이 속한 미디어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두 드라마가 소리없이 맞붙었다. 덩치 큰 두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은 역시나 ‘불쌍한’ 시청자들의 몫. 하루 24시간 유한한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어가며 두 드라마를 챙겨보느라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두 시간짜리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한번 마음을 주면 하루를 통째로 드라마‘님’께 헌납해야 한다. 〈눈물의 여왕〉 16부작, 〈기생수〉 파트1 6부작, 총 22시간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는 공개 즉시 한국을 포함 68개국에서 비영어 부문 1위, 87개국에서 탑10을 차지하며 K-크리처물의 신세계를 개척하였고,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매주 두 시간씩 우리의 사랑을 야금야금 적금 붓듯 390일 동안 알차게 모은 시청률 평균 24.9%로 tvN 드라마 역대 흥행 1위에 오르며 K-로맨스물의 화려한 귀환을 만방에 알렸다.

 

‘드라마의 여왕’ 박지은 유니버스

2006년 개국한 tvN의 역대 드라마를 시청률 순으로 세우면 1위는 21.7%의 〈사랑의 불시착〉(2019)이다. 그 기록에 서서히 다가가는 〈눈물의 여왕〉의 기세가 방영 내내 심상치 않았다. 〈사랑의 불시착〉이란 무엇인가. 한국 유일의 북한 배경 로맨스물. 누가 이 거대한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지켜보았다 .

과연 어떤 드라마가 역대 시청률 1위 드라마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거머쥘 것인가. 모두가 주목한 가운데, 오직 딱 한 사람만 이 상황을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박지은 작가다. 〈눈물의 여왕〉과 〈사랑의 불시착〉 둘 다 박지은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하였다. 박지은 작가와 박지은 작가의 싸움. 누가 이기든 박지은 작가의 승리로 끝나는 ‘꽉 막힌’ 해피엔딩이었다.

‘드라마의 여왕’ 박지은 작가만의 특기가 있다. 본인이 집필한 드라마 안에 본인이 집필한 다른 드라마를 패러디하는 것. 패러디란 모름지기 잘 아는 것,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해서 의미와 재미를 만들어내야 한다. 대중들이 아는 유명한 작품이 많이 있는 ‘인기 작가’만이 할 수 있는 ‘값비싼’ 개인기다. 〈눈물의 여왕〉에서도 그 특기는 도드라진다. “현빈, 손예진을 봐라. 사랑하는 연기 하다가 사랑하지 않았나. 너네도 그런 거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주연을 맡은 남녀 배우의 2022년 현실 결혼식이 〈눈물의 여왕〉에서 패러디되며 깨알 웃음을 선사한다.

‘익숙한 새로움’ 그동안 드라마에서 자주 봐왔던 익숙한 사랑 이야기인데 뭔가 새롭고 어딘가 낯선, 그래서 자꾸 보게 되는 것이 박지은 작품세계의 매력이다. 〈별에서 온 그대〉는 우리가 잘 아는 사랑 이야기지만 남자 주인공이 400살 외계인이다. 〈사랑의 불시착〉의 남자 주인공은 북한 장교, 〈푸른 바다의 전설〉의 여자 주인공은 인어. 나와는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과의 사랑. 두근두근 가슴이 설레면서도 아슬아슬 긴장감이 넘친다. 한마디로 이별이 예정된 애절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

 

화려한 슬픔 럭셔리한 비극

〈눈물의 여왕〉에 외계인과 인어는 없다. 하지만 뇌종양에 걸려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여자 주인공은 있다. 외계 행성, 북한, 바닷속, 이런 곳들보다 더 먼 곳이 ‘죽음’의 세계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갈 수 없는 곳. 한 번 헤어지면 절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 〈눈물의 여왕〉은 죽음을 앞둔 여자와 그 이별을 가슴 아프게 지켜봐야 하는 남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가을동화〉 〈겨울연가〉 〈천국의 계단〉…. 20여 년 전, IMF란 국가적 위기와 밀레니엄이라는 세기말적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에서는 불치병에 걸린 청순가련형여자 주인공과 그 곁을 지키는 왕자의 사랑 이야기가 인기를 끌었다. 그런 까닭에 각자도생의 ‘생존 모티프’가 문화트렌드인 2024년 대한민국에서 방영되는 〈눈물의 여왕〉을 ‘레트로 신파 로맨스’로 자칫 오해할 수 있다. 비슷한데 다르다. 익숙하지만 새롭고 비슷하지만 다른, 그게 바로 박지은 작가의 스타일이다 .

〈눈물의 여왕〉의 홍해인은 뇌종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녀는 재벌 3세다. 비극적이긴 한데 초라하지 않다. 화려한 비극이다. 홍해인의 남편은 아내의 시한부 선고에 슬퍼하지 않는다. ‘자동으로’ 헤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오히려 기뻐한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이후, 아내의 죽음을 기뻐하는 ‘쓰레기 남편’이 또 한 명 탄생한 것일까, 하는 우려도 잠시. 로맨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답게 백현우는 다시금 ‘영원한 이별’ 죽음을 앞둔 아내를 향한 사랑을 되찾는다. ‘환생’ 수준의대반전. ‘사랑은 모든 고난과 시련을 뛰어넘는다’는 로맨스물의 절대 법칙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세상사가 얼마나 복잡하고 무서운데, 사랑 하나에 울고 웃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너무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한 단순함이 아이러니하게도 로맨스물의 최대 강점이다. 로맨스 드라마에서만큼은 아직 사랑의 영향력이 건재하다는 것, 그래서 우리 안의 순수를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는 것이 로맨스물의 매력이다. 56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자하고 지켜낸 우리 안의 소중한 순수시대가 바로 〈눈물의여왕〉이다.

 

연상호 감독의 ‘아이러니’ 연니버스

단순함의 미학을 설파하는 ‘박지은 유니버스’의 대척점에서 현실의 균형을 맞추는 사람이 영화 〈부산행〉과 드라마 〈지옥〉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는 복잡미묘한 아이러니를 전면에 내세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정없이 어지럽힌다. 단순함과 복잡함의 환상의 콜라보. 이것이 2024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박지은 작가와 연상호 감독의 쌍방구원 서사다.

〈기생수〉는 인간의 뇌를 장악해 인간을 장악하는 기생 생물들이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하는 도발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일본 만화 〈기생수〉의 세계관에 연상호 감독 특유의 상상력을 덧입힌 SF 호러물이다. 드라마는 장엄한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지구의 누군가는 문득 생각했다. 인간이 100분의 1로 준다면, 쏟아내는 독도 100분의 1이 될까.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극 중 기괴하게 생긴 기생 생물이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키며 등장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제의 본질은 기생 생물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다. 〈기생수〉는 단순 크리처물과는 결이 좀 다르다. 크리처의 기괴한 외양과 액션이 시선을 끌다가도 무거운 메시지 때문에 극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내가 사는 지구가 이토록 위기에 놓여 있단 말인가. 정확히는 지구가 아니라 지구에 사는 인간이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위기를 불러온 것은 인간 자신이다. “인간의 수가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는 인간을 향한 엄중한 경고다.
존재론적 위기를 느끼며 드라마를 볼 수밖에 없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인간 생활의 최대 경쟁력은 인간의 조직, 그러니까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조직력이라는 기묘한 가르침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슬기로운’ 지구 생활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인간이 있어야 한다는 건지 없어야 한다는 건지, 죽으라는 건지 살라는 건지 알쏭달쏭하다 .

〈기생수〉에서는 총 세 개의 조직이 나온다. 기생 생물집단과 그들을 박멸하려는 인간 경찰 조직, 그리고 그 둘의 중간에 ‘기생 생물 변종 인간’ 정수인과 그의 동행자 설강우가 하나의 팀으로 껴있다. 세 조직은 각기 다른 조직력과 조직 스타일을 보여준다. 기생 생물 집단과 기생 생물 박멸 전담반은 서로 대립 구도를 형성하며 죽고 죽이는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이때 정수인과 정수인의 기생 생물 ‘하이디’는 각각 본인의 생존을 위해 서로를 지켜주며 제3의 길을 선택한다. 기생 생물과 인간의 복잡미묘한 공존. 마치 세상에는 검은색과 하얀색만 있는 게 아니라 회색도 있다는 걸 알려주듯이.

‘아이러니하게도’ 기생 생물 박멸 전담반의 이름이 ‘더 그레이’다. 그레이. 회색. 검은색과 흰색의 사이에 복잡미묘하게 존재감을 발산하는 색. 기생 생물 보고 죽으란 건지 살라는 건지. 있으란 건지 없으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흑과 백, 좌와 우, 갑과 을,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지 말자는 연상호 감독의 ‘아이러니’ 세계관은 권선징악이 확고한 K-세계관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사이다 맛 다크 히어로의 사적 복수에 대중이 열광할 때 드라마 〈지옥〉으로 혼자 브레이크를 걸었던 용감무쌍한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세계 1위를 기록한 〈지옥〉의 시즌 2가 곧 공개된다. 배우 유아인이 빠진 〈지옥〉을 바라보는 대중의 복잡미묘한 마음을 과연 그는 구원할 수 있을 것인가.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 수상.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 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중.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문화평론집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 외 다수가 있음.

 

 

* 《쿨투라》 2024년 6월호(통권 12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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