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사랑과 긍정의 철학이 빚어낸 질문의 목록: 서일옥 시인의 『크루아상이 익는 시간』
[북리뷰] 사랑과 긍정의 철학이 빚어낸 질문의 목록: 서일옥 시인의 『크루아상이 익는 시간』
  • 유혜영 에디터
  • 승인 2024.06.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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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있는 시조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일옥 시인이 새 시조집 『크루아상이 익는 시간』을 도서출판 작가 기획시선으로 출간하였다. 저자 서일옥 시인은 199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조집 『영화스케치』 『그늘의 무늬』 『하이힐』 『크루아상이 익는 시간』, 현대시조 100인선 『병산우체국』, 동시조집 『숲에서 자는 바람』 등이 있으며, 경남시조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성파시조문학상, 마산시문화상, 김달진창원문학상, 가람시조 문학상, 경상남도 문화상, 경상남도 예술인상, 윤동주 문학상, 노산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질문하는 시인, 서일옥

서일옥은 질문하는 시인이다. 마음 흔들릴 때마다 “내시조는 지금 / 어디쯤 와 있을까 / 나는 시조와 얼마나/ 가까워진 것일까”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는 서일옥 시인은 이번 시조집 『크루아상이 익는 시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5부로 나뉘어 총 65편의 가편들을 수록한 이번 시집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세상의 어둠에 의문을 가진다.

첫 시조집 『영화스케치』 에 있는 「니나」에서는 “길 떠날 노자도 없이 유기된” 외국인 노동자의 죽음을 노래하고 있고 「정신대 그 이야기」에서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천형의 도장”을 노래하며 역사 적 진실을 고백하고 해결하라고 외쳤다. 그 뒤에 나온 시조집 『하이힐』에서는 하이힐, 아이라인, 립스틱, 볼연지, 반지, 핸드백, 매니큐어와 같은 여성 친화적 소재를 통해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느 겨울 받아 든 / 출생의 운명처럼 / 가도 가도 높고 가파른 / 하이힐이 여기 있다

- 「하이힐」 부분

 

이 작품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고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명편이다. 그의 시조세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또는 어두운 현실과 그에 따르는 불안에 대해 해 온 질문은 이번 시조집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진다.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또는 어두운 현실과 그에 따르는 불안에 대해 해온 질문은 이번 시조집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진다.

「울둘목」에서는 역사에 관한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울둘목은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군 배를 수장시킨 유적지다. 승전을 찬양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이 시인의 경우 ‘핏빛 울음’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 반전사상의 표출이라고 읽을 수 있다. 어떤 전쟁도 “슬픔을 순장”하는 “핏빛 시간”을 만들기 때문이다. 「민족」의 경우는 분단의 아픔을 특별한 수사 없이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형제가 각기 북쪽으로, 또 남쪽으로 가게 된 것은 순간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 비극의 연출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물론 강대국이다. 그들의 극본에 의해 오늘까지 우리 민족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으로 살고 있다. 이 단시조에서 그런 분노를 찾아 읽는 것은 물론 독자의 몫이다.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맞서는 시인

그리고 시인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시를 통해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별에게」는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의 죽음을 고발한다. 「ARS」에서는 컴퓨터에 능숙하지 못해서 회사나 관청에 질의를 하려해도 번번이 실패하는 노년층의 고충과 정보화 선진국의 그늘을 고발한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화자의 질문 속에서 세태와 인정을 읽을 수 있고 희망과 발전을 위한 몸부림을 읽을 수 있다 .

「와이셔츠를 다리며」에서는 힘든 하루를 견디고 돌아온 사람이 누워있다. 가족 앞에서만은 오만을 떨고 허풍을 치던 사람이 누워있다. 무너진 그를 일으켜 다시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되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와이셔츠를 다린다. 그 고통을 아프게 느끼며 와이셔츠의 깃을 세운다. 화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표제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켜켜이 말아 올린 상큼한 언어들이 / 몸속의 통점을 밀고 부풀어 오르면 / 꽃잎은 시간을 열고 미소를 짓는다 // 아가의 살결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 마주 보고 새살새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 생각의 틈새에서도푸른 잎이 돋는다 // 모난 상처들 조금씩 둥글어지고 / 내일의 꿈을 꾸는 우리들의 어깨 위로 / 익어서 더욱 소담스런 햇살들 쏟아진다 

- 「크루아상이 익는 시간」 전문

 

첫 수에서는 ‘크루아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화자가 세상을 보는 시각을 잘 드러낸다. 삶의 아픔을 “밀고 부풀어 오르는” 크루아상의 모습은 “꽃잎”이고 “미소”다. 둘째 수에서는 분위기를 더욱 아름답게 그려 보이고 마지막 수에서는 그가 희망하는 내일의 모습을 보여준다. “둥글어지”는 것, “햇살이 쏟아”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우걸 시인은 해설에서 “그는 월권과 부패 혹은 부조리와 성적 차별 혹은 전망 부재의 오늘을 질타할 때도 그의 가슴 한 곳에 이런 사랑과 긍정의 세계관을 간직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질문들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너무나 가슴 아픈 절규이거나 간절한 부탁인 동시에 우리 사회의 개선을 위한 건강한 목소리다. 앞으로도 체험적인 시조, 진솔한 시조,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는 시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시조를 그는 계속 쓸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질문’은 그의 시학의 돌올한 개성이 되어 한국시조문학사에 하나의 빛으로 자리할 것”이라고 평했다.

질문은 마음의 창과 같은 것이다. 그의 시조집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이미 그의 깊고 넓은 사유의 개성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눈밝은 독자들은 시인의 질문 속에서 세태와 인정을 읽을 수 있고 희망과 발전을 위한 몸부림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서일옥 시인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들에 밑줄 그으며, “둥글어지”는 것, “햇살이 쏟아”지는 아름다움을 함께 경험해 보자.

 


 

 

* 《쿨투라》 2024년 6월호(통권 12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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