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에세이] 여행을 떠나요? 선택인가, 구속인가?
[사회문화 에세이] 여행을 떠나요? 선택인가, 구속인가?
  • 설규주(경인교대 교수)
  • 승인 2019.06.0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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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땐가 영어 시간에 읽었던 어떤 글에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때 ‘정치’와 ‘종교’는 피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항상은 아니지만 그 말이 제법 맞는 경우도 있었다. 풍부하고 다양한 개개인의 속성을 오로지 정치적, 종교적 잣대만으로 쉽게 규정해 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에서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실제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곤 한다.

  그럼 그 반대의 주제는 없을까? 대화의 분위기를 끌어올려 주고, 말없이 조용히 있던 사람까지도 한두 마디는 하게 해줄 만한 주제… ‘여행’이 바로 그런 주제가 아닐까? 정치나 종교에 무관심하거나 그런 걸 혐오하는 사람은 많지만, 여행을 싫어하거나 여행에 아예 무관심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의무교육만 받아도 최소한 수학여행 한두 번은 가기 마련이다. 꼭 어딘가로 여행을 갔다 온 사람만 여행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딘가로 여행 떠날 계획을 잡아 놓은 사람, 조만간 여행 계획을 짤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는 어떤가? 이미 여행 다녀온 사람보다 더 들떠 있고 신이 나 있다. 어른이든 아이든 그건 마찬가지다. 여행 가서 고생했다는 사람은 많아도, 여행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간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여행은 분명 우리를 설레게 한다. 여행 이야기만으로도 그렇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맛보는 경험은 실제로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 경험은 사진이나 동영상 속에 고스란히 저장되고 종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지인들에게 은근한 자랑거리로 전파된다. 주변의 부러움과 시샘을 느껴보는 것도 여행이 가져다주는 쏠쏠한 부산물이다. 이러니 여행이라는 것 참 괜찮은 매력 덩어리 아니겠는가.

  여행에 대한 찬양은 이 정도로 하고, 이제 조금 삐딱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우리가 떠나는 여행의 평균적인 모습은 어떤가.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 커다란 매력인데, 혹시 우리는 여행도 일처럼 하고 있진 않은 지? 언젠가 꽤 유행했던 카드회사 광고 문구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게 있었는데, ‘열심히’ 일하고 나서 떠나는 여행마저도 일하듯이 ‘열심히’ 다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게 뭐 나쁘기야 하겠는가? 여행도 열심히 하면 얻는 게 많다. 그래서 대개 우리 는 여행을 가면 가급적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면서 최대한 많이 보고 듣고 맛보려고 한다. 아침 일찍부터 어딘가를 들르기 시작해서 잠깐씩이라도 많은 발자국을 찍고 사진을 남긴다. 블로그나 TV에 소개된 곳이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더더욱 한번 가봐야 한다. 가보면 막상 별것 없어서 실망하더라도, 일단 가보고 나서 실망하는 게 낫다. 최대한 긴 하루를 보내고 숙소에 돌아와야 시간을 알차게 보낸 느낌이 든다. 여기를 또 언제 올까 싶은 마음에 잠잘 시간도 아깝다. 그러다 보니 여행은 즐겁지만 피곤하다. 그리고 피곤하지만 또 끌린다. 그렇게 피곤한 중에도 다음날이면 금세 잊고 또 초능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왜 그럴까? 왜 우리는 여행을 그토록 일하듯이, 싸우듯이 ‘열심히’ 하는 걸까? 정말 그런 여행을 원해서일까, 아니면 많이들 그렇게 하니까 그냥 동조하고 모방하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여행 날짜를 잡고, 스스로 행선지를 정하고,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즐긴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여행지를 검색해보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10곳’, ‘○○에 가면 꼭 해야 할 10가지’, ‘먹어본 사람이 승자인 맛집 5곳’ 등등, 온갖 광고성 정보가 우리를 향해 손짓한다. 장소만 우리를 불러대는 게 아니다. 이른바 ‘여행 시즌’이 되면 집에만 앉아 있기 어렵다.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 빨간 날이 겹치면서 생긴 연휴, 여름 휴가철이나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난다. 마치 명절에 고향 가듯이 당연하게. 공항이 붐비고 고속도로가 꽉 막혀도 그게 뭐 대수겠는가. 그렇게해서 어렵사리 도착한 여행지에 가면 또다시 온갖 관광 상품과 먹거리가 여행객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건 꼭 봐야 한다고, 이건 꼭 먹어야 한다고, 이번에 특별히 폭탄할인을 해 준다며 여행객을 유혹한다. 여행지에 가서 딱 원래 하려고 했던 것만 하고, 가려고 했던 곳만 가겠다고 아무리 결심해도 막상 도착하면 그렇게 안 된다. 대부분의 여행은 고도로 상품화되 어 있고 누군가에 의해 치밀하게 기획되어 있다.

  여행은 점점 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 구속되어 가는 것 같다. 애초에 여행을 떠나는 것부터가 순수한 자유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있다. 여행을 꼭 가고 싶어서 간다기보다는 왠지 가야만 할 것 같아서 간다면, 예컨대 누구는 어디어디를 갔다 왔다는데, 거기가 그렇게 좋다는데, 그러니 나도 한 번은 가봐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여행의 결정적 동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여행지에 가서도 남들이 하는 것은 해봐야 하고, 남들이 가는 곳은 가봐야 여행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여행이 그처럼 사회 구조의 산물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우리가 잘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2018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휴대폰 시장에서 갤럭시 시리즈가 60% 정도를 차지하고, 미국에서는 아이폰의 점유율이 50%를 넘는다고 한다. 한국에 있는 갤럭 시 사용자의 대부분과 미국에 있는 아이폰 사용자의 대부분은 자신이 이것저것 따져보고 휴대폰 모델을 스스로 골랐다고 생각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만약 그들이 나라를 바꾸어서 태어났다면, 아마도 현재 한국의 갤럭시 사용자 대부분이 미국에서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진 않을까?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이처럼 개인은 사회 구조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인이 한낱 로봇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각성한 개인은 사회 구조에 균열을 낼 수도 있다. 이 같은 개인과 사회 구조의 상호작용을 여행에 적용해 본다면? 아마도 우리는 여전히 당대의 트렌드를 따라 여행을 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금 보다는 덜 획일화되고 덜 상품화된 여행에 대한 개개인 의 욕구가 더 많이 표출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여행이 본래 추구하는 쉼의 역할도 지금보다 더 커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조용필이 노래했던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누군가가 기획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선택한 결과였으면 좋겠다.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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