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이 시대 싱어송라이터의 생존법
[음악 월평] 이 시대 싱어송라이터의 생존법
  • 서영호(음악가,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6.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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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찬의 싱글 연작

 

  그러니까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쯤 소리바다가 등장하면서부터였나 싶다. 듣고 싶은 음악이 생겼을 때 CD를 사려다 망설이게 된 것이 말이다. 소리바다로 대표되는 이른바 P2P 사이트들의 등장과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으로 간편하게 앨범 수십 장을 통째로, 그것도 공짜로 내려받을 수 있게 되면서 돈 주고 앨범을 사는 행위는 어딘지 사치스러운 행위로 여겨졌다. 이후 관련업계의 반발과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소리바다도 유료화되긴 했지만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의 등장에 따른 모바일 미디어 환경의 혁명적 변화는 음악 소비를 스 트리밍과 다운로드 쪽으로 기울게 했다. 이제 음반 구매의 목적은 음악 감상이 아니라 거의 소장용 구매가 주를 이룬다.

  음악의 유통과 소비 환경의 변화는 창작되는 음악 자체의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뮤지션들이 주로 3년에 한 번, 짧게는 2년에 한 번씩 정규앨범- 즉 풀 렝스full length 앨범을 내고 이후에는 후속 활동으로 공연을 이어가며 틈틈이 다음 앨범의 콘셉트를 정하고 곡 작업을 하는 식이었다. 정규앨범이란 단순히 9~10곡 이상의 곡들을 한데 묶은 것이라기보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주제 아래 유기성이나 흐름을 고려하여 구성된 여러 곡의 총체물로서 하나의 작품집이었다. 그래서 곡의 순서라든지 앞 곡이 끝나고 다음 곡까지의 정적의 시간을 몇 초로 할지 등도 중요한 고려 요소였다. 그런데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게 되면서 곡들은 각개 전투를 하게 되었다. 한곡 내보내서 전사하면 빨리 접고 다음 곡 진격… 이런 식으로 ‘뭐 하나만 걸려서 떠라’ 식이 된 거다. 초반 30초 정도가 귀를 사로잡지 못하면 스킵 당하기 일쑤고 그래서 음악은 더욱 패스트푸드같이 되었다. 음악적 즐거움을 얻는 과정에 인내란 것 은 조금도 용납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싱글 단위의 곡 발표 방식은 이러한 환경에 최적화된 해결 책으로 대두되었다. 정규앨범 한 장 내고 2,3년 동안 다음 곡을 내지 않으면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기에 한 곡씩이라도 최대한 자주 신곡을 발표하는 것이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이 시대 싱어송라이터의 생존법 들어가는 정규 앨범에 비해 싱글 단위의 제작은 소위 폭망해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또 곡마다 콘셉트를 달리하여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되면서 트렌드에 민첩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에 걸쳐 구축한 아티스트만의 사유의 집적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재빠른 리액션과 지금 이 순간의 공유에 더 쉽게 지지와 공감을 보내는 대중, 그리고 이에 부합하는 SNS로 대표되는 지금의 소통 방식이나 사회 담론의 형성 구조는 싱글이라는 형식에 더 맞닿아 있는 듯 보였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환경에 가장 유리한 무리는 래퍼들과,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는 가수, 특히 아이돌 가수들이었다. 랩 음악은 음악의 3요소라 할 수 있는 멜로디, 화성, 리듬에서 앞의 두 요소 없이 비트와 리듬에 가사를 얹는 것만으로도 곡을 완성할 수 있다. 최근에 자신에 대한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발표 하고 이에 대해 세간의 비난이 일자 이에 반박하는 신곡을 바로 며칠만에 발표한 래퍼들의 사례도 있었지 않은가. 게다가 가장 강력한 시장으로 성장한 아이돌 음악 쪽은 가장 많은 작사, 작곡가들이 경쟁적으로 달려들어 곡을 바치고 있는 분야다. 반면 작곡, 작사, 가창, 거기다 대부분은 편곡까지 모두 혼자 해내야 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은 이들에 비하면 신곡 생산의 효율성과 속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인트로가 길었는데, 이번에 들여다볼 음악은 작년 7월부터 매달 한 곡씩 연달아 발표하고 있는 조규찬 의 싱글 연작들이다. 아니 사실 그의 음악 자체보다는 이 시대에 대한 그의 음악적 대응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조규찬이 누구던가. 음악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형들인 조규천, 조규만과 함께 일찍이 업계에 발을 들인, 유재하 가요제 1회 1위 출신의 중견 뮤지션이다. 만 22세에 때의 1집 이후 여러 장르를 소화하여 다양한 색채의 음악들을 발표하면서도 ‘조규찬 음악’ 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꾸준히 쌓아올린 한국의 대표 싱어송라이터 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인스턴트하고 격렬하게 드라마틱한 전개나 성대 혹사의 고음과 열창을 짜내 한 번 요란을 떨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나가수’에서 최단기간 조기 탈락한 것 처럼, 그는 모든 사람이 다 알아줄 수는 없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지향하는 부류다. 그런데 이제 앨범도 낼 만큼 냈고, 시도해 볼 만한 음악도 두루 다 해보고, 게다가 항상 당대의 인기차트가 최고로 지향하는 곳에서는 살짝 빗겨난 음악적 성향을 지닌 이러한 중견의 싱어송라이터는 도대체 다음 곡의 창작을 위한 당위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이러한 부류들은 어디서 다음 곡의 착수를 위한 동력을 얻고 또 한 발짝 내디딜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조규찬이 선택한 길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싱글 단위로 발표하되 최대한 자주, 그것도 매 달 한 곡씩 작업하는 것이다. 싱어송라이터가 일정한 기간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매우 큰 결단이다. 창작을 위한 영감은 마감만큼 정기적으로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영감과 의욕만으로 채울 수 없는, 그러나 계속되어야만 하는 창작의 과업을 노동의 경지로 승화시킨 의식적인 자기몰두와 채찍질로라도 완수하겠다는 숭고하고 결연한 자기다짐인 것이다. 이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을 때 찾아올 자괴감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을 각오해야 함은 물론이다. 비슷한 사례로 윤종신이 ‘월간 윤종신’을 통해 매달 곡 을 발표하고 있다지만 다른 작곡가에게 곡을 받기도 하고 다른 가수와의 상호 피처링이나 협업을 통해 유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조규찬의 싱글들은 오로지 그만의 작업이다. 그리고 이 싱글 연작에 대해 어떤 언급이나 홍보, 포장도 없이 묵묵히 자기와의 약속을 이행 중이다.

  다행히 올해 5월까지 지나온 그의 달력에는 동그라미만 남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들여다보니 이건 단지 매달 발표라는 목표의 완수는 물론 기한에 맞춰 겨우 납품한 무엇 이상의 곡들이더라. 싱글이라는 시스템의 장점을 오히려 십분 활용한 곡들은 확실한 콘셉트를 가지고 저마다의 매력을 보여주 며 다양한 음악적 어법을 누구보다 빨리 완성도있게 자기 것으로 체화하는 조규찬의 장점이 잘 드러난다. 무엇보다 반가운 점은 현재 대세라는 음악 스타일들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시도에 마음껏 몰두해 음악적인 면이나 가사 모두에서 과감히 행하고 있으면서도 본능적 감각으로 동시대와 완전히 동떨어지지 않는 공감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스스로도 새로운 작업들에 들떠서(실용음악학과 전임교수직과 라디오 진행자로) 고단한 가운데에서도 즐겁게 붙들고 늘어진 의욕과 설렘이 음악 곳곳에서 전해진다.

  이미 한참을 달려온 뮤지션에게 다음 한 곡을 또 완성할 당위성과 동력은 결국 현재의 음악 생태계를 면밀히 분석해서 내린 가장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전략이 아니라 그저 자신 내면의 음악적 아이디어와 욕구에 순수히 집중하고 그것을 즐기는 것 자체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어떤 계기와 결단이 필요했을 뿐.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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