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월평] 경계의 사선을 넘어! 연극 '거북이, 혹은...'
[공연 월평] 경계의 사선을 넘어! 연극 '거북이, 혹은...'
  • 최교익(신한대 교수,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6.01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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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창작 연극을 살펴보면 극 초반 관객들에게 호기심과 웃음을 유발시키고 난 후, 후반부에는 눈물을 빼는 신파적 전개가 대부분이다. 관객들은 이러한 클리셰cliché한 전개에 불만을 표한다. 그러나 삶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의 상처는 지위를 막론하고 동일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21세기 동시대에서 희노애락을 느끼는 기준 또한 사람마다 비슷할 것이다. 멀리서 보면 우린 시간의 강물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강바닥의 작은 돌조각 파편으로 인해 누군가는 아픔을, 누군가는 피 흘리고 있는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드라마는 현실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각자의 경험과 환경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 똑같은 삶. 클리셰한 삶. 클리셰한 현실이 연극으로 관객 앞에 마주하게 된다. 뻔할 것 같다고 비난하던 관객들은 결국 극 흐름에 녹아들어 어느새 무대에 선 배우와 감정을 교류하고 있다. 모양새는 다르지만 결국 내 삶의 이야기를 드라마를 통해 마주하기 때문이다. 연극 <거북이, 혹은...>은 이러한 형식에 매우 부합한 케이스다.

  2019년 예술지원 매칭 펀드에 선정된 <거북이, 혹은...>은 관객보다 빠른 호흡의 클리셰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헝가리의 풍자 예술 대가인 커린티 프리제시의 블랙 코미디로 관객들에게 창의력과 신선함과 색다른 재미를 경험케 한다. 일본 훗카이도, 도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퍼치, 데브레첸 등 3개 도시에 오르내리며 호평을 이끌어낸 연극 <거북이, 혹은...>은 정신요양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정신과 박사, 그리고 그를 짝사랑하는 간호사, 자신을 거북이라고 믿는 환자, 그리고 교육 실습을 받으러 온 젊은 의대생, 누가 관객이며 누가 연기자인지 정체성을 교차시키고 모든 경계선을 순식간에 무너트리며 상황은 점점 곤란하게 변해간다. 관객과 배우를 경계하는 ‘제4의 벽’의 무너짐은 이 연극의 주요 포인트로 작용하는데 거대한 ‘제4의 벽’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문이 열리지 않아…”로 단정하는 사람들. 그 문은 세상을 마주하기 싫어 스스로를 얽매고 있는 사슬이 아닐까?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자아의 존재를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극은 배우를 통해 투영한다. 그리고 생각의 꼬리를 던진다.

  사람을 믿음으로 마주하기보다 경계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 그래서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보호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런 불운의 모래알갱이가 되어 버렸을까? 아마, 문명의 발달이 인간의 고독을 심화시킨 근원이 아닐까? 이유를 막론하고 아날로그 정서는 오랜 추억이 되어버렸다. 지독한 개인주의로 우리는 우리 인간 스스로를 소외시킨 것이다. 연극 <거북이, 혹은...>은 외로운 인간들의 이야기인데, 출연하는 배우의 경험과 정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관객들을 더욱 몰입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정신병원’이라는 특정한 공간을 무대 배경으로 내세운 것은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와 경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정상적으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와 비정상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는 사회인의 옳고 그름은 누가 어떻게 기준할 수 있을까? 관객들은 연극을 관람하는 내내 배우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행동, 그리고 아이러니한 상황에 배꼽을 잡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정상일까?” 아니면 “비정상일까?” 그리고 “나는 내 기준으로 인해 타인을 비정상으로 만들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기준은 정상일까?” 여러 물음의 해답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삶의 숙제로 가만히 던져진다.

  극에 출연하는 신준철 배우는 공연의 의미를 “자아의 발견”이라고 한다. 소극장에서 거대한 논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결국 ‘나 자신의 현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자아의 거울을 보라는 것이 아닌가? 관객은 극을 보며 한참 웃고 배우들과 어울리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또다시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나 자신의 현 위치’를 파악하게 된다면 나는 조금 더 성장하게 되는 것일까? 성장? 성장하게 되는 것이 내 기준에서 어떤 의미일까? 이 또한 자의적 판단이지 않을까?

  연극 <거북이, 혹은...>은 대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서울을 비롯한 타 지역에서 관객을 맞이할 준비 중이다. 더 많은 관객들에게 블랙코미디의 웃음과 아이러니한 상황, 그리고 더 많은 고뇌를 선물하기 바란다.

 

공연    2019년 5월 1일 ~ 5월 12일

장소    대전 소극장 고도

작가    커린티 프리제시

연출    박준우

배우    신준철, 김현재, 최한솔, 문성필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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