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박은옥 40주년] 다시,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다시,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 박은정(시인)
  • 승인 2019.06.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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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성 짙은 ‘한국적 포크’를 추구해온 정태춘, 박은옥이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이들의 데뷔 40주년을 맞아 여러 예술계 인사들이 모인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가 만들어졌으며, 이는 정태춘·박은옥 부부 활동 40년의 음악사적, 사회적 의미를 조망하기 위해 2019년 연간 진행되는 기념사업으로 콘서트, 앨범, 출판, 전시, 학술, 아카이브, 트리뷰트 프로그램 등이 전국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공동체, 반분단, 차별철폐 등의 고단하고 힘겨웠던 한 시대를 돌아보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성찰과 질문을 던져줄 것이라 기대해본다.

 정태춘은 1978년 자작곡 <시인의 마을>로 데뷔하여 비판적인 한국적 포크음악을 추구했다. 1980년 박은옥과 결혼하여 ‘정태춘과 박은옥’이라는 이름의 부부 듀엣으로 활동하였고, <촛불>, <떠나가는 배>, <사랑하는 이에게> 등의 곡을 발표했다. 한동안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번 정태춘, 박은옥 40주년을 맞아 누구 못지않은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어, 그동안 그의 목소리에 목말랐던 팬들에게 뜨거운 단비가 되어주고 있다.

 가수 정태춘은 정직하다. 고집스러우리만치 오직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하는 이다. 그의 노랫말에는 과장이 없으며 그의 멜로디에는 포장이 없다. 어떤 세련미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끓어나오는 생명성을 마주하게 된다. 그 당시 혼란스러웠던 우리의 젊음에 필요했던 것이 생명성이 아니었나 싶다. 그 부당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 살아남아서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있는 목소리였다. 뒤돌아보면 나의 20대에도 항상 그의 노래가 있었다. 누군가는 그의 노래를 큰소리로 열창하였고 누군가는 그의 절절한 가사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밤늦게 술 한잔을 걸친 다음에는 삼삼오오 어깨동무를 하고 떼창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 풍경을 가능하게 했던 그가 어느 날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동안 그는 붓글을 쓰고 가죽 공예를 하기도 했으며 여러 악기들을 연주하며 여전히 한 명의 예술가로서, 그리고 우리가 미처 눈 돌리지 못한 어렵고 고단했던 이야기들의 공간에서 꿋꿋하게 서 있었다. 이제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도 초로의 나이에 이르렀지만 그의 목소리의 서정성은 여전했고 그의 몸짓과 표정은 역시나 소박하고 정직했다. 우리는 그를 시대의 가수 정태춘이라고 부른다.

 정태춘은 오랜 시간 세상과 불화했으며 그 이야기들을 노래와 시로 만들며 사람들과 함께 한 시대를 살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정태춘과 함께 가수로서 동반자로서 자리를 함께해 온 박은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가수 박은옥의 깊고 청아한 목소리는 <사랑하는 이에게>, <회상>, <윙 윙 윙> 등 많은 곡들을 사람들의 뇌리에 남겼다. 뛰어난 보컬리스트로서의 박은옥에 대한 나의 기억은 노래 <사랑하는 이에게>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당시 낡은 테이프 속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세상의 오염된 것들과는 다른 곳에 있는, 꾸밈없이 맑고 정갈한 목소리였다. 그때 나는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궁금증을 가졌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떠올려보니 분명 그런 목소리를 몸에 지닌 사람의 심성은 과장과 거짓부렁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정태춘, 박은옥은 7년 만에 새 앨범 <사람들 2019년>을 발표했다. 시대상이 반영된 노랫말과 미니멀한 반주 속에 정태춘 특유의 깊은 울림이 전해진 이번 새 앨범을 감상한 음악팬들은 특히 좋은 가사의 가치를 재인식했다는 찬사를 이어가고 있다. 40년간 한국 사회의 모순과 저항을 겪어내면서, 인간 소외에 대한 성찰을 음악으로 담아냈던 정태춘의 연륜이 묻어나는 목소리와 현시대를 반영하는 솔직한 노래 가사들이 잘 어우러졌다는 평가이다. 그리고 40여 명의 미술가가 참여한 전시 <다시, 건너간다>가 서울 세종미술관에서 예술가들의 오마주 작품과 공연, 토크쇼 등을 볼 수 있는 융복합 전시로 진행되었으며 출판사 <천년의시작>에서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노래 에세이가 동시 출간되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가수 정태춘의 시집과 노래 에세이를 편집한 에디터로서 남다른 소회를 지니게 되었는데, 먼저 시집 『노독일처』는 15년 전 출간되었던 시집을 복간한 것이고, 시집 『슬픈 런치』는 『노독일처』를 출간하고 난 뒤 오랜 시간 써온 시들을 묶은 신작 시집이다. 가수로서만 익숙했다면 이제 시인으로서의 정태춘을 다시 한 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에게는 항상 음유시인이라는 말이 붙어 다녔으며 솔직한 시대상을 반영하며 노래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왔다. 그 필력의 연장선으로서 정태춘의 시를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래 에세이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는 가수 정태춘이 그동안 발매했던 노래 가사와 미발표 가사가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좀처럼 만날 수 없던 그의 에세이가 실려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정태춘의 주옥 같은 노래 가사와 정태춘의 생활력에서 풍기는 인간적 면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 출판사 <각>에서 출간한 헌정출판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가 대중음악,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여하여 발간되었으며 그의 음악과 행적을 기리는 다양한 시각을 만나볼 수 있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정태춘은 “시대에 저항한다고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많은 사람과 같은 꿈을 가지고 연대감을 느끼는 활동을 할 수 있어서 굉장히 행복했다”고 나직한 목소리로 과거를 회상했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신작 시집에 대해 “시인 자신과 함께 늙어온 시간에 대한 헌사”라고 평했으며, 임순례 감독은 “정태춘·박은옥 부부는 사회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던 386세대에게 정신적으로 버티게 해주고 어느 길로 걸어가야 할 지 알려준 숲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전국순회 공연중이다. 얼마 전 서울 공연과 부산 공연을 성황리에 끝냈다. 이번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를 통해 그의 못다 한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풀어내기를 바라며, 아울러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는 지난한 한 시대를 거쳐온 우리들의 이야기가 그와 함께 40년을 맞이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하고 불투명하지만 한 시대를 위로했던 뜨거운 울림이 지금도 사람들 가슴속에 살아있으며 타오르고 있음을 우리는 기꺼이 확인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잃어버린 첫차를 다시, 기다릴 수 있기를 나는 소망한다.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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