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Theme]21세기 어트랙션 시네마가 산출한 실재의 감각 -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7월 Theme]21세기 어트랙션 시네마가 산출한 실재의 감각 -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 김시균(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 승인 2019.06.2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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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극장가에도 여러 편의 영화가 도착했지만 그 중 가장 눈여겨봐야할 것은 단연 <기생충>이다. 이 영화는 영화사 초기의 어트랙션 시네마의 흔적을 육체에 새긴 채 21세기 서사 영화와는 사뭇 다른 행 로를 걷는다. 이미지의 물성, 시청각 너머 후각과 촉각으로서의 공감각적 수용 등이 그것이다.

  요컨대 <기생충>은 1910~20년대 무성영화적 운 동성을 이미지로 구동하면서 액체와 기체를 통한 실재적 감각까지 산출해내는 영화다(이와 달리 스 크린 바깥에서 진동과 연기, 물줄기 따위를 유발해 감각을 자극하는 4DX 상영관은 영화적 체험의 실 감과는 얼마나 유리돼 있는지.) 거기에 어느 한 장 르에 기대지 않는 봉준호 특유의 장르 비틀기와 해 체, 재조합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전에 없던 오락 적 재미를 충족시킨다. <기생충>이 계급 우화라는 편의적 해석에만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영화는 하류층 기택(송강호)네 식구가 상류층 박 사장(이선균) 저택에 차례로 진입(기생)하는 것으 로 진행된다. 그 진입의 성공 과정이 극의 전반부를 이루고 있다. 나머지 절반에 해당하는 후반부는 기 택네의 모략에 쫓겨난 가정부 문광(이정은)이 비 내 리는 밤 현관벨을 누르고 대저택 실내로 난입하면 서 촉발된다. 서사의 국면은 이로부터 급전환하는데, 경쾌한 블랙 코미디 풍이던 것이 알프레드 히치 콕과 클로드 샤브롤 풍의 서스펜스 스릴러 및 호러 로 재구동한다.

 

  첫 신의 배경은 기택(송강호)의 식구들이 사는 반 지하 집이다. 카메라는 네 켤레의 축 늘어진 양말과 창문을 잡아 이곳이 반지하임을 효율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플라스틱 빨래걸이에 메달린 양말들이 화면 왼쪽 상단을 점하고 있고, 후면에서는 네 칸 으로 구획된 창문이 프레임 양끝을 채운다. 카메라 가 아래로 천천히 고개를 내리면 청년 백수 기우(최 우식)가 스마트폰으로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입력하 고 있다. 양말과 창문, 기우를 잡은 화면 구도는 정 확히 영화의 마지막 숏과 대응하는데, 네 켤레 양말 아래 모스부호 해독 종이를 들고 있는 기우의 모습이 그것이다.

  <기생충>의 형식은 수많은 대구·대응 구조로 이뤄져 있다. 기택의 가족과 박 사장의 가족이 각각 네 명씩 대립쌍을 이루듯 영화는 대구와 대응 구조 의 연속이다. 가난한 기택의 가족과 부유한 박 사 장 가족을 담은 구도가 유사하게 반복된다. 예컨 대 기우가 대저택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는 숏이 있 다. 구도는 다르지만 이는 박 사장의 아들 다송(정 현준)이가 선글라스 렌즈로 하늘을 바라보는 숏과 대응한다.

  <기생충>의 빈자(하인)는 부자(주인)를 흉내낸다. 박 사장이 욕실에 누워 TV를 보던 숏은 이후 기정( 박소담)이 욕실에 누워 TV를 보던 숏과 정확히 겹 쳐진다. 기우는 그런 기정에게 “너 정말로 이 집 주 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충숙(장혜진)과 남편 기택 이 캠핑을 떠난 박 사장네 저택 쇼파에 가로로 누운 숏 또한 그렇다. 이후 박 사장과 아내 연교(조여정) 가 가로로 누운 숏과 앞선 숏은 포개진다. 이 모두 흉내의 숏이라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하인이 주인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이 세계의 불 문율이다. 이들 사이엔 넘어설 수 없는 계급적 간극이 놓여져 있다.

  그 간극은 크게 세 가지로 제시된다. ‘계단’이 보 여주는 상승과 하강의 반복 이미지, ‘냄새’와 ‘빗물’ 이라는 기체적·양체적 양식이 그것이다. 박 사장 네 대저택은 바깥에서 실내로 들어서는 계단부터 1 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동선 등이 끊임없이 상승의 이미지로 제시된다. 반대로 기택네 집과 박 사장네 비밀 지하실은 그 자체로 반지하·지하의 하 강 이미지를 구현한다. 화면 상에 펼쳐지는 이러한 상승과 하강 운동의 거듭되는 충돌은 양자의 계급적 간극을 한층 전면화한다.

  극 초중반 다송(정현준)이가 처음 발화했고 박 사장이 지속적으로 발화하는 냄새라는 경멸 섞인 단어 역시 그 간극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가 무말랭이 냄새, 지하철 냄새 따위로 표현하는 이 기체적 물질은 빈자와 부자의 계급적 간극을 강화하며 화면에 냄새의 실감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이는 기체 너머 액체적 물질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요컨대 <기생충>에서 빗물은 서사의 국면을 전환시키는 결정적 물질이다. 이를 예기하는 것이 기택네가 대저택 잔디밭 바깥으로 나와 있는 순간이다. 하늘 위엔 불 길한 검은 먹구름이 가득히 드리워져 있다. 이제 곧 비가 내리고 참극이 시작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기생충>에서 가장 매혹적인 시퀀스 는 기택과 기정, 기우가 탈출하는 대목이었다. 대저 택에서 반지하집으로 재귀하는 이 중후반부는 강렬 한 운동성으로 보는 이들 감각을 사로잡는다. 세르 게이 에이젠슈타인이 제창한 움직임의 어트렉션 연 상될 만큼 놀라운 활력과 실감이 산포된다. 대저택 을 나온 세 사람은 빗물에 젖은 생쥐 신세로 끊임없 이 걷고 뛰며 지하 세계를 향해 하강한다. 롱숏, 익 스트림 롱숏 등으로 잡은 너른 화면 구도 아래 세 사람이 펼쳐 보이는 아래로의 운동이 빗물의 액체 적 운동과 함께 교직한다. 프레임 후면(전면)에서 전면(후면)으로, 좌측(우측)에서 우측(좌측)으로, 위 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인물들의 수직·수평·사선 운 동이 그칠 새 없는 빗줄기의 수직 운동과 경사로와 계단을 타고 흘러 내리는 빗물의 사선 운동 등과 몽 타주된다.

  이들이 마침내 동네에 당도했을 때, 사방은 온통 침수로 아수라장이다. 기택네 반지하집은 거의 허 리춤까지 물이 차 올라 있다. 그 물은 박 사장네 냉 장고에 들어찬 맑은 생수와는 달리 더러운 오물 더 미이고 진창이다. 이 세계는 물마저도 양극화한다. 극 초반 과외자리를 얻은 기우가 박 사장네 집에 처 음 들어섰을 때, 그의 눈앞으로 펼쳐지는 건 스프링 클러에 의해 흩뿌려지는 정원 위의 물이다. 그러나 반지하집 창가 바깥에서는 만취한 취객에 의해 방 뇨되는 오줌이 있을 뿐이다. 대저택 통유리 바깥으 로 떨어지는 비가 기택이 경탄하듯 운치 있는 풍경 을 선사한다면 하류층에겐 실존을 위협하는 재해로 작용한다. 기정이 변기 위에 앉아 천장에 감추어둔 담배를 꺼내어 물 때, 그의 하반신 아래 변기 뚜껑 틈새로는 검은 오물이 세차게 역류하고 있다. 기체 (냄새)와 액체(물)가 동시에 실감을 산출해내는 순간이다.

  <기생충>의 소소한 재미를 이루는 요소 중 복선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대구·대응 구조와 더불 어 극의 디테일을 이루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기억 나는 대로 열거해 보자. 기택네가 시킨 피자 위에 흩뿌려지는 붉은 소스는 문정이 기침하며 버린 휴 지 위로 기택에 의해 흩뿌려진다. 창문 바깥에 놓 인 전봇대에서 방뇨하는 남자에게 기택·기우 부자 가 물을 끼얹는 신도 그렇다. 반지하집 내부에선 기 정이 스마트폰을 꺼내어 이 장면을 찍고 있다. 그러 면서 “물 바다야”라고 하는데, 이 발화는 이후에 있 을 침수라는 재해를 미리 암시해준다. 박 사장네가 캠핑을 떠난 자축의 밤. 충숙이 남편 기택에게 농담 삼아 바퀴벌레라고 부르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바 퀴벌레는 얼마 후 캠핑에서 돌아온 박 사장 부부 몰 래 테이블 밑에 숨어 있던 기택이 빠져나오는 순간 그대로 체현된다. 검은 어둠을 깔고 엎드린 그의 검 은 모습은 그 자체로 바퀴벌레의 형상의 그것이다. 첫 신에서 빵을 먹던 기택의 손가락에 의해 튕겨나 가는 꼽등이 역시 그렇다. 이후 꼽등이는 한 밤중 대저택을 빠져 나가려는 기우와 기정의 구부린 동 작에 의해 여러번 육화된다. 빈자가 부자에게 기생 해야만 하는 ‘충蟲’의 세계. <기생충>은 기택네 가족 을 벌레의 형상으로 지속해 이미지화한다. 서사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이 ‘충’의 처지를 충들이 망각 하는 순간에 이르러서다.

  이쯤에서 산수경석에 대해 언급해야할 것 같다. 산수경석은 이 글의 서두에 언급한 이미지의 물성 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사물이다. 이 주물呪 物적이면서도 마신魔神적인 덩어리가 기택네 가족 의 운명을 주재하였노라 보는 것은 조금 과한 해석 일까. 그러나 극 초반 기우의 친구 민혁(박서준)이 선물하고 가는 수석이 극 내내 불길한 느낌을 안겨 주는 것은 사실이다. 수석의 시점에서 기우를 바라 보는 듯한 비인칭 숏에 이어 모여 앉은 기택네 가족 뒤편의 서랍장 위에 놓인 수석의 이미지는 그 자체 로 분명 기이한 기운을 드리우고 있다. 가령 침수된 반지하집 어딘가에서 떠오르는 수석을 화면 가득 잡아낸 정면 숏은 실로 무시무시하다. “상징적”(기우는 여러번 “상징적이네”라고 말한다)으로 뵈던 사물이 더러운 반지하 동네의 오물 위로 부유하는 순 간을 담은 이 숏은 영험한 사물이 악마적 물질로 변태하는 것처럼 불길하다.

  극 후반, 기택과 기우의 대화 신을 보자. 침수 대피소가 마련된 체육관에서 기택과 기우가 나란히 누워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계획을 해보았자 실현 되는 것은 없으니 무계획이 낫다는 아버지가 “돌 을 왜 껴안고 있는 거냐”고 묻자 아들은 답한다. “얘가 자꾸 나한테 달라 붙는 걸요. 진짜로, 얘가 자꾸 날 따라와요.” 기우의 얼굴은 마치 귀신에 홀린 듯 보인다. 자꾸 따라오는 돌을 안고 박 사장네 지하 실로 내려가는 기우의 행위는 제 의지와 무관히 돌 의 의지에 이끌려 내려가는 듯하다. 이후 수석은 마 치 자의로 기우의 손에서 벗어나려는 것처럼 지하 계단 아래로 거칠게 굴러떨어지고 이내 근세의 손 에 쥐어진다. 이어지는 건 푸르른 잔디밭을 물들이 는 핏 빛 아수라다(<기생충>에서 기택네 가족이 너무나 손쉽게 박 사장네 집에 진입하는 것을 두고 의 구 심을 갖는 이가 없지 않았다. 이 모든 걸 저 불가 해 한 산수경석의 악마적 의지의 산물로 본다면 어 떻겠는지.).

  흥미로웠던 점 하나만 더 언급하며 이 글을 맺고 싶다. 극중엔 봉준호의 자기 오마주로 여겨지는 설정이 여러군데 발견된다. 지상과 지하라는 상하 공 간 대비는 아파트 단지의 지상과 지하를 대비시킨 <플란다스의 개>(2000)를 연상케 한다. 근세라는 어수룩한 빈민에게선 향숙이로 유명한 <살인의 추 억>(2003)의 광호(박노식)의 이미지가 오버랩되며, 그치지 않을 듯한 축축한 빗줄기의 액체적 화면, 딸의 죽음이라는 설정 등은 자연스레 <괴물>(2006)이 떠오른다. 모멸감을 주는 언사를 계기로 충동적 살 인이 발생한다는 점에선 <마더>(2009)가, 수직선으 로 표현된 세계를 가로로 눕힐 경우 수평의 계급 열차가 된다는 점에선 <설국열차>(2013)가 생각나고, 자본(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맘몬적 세계관은 전작 <옥자>(2017)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하지만 봉준호 의 <기생충>이 자신의 전작들을 자기 오마주하되 그 너머의 지평으로 이행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 인다. 그 지평엔 인간과 세계를 고민하는 작가의 짙은 고뇌가 굵은 주름들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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