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Theme] 〈살인의 추억〉 리뷰
[7월 Theme] 〈살인의 추억〉 리뷰
  • 제이슨 베셔베이스(영화평론가, 숭실사이버대 교수)
  • 승인 2019.07.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3년 4월 25일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살인의 추억>은 학계와 평론가들 사이에서 역대 한국 영화 최고작 중 하나로 꼽힌다. 박광수 같은 감독들이 사용하던 미적 사실주의 기법에서 탈피한 봉감독은 특유의 블랙 코미디와 풍부한 미적 감각으로 1980년대 영화제작자들이 마주하던 문제와 비슷한 이슈를 다루었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살인의 추억>은 한국사의 격동기를 다루고 있다.

  김광림의 희곡 <날 보러와요>(1996)를 원작으로 한 <살인의 추억>은 1986년∼1992년 사이에 경기도 화성에서 여성 10명을 강간, 살해한 악명 높던 연쇄살인범을 잡는 내용이다. 살인범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영화 속 사건은 1986년 10월에서 1987년 하반기 사이에 일어나지만 에필로그는 영화 개봉 당시로서는 현재인 2003년이 배경이다. 영화의 오프닝에는 주연 중 한 사람인 박두만(송강호 분) 형사가 나온다. 그는 젊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 곳에 경운기를 타고 나타난다. 논두렁 안에 있는 작은 배수로에 시신이 감추어져 있었는데 사건 현장은 출입이 전혀 통제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아이들이 피해자의 옷가지를 가지고 놀기까지 하면서 현장을 훼손하고 있었다. 이런 식의 무능함 때문에 수사는 계속 방해를 받는다. 영화는 또한 두 번째 범죄 현장을 정교한 롱테이크로 잡으며 화려하게 그려내는데, 이 장면에서 두만은 아수라장 속에서 마을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며 수사를 하려고 고군분투한다.

ⓒ싸이더스

  두만과 그의 파트너 형사 조용구(김뢰하 분)는 사건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데, 이들이 용의자를 심문하는 방법에서 그걸 알 수 있다. 증거를 조작하고 용의자를 구타하는 그들의 수사 방식은 그저 코미디다. 한편 사건 수사를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서태윤(김상경 분) 형사는 보다 꼼꼼하게 사건에 접근해간다. 그가 세 번째 시신이 밭에 있다는 걸 알아맞힐 때만 해도 그의 수사 방식대로 하면 범인을 곧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역시 시골 형사들과 다를 바 없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 궁극적으로 수사에 방해가 되는 건 198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그것이 영화 속의 진정한 악당이다. 사건 해결을 가로막는 원인은 형사들보다는 그들의 임무 수행을 훼방하는 존재에게 있다. 전두환 독재 정권의 서슬 퍼런 억압이야말로 진짜 원인이다. 봉감독은 그러한 억압의 결과로 나타난 그 시절의 잔혹한 현실을 묘사한다.

  이 영화는 악랄한 신자유주의를 배경으로 삼은 코엔 형제의 영화 <파고>를 연상시키는데 이 역시 1980년대가 배경이다. 비슷한 블랙 코미디 영화인 <파고>는 주제와 스타일 측면에서 봉감독의 영화에 영향을 준 게 분명하다. 엔딩으로 가면서 <살인의 추억>은 <파고>와 달라진다. 봉감독은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미국 장르 영화와의 복잡한 관계를 강조한다. 그는 단순히 스타일이나 특징을 따라한 것이 아니라 이를 영리하게 모방하다가 뒤집어 버린다.

ⓒ싸이더스

  에필로그가 <살인의 추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건 거의 틀림없다. 영화는 현재(2003년)로 돌아오면서 매우 달라진 한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만과 아내는 두 아이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데 그 세팅이 특히 흥미롭다. 집은 현대식이고, 딸은 휴대폰으로 계속 뭔가를 하고 있다. 아들은 밤새 컴퓨터 게임을 했다. 아주 짧은 장면이지만 많은 것 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단기간에 경제가 급성장한 한국의 모습이 이 장면에 담겨있다. 한국은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로 바뀌어 갔다. 영화에서도 나오듯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부의 탄압과 그에 대한 저항을 겪으며 힘들게 얻어낸 것이다. 이같은 변화 덕분에 영화 산업도 번성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재벌을 통해, 이후에는 벤쳐 자본을 통해 영화 산업에 큰 투자가 이루어지고 영화 검열 관련법이 바뀌면서 <살인의 추억>과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봉감독은 이를 절실히 인식하고서 한국의 격동적인 역사에 내재한 투쟁과 그 결과를 그려낸 것이다. 영화는 엔딩에서 최근에 어떤 남자가 두만과 같은 장소에 왔었다는 한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카메라를 직시하는 두만의 모습을 침울하게 보여준다. 젊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었던 영화의 첫 장면과 같은 장소다. 그 남자가 범인일 거라는 깨달음과 함께 호러로 전환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눈부시게 성장했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의 길을 걸어오면서 많은 개발도상국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뼈아픈 대가도 치러야 했다. 이것이 영화의 마지막에 담긴 내용이다. 이러한 메시지를 내레이션이 아니라 엔딩에서 닫힌 결말을 거부함으로써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한 이 영화는 스토리텔링과 프로덕션에서 마스터 클래스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 《쿨투라》 2019년 7월호(통권 61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