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시인 조용필'이라는 뜻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시인 조용필'이라는 뜻
  • 유성호(본지 주간, 한양대 국문과 교수)
  • 승인 2018.10.01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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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기록’으로 몸을 바꾸기 이전의 어떤 상像이다. 그것이 발화의 순간을 얻으면 기록이 되고,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누군가의 마음에만 남는 개인적 침전물이 되고 만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시기가 따로 있는 법인데, 그걸 일러 그 사람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았고, 어떤 시대야말로 과연 ‘우리의 시대’였을까? 그 ‘시대’에 대한 기억이 발화의 순간을 얻으면 그것은 그대로 ‘기억의 문화사’가 되어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 점화點火의 순간을 가져다줄 것이다. 물론 충실한 자료 섭렵을 통해 한 시대를 차근차근 복원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시대’에 대한 기억의 직접성은 그때의 사람과 장면과 어떤 분위기까지 선명하게 재현할 수 있는 호환할 수 없는 힘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시대’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곧 10대 후반부터 서른 직전까지가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모든 순간이 의미론적 단위가 될 정도로 성장과 성숙의 리듬이 확연한 분절을 이루면서 생성되었고, 또 미시적 시기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한 해 한 해의 기억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자연스럽게 그때 강렬하게 각인된 대중문화적 아이콘이 없을 리 없다. 그 안에는 차범근, 최동원, 홍수환 같은 운동선수도 있고, 정윤희, 안성기 같은 배우에다, 황석영, 이문열 같은 소설가, 이현세, 박봉성 같은 만화가, 루카치, 크리슈나무르티, 에리히 프롬, 시드니 셸던 같은 지금은 잘 언급이 안 되는 외국 사상가나 작가도 여럿 있다. 그런데 그 기억들이 조용필로 돌아오면 한층 더 선명해지는 것이다.

기원起源과 원적原籍

조용필의 노래 전체를 통틀어 ‘기원(origin)’이 되는 노래는 어떤 것일까? 어떤 노래가 조용필의 지금을 있게 했고, 또 가장 풍요로운 원류가 되어 수많은 지류들을 가능하게 했을까? 여러 곡을 생각해볼 수 있으리라. 이때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1975년에 솔로로 전향한 조용필이 이 노래를 자신의 첫 히트곡으로 각인했으니까 말이다. 오랫동안 막혀 있던 조총련계 재일교포의 고국 방문 기회가 열리면서, 마치 이 노래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라는 결구結句는 이러한 구체적 역사 상황을 아스라하게 남겨두고 있다. 물론 이 노래를 처음 부른 가수는 조용필이 아니라고 한다. 자료를 보면 최초로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통영 출신의 김성술(예명 김해일)이었다. 그는 1970년 유니버설 레코드에서 〈돌아와요 충무항에〉라는 제목으로 노래를 불렀다. 물론 두 노래의 곡조는 똑같다. 그걸 개사하여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조용필이 부른 것이다.

나로서는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조용필의 높은 인지도를 만든 첫 곡이고, 세상이 다 아는 국민적 애창곡이니, 이 곡이 조용필의 ‘기원’이라는 데 이의를 달기 어렵다. 그러나 조용필의 존재론적 ‘원적(original domicile)’은 다른 노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원적’이란, 숱한 원심력과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순간순간 귀환하고 마는 ‘조용필다움’으로서의 궁극적 귀속처 같은 것을 말한다. 여럿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나는 조용필의 음악 세계를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노래가 〈고추잠자리〉와 〈못 찾겠다 꾀꼬리〉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그의 화려한 재기를 가능케 했던 〈창밖의 여자〉나 〈단발머리〉를 꼽을 것이다. 누구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스케일이나 〈그 겨울의 찻집〉 같은 사랑의 아름다움을 들지도 모를 일이다. 왜 그뿐이겠는가?

〈친구여〉, 〈꿈〉, 〈허공〉, 〈모나리자〉, 〈바운스〉 등 그를 재확인시키는 명곡은 그것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이 지면을 채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가운데서도 이 두 작품이 조용필 노래의 원형과 궁극을 다 담고 있다고 믿고 있다. 두 작품 모두 김순곤이 작사하고 조용필이 직접 곡을 입혔다. 지금은 노래방에서도 잘 불리지 않는 이 노래들은 과연 어떤 ‘시詩’를 품고 있을까?

〈고추잠자리〉와 〈못 찾겠다 꾀꼬리〉

〈미워 미워 미워〉를 타이틀곡으로 했던 제3집(1981)에 실린 〈고추잠자리〉는, 조용필 스스로에게도 매우 중요한 전기가 되어준 작품이다. 창법이나 노랫말의 차원 모두에서 그렇다. 조용필은 이 노래에서 일체의 훼손이 없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환하였고, ‘엄마’와 ‘고추잠자리’를 환하게 불러들였다. 도입부는 다음과 같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 싶지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 싶지

이 부분은 어떤 세계에 대한 기다림과 보고픔 그리고 그 세계의 불가능성으로 인한 슬픔의 정서를 내장하고 있다. 반복되는 “엄마야”는,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에서처럼 어린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야’를 호격이 아니라 감탄형으로 보면 놀람과 황홀감을 동시에 느끼는 화자의 마음을 담은 표현이 되기도 한다. ‘자꾸만’과 ‘갑자기’가 교차되면서, 그 지속성(“자꾸만”)과 순간성(“갑자기”)은 이러한 상실감과 그리움이 어쩌면 항구적일지도 모를 것임을 내비친다. 그렇게 “아직은 어린” 화자는 어떤 세계의 상실과 그것의 회복 불가능성 그리고 그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토로함으로써, 어떤 부재 상황을 자신의 시적 상황으로 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 부분에서 조용필의 목소리는 테이프를 역회전하는 특이한 음향과 함께 ‘육성’에서 ‘환성幻聲’으로 나아간다.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날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

서정시 특유의 회감回感 원리가 구체성을 얻고 있는 이 장면은, 외로움과 어지럼을 온몸으로 느끼는 어린 화자가 가을 언덕에서 들꽃을 따다가 잠들어버린 순간을 제시한다. 가을하늘에 무심하게 흘러가는 “흰 구름”처럼,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처럼, 어린 화자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음을 막연하게 예감한다. 이어지는 “랄라라 랄라라 랄라라 랄랄라라”와 “뚜두두두두두뚜”의 후렴 역시 “외로움 젖은 마음”을 물질화하여, 화자의 기다림과 보고픔 그리고 그 세계의 불가능성으로 인한 슬픔의 정서를 에둘러 들려준다.

여기서 잠깐, 이 노래가 발표된 시점을 생각해보자. 그때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이 어느 정도 알려지기 시작한 때였다. 그 점에서 〈창밖의 여자〉나 〈단발머리〉와 이 작품은 불과 1년여 차밖에 없지만 그 안에 만만치 않은 의미론적 낙차를 숨기고 있다. 조용필은 가을빛 물든 언덕에 맴맴 도는 ‘고추잠자리’를 통해, 온몸의 가성을 써서 올리는 음색을 통해, 폭력으로 훼손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꿈의 세계를 들려주었다. “날아가는 고추잠자리”는 얼마나 아득하고 아름다운가. 아마도 이러한 그의 ‘시대’ 의식이 정점을 구가한 것은 〈생명〉이라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를 찾아 헤매는 ‘술래’를 자신의 분신으로 쓴 노래가 바로 〈못 찾겠다 꾀꼬리〉인데, 제4집(1982) 타이틀곡이기도 했던 이 작품은 이젠 다 커버렸는데 여전히 술래가 되어 찾고 있는 어떤 세계를 찾을 때도 되었고 보일 때도 되었는데 찾아지지 않는 어떤 세계를, 한없이 그리워하는 모습을 ‘술래’라는 은유로 표현하고 있다.

엄마가 부르기를 기다렸는데
강아지만 멍멍 난 그만 울어 버렸지
그 많던 어린 날의 꿈이 숨어 버려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술래야
이제는 커다란 어른이 되어
눈을 감고 세어보니
지금은 내 나이는 찾을 때도 됐는데
보일 때도 됐는데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막막한 폭력의 시대에 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술래”가 아니었던가. 이 노래의 도입 부분을 들어보면 조용필의 음악이 왜 그러한 세계를 그리워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실의 힘에 역동적 작란作亂의 에너지로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우리는 알게 된다. 이처럼 ‘고추잠자리/술래잡기’라는 어린 시절의 선연한 기억들로 구성된 이 작품들은, 조용필의 노래가 잃어버린 어떤 세계를 탐색해가는 서정적 탈환의 예술이요, 가장 아름다웠던 세계를 재현해가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詩’임을 더없이 풍요롭게 알려준다.

두루 알다시피, 조용필은 배명숙이 쓴 라디오 드라마 〈창밖의 여자〉 주제가로 1980년 대중들의 뇌리에 재등장했다. 복귀 1집은 그야말로 80년대가 조용필의 시대임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우리는 학교에 가면 시대의 아픔을 담은 민중가요를 주로 불렀지만, 캠퍼스를 나오면 조용필 노래를 힘껏 불렀다. 그의 노래는 시대를 선명하게 설명하려는 저항성은 은폐되어 있었지만, 사랑의 절대성과 영원성만 상투적으로 갈망하는 노래들과는 스스로를 구별하고 있었다. 조용필은 어쩌면 그러한 노래들과 저항가요 사이의 완충 지대였다고나 할까,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부터 어떤 가치를 찾으려는 사람까지 아우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노래는 내구성과 지속성을 갖춘 당대의 일급 텍스트였다. 의미 깊은 노랫말, 수용층의 뜨거운 반응, 다양하게 변화해가는 그의 외관(헤어스타일만 몇 번 바뀌었다!)과 창법(락과 국악과 트로트 등등!)과 무대 매너(눌변이었지만 친절하고 따뜻한!) 등이 그만의 아우라Aura를 이루는 심층이었을 것이다. 김민기나 정태춘처럼 한 시대를 첨예하게 비판하지도, 남진이나 나훈아처럼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조용필에게는 그들을 다 합쳐도 따를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던 셈이다.

Ⓒ YPC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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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텍스트로서의 조용필

요컨대 조용필은 가창력은 물론, 흡인력과 친화력을 모두 갖춘 최량의 텍스트다. 강强대 강强이 부딪치던 1980년대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은 그가 ‘오빠’로서의 친근성을 주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순수한 소년의 이미지가 결속하여 뿜어내는 그의 노래는, 삶이라는 것이 팍팍할 때 운동권은 운동권대로 한량들은 한량대로 좋아할 수 있었다. 그만큼 조용필의 폭은 넓었고, 음색은 다양했고, 노랫말은 깊었다. 또한 조용필은 변화와 개신改新의 캐릭터였다. 그는 동어반복을 하지 않는다. 노력의 결실인지 선천적 DNA인지 몰라도 그는 자신을 한 자리에 두지 않고,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는 역동성을 가졌다.

그렇지만 조용필의 미학은 단연 ‘위안’의 힘에서 극대화한다. ‘위안’이라는 것은 수용자들이 스스로를 긍정하게끔 하는 힘을 말한다. 우리는 갑갑한 시대를 살아와서 그런지 ‘부정의 미학’을 심하게 경험했다. 시대를, 타인을,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은 젊은 날의 통과의례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용필은 나를, 타인을, 인생을 궁극적으로 긍정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물론 대부분의 대중가요는 누군가 떠나고 부재한 데서 시작하여 아직도 그대를 기다리고 그리워한다는 것을 노래했다. 조용필에게도 그런 노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서정적인 노랫말로, 온몸을 쥐어짜는 정성스런 목소리로, 나를, 타인을, 시대를, 인생을 끌어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웃음’과 ‘눈물’ 사이의 이 폭 넓은 스펙트럼은, 영원한 기다림의 미학보다 훨씬 더 깊이를 가졌던 것이다. 조용필이 누군가를 향해 보내는 위안은 이처럼 충동을 부추기거나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울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최근 조용필의 목소리에는 〈창밖의 여자〉 같은 폭발력이나 〈단발머리〉 같은 스피드는 없다. 그도, 그의 노래도, 황혼을 맞아가는 것일 터이다.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도 어떤 정점의 순간들을 보내면서 그가, 그의 노래가, 천천히 황혼에 접어 들어가는 것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안쓰러운 황혼이 아니다. 거장巨匠의 아름다운 변화를 함께 겪어가면서, 사람들 스스로 한 시대를 함께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힘은 한때 그를 사랑했던 이들이 그 기억을 반환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조정해가면서, 함께 평행선을 그어주면서 동행해가는 데 있는 듯하다.

누군가 춤과 춤꾼을 분리할 수 없다고 한 바 있거니와, 조용필 노래에서 어떻게 노랫말과 노래 부르는 이를 떼어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그의 노래의 작가作家가 작사가인지 작곡가인지 아니면 노래를 부르는 조용필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노래의 핵심이 가수의 해석력에서 갈라진다면, 조용필 노래는 조용필 스스로의 해석과 창법과 표정과 시대의 반향이 그대로 하나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최종 텍스트는 언제나 조용필 자신이었고, 그 텍스트의 창안자가 바로 ‘시인 조용필’이라는 비유적 명명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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