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런 완성도 높은 영화는 원어로 봐야 하는데 번역으로밖에 볼 수 없어 아쉽다
[INTERVIEW] 이런 완성도 높은 영화는 원어로 봐야 하는데 번역으로밖에 볼 수 없어 아쉽다
  • 설재원(본지 에디터, 프랑스 특파원)
  • 승인 2019.07.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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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도르의 〈기생충〉을 관람한 파리 현지 인터뷰

 해외 첫 프랑스 개봉과 현지인의 관람평

 지난 6월 5일, 드디어 <기생충>이 프랑스에서 공식적인 해외 첫 개봉을 했다. 개봉 후 첫 주말을 여는 금요일(6월 7일) 오후, 황금종려상 수상의 감동을 재확인하고자 15구에 위치한 고몽 꽁방시옹Gaumont Convention을 찾아 <기생충> 관람객을 만났다. 아내와 함께 극장을 찾은 나타프 폴Nataf Paul(76)은 “<기생충>이 이번에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이기도 하고, 영화평이 너무 좋아 처음으로 봉준호 영화를 관람했다”고 한다.

 그들은 “기대한 만큼 꼭 봐야 하는 좋은 영화”라며 “부유한 사람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콘셉트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영화의 가장 좋은 점으로 “흡입력 강한 스토리와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꼽았다. “초반부에 웃으면서 보던 이야기가 마지막에 그런 결말을 맞을 거라는 상상은 전혀 못했다”며 놀라워했다. 다만, “사람이 과하게 많이 죽은 것 같아 70대 관객 기준에서는 너무 파격적이고 센 엔딩이었다”고 말한다.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쥘리엥 샤를 Julien Charlot(30)은 “평소 스릴러 장르를 좋아해 <기생충>을 관람했다”고 한다. 그는 “<기생충>이 내뿜는 이색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분위기”에 감탄하며 영화의 완성도에 주목했다. “프랑스에서 개봉되는 외국영화는 오락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뻔한 스토리의 미국영화가 대부분인데, 이 영화는 일상적인 소재를 색다른 이야기로 아주 완성도 높게 풀어냈다”며 호평했다.

 특히 “캐릭터와 상황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있어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를 보면서 생긴 궁금증이 상당 부분 해소되어 좋았다”며, “이런 완성도 높은 영화는 원어로 봐야 하는데 번역으로밖에 볼 수 없어 아쉽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영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혹산 르 투멜랑Roxane Le Toumelin(27)은 봉준호 감독의 색이 물씬 느껴지는 탄탄한 시나리오를 영화의 장점으로 꼽았다. “<설국열차>는 미국 느낌이 많이 들어 있었다면, <기생충>은 완전 봉준호 느낌이 살아 있다”며 역시 대단한 봉준호 영화였다고 전했다. 특히 그녀는 “한국에서 1년 정도 살아봐서, 한국문화를 조금 알아 더 재밌게 본 것 같다”며 극장에서 북한 말투를 보고 혼자 많이 웃었다고 첨언했다. 또한 자신은 “상류층도 하류층도 아닌 중산층이라 캐릭터들의 상황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영화”라고 전했다.

 나는 영화전문가의 평도 궁금하여 파리 디드로 대학Paris Diderot University을 찾았다. 그러나 방학을 해서인지 영화전공 교수들의 연구실 문은 잠겨있었고, 대면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디드로 대학의 영화 역사 및 미학 교수인 쟈클린 나카슈Jacqueline Nacache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A4 2장이 넘는 정성스런 긴 답변을 불어로 보내왔다. 쟈클린 교수는 자신이 한국영화전문가가 아니며, 이 글을 다시 읽어볼 시간이 없어서, 답변의 몇몇 언급에 대해서는 이해를 구했지만 정말 솔직하고 의미 있는 리뷰여서 그 전문을 옮긴다.

 

<기생충>에 대한 쟈클린 나카슈1 교수의 언급 - 한글 번역 장한업2 교수

1Professeure d’histoire et d’esthétique du cinéma à l’Université Paris Diderot. Anciennement critique de cinéma à Cinéma, La Revue du cinéma, et dans plusieurs autres publications. 파리 디드로 대학 영화 역사 및 미학 교수. ‘시네마’, ‘시네마 잡지’, 기타 출판물에서 영화 비평을 함.

2번역_장한업: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졸업. 프랑스 루앙대학교에서 불어교육학 및 사회언어학 석사, 불어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전공 교수,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석•박사) 주임교수. 이화여자대학교 다문화연구소 소장.

Bonjour monsieur et merci pour votre message.
안녕하세요? 연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Je précise d’abord que je ne suis pas du tout spécialiste de cinéma coréen. Du director Bong j’avais vu Snowpiercer que j’avais adoré, mais je ne peux vraiment pas faire de comparaison, et j’ai essayé ces jours-ci de voir Okja, mais j’ai eu un peu de mal et je ne l’ai pas repris, je le ferai sans doute.
무엇보다 먼저 저는 한국 영화의 전문가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 두고자 합니다. 봉 감독님의 <설국열차>는 이미 보았고 매우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에 <옥자>를 보려고 하였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다시 보지 않았지만, 차후에 그렇게 해 볼 생각입니다.

Mon premier motif pour voir Parasite était donc le fait qu’il ait reçu la Palme d’or : on est toujours curieux d’imaginer les motivations d’un jury, même si dans ce cas précis, le titre du film circulait beaucoup comme possible lauréat; ce n’était pas donc pas vraiment une surprise.
제가 <기생충>을 보기로 한 첫 번째 이유는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어떨지 늘 궁금해 합니다. 이 경우처럼 영화의 제목이 입상 후보로 많이 거론될 때도 그렇지요. 그래서 정말 놀라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Par exemple, je suis allée voir quelques films de Cannes au Gaumont Opéra, qui proposait une sélection sous le nom «Cannes à Paris», et la bande annonce de Parasite passait avant chaque film! ça n’avait aucune signification particulière, mais c’était comme un signe.
예를 들어, 저는 칸의 몇몇 영화를 보러 고몽 오페라Gaumont Opéra 극장에 갔습니다. 이 극장은 ‘파리의 칸’이라는 이름 하에 선정된 일련의 영화들을 상영하였습니다. <기생충>은 가장 먼저 상영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의미는 없었지만, 일종의 신호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La première explication à la Palme d’or, me semble-t-il, tient justement au fait qu’elle ne soit allée jusqu’ici à aucun film coréen. Il y a une loi implicite de l’équilibre, à Cannes, pas toujours respectée certes, mais qui veut qu’un pays qui n’ait jamais eu la Palme finisse par la recevoir, lorsque la qualité de sa cinématographie devient largement reconnue, ce qui est évidemment le cas pour la Corée du Sud.
제가 보기에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첫 번째 이유로는 한국 영화가 여태 한 번도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칸에는 일종의 균형이라는 암시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물론 이 법칙이 늘 지켜지는 것은 아니지만요. 영화의 작품성이 널리 인정되면 황금종려상은 한 번도 수상하지 않은 나라에게 주어지는 것 같아요. 한국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 것이지요.

Personnellement, j’ai eu un peu de mal à «entrer» dans le film, dans la mesure où la situation, pour moi, passait trop par les dialogues, pas assez par le visuel. Mais une fois commencée «l’infiltration» de la famille Park, j’ai trouvé le scénario particulièrement original, dans la mesure notamment où il joue sur des dédoublements (le premier chauffeur remplacé par le second, la première gouvernante idem…).
개인적으로, 저는 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상황들이 시각적인 요소는 별로 없는 상태에서 매우 많은 대화로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박씨 가족의 ‘잠입’이 시작되면서 저는 이 시나리오가 상당히 독창적임을 알게 되었어요. 특히 (첫 번째 기사가 두 번째 기사로 대체되고, 첫 번째 여자지배인이 두 번째 여자지배인으로 대체되는) 이중의 대체가 이루어졌을 때 그랬습니다.

J’ai aussi apprécié la symétrie entre le pauvre sous-sol, avec sa vitre qui donne sur le spectacle de la rue misérable, et le salon des riches, avec sa baie vitrée qui donne sur le calme du jardin.
또한 저는 가난한 거리의 장면을 보여주는 창을 가진 가난한 자의 지하와 부유한 자의 조용한 정원의 장면을 보여주는 창문이 있는 트인 공간인 거실 사이의 대칭도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Ce qui surprend et amuse au fond (et ce qui est aussi la limite de la vraisemblance bien sûr) c’est de voir combien il est facile à ces personnages d’intégrer un univers social qui n’est pas le leur, et de se «fondre dans le décor» : c’est particulièrement frappant pour la mère, qui devient rapidement une gouvernante idéale, et pour la jeune fille, qui semble en effet, comme le dit son frère à un moment, avoir toujours vécu dans cette maison…
정말 놀랍고 흥미로운 것은 (또한 물론 진실임직함의 한계이기도 한 것은) 이 인물들이 자신의 사회 세계가 아닌 세계에 상당히 쉽게 통합되는 것, ‘장면 속으로 녹아들어 가는 것’이었어요. 특히 어머니가 매우 빠르게 이상적인 여성지배자가 되는 것, 젊은 여자가 어느 한 순간에 오빠가 그렇게 말하듯이 이 집에 계속 살았던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어요.

J’apprécie les films (nombreux) où une maison est un personnage à part entière; ici cette somptueuse maison d’architecte, au luxe dépouillé, où l’on se déplace en glissant sur des chaussons (d’où le silence qui rendra possible certaines choses à la fin). C’est l’inverse absolu du sous-sol, surchargé d’objets reliés au travail (les boîtes de pizza) alors que dans la maison des Park on ne voit jamais le travail, à l’exception des «cours» d’anglais. Cette maison est un théâtre qui peut servir à toutes les représentations: repas joyeux, moments familiaux, massacres…
저는 집이 온전한 등장인물이 되는 (많은)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여기서는 건축가의 간결한 부유함을 보여주는 사치스러운 집의 경우지요. 이 집에서 사람들은 실내화를 신고 미끄러지듯이 이동하지요. (여기서부터 뭔가를 마지막에 가능하게 만드는 침묵이 시작됩니다.) (피자 상자와 같은) 일과 뒤섞여 있는 물건들로 가득 찬 지하실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집니다. 박씨 집에서 사람들은 영어 ‘수업’을 제외하면 일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집은 즐거운 식사, 친밀한 순간, 살육과 같은 모든 일이 재현되는 연극장이지요.

Pour moi l’apogée du film est le moment où toute la famille est réunie, pendant l’absence des propriétaires, se vautrant dans la nourriture et l’alcool, violant l’intimité des habitants (journal intime de l’adolescente) souillant la beauté du lieux par leur vulgarité, et en même temps lui donnant une vie qui lui manquait jusque là, «réveillant» en quelque sorte ces lieux un peu morts (ce n’est pas pas hasard que juste après, le couple Park fait l’amour sur le canapé, comme si l’atmosphère, les odeurs, étaient complices d’une certaine animalité). L’arrivée des intrus déplace les lieux, leurs significations, modifie les trajets dans la maison, en occupe les espaces aveugles (sous les lits, sous la table…)
저에게 이 영화의 절정은 집주인이 없는 동안 가족 전부가 모여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사는 사람들의 음밀함을 침해하고(여자 청소년의 내밀한 일기), 장소의 아름다움을 저속함으로 더럽히고, 그때까지는 생명이 없었던 것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어느 정도 죽어 있던 이 자리를 ‘되살리는’ 순간입니다. (바로 다음에 박씨 부부가, 마치 분위기, 냄새가 일종의 동물성의 공모인 것처럼, 안락의자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부당하게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의 도착은 장소와 그 의미를 대체하고, 집에서의 동선을 수정하고, (침대 위, 탁자 아래 등) 공간을 눈먼 공간으로 만듭니다.

Quant à la découverte du «bunker» et du mari de l’ancienne gouvernante, j’ai d’abord apprécié d’apprendre que ce genre de «safe room» existait (du moins si c’est vrai, notamment par rapport à une possible invasion de la Corée du Nord?). Mais cela m’a intéressée surtout sur le plan symbolique: l’idée que cette maison paisible reposait sur un sous-sol (là encore) où régnait la solitude, la crasse et la misère; ce sont les «bas-fonds» au sens propre, d’où émergent les forces criminelles et leur pulsion de vengeance.
옛 여자지배인의 남편과 ‘벙커’와 관련해서, 저는 먼저 이런 유형의 ‘안전한 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있을지도 모를 북한의 공격과 관련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징적인 차원에서 저에게 흥미로웠습니다. 다시 말해, 이 조용한 집이 고독, 더러움, 비참함이 쌓인 지하실 위에 기초한다는 생각 말이지요. 그것은 고유한 의미에서 ‘최하층’이고, 여기에서 범죄, 복수의 충동이 출현합니다.

Pendant la fête je m’attendais à un massacre général, quelque chose de très sanguinolent et horrifique, et finalement cela ne va pas jusque là, tant mieux. Quand le père se redresse et poignarde Park, c’est une sorte de vengeance ancestrale - il le tue pour ce qu’il représente bien sûr, mais peut-être aussi bien à cause de ce que Park disait sur son odeur, ou sur le fait de "franchir la ligne": pour le coup, il franchit complètement et définitivement la ligne.
축제 동안 저는 뭔가 피비린내 나고 끔직한 대규모의 살인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하게도 말입니다. 아버지가 다시 일어나 박씨를 찌르는데, 이것은 일종의 존속 살인식의 복수지요. 그는 자신이 표방하는 바를 위해서 그를 죽이는데, 이것은 또한 박씨가 그의 냄새에 대해서, 또는 ‘선을 넘기’에 대해서 말했기 때문이지요. 사실, 그는 선을 완전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넘었지요.

Pourtant la satire sociale ne va pas très loin: le milieu supérieur n’est pas odieux (à part le petit garçon!), la famille est simplement complètement enfermée dans sa vision du monde, inconsciente, avec cette aimable bienveillance qui l’empêche finalement de s’apercevoir qu’elle est envahie… Quant aux pauvres, ils ne sont pas montrés comme malheureux: ils ont sur les riches l’avantage de former une famille si solide et unie qu’elle peut se reformer partout.
하지만 사회적 풍자는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어요. 최고 계층은 (어린 소년을 제외하면) 그리 가증스럽지 않아요. 가정은 단지 자신의 무의식적인 세계관 속에, 그 가정이 침입된 사실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친절한 호의와 함께 갇혀 있지요.

Certains dialogues, dits par Song Kang Ho notamment, sont formidables d’intelligence et d’humour : tout le passage sur le fait de ne pas avoir de plan (dans le gymnase), la comparaison entre le fait d’appuyer sur le bouton du portable et un bouton atomique, le toast au wifi tout puissant… Il est de loin le personnage le plus humoristique, le mieux traité par le scénario, avec la grande bourgeoise qui est par moments désopilante dans ses attitudes. La femme et les enfants sont moins intéressants.
특히 송강호가 한 몇몇 대화들은 재치와 유머가 넘쳐요. 예를 들어, (체육관에서) 아무런 계획이 없는 것, 휴대전화의 버턴을 누르는 것과 핵 버턴을 누르는 것의 비교, 아주 강력한 와이파이를 가진 건배 등 말이지요. 그는 단연 가장 웃기는 사람, 시나리오가 가장 잘 다루는 사람, 그 태도에서 때때로 익살스러운 부르주아처럼 나오지요. 아내와 아이들은 덜 흥미로워요.

Sur le wifi, le portable etc, il y a un petit syndrome «Black Mirror» bien amusant ! Et dans l’ensemble des petits moments Hitchcockiens, Chabroliens… on sent la cinéphilie de Bong.
와이파이, 휴대전화 등과 관련해서 아주 흥미로운 약간의 ‘블랙 미러’ 신드롬이 있어요! 그리고 히치콕Alfred Hitchcock과 샤브롤Claude Chabrol을 연상시키는 짧은 순간들 속에서 사람들은 봉 감독의 영화 애호를 느낄 수 있지요.

Voilà tout ce qui me vient, en vrac et sur le pouce. C’est un film sur lequel j’aurai plaisir à écrire plus longuement et de façon plus articulée, mais il faudrait pour cela que je comprenne le coréen. Je ne crois pas qu’on puisse vraiment parler d’un film quand on ne comprend pas sa langue et qu’on ne connaît pas bien sa culture. Je suis allée en Corée une fois mais je la connais surtout par le cinéma!
이게 제가 일차적으로 느낀 모두입니다. 저는 이 영화에 대해 좀 더 길게, 좀 더 조밀하게 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제가 한국어를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그 어떤 영화도 그 언어나 문화를 모르면 제대로 번역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국은 딱 한 번 갔고, 한국을 영화를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Merci, bien cordialement,
Jacqueline Nacache

감사합니다. 쟈클린 나카슈

 

 프랑스 언론에서도 극찬을 받고 있는 <기생충>

 짧은 코멘트가 아닌 <기생충> 관람에 대한 정성스런 답변을 보내주신 교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교수님은 한국영화전문가가 아니라고 했지만, 개봉하자마자 빠르게 <기생충>을 관람하고 인터뷰 질문지에 세밀하게 답변을 보내주신 쟈클린 교수님이야말로 진정한 한국영화전문가요, 애호가라고 말하고 싶다.

<기생충>은 일반인들은 물론 칭찬에 조금 인색한 프랑스에서 이례적으로 르몽드LE MONDE, 르뿌앙 LE POINT, 라리베라시옹LA LIBERATION, 까이예 뒤 시네마CAHIER DU CINEMA, 프르미에PREMIER 등 대형 언론에서도 극찬을 받고 있다. 프랑스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출연한 게스트들은 <기생충>을 언급하며, 가늘게 떨리는 흥분과 고양된 정서를 감추지 않는다.

앙투안 귀요 PD(<프랑스 컬처>)는 “이 황금종려상은 그에게 너무나도 마땅히 주어져야 했던 것”이라며 봉준호 감독에게 바치는 헌사로 방송 전체를 가득 채웠다.

 2006년 봉감독을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했던 올리비에 페르(<아르테TV>의 시네마섹션 디렉터)는 “그의 영화는 이제 겨우 7편이 나왔지만, 그에 대한 헌사를 제대로 바치려면 아마도 한권의 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프랑스에서 6월 5일 개봉한 기생충의 현재(18일 파리 시간) 누적 관객수는 60만 8527명이다. 짦은 시간에 프랑스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이다. 프랑스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 역대 관객수 기록을 보면 1위가 설국열차(678,049명), 2위 아가씨(301,115명), 3위 부산행(275,938명)이다.

 현재 3주차에 접어든 <기생충>이 100만 관객을 돌파한다면 황금종려상을 받은 아시아 영화 중 100만을 돌파한 첫 작품이 될 것이다. 이는 2013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이후 6년만에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프랑스에서 100만을 돌파하게 되는 쾌거이다.

 나는 정말 행운아다. 내가 잠시 파리에 머물며 공부하고 본지 특파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칸영화제에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도, 해외에서 첫 개봉한 파리에서 <기생충>을 관람하고 그 흥행 열기를 현지인들과도 고스란히 나눌 수 있는 것도 모두 뜻밖의 행운이다.

 

 파리 곳곳에서 느껴지는 <기생충>의 흔적

 파리 시내를 걸어본다. 걷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웬만한 거리는 모두 걸어다닌다. 파리는 산책하기에 너무나 좋은 도시다. 내딛는 거리마다 오랜 문화유적과 예술로 넘쳐난다. 더군다나 요즘은 파리의 거리 곳곳에서도 <기생충>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주말이면 늘 붐비는 몽마르트 언덕 아래에 위치한 파테 웨플러Pathé Wepler 극장은 <기생충> 포스터를 전면 스크린에 띄우며 그 인기를 실감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파리 사람들이 가장 즐겨찾는 쇼핑 장소 생제르망 거리Boulevard Saint-Germain와 샹젤리제 거리Avenue des Champs-Élysées, 파리 중심에 위치한 마들렌 역Madeleine 등 지나는 곳마다 눈에 띄는 홍보물은 <기생충>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의 위대한 열기를 다시금 실감나게 한다.

 낯선 이방인의 도시, 파리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국영화 100년을 멋지게 장식해준 봉준호 감독, 당신이 있기에!

 당신은 아는지? 이곳 파리가 ‘봉도르Bong d'Or’의 <기생충>으로 인해 얼마나 더 반짝이는지를.

 

 

* 《쿨투라》 2019년 7월호(통권 6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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