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읽는 조용필11] 조용필과 양인자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11] 조용필과 양인자
  • 유성호(본지 주간, 한양대 국문과 교수)
  • 승인 2019.07.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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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필의 노래에 참여한 중요한 작사가로 다섯 분을 떠올릴 수 있다. 가나다순으로 적시하면 김순곤, 박건호, 양인자, 조용필, 하지영이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이 다섯 분이 작사한 노래가 그의 실제 공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공연 현장에서 널리 불리는 소위 히트곡이 이 다섯 분에게서 많이 나왔다는 이야기이다. 이 가운데 양인자는 하지영과 함께 조용필의 히트곡을 가장 많이 쓴 분으로 유명하다. 오늘은 그동안 살피지 못했던 양인자의 노래 세 곡 <그 겨울의 찻집>, <킬리만자로의 표범>, <Q> 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세 곡 모두 양인자의 남편 김희갑의 작곡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 밖에도 양인자는 <나의 노래>, <내 가슴에 내리는 비>, <내 청춘의 빈 잔>, <눈물로 보이는 그대>, <눈이 오면 그대가 보고싶다>,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물결 속에서>, <바람이 전하는 말>, <보랏빛 여인>, <서울 서울 서울>, <얄미운 님아>, <연인의 속삭임>, <우주여행X>, <인생이 장미꽃이라면>, <일몰>, <진> 등의 조용필 노래를 작사했다. 조용필과 함께 오랜 세월을 사詞-창唱의 듀오로 활동했던 것이다.

 양인자는 1945년 함경북도 나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서라벌예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소설가, 드라마 작가, 작사가로 꾸준한 활동을 해왔다. 부산여고 재학 때 소설 『돌아온 미소』를 이미 출간했으며, 1974년 『한국문학』에 단편 「외항선」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이후 『태양의 저편』, 『촛불을 꺼야 하리』 등의 장편과 『울타리 밖의 아이들』 등의 소설집을 출간하면서 소설가로 세상에 이름을 각인하였다. 그러다가 「부부」, 「청춘일기」, 「파리공원의 아침」 등 드라마 작가로서도 이름을 날리며 자신의 문학 외연을 확장해갔다. 그러나 이러한 소설과 드라마 극본의 왕성한 집필에도 불구하고 양인자는 대중들에게 작사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모든 여정을 함께한 남편 김희갑이 곡을 입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조용필, 김국환, 김현식, 태진아, 임주리, 이선희, 혜은이 등 많은 가수들이 양인자가 쓴 곡을 자신의 대표곡으로 불렀다. 많은 이들이 양인자 노래의 서정성, 인생론, 사랑, 실존의 고백 등을 좋아했고, 또 김희갑의 곡은 그러한 노랫말을 감싸는 천혜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항구적 사랑의 기억

1985년 발매된 조용필의 8집 앨범에는 표제작이었던 <허공>과 함께 <바람이 전하는 말>, <킬리만자
로의 표범>, <상처>, <내 청춘의 빈잔> 등 절절한 고독과 사랑과 청춘의 노래가 여럿 실려 있었다. 그 가 운데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삽화 하나가 발견되는데, 지금도 수많은 이들의 애창곡으로 군림 하고 있는  <그 겨울의 찻집>이 그것이다. 인적이 드문 시공간인 어느 겨울 이른 아침의 찻집을 설정하여 지금은 떠나버린 2인칭에 대한 그리움의 고백을 이어가는, 조용필의 허스키 음색이 빛을 발하는 짧은 노래이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바람 속을 걸어 다다른 “이른 아침의 그 찻집”에는 사람은 없고 다만 “마른 꽃”만 창가에 걸려 있을 뿐이다. 한때 생기가 돌았고 향기가 가득했을 그 ‘꽃’ 은 오랜 시간이 흘러 “마른 꽃”이 되어갔을 것이다. 혼자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시고 있는 사람은, 물론 차를 마시는 것이겠지만, “외로움”과 “마른 꽃”이라는 정서적 등가물을 환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그가 걸어온 “바람 속”도 사랑하는 2인칭과 걸어왔던 시간의 등가물일 것이다. 한때 “아름다운 죄 사랑”을 나누었고 그 사랑 때문에 이제는 오래도록 “홀로 지샌 긴 밤”을 가졌던 이 사람은, 이제는 지나가버린 “뜨거운 이름”을 가슴에 두고 ‘한숨’과 ‘눈물’로 가득 한 사랑의 시간을 찻집에서 밝히고 있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그대 나의 사랑아”라는 마지막 부분은 이 노래의 백미白眉로서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와 함께 대중들의 기억 속에 가장 깊이 남은 명구名句이다. 최근 ‘웃프다’라는 말이 창안되어 통용되고 있는데, 그 말은 표면적으로는 웃음이 나지만 실제로 처한 상황은 슬픔으로 가득할 때 쓰인다. 사랑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떠나고 겨울 찻집에 마른 꽃 처럼 앉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이 사람의 마음이 꼭 그럴 것이다. 여전히 “그대 나의 사랑”을 말하는 항구적 사랑의 기억이 잔잔한 전주前奏, 조용필 의 찬연한 창법, 양인자의 서정적 노랫말 속에 지금도 흐르고 있다.

 고독과 사랑의 예술론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양인자가 대학 1학년 때 쓴 단상斷想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일기장에 적어둔 메모에 살을 붙이고 완성도를 입혀 완성한 이 노랫말은, 내레이션과 노래가 교차하는 형식과 함께 5분이 넘어가는 긴 시간으로 인해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선정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특유의 비장미와 예술가적 도전 정신이 함께 어울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조용필의 예외적 대표곡이 되고 있는 노래이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 나면 위대해지고 자고 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이라구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 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 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모두가 야망을 안고 살아가는 시대에,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표범의 고독을 택하겠다고 노 래하는 한 남자가 있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 다니는 산기슭 하이에나의 삶을 거절하면서, 바람처 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져가는 삶으로부터의 원심력을 택하면서, ‘고독’과 ‘사랑’의 운명을 노래하는 남자 말이다. 우리는 주어진 운명으로서의 ‘고독’과 ‘사랑’을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견뎌가는 이 남자의 의지 속에서 한없는 위안의 에너지를 선사받는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와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은 노래의 앞머리에서부터 선명한 대조를 보이면서, 이 남자로 하여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며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으로부터의 역주행을 택하게끔 하는 원형적 구도構圖로 작용한다. 도시 한복판에 철저히 혼자 버려진 모습은 「꿈」에서도 만난 적이 있지만, 여기서 우리는 그가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흐란 사나이”를 호명하는 데서 이 남자가 ‘예술적인 것’을 철저한 고독 속에서 완성해가려는 존재임을 암시받게 된다. “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다고 노래하는,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 한다고 노래하는 이 남자는 곧 ‘가왕 조용필’의 생애와 그의 예술을 짐작하게 하지 않는가.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질지라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 끝내 살아남는 예술이야말로 “높은 곳까지/오르려 애쓰는” 조용필 생애의 정점이요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아는 이”가 없더라도 그 길을 끝내 걸어갈 수 있었던 원천적 힘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남자는 ‘고독’을 넘어 ‘사랑’을 노래한다. 사람을 ‘위안’해줄 아무것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그런 세상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사실을 바로 부정한다. 오히려 사랑이 사람을 ‘고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날카롭게 대립하는 ‘위안’과 ‘고독’의 양면성, 그것은 ‘너’와 ‘나’가 사랑했던 세목들 가령 ‘귀뚜라미/ 라일락/밤’의 양면성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남자는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내 청춘에 건배”라고 외치며 사랑과 청춘의 화려함과 쓸쓸함의 양면성을 사랑한다고 외친다. 그리고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라는 탁월한 사랑론論을 펼친다. 운명을 걸다니? 과연 당신은 모든 것을 걸어보았는가? 이 ‘걺’이란 얼마나 가난하고 아름다운 온몸의 던짐일 것인가? 비록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일지라도 그는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고독과 사랑의 끝에 그는 “한 가닥 불빛/한 줄기 맑은 물 소리/한 그루 나무”로 남아 21세기가 저리도 간절히 원하는 자신을 이어간다.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로 떠나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되어 자신이 완성한 ‘운명을 건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 ‘고독’과 ‘사랑’의 예술론은 우리 대중가요사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순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애절한 사랑과 이별의 비가

 1989년에 나온 조용필 11집 앨범은 이채롭게도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의 노래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 안에는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처럼 장거리 노래도 있고, <Q> 같은 애절한 사랑과 이별의 비가悲歌도 있다. 여기서 ‘Q’는 우리가 보통 부르는 사람 이름의 이니셜이라고 양인자는 밝힌 바 있다. 물론 우리는 ‘Q’에서 삶에 대한 ‘질문 Question’을 떠올리기도 하고, 심지어 사랑했던 한 ‘여왕Queen’을 떠올릴 수도 있으니, 그냥 단순하게 A, B, C로 호명한 것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착시가 허락된다면, 영상을 찍을 때 출연자에게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서의 ‘큐cue’도 떠오르지 않는가? 큐!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우리의 사랑은 모두 끝났다
램프가 켜져 있는 작은 찻집에서 나 홀로
우리의 추억을 태워 버렸다
하얀 꽃송이 송이 웨딩드레스 수놓던 날
우리는 영원히 남남이 되고
고통의 자물쇠에 갇혀 버리던 날 그날은
나도 술잔도 함께 울었다
너를 용서 않으니 내가 괴로워 안 되겠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
너는 나의 인생을 쥐고 있다 놓아버렸다
그대를 이제는 내가 보낸다
사랑 눈감으면 모르리
사랑 돌아서면 잊으리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너’는 ‘나의 청춘’을 마무리해준 둘도 없는 2인칭이다. “램프가 켜져 있는 작은 찻집”은 앞에서 본 ‘그 겨울의 찻집’과 조금 분위기가 다른데, 거기서 남자가 “우리의 추억을 태워”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이제 “하얀 꽃송이 송이 웨딩드레스 수놓던 날”을 통해 영원한 결별을 알렸고, “고통의 자물쇠에 갇혀 버리던 날”에 처한 ‘나’는 술잔과 함께 울고 있다. 마른 꽃 걸린 창가에서 외로움을 마시는 장면과 술잔을 들이키며 우는 장면은 이별을 ‘항구적 기억’과 ‘애절한 슬픔’으로 남기는 한 남자의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듯도 하다. 결국 ‘나’는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을 노래함으로써 “사랑 눈감으면 모르리/사랑 돌아서면 잊으리/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다시는 울지 않겠다”는 후렴의 필연성을 깊은 여운으로 들려준다. 그 ‘용서’는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 잠긴 ‘나’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던 셈이다. 그 점에서, 이 애절한 사랑과 이별의 비가는 모든 실연의 청춘을 위안하고 새로운 힘을 얻게 한 사랑의 송가頌歌, 送歌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렇게 양인자는 조용필에게 고독과 이별과 보냄과 용서의 메시지를 한없이 흘려 보내주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것은 운명을 건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치열한 예술적 고독과 사랑의 여정은 조용필의 것이자, 양인자 스스로의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 《쿨투라》 2019년 7월호(통권 6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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