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 탐방] '윤동주 문학관'에서 윤동주를 만나다
[문학관 탐방] '윤동주 문학관'에서 윤동주를 만나다
  • 설재원
  • 승인 2018.10.01 0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의 언덕과 윤동주문학관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저 멀리 남산과 서울의 풍경이 펼쳐지는 청운동에는 ‘시인의 언덕’이 있다. 이곳은 원래 청운시민아파트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북악산과 인왕산을 연결하는 능선에 버티고 서 있던 아파트를 철거하면서 그 자리에 시인의 언덕을 조성한 것이다.
서촌은 당시 근대문화예술의 중심지로 1930년대부터는 화가 이중섭과 이상범, 소설가 현진건과 시인 노천명과 윤동주 그리고 이상 등 근대 지성인과 예술인들이 모여 살았다. 윤동주의 대표 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등이 이 시기에 쓴 작품이다.

시인의 언덕 바로 아래에는 윤동주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든 곳이다. 느린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가압장처럼, 우리 영혼에 아름다운 자극을 주는 시인의 작품을 기념하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그의 시처럼 새하얀 순백색 외관은 하늘이 높고 푸르른 가을날에는 더욱 아름답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시인의 생가에서 옮겨왔다는 중앙의 낡은 우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이 아닐까?“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 홀로 찾아가선 /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 가을이 있습니다. //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후략)” 전시실 우물 옆으로 시인의 일생이 담긴 사진 자료들과 친필 원고 영인본이 보인다. 그리고 그가 영화 <동주>에서도 잘 보여주듯이 평소에 좋아하던 책들의 표지가 한쪽 벽 가득 붙어 있다. 백석 시집과 정지용 시집, 영랑 시집… 이 시집들을 베껴쓰면서 시인은 언젠가 세상에 빛을 볼 자신의 시를 연마했으리라.

1941년 11월, 졸업을 앞두고 있던 윤동주 시인은 자신이 그때까지 써놓은 시 가운데 18편을 뽑고 거기에 「서시」를 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을 엮었다. 그리고 3부를 필사해서 1부는 자신이 갖고, 다른 1부는 같이 하숙하던 후배 정병욱(교수)에게 주었으며, 나머지 1부는 연희전문 은사인 이양하 교수에게 주었다(이 교수는 윤동주의 시가 일제의 검열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출판 보류를 권했다). 이듬해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른 시인은 결국 자신의 시집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옥사하고 만다. “조선인 유학생을 모아놓고 조선의 독립과 민족문화의 수호를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 지 1년 반 만의 일이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유고시집이 되어 시인 정지용의 발문을 달고 1948년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하늘과 별과 바람’의 시인 윤동주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시인이 되었으며, ‘동주’ 붐은 문화한류로까지 번지고 있다.

2018 윤동주 문학제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를 테마로 한 뜻깊은 행사가 지난 9월 7일부터 9일까지 서울 종로구 윤동주문학관 일대에서 열렸다. 종로구는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발간 70주년을 기념하여 '2018 윤동주문학제’를 열었다. 행사는 릴레이 문학강연과 문학토크콘서트, EBS 라디오 명로진의 북카페 공개방송 ‘윤동주 詩를 노래하다' 등 알찬 구성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발간 70주년을 빛냈다.

행사 기간 동안 청운문학도서관에서는 ‘청년시인, 윤동주를 기억하다. 2018 오늘의 윤동주’를 주제로 릴레이 문학강연이 진행되었다. 성균관대 정우택 교수의 「윤동주를 발견하는 별과 같은 암호들」, 성신여대 김명석 교수의 「하늘과 바다와 달과 랩」, 한양대 유성호 교수의 「윤동주의 시적 기원」 문학 강연이 순서대로 이어졌고, 시인의 작품과 삶을 통해 오늘날에 청년시인 윤동주가 지니는 의미를 재조명했다.

7일 오후에는 윤동주문학관 ‘시인의 언덕’에서 다큐멘터리 〈잊지 못할 윤동주〉와 KBS 아나운서 정용실 씨가 진행하는 ‘윤동주 문학토크 콘서트’가 펼쳐졌다. 탁 트인 ‘시인의 언덕’ 야외무대에서 다큐멘터리를 통해 윤동주를 기억하고 돌아보는 시간이었고, 이어지는 공연연출가 표재순 선생, 유성호 교수가 출연한 토크콘서트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전체 작품을 천천히 살펴보며 윤동주 시인의 심리적 변화를 서사적으로 풀어냈다. 여기에 조승연 배우의 시 낭송과 지난 윤동주창작음악제 수상곡인 〈자화상〉과 〈길〉 공연이 더해져 토크콘서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가사로 하는 제4회 전국 윤동주 창작음악제 또한 성황리에 마쳤다. 정미정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본선 무대는 150여 팀 사이에서 치열한 음원 심사와 예심을 거쳐 선정된 9팀의 무대로 꾸며졌고, 초대가수 나들(일기예보)과 은휼이 깊이를 더했다. 대상의 영예는 5인조 락그룹 ‘온더스트릿’의 〈새로운 길〉이 차지했고, ‘감성돔밴드’의 〈바다〉, ‘여울’의 〈새로운길〉, ‘ASUM’의 〈별 헤는 밤〉이 각각 금·은·동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배우 강성연, 신용목 시인 등이 참여한 EBS 라디오 명로진의 ‘윤동주 詩를 노래하다’와 제5회 전국 청소년 윤동주시화공모전 등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되었고, ‘윤동주 캐리커처 그리기', '타자기, 펜글씨, 납 활자를 활용한 시인 체험 이벤트’ 등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행사로 윤동주 시인의 가치를 드높였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윤동주 시인의 아름다운 정신이 녹아든 문학작품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오늘을 위로하고 내일을 기대케 한다며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마음의 여유를 찾고 문학과 예술이 있는 삶을 누려 보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우리에게 ‘부끄럼’의 마음과 ‘자랑처럼 피어나는 청년정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윤동주를 기리는 사람들의 마음이 여전히 뜨거움을 알려주는 행사였다. 폭염이 어느새 가시고, 불현듯 찾아온 가을 하늘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제5회 전국 청소년 윤동주 시화공모전

 

 

* 《쿨투라》 2018년 10월호(통권 52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