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봉준호의 재구성
[봉준호 감독] 봉준호의 재구성
  • 전찬일(영화평론가)
  • 승인 2019.07.0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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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인터뷰는, <설국열차>가 『2014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에서 한국 영화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차지하고 난 뒤, 음악평론가 임진모와 함께한 인터뷰를 지면 제약상 상당정도 축약·정리한 것이다. 느닷없이 왜 그때 그 인터뷰냐고?

  봉준호 감독이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어, 인터뷰를 새로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쇄도하는 국내외 일정들 탓이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살인적인 일정 속에 너무 많은 인터뷰를 반복하다보니, 자꾸만 녹음기처럼 똑같은 말만 반복하게 되고, 정신이 머엉~해진 상태”라고. “«쿨투라» 같은 전문적인 문화지에 걸맞게 심도 있는 인터뷰를 하려면, 저도 호흡을 좀 가다듬고, 깊고 넓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심도 있게 대화하는 게 어떨까 싶거든요”라고. 실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 며칠 전 영화 전문 주간지 «씨네21» 기자와 장장 4시간 반에 걸친 집중 인터뷰를 했기에, 모든 것을 다 쏟아낸 느낌이라, 당장 뭔가를 다시 얘기하더라도 그 인터뷰의 범위를 벗어나기가 힘들 것 같다, 고 털어놨다. 시간을 좀 두고, 영화와의 거리가 좀 생겨난 후 차분하게 영화도 다시 보고, 더 발전된 관점에서 영화에 대해 논하여 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라면서…

  그런 그를 더 이상 채근할 수는 없었다. 그의 요청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발행인과 상의해, 인터뷰를 부득이 미룰 수밖에 없었다. 대신 <기생충>에 대한 내 리뷰를 간단히 덧붙이기로 했다. 하지만 리뷰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기생충>에 대한 간단 리뷰로는 성에 차지 않는 데다, 가뜩이나 지면의 제약을 받는 상황 에서 긴 리뷰는 언감생심인 탓이다. 다만 다음과 같은 총평만 하련다. 봉준호 영화세계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그 개인들이 소속돼 있는 더 큰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서사를 펼쳐 보인다는 것인 바, <기생충>은 흔히 얘기되는 것처럼 지상과 반半지하의 두 가족이 아니라, 반지하 아래 지하에 수년째 ‘기생’해온 한 남자까지 포함한 세 가족의 이야기들을 통해 양극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의 치명적 문제점을 비판·고발하는, 최상 수준의 블랙 코미디요 휴먼 드라마라는 것이다.

 

  인터뷰에 들어가며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전국 930여만 명 (이하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참고)을 동원하며, 1,280여만 명의 <7번방의 선물>(이환경)에 이어 2013년 종합 흥행 순위 2위에 올랐다. 예상했던 1천 만 고지는 넘진 못했어도, 주목할 만한 대성공이었다. 비평적으로도 그 못잖은 성과를 일궈 냈다. ‘오늘의 영화’ 외에도 2013 부일영화상, 영평상 등 숱한 영화상 최고 명예를 거머쥐었다. 명실상부한 ‘2013년의 한국 영화’로 우뚝 선 것. <마더>는 말할 것 없고 <살인의 추억>, <괴물> 등 감독의 기록적 전작들을 능가하는 기념비적 성취였다.

  감독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봉준호 그는 한결같이 인간세계의 시스템 문제를 극화하고, 그 시스템의 변혁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장르 영화라는 외피를 입으면서도, 장르 관습이나 제약에 안주하지 않고 체제 변화, 심지어는 전복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면서도 그는 개인을 외면하거나 희생시키지 않았다. 늘 개인들의 사연을 통해 사회를 말했다. 봉준호를 세계의 숱한 감독들과 구분 짓는 주요 인자 중 하나다. 그 지점에서 <설국열차>는 봉준호 영화 세계의 한 정점이자 새 출발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처럼 주로 한국 관객들만이 아니라 아시아와 서구 관객들까지 포용하려는 야심적 승부수랄까.

  이 인터뷰는 지난 3·1절 오전 11시 10분경부터 시간 반가량, 봉 감독이 사는 방배동의 한 카페 ‘까페 드 유중’에서 진행됐다. 인터뷰 일부는, 인터뷰를 정리한 윤은지에 의해 음악 중심으로 작성돼, 임진모가 운영하는 음악 전문 사이트 이즘(www.izm. co.kr) 등에 게재됐다. 윤은지 인터뷰는 내 인터뷰에 적잖이 반영됐다. 어느 대목들은 적절히 손을 본 뒤, 또 다른 대목들은 거의 그대로. 윤은지의 정리가 없었다면 따라서 내 인터뷰는 작성 불가능했거나,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요청됐을 것이다. 사진은 《쿨투라》 박영민 기자가 찍었다.

 

  4년 만의 인터뷰…<마더> 이어 ‘오늘의 영화’ 최우수 한국영화 선정 기뻐

  전찬일(이하 전) 4년 전 <마더>에 이어, <설국열차>가 또다시 최고 오늘의 영화에 선정됐다. 그때 인터 뷰 말미에 다음의 질문을 했었다. “미국에 있다고 들었는데 차기작 <설국열차> 준비 차인가? 어떤 영화인지 간단히 소개해 달라.”라고. 당시 답변과 현재의 결과물이 어느 정도 부합했다고 보나?

  봉준호(이하 봉) 여러모로 힘든 게 많은 영화여서 무사히 완성했다는 게 기쁘다. 어려운 고비도 많았다. 4년이 걸렸다는 게 속상하기도 하다. 그전에는 3년 꼴로 한 편씩 만들었는데……. 왜 1년이 더 걸렸을까 생각해 보니, 촬영 기간은 <살인의 추억>이나 <마더>보다 짧았지만 사전 준비 기간이 더 길었기 때문이었다. 시나리오 각색 과정에서 내가 쓴 것을 미국 작가와 같이 작업하다 보니 거기서 5, 6개월 시간이 더 걸렸다. 앞으로는 2년에 한 편씩 영화 찍는 감독이 되고 싶다. 애 엄마도 빨리 시나리오 쓰라고 하고, 애도 대학에 가야 하고(웃음).

   이래저래 기분 좋은 인터뷰다.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이 2012년 12월 31일까지 극장에서 선보인 그간의 한국 영화를 대상으로 ‘한국 영화 100선’을 발표했는데, 톱10에, 정확하게는 동수의 득표에 따라 상위 10위 안에 든 총 12편 가운데 2000년대 이후 것은 <살인의 추억>이 유일했다. 2013년을 돌이켜보면 배우 송강호와 감독 봉준호의 해로 정리될 수 있을 거 같다. 주지하다시피 송강호는 <설국열차>를 위시해 한재림 감독의 <관상>으로 910여만 명을, 한국 영화사상 9번째로 1천만 고지를 돌파한 <변호인>(양우석 감독)으로 1,130여만 명을 불러 모아 고작 6개월 만에 3,000만 명에 달하는 관객을 유인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2013년은 단연 송강호의 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겨우 위기를 모면했구나 하는 마음이다. 말이 400억 원이지 일반적인 한국 영화 10편을 만들 수 있는 거액의 제작비를 소진시켜 버린 건데……. 잘 안 되면 나 하나 데미지를 입는 게 아니라 한국 영화제 전체에 민폐를 끼치는 거였으니까. 다행히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해외에도 많이 팔렸고, 해외에서 돈이 들어오면 곧 손익분기점을 넘긴다고 하니, “휴, 위기는 모면했구나, 싶다.”

  <설국열차>는 <살인의 추억>처럼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살인의 추억>이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 개봉 당시에는 리뷰가 안 좋게 나온 경우도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씨네21》에서도 별 두 개 반과 4개 등이 뒤섞여 있었다. 외국에서도 그렇고 내 영화는 개봉 시점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투표 인원이 많아질수록,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영화제 같은 데는 단기 승부라 적은 수의 심사위원이 일주일 내에 뽑아야 하는 그런 영화제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 개봉 후 보스턴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에서 평론가협회상을 받기도 했다. 오늘의 영화상 수상도 그렇지 않나?

  목하 내게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시대성의 문제다. <마더> 인터뷰에서 봉 감독은 사회학을 전공했어도 사회학은 전혀 모른다고 말했어도, 사회학을 전공했다는 것이 영화 저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개인에서 출발하되 그 개인 이 사회와 무관한 게 아니라, 사회 속에 명확하게 위치한다. 그렇게 볼 때, 시대나 사회를 보는 건 떨어져 봐야 보이는 거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봉 감독 영화들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게 아닌가 싶다.

  시대적인 메시지를 외치려고 그러진 않는데, 저절로 그렇게 되는 측면은 있는 것 같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보고 나면 영화가 끝날 때쯤 이상한 의문이 들곤 한다. 모든 남녀 주인공들이나 조연들이 사는 덴 문제가 없나 보네? 라는 점이다(웃음). 한데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 며칠 전에도 세 모녀가 동반 자살을 했는데, 그 분들은 공과금을 꼬박꼬박 잘 내서 구청에서도 그 분들이 힘들게 사는 줄은 모르고 있었단다. 엄마가 식당에서 일하다 팔에 골절이 생겼다고 했다. 중, 상류층에서 팔 골절된 것과 그런 분들이 팔 골절된 것에는 의미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래서 그런 비극으로 가기 시작한 건데, 그런 걸 로맨틱 코미디는 다 지워 버린다. 메시지를 외치는 영화를 찍고 싶지는 않은데, 그런 게 완전히 지워져 있으면 오히려 이상한 공상과학 영화처럼 느껴진다.

 

  <설국열차>, 가장 노골적으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길 했던 것 같아

   이제 본격적으로 <설국열차> 이야기로 넘어 가자. <설국열차> 예산은 애초 예정대로 간 건가 하면서 늘어난 건가?

  예산대로 맞췄다. 예산과 일정을 맞췄다. <살인의 추억> 때 3, 4억 원 정도 초과해 전체 35억 원인가 들었는데, 내 영화는 다들 예산 오차 범위 10% 이내였다고 하더라.

  <설국열차>를 둘러싸고 크고 작은 걱정이 많았다. 많은 이들이 칸영화제에 갈 거라 기대했는데 못 갔다. 그런데 CJ에서는 출품을 안 했다고, 공식 발표를 해 혼란이 있었다. 어떻게 된 건가? 칸에 못 간 것인가, CJ 발표처럼 출품을 하지 않은 것인가?

  출품을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이 오긴 했었다. 한데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영화제 관련해서는 많이 속상했다. 칸은 내가 시간을 못 맞춰 못 간 것이다. 소문만 무성했지…….

  그런데 왜 영화를 출품했지만 칸이 선정하지 않았다는 말이 돈 것인가?

  그건 아마 CJ 측에서 개막작으로 하고 싶었는데, 그때 이미 <위대한 개츠비>로 내정된 상태여서 불발됐기 때문이었을 거다. 완성 시점을 맞춰 보내고 싶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컴퓨터 그래픽을 칸 개막인 5월 중순까지 끝낼 자신이 없었다. 따라서 칸 개막작으로 리젝트 당한 것은 맞다. 나중에 4월 말 5월 초에, 칸 쪽에서 영화를 초청하고 싶어 하긴 했다. 그래 정중하게, 고마운데 지금 사운드가 완벽하게 끝났지 않았다, 날짜를 맞출 자신이 없다, 관심 가져줘 고맙다고 답장을 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공동 투자를 하기로 했는데 그들이 투자를 철회하기로 하면서 CJ가 단독 투자하게 됐고, 그러면서 영화가 엎어지는 게 아니냐는 등 흉흉한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다 영화가 선보이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나야 객지 생활하며 영화 찍고 있어서 한국에서 어떤 말이 도는지 전혀 몰랐다. 촬영이 중단되거나 딜레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제작사 오퍼스픽쳐스의 이태헌 대표도 그런 부분은 억울할 거다. 감독이나 스태프들이 일을 할 수 있게 편안하게 해주는 게 제작자 임무인데, 그런 점에서 놓친 지점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되게 순탄하게 흘러가 순조롭게 끝난 거였다. 윌포드 역 에드 해리스도 정말 평화로운 프로덕션이었다고 그랬다. 대부분 세트 안에서 찍었으니까, 로케이션 관련 변수도 없었다. 우리로서는 차근차근 찍어 일정 안에 끝낸 것이다.

  텍스트 안으로 들어가 보자. 다국적 배우들을 썼고, 그런 점에서 어려운 점이 있었을 거 같다. 영화를 찍으면서 제일 어려웠던 점이나 신경 쓰였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스태프들과 배우의 국적이나 언어 문제는 어려운 게 없었다. 좋은 통역들이 있었다. <괴물> 때도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오프닝과 중간에, 스콧 윌슨이라는 1960년대 주연급 배우였던 외국 배우가 나온다. <괴물> 때 호주랑 미국 컴퓨터그래픽과 특수 효과 업체 사람들과 현장에서 일을 같이 하기도 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있어서 <설국열차> 때는 스태프 90%가 미국인, 영국인, 체코인으로 뒤섞여 있었지만 낯설거나 이상하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영화 만드는 메커니즘은 다 비슷하다. 딱 하나 차이가 있다면 스케줄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거다. 한국은 마음에 안 들면 몇 번이고 더 찍을 수 있는데 거기서는 스케줄을 신줏단지 모시듯 무조건 지켜야 한다. 배우를 좀만 더 붙잡으려면 배우 쪽 변호사와 프로덕션 변호사끼리 서로 싸우고 서류가 오가고 그랬다. 또 조합 규정, 배우 조합 규정이 있는데 그게 까다롭다. 예를 들어 존 허트가 저녁 7시에 숙소로 돌아갔다면 12시간 지난 다음 날 오전 7시 전에는 콜을 할 수가 없다. 그 때문에 조감독이 매일 머리를 굴려야만 한다. 오늘 7시까지 틸다 스윈튼을 찍고 먼저 보낸 다음에 크리스 에반스를 아홉 시까지 찍자, 그러면서 조합을 하는 거다. 조합 규정이 있고 그걸 실제로 지켜야 한다. 그런 압박이 있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게 있어서 더 긴장하고 집중력 있게 작업한 측면도 있다.

  다시 말하면 조합 규정이 까다롭긴 했다. 특히 아역 배우. 한국도 그렇게 해야 할 거 같다. 아역 배우는 45분 촬영하면 15분은 무조건 쉬게 해야 하고, 현장에 부모랑 배우 조합에서 인정한 자격증을 갖고 있는 개인 교사를 붙여서 학교 수업 빠진 걸 현장에서 보충해야 한다. 그게 조합 규정이고 규정대로 했다. 그런 건 우리도 필요한 거 같다.

  <설국열차> 보면 애들이 50명 쯤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거 찍을 때 걱정이 많았다. 한데 의외로 진행이 빨리 잘 됐다. 찍기 전에 걱정을 하고 있으니 조감독이 웃으면서 걱정 마라, 내가 해리포터 출신 아니냐(웃음), 하더라. 어떻게 하나 보니 오전 오후반으로 더블 캐스팅을 하더라. 앞에서 대사하는 아이들 빼고 나머지 뒤의 40명은 다 외모랑 머리카락 색, 신체 사이즈가 비슷한 아이들로 해서 한 역할에 두 명씩 가는 거다. 그래야 애들 집중도도 유지되고 지치지도 않고. 캐스팅할 때는 돈이 더 들지만 전체적으로는 더 이득이라고, 그런 노하우가 있더라. 영국이나 미국 조감독은 직업 조감독이다. 나중에 감독이 되려는 사람이 아니라 평생 조감독을 하면서 현장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서만 24시간 고민하고 숙련돼 있다. 나이 50대에, 퍼스트 조감독은 급료도 높다. 대신 자기 돈값을 한다. 그들은 나중에 프로듀서가 된다. 조감독의 개념이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것 때문에 좋기도 힘들기도 했다. 한국에서 조감독은 무조건 감독의 용병, 로마 병사 같은 친구들이다. 거기선 조감독이 오히려 감독을 압박한다. 고민하고 있으면 쓰윽 와서 “4시 20분까지 이 신 다 찍으셔야 해요. 그렇다고 압박하는 건 아니에요.”(웃음), 그러더라.

  임진모(이하 임) 아이들 시퀀스 보고 이 영화는 19세라 생각했는데, 15세로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12세다. 총격 장면에 민감해서인지 미국에서는 R등급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실제로 초등학교에서 그런 사건도 있고 해서 민감했던 것 같다. 미국은 심의 기준이 독특하다. <괴물>도 R등급이었다. <빌리 엘리어트>도 R등급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영화 다 12세 관람가 등급이다).

  등급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었나?

  찍을 때 나나 배우들이나 공동 제작자인 박찬욱 감독 등 모두, 어차피 이거 미국으로 치면 R등급 영화 아니냐. 욕 더하자, 라는 식이었다. 크리스 에반스 왈, F**k이 두 번 들어가면 R등급이다, 한 번 은 용납해 주지만. 이미 그때 우리는 그 F**k을 수 백 번은 족히 한 뒤였다. 그래서 틈만 나면 퍽 퍽 퍽 퍽, “야, 그거 그냥 계속해. 괜찮아 뭐 어차피 R인 거.” (웃음) 하면서 부담 없이 찍었다.

  <설국열차>의 메시지와 연관해 나는 봉준호 감독 영화 세계를 ‘변화’로 규정하고 있다.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 하는 욕망 내지는 그것에 대한 추구, 변화로 규정을 하고 그 주제의 정점으로서 <설국열차>를 위치시키고 있다. 나는 <설국열차>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봉준호 영화 세계의 정점이면서 새로운 출발을 알린다고 해석했다.

  내 자신이 계속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고 그런 강박은 없는데, 남이 했던 걸 하고 싶진 않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거 없다고 창작자들이 말하곤 하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는 거 되게 싫어한다. 새로운 게 엄청 많다고 생각한다. 남의 것을 베끼거나 적당히 흉내 내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괜히 스스로를 정당화할 때 쓰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화를 잘 찍었는지, 그 영화들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입으로 말하기도 민망하고 보시는 분들이 판단하는 거다. 최소한의 자부심은 남이 했던 걸 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내 영화와 비슷한 영화는 없다, 라는 걸 유일한 자부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 영화가 좋은지 나쁜지는 나 스스로는 잘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항상 우여곡절이 많았다. <설국열차>도 익숙한 카테고리에 딱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해외에서 투자하거나 배급하는 사람들이, 좋은 배우고 알려진 감독이고 시나리오도 재밌을 거 같은데 “이게 뭐지?” 그러더라. 회사 내에서도 항상 말들이 많다고 하더라.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갈리고. 그러다 보니 아슬아슬한 우여곡절도 있는데, 기질이 원래 그래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운이 다하면 영화 산업에서 밀리는 시점도 올 거다. 지금까지는 모험적이고 이상한 시도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대중적으로 위기를 잘 넘겼다. 그 운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른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그럴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이 과연 뭘까 미리 구상하고 준비하는 것도 있다.

  <설국열차>는 가장 노골적으로 시스템에 대한 이야길 했던 것 같다. 기차라는 네모난 프레임 안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있듯, 지금 한국 사회에서 사는 것도 마찬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시스템에서 살잖나? 그 시스템이 기차라는 쇳덩어리로 직접적으로 형상화돼 있고 그 기차에서 앞으로 뚫고 나가려는 사람과 아예 기차 자체를 뚫고 밖으로 나가려는 서로 다른 두 인물이 등장한다. 내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스템 내에서 어느 지점에 가려고 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니면 관념적 얘기지만, 이 시스템을 뚫고 밖으로 나가야 할까, 라는 것이다. 그런데 관념적일 수 있는 거 아닌가 싶다. 그걸 추상화하고 단순화시켜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게 사이파이라는 장르의 묘미이자 쾌감인 것 같고. 나오는 신의 수에서는 송강호가 크리스 에반스보다 훨씬 적지만, 겉보기에는 부랑자에 약물 중독자인 송강호의 비전, ‘앞으로 가 봤자 기차 아니냐’ 하면서 틀을 깨고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게 영화의 진정한 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 에반스도 물론 영화의 중심을 지탱하지만 그 사람은 결국 제자리걸음을 한 거라고 본다. 몸은 앞으로 갔지만 멘탈은 꼬리 칸에서의 17년 전 사건에 붙들려 있는 인간이랄까.

  존 허트가 분한 길리엄을 에드 해리스가 분한 윌포드와 엮은 것은 시스템의 무엇을 말하려던 의도였나.

  크리스 에반스의 아버지라 할 수 있을 존 허트는 사실상 유사 아버지, 멘토 같은 사람이다. 영화에서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그 사람도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결국은 기차에서 제일 끝과 맨 앞이 착한 아버지와 나쁜 아버지 같은, 그래서 기차를 하나의 원으로 만들면 앞과 뒤가 서로 만나게 된다. 그 역할을 1인 2역을 시킬까도 싶었다. 만약 연극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거 같다. 착한 아버지로부터 출발해서 나쁜 아버지를 향하는 여정으로. 나쁜 아버지 또는 자신이 타살하려했던 아버지가 사실은 동체라는 거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크리스의 여정은 비극적이다. 나중에 거의 99% 넘어가지 않나? 윌포드가 내 기차를 네가 가져라, 할 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영화에 담겨 있는 ‘혁명’적인 지점이다. 어떻게 보면 혁명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런 영화가 어떻게 천만 가까이 될 수 있는지, 한국은 놀라운 나라다.

  창조 경제니까(웃음).

  본인도 <설국열차>가 혁명적인 텍스트라 생각하나?

  그냥 SF 영화다. 나는 체제순응적인 사람이다. 온건한 사람이다. 체제의 횃불이다(웃음).

  <설국열차>의 결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아이들이 살아남는 건 희망적이나, 북극곰이 살아 있으니 결국 곰에게 잡아먹을 거라는 견해도 있다.

  영화 내내 멸종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모든 생명이 멸종됐다고, 교실에서도 세뇌 를 한다. 밖에 나가면 얼어 죽는다고. 하지만 멀리 있는 산봉우리의 곰을 보면, 살아있는 생명이 있고, 그건 먹이사슬,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거다. 영원하다고 외쳤던 기차는 사실은 마모되고 있고, 엔진을 유지하기 위해 끔찍하게 애들을 부품으로 소모시키는데, 멸망되었다는 바깥세상에서는 오히려 생명이 복구되어 있다. 생명의 상징으로 곰이 등장한 것이다. 요나와 남자 아이가 밖으로 나온 건, 새로운 시대의 아담과 이브를 상징하는 것이다. 한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것. 그런 개념으로 정리해, 스태프와 배우도 그렇게 이해하고 영화를 찍었는데……. 사슴을 넣을 걸 그랬나 보다(웃음). 한데 곰이 그렇게 무서운가? 사슴이나 펭귄을 했어야 했나?(웃음)

 

  다국적의 좋은 많은 배우들과 순조롭게 촬영…행복한 작업

  배우에 대해 말해 보면, 송강호의 역할을 가리켜 우리말이 아닌 영어를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견도 있고, 송강호의 양적 비중이 적다 보니 너무 역할이 작은 게 아닌가 하는 비판 내지 불만도 있다. 고아성 캐스팅은 <괴물> 때문에 자연스럽게 간 건가, 아니면 고아성의 어떤 가능성 때문에 캐스팅한 건가?

  강호 선배도 본인 대사가 적다고 그랬었다(웃음). 배우들은 자국어를 할 때 가장 매력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영화가 <게이샤의 추억>이다. 장쯔이나 공리 같은 중국 여배우들이 일본 게이샤 캐릭터로 캐스팅돼 대사는 영어로 한다. 그러면서 가끔씩 분위기 내려고 ‘사요나라’라고 말한다. 웃겨서 말문이 막혔다. 서양 관객의 시선으로 봤을 때 상관없다는 거다. 같은 동양이면 하나로 뭉뚱그리자는 거다. 그런 느낌이 되게 싫었다. <박쥐>를 보면 송강호 선배가 초반에 영어로 하는 대사가 있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어차피 SF 영화고 인류의 생존자가 기차에 타 있는 건데, 노아의 방주처럼 다양한 국적의 생존자가 타는 게 맞지 않나? 송강호 선배가 영어를 해야 할 이유가 뭐가 있나? 영화 보면 일본어도 나오고 프랑스어도 나온다. 한국어 대사가 전체 대사의 20% 정도 된다. 그때문에 해외 쪽 세일즈에서 걸림돌 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한국 내에서 너무 걱정들 한다. <판의 미로>는 스페인 영화였고 <와호장룡>도 중국어 영화였지만 북미에서나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영화 자체가 재밌으면 잘 된다고 생각한다. <게이샤의 추억>처럼은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고아성 양은 영어를 잘해서, 아버지를 통역하는 역할도 한다. 미국 시사회 때는 고아성 양이 ‘fucking long tunnel’ 할 때 환호도 받았다. 고아성의 경우 제너레이션 경험이 중요하다. 다른 인물들하고 다른 느낌, 소녀와 여인의 중간 지점에 있는. 기차가 달린 지 17년 됐다. 요나가 17세다. 기차의 나이를 가진 아이의 느낌이랄까. 크리스 에반스나 송강호나 꼬리 칸의 주요 인물 모두 바깥세상에서 살다가 기차에 올라탄 사람들이다. 그런데 완전 다른 세대의 아이들, 흑인 꼬마 아이도 그렇지만 다른 세대의 느낌을 누군가 대표해야 하는데, 고아성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평소에도 애티튜드가 주변을 지워 버린다. 상관없다는 느낌 있잖나? 언제나 혼자 따로 있는 듯한 느낌.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주변에서 누가 말을 걸건 어쩌건 간에, 그런 묘한 매력이 있다. 그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많은 좋은 배우들과 작업을 했다. 국적별로 배우들 연기라든지 애티튜드라든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었을 거 같은데.

  다 개인차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유일하게 다른 배우 조합 규정 외에는 다 개인차인 거 같다. 나라별로 일반화하긴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연극 무대를 많이 한 사람과 손발이 잘 맞는 거 같다. 감독 개인마다 다르듯이 감독으로서 취향이 있잖나? 송강호 선배도 연극 무대에서 단련이 돼 있는 분이고, 김윤석 선배나 틸다 스윈튼도 극단 출신이다. 존 허트는 지금도 공연을 하고 있다. 에드 해리스도 그렇고. 연극 쪽 분들과 잘 맞는 거 같다. 박해일 씨나 윤제문 씨도 다 연극배우 출신이다. 그런 개인 차이가 더 큰 거 같다. 틸다는 처음 하는데도 서로 손발이 정말 잘 맞고, 여자 송강호 같은 느낌도 있고, 편안했다. 오랜 시간 같이 작업한 느낌. 에드 해리스는 긴장을 많이 했다. 가장 마지막에 캐스팅 돼서. 크랭크인 될 때쯤 캐스팅 돼서. 제일 끝 칸에만 등장하지 않나. 그분이 현장에서 어떤지 정보도 적었고, 약간 무서웠다. 전화 통화 몇 번 했는데도, 되게 단답형이어서, 예스와 노만으로 답했다. 그래, 어떡하지, 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정말로 상냥했다. 마음씨도 좋고. 재밌게 찍었다.

  그랬다면 행복한 작업이었겠다.

  트러블 일으키는 배우는 없었다. 팀 이글이라는 다섯 살 난 아역 때문에 힘들긴 했다. 연기를 안 하려고 하니까. 나보다도 조감독이 힘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좋아했나, 아니면 영화적 필요에 의해 연극을 챙기나?

  공연 예술만의 매력이 있다. 영상과는 다른. CD로 재생되는 음악과 라이브가 다르듯이. 그리고 연극을 한 배우들이 더 잘할 수밖에 없다. 연극을 하지 않고도 훌륭한 영화 연기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예를 들어 연극을 오래 했던 배우 100명과 그렇지 않은 배우 100명 중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는 확률은 전자 쪽이 훨씬 높다고 본다. 흔히들 연극배우들이 오버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건 개인마다 다르다고 본다. 시간을 보낸 조건을 생각해 보면 객관적으로 그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봉 감독을 영화감독으로 이끈 작품이 있었나?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공포의 보수>. 정말 좋아했다. 심장을 조이는 최고의 영화 중 하나다. 또 어릴 적 이탈리아 영화인지 뭔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봤지만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 거기 가서 자전거를 사 주고 싶을 만큼 몰입해서 봤다. 할리우드 영화들, 특히 샘 페킨파 영화들도 좋아했다. 방송사에서 틀어 주는 검열된 버전의 샘 페킨파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방송에서 어떤 부분을 도려낸걸까, 분명 더 잔인한 부분이 있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음악 감독 중요, 신중하게 작업한다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

  내 인생의 음악이나 음반이 있나? 언젠가는 영화적 인연을 맺고 싶은 음악가가 있다면?

  고등학교 때 지미 페이지가 우상이었다. 밴드를 한 적은 없었지만 엉터리로 기타를 치기도 했다. 레드 제플린을 좋아했다. 앨범은 다 모았다. 우리 세대가 다 그랬다. 핑크 플로이드, 딥 퍼플 좋아 하고. 레드 제플린 3집인가, 그 LP가 되게 예뻤다. 그거 사서 좋아했었던 기억이 있다. 중·고등학교 때 ‘보헤미안 랩소디’가 금지곡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코미디다. 핑크 플로이드 앨범도, 앨범 보면 몇 곡이 날아가 있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온전히 다 있는 앨범을 갖고 싶어서, 백판을 구했고, 그런 갈망이 있었다. 지금은 재즈 음악을 많이 듣는다.

  음악적으로 접근해 보자면 <설국열차>는 타이트한 영화 전개 특성상 음악이 삽입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음악은 많이 억눌려진 편이다. 기차 소리가 더 음악처럼 다가오는 영화니까. 유일하게 다른 뮤지션의 곡을 가져와 삽입한 음악이 에릭 클랩튼의 <Strange Brew>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뛰어나오는, 좀 엉뚱한 상황에 흘러나오는 노래다. 그게 들어가니까 좋더라. 숨통이 트이고. <설국열차> 음악감독이 마르코 벨트라미Marco Beltrami라고, 과거 영화 <빠삐용> 등의 음악을 만들었던 제리 골드스미스 밑에서 조수로 있다가 독립한 분인데, <허트 로커>나 <스크림> 시리즈도 음악을 맡았다. 음악감독과 이 장면에는 삽입곡이 들어가면 좋겠다, 딱 이번 한 번이다, 이 영화에서 곡이 들어갈 만한 데가 더는 없다, 라는 말들을 주고받았었다.

  굳이 <Strange Brew>를 선곡한 이유가 있나?

  마르코 벨트라미 쪽에서 추천한 리스트 상위에 그 곡이 있어서 선곡하게 됐다. 나도 에릭 클랩튼 백판을 사던 세대라 고등학교 때 그 노래를 좋아 했던 기억이 있었다. ‘Brew’가 원래 ‘밀주를 제조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단어의 느낌이 장면과 묘하게 맞았다. 그 장면에 나오는 인물도, 단백질 블록을 만드는 배우가 몽롱하게 맛이 가 있는 듯한 느낌인 데 노래와 잘 어울리더라.

  어찌 보면 봉준호 감독 세대가 첫 ‘컬처 세대’ 라 할 수 있다. 라디오 세대였고 대중문화가 개화된 시점에 학창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이전 감독에 비해 영화에서의 음악 사용이 진일보했다는 느낌이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음악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갖는다고 보나.

  음악, 중요하다. 나쁘게 말하면 감독이나 배우나 촬영감독이 구현하려 했던 의도를 간단한 콩나물 머리 하나로 일거에 다 뒤집어 버릴 수 있는 게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좋게 말하면 현장에서 실패했던 것이 음악 덕분에 살아나거나 두 배 아니 열 배 이상으로 확 꽃을 피울 수도 있다. 그래서 음악감독이 중요하고, 신중하게 작업한다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인 거 같다.

  그럼에도 많은 감독들이, 음악 감독이 작업을 해 놓으면 안 쓰거나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영화감독과 음악감독은 막판에 많이 싸운다. 음악을 최종 믹싱 단계에서 결정하잖나.

  바람 소리나 불이 타는 소리도 크게 보면 사실 음악의 일부다.

  어떻게 보면 거대한 오케스트라일 수 있다. 음, 영화에서는 음악이 전면에 나서야 할 때도 있고, 스며야 할 때도 있고, 아예 없어야 할 때가 있 고, 그 세 가지인 거 같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나 마틴 스코시즈 감독을 보면 음악이 전면에 나서 있고 그게 영화를 살려 준다. 기질적으로 그런 걸 즐기는 감독 같다. 나는 그런 체질의 플레이는 아직 못 해봤다. 음악을 공격적으로 전면에 내세운 시퀀스도 해 보고 싶다. 그러려면 시나리오 때부터 이미 구상을 해야 할 거 같다.

  봉 감독도 만약 뮤지션을 조명한다면 하고 싶은 인물이 있나?

  신중현 선생이나 김창완 씨. 내가 아니라도 누가 만들어 준다면 정말 볼 만할 거 같다. 전인권 씨를 찍어도 재밌을 거 같다.

  만약 신중현의 영화를 찍는다면 배우를 누구한테 맡기고 싶나?

  쉽지 않은 문제다. 영화에서의 김기영 감독이나 음악 쪽의 신중현 선생 같은 분은 만약 유럽에서 태어나셨더라면 루이스 브뉘엘이나 에릭 클랩튼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사적인 의견이지만 평론 부문에서 음악과 영화의 차이가 있다면, 음악 평론은 부재고 영화 평론은 홍수인 시대라는 것이다. 영화는 아직 잡지라도 살아 있지만 음악 평론은 블로그나 SNS로 물러난 상황이다.

  영화도 시사회를 하면 극장에 불도 안 켜졌는 데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 상황에서 이미 트위터로 말이 나오고 그런다. 나는 SNS가 싫다. 정제되지 않은 설익은 생각들을 길 가면서 코딱지 날리듯 틱 틱 내뱉은 게 순식간에 확산되는 것이, 적어도 하루 정도는 고민하고 말해 주면 어떨까 싶다. 그에 비해 진정한 평론은 되게 드물어졌다. 내 영화를 비판할 거면 칼로 다지듯이 잘근잘근 세밀하게 하든가, 좋으면 왜 좋은지 적어도 두 번은 봤나 보다, 생각을 많이 했나 보다 싶어야 ‘이건 내가 잘못했나?’ 그러면서 서로 간에 생각의 잔상이 남게 되는데, 그럴 수 있는 지면도 많이 없어졌다. 영화 쪽도 음악과 마찬가지인 거 같다.

  마지막 질문을 하겠다. 한국 영화계에 포스트-봉준호, 포스트-박찬욱이 누구냐,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냐는 등의 문제 제기 내지 불평이 심심치 않게 들리곤 하다.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 각하나.

  배우들은 좀 많이 나오면 좋겠고. 감독들은 천천히 나오면 좋겠다(폭소).

 

 

* 《쿨투라》 2019년 7월호(통권 6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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