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산책] 다시 찾은 ‘프라하의 봄’
[클래식 산책] 다시 찾은 ‘프라하의 봄’
  • 한정원(클래식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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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장벽 붕괴는 1989년 11월 9일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동서로 나뉘었던 독일이 통일된 이 엄청난 사건은 근접 국가인 옛 체코슬로바키아의 자유화 바람의 시발점이 되었다. 일주일 후인 11월 17일, 체코인들은 양대 도시 프라하와 블라디슬라바에서 자유와 권리를 찾기위한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벌였다. 마치 우리 나라 촛불 시위처럼 평화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비폭력 무혈 투쟁이었다. 벨벳혁명 이후 줄곧 연방국을 유지하던 체코는 1993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공화국 두 나라로 나뉘게 된다.

 독일 통일을 포함하여 전 유럽 국가들이 격변과 혼란에 처했던 1980년대말, 나는 이 상기된 역사적 순간들을 우연하게도 독일에서 마주하였다. 뉴스에서는 연일 변화해가는 유럽 국가들의 새로운 소식과 이슈들이 넘쳐났고 한 주일 내내 다양하고 염려 어린 토론 프로그램 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자유 진영으로의 문이 활짝 열린 동독 국민들과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동유럽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서독으로 밀려들었다. 서독은 언젠가 닥칠 통일에 대비하여 여러 방면으로 준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라 살림은 최근 몇 년 전까지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러한 시대의 큰 일렁임은 때마침 독일에 머물던 나에게는 역설적으로 큰 선물이 되었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정통 독일음악과 현재에 이르는 예술과 문학을 담당했던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몸으로 느껴보고자 갈망했던 나에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갈 수 없던 곳들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영화 <프라하의 봄>, 쿤데라와 야나첵

 여름 학기를 마치고 제일 먼저 나는 한때 유럽의 중심지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예술의 도시 프라하를 찾았다. 부와 문화의 상징인 첨탑이 많아 ‘탑의 도시’라고도 불렸던 이곳은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아 천 년 역사를 간직한 유산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환상은 입성과 동시에 무참히 깨졌다. 거기에는 죽음의 도시처럼 까만색의 건물들만 서 있었다. 오랜 세월 방치된 낡은 건물들, 햇살이라고는 전혀 들지 않았던 것처럼 우중충하고 온통 새까맣게 그을린 건물들. 서방에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음을 알려주려는 듯 프라하는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한번은 거리를 지나다가 작은 가게를 찾았다. 가판대에 남은 사과 세 개를 모두 달라고 하니 머리에 보자기를 쓴 집시 주인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두 개만 가져가란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녀는, 내가 몽땅 가져 가면 다른 사람은 먹을 기회가 없어지니 한 개는 팔지 않겠다고 했다. 당연하다는 듯 누런 종이봉지에 싼 사과를 건네주던 그녀의 얼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사과를 두 개나 파는 것이 마치 내게 크게 선의를 베푸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그녀 모습에서 이곳이 얼마나 오랜 세월 공산국가의 지배하에 있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영화 가운데 <프라하의 봄>이 있다. 프랑스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을 했는데, 1968년 옛 소련에 저항했던 체코의 민중운동인 ‘프라하의 봄’을 몸소 겪었던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는 체코인들이 사랑하는 클래식 작곡가 레오시 야나첵의 음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장 빈번하게 들려오던 곡은 피아노 솔로 연주곡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였다. 야나첵은 이 작품을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 후크발디를 회상하며 썼다고 했는데, 듣고 있노라면 피아노 소리의 울림만으로도 숲 속 풍경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영화의 배경음악을 야나첵의 피아노 작품을 씀으로써 무겁고 우울한 시대상을 예술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잘 표현해낼 수 있었던 데에는 원작자인 쿤데라의 야나첵 사랑이 큰 몫을 차지했다고 할 수 있다.

 

음악축제 ‘프라하의 봄’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성공하고 <돈지오반니>가 탄생하고 초연된 프라하에서는 매년 5월 12일부터 6월 4일까지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축제 PRAGUE SPRING’가 열린다.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날짜를 고정해놓은 음악축제는 흔치 않은데, 그 이유는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 국민음악의 선구자이며 체코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메타나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매년 같은 날 저녁, 오베츠니 둠의 스메타나 홀에서 열리는 개막식에서는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전 6곡을 모두 연주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클래식 애호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프라하의 봄 음악축제’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 독립을 기념하고 체코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창단 5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로 시작되었다. 소련군이 프라하를 침공하던 1968년 ‘프라하의 봄’ 기간에도 이 음악축제는 어김없이 개최되었으며, 70여 년 동안 정치적 격동과 변화를 겪으면서도 체코인의 정신적 지주처럼 중단 없이 이어져왔다.

 올해로 74회 생일을 맞은 ‘제74회 프라하의 봄’은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체코의 명지휘자 야쿠프 흐루샤 지휘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연주하였다. 세 번째로 찾은 프라하는 더 이상 예전 동유럽의 낡은 도시가 아니었다. 도시를 관통하는 블타바 강변을 따라 양쪽으로 빽빽이 들어선 큼직한 옛 건물들은 오랜 세월의 때를 벗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관광객들을 반긴다. 널찍하게 잘 정비된 도로와 붉은 빛으로 장식한 화려한 지붕들은 유럽을 호령하던 영광의 옛 시간으로 되돌아간 듯 자태가 우아하다. 몇 년 전 ‘프라하의 봄 음악축제’에는 아시아권에서 처음으로 일본 나고야 오케스트라가 공식 게스트 연주자로 초대를 받았다. 한 지방도시의 오케스트라는 그날 연주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일본 사회에 뿌리내린 클래식 수준을 한껏 보여주었다. 유명 개인 독주자 한두 명이 외국 무대에 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예술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긴 안목을 본보기처럼 보여주었다. 언젠가 우리 나라 유수의 오케스트라에게도 수준 높은 음악축제에서 기분 좋은 초대의 손길이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 《쿨투라》 2019년 7월호(통권 6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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