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Theme] 조용필 노래의 힘은 고독으로부터 나왔다
[8월 Theme] 조용필 노래의 힘은 고독으로부터 나왔다
  • 오광수(시인, 경향신문 콘텐츠팀장-국장)
  • 승인 2019.08.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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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란 구름 같고 바람 같고 파도 같은 것이다. 어느 스타에게도 전성기가 있고 말년이 있다. 그것에 연연해 하다 소중한 것들을 잃었다. 이젠 조용히 음악하는 사람으로 지내고 싶다. 음악을 떠나지 않고 꾸준히 자기 음악의 깊이를 더하는 중견가수가 되고 싶다. 만인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음악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깨닫게 되면 언제라도 물러설 것이다. 하지만 미리부터 겁먹거나 두려워하진 않는다. 나에겐 아직 발산하고 싶은 음악적 에너지가 남아 있다. 누구나 신인에게 정복당하게 마련이지만 진정한 가수로 사람들의 뇌리에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영광은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 70세가 되도록 나는 노래를 부를 것이다. 나의 열창은 끝나지 않았다.”

  1998년 데뷔 30주년을 맞은 조용필이 《경향신문》 에 쓴 자전적 에세이에 남긴 말이다. 그는 70세가 되도록 노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20년, 조용필은 곧 70세다. 그는 여전히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20년 전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유행가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감이다.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야 유행하는 노래가 되는 것이다. 사랑하고 이별할 때 세상의 모든 노래가 자신의 얘기 같다고 한다. 그만큼 대중음악은 인간의 감성과 친숙하다.

  나는 기자로서 조용필을 30년 넘게 지켜봤다. 1980년대 후반 인기절정의 조용필을 처음 만났다. 그 당시 조용필은 이미 대적할 자가 없는 ‘가왕’이었다. 방송사들이 주는 연말가요대상을 매년 휩쓸었으며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손꼽는 가수였다. 그리고 밤새 술을 마셔도 끄덕 없는 강철 체력의 소유자였다. 당시 몇몇 젊은 기자들은 그와 포장마차를 전전하면서 술을 마시다가 적당할 때 달아났다. 같이 대작하기에는 힘이 부쳤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 또 줄담배도 끊은 지 오래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정 만큼은 깊어지고 넓어졌다.

  그렇다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대중들은 왜 조용필의 음악에 열광할까? 조용필의 음악에서 느끼는 공감은 무엇일까?

ⓒYPC 프로덕션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중에서

  조용필의 히트곡은 장조보다는 단조가, 빠른 템포보다는 느린 템포가 훨씬 더 많다. 빠르고 신나는 노래는 손꼽을 정도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서보듯 그는 하이에나가 아닌 굶어서 얼어죽는 표범을 원한다. 양인자가 쓴 이 노래는 지난 수십년 동안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지켜온 음악적 자존심을 대변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감내해야할 고독이 도사리고 있다.

  생각나는 대로 조용필의 히트곡 중에서 고독한 정서를 반영한 곡만 열거해보자. <창밖의 여자>, <비련>, <상처>, <허공>, <미워 미워 미워>,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그 겨울의 찻집>, <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곡들의 주인공들은 고독한 정서의 소유자들이다.

  ‘창가에 서면 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 돌아서 눈 감으면 강물이어라’로 출발하여 ‘바람 속으로 걸어 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로 넘어간다.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을 보내는가 하면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를 추억한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대중가요 중에서 고독한 정서를 번영한 노래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그 노래가 조 용필의 목소리와 만나면 사뭇 달라진다. 일찍이 대마초사건으로 손발이 묶였을 때 조용필은 비탄에 빠져서 지내는 대신에 판소리를 익히면서 때를 기다렸다. 1980년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를 들고 나왔을 때 대중들은 물론 음악관계자들도 예전의 조용필과는 180도 달라진 조용필을 발견한다. 판소리가 갖고 있는 한의 정서가 조용필의 노래에 이식된 것이다. 어떤 노래도 조용필이 부르면 달랐다. 가슴을 후벼 파는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뮤지션 조용필은 고독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조용필을 볼 때마다 고독을 보았다. 아니, 고독이라기보다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자존심이다.

ⓒYPC 프로덕션

  그를 사물에 비유한다면 고려청자 같다. 좀체로 곁을 주지 않는 고고함과 기품이 조용필에게 있다. 그 고고함은 음악 외에는 그 어떤 일에도 자신을 소비하지 않는 철저한 사생활에서 비롯된다. 골프 외에는 특별한 취미도 없다. 그나마도 요즘엔 허리통증 때문에 좋아하는 골프도 자주 즐기지 못한다.

  어쩌면 너무 일찍 유명세에 시달리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조용필이기에 사생활에 있어서 극도로 자제하느라 스스로 고립을 자처했을 수도 있다. 그를 사랑하는 팬들은 공연장에나 가서야 조용필을 영접할 수 있다. 그러나 내일모레 칠순을 앞둔 혼자 사는 조용필을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다소 안쓰럽다. 좀 더 저자거리에 자주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조용필을 봤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이제는 체질화된 듯하다.

  역설적으로 고립을 자처한 덕분에 조용필은 그 시간동안 온전하게 음악에 집중한다. 외국 가수들의 라이브 실황은 물론 최신 팝송과 유명 래퍼들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듣고 보는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틈만 나면 외국에 나가 신작 뮤지컬을 본다.

  그건 바로 고독, 내면의 위대한 고독입니다.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파고 들어가서 몇 시간 동안 그 누구도 만나지 않는 것, 그러한 것을 끝내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릴케의 말처럼 위대한 예술은 고독에서 나오는 거라고 정의한다면 조용필의 고독은 현재 진행형 이다. 그의 노래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유다.

 

 

* 《쿨투라》 2019년 8월호(통권 6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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