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Theme]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
[8월 Theme]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
  • 설규주(경인교대 교수)
  • 승인 2019.08.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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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스크린》 속의 조용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월간지 《스크린》이었던 것 같다. 17세 고등학생이 34세 가수를 보고 “오빠”라고 부르며 “너무 귀엽다”라고 말했다는 기사가 실렸던 잡지가. 그 34세의 가수는 조용필이었다. 내가 이 기사를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17세, 34세, 고등학생, 조용필, 오빠, 귀엽다 등과 같은 단어들이 조화롭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용필이라는 가수야 1980년대 초중반에도 이미 최정상에 있었고 웬만한 집에 조용필 음반 한두 개쯤은 굴러다니던 시절이었다. 10대 가수상, 가요 톱10 등을 휩쓸고 다녔다. 그렇게 제일 잘 나가는 34 살이나 먹은 ‘아저씨’ 가수한테 귀엽다니… 어쩌면 반대로, 34세 어른이 17세의 청소년에게 귀엽다고 말했다 해도 그때의 나에겐 그게 썩 자연스러워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17세 정도면 귀엽다는 형용사와 그리 잘 어울리는 나이는 아니니까. 17세든 34세든 당시 만 나이로는 겨우 한 자릿수에 불과했던 나에게는 17세도 꽤 멀게 느껴졌고 34세라는 나이는 그저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렇게 아득한 나이의, 내가 보기엔 ‘어르신’이 ‘귀엽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도 한참 어린 고등학생한테서.

  하지만 어쩌랴. 홍시 맛이 나면 홍시 맛이 난다고 해야 하고, 귀여우면 귀엽다고 할 수밖에… “너무 귀엽다”는 말은 조용필 콘서트장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 학생은 조용필을 ‘오빠’라고 불렀고 조용필의 ‘오빠부대’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스크린》 창간이 1984년이고 그 기사도 대략 그 무렵에 나왔으니 그 34세의 가수는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우리 나이로는 칠순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 17세의 고등학생은 이제 50대가 되었다. 그녀는 지금도 조용필의 ‘오빠부대’로서 귀여움을 담은 하트를 조용필에게 변함없이 보내고 있을까. 그녀에게 자녀가 있다면, 어쩌면 그들도 엄마처럼 누군가의 왕팬으로서 아동기, 청소년기를 보내오진 않았을까.

ⓒYPC 프로덕션

  # 2. 노래방 속의 조용필

  대학생이 되어 노래방이라는 곳을 처음 가 보았다. 요즘에는 너무나 당연한 에코 기능, 검색 기능, USB 녹음 기능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대신 없어야 할 것은 꽤 있었다. 자막에 있는 오타. 오늘날 기준으로는 허접하기 그지없는 곳이었지만 노래방을 처음 경험해 본 새내기 눈에는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단순한 음악 반주에 마이크가 전부인, 오직 노래 기능에만 충실한 시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 아는 노래를 목청껏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노래방은 꽤 괜찮은 오락거리가 되었다.

  조용필의 노래를 제법 알고 있으면 무슨 노랠 부를까 고민하며 노래방 책을 뒤적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조용필 노래는 곡 수도 많지만 그 스펙트럼이 넓어서 사랑, 이별, 우정, 젊음, 고독, 인생, 미래 등 웬만한 분위기에는 다 맞출 수 있었다. 조용필의 수많은 노래 중 노래방에서의 한 곡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여행을 떠나요>를 택하겠다. 부르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이 노래를 시작하면 다른 이들도 일어서지 않을 수 없고 입술을 달싹이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노래방에 갈 일이 거의 없지만 혹시 어떤 모임에서 가게 됐을 때 누군가가 <여행을 떠나요>를 입력한다면, 가무에 몹시 서툶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꺼이 자리에서 일어설 용의가 있다. 조용필에 대한, 그리고 노래방에서 즐거웠던 대학생 시절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로.

 

  # 3. <나가수> 속의 조용필

  조용필의 노래는 <나는 가수다>에서도 인상적이 었다. 조용필의 노래만으로 가수 7명이 부를 노래를 모두 채웠던 특별 라운드는 빼더라도, 박정현이 부른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는 잊을 수가 없다. 그 노래를 박정현이 불렀기 때문에 내겐 더 특별하 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박정현이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이전부터 박정현의 팬이었다. 각종 콘서트를 찾아다녔고 음반을 사서 모았고 모든 곡을 MP3 파일로도 가지고 있다.

  노래든 영화든 리메이크는 원작에 못 미친다고들 하는데, 한 번의 예외가 있다면 나는 박정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꼽겠다. 박정현의 리메이크가 조용필의 원곡을 능가한다고 하는 것은 무례할 수도 있으므로, 나는 오리지널에 필적한다고 까지만 말하겠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만큼은 원곡보다 박정현 버전을 더 많이 들었다. 그건 두 곡의 수준 차이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내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MBC

  박정현의 리메이크 버전을 비롯해서 조용필의 노래를 이처럼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듣는 즐거움이 참 컸다. 같은 곡을 다른 음색으로 들을 때 그 분위기와 메시지도 달라진다. 그와 관련한 소망을 한 가지 언급하고 싶다. 조용필의 노래만으로 뮤지컬을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아바의 노래로 <맘마미아>를, 김광석과 동물원의 노래로 <그 여름, 동물원>이라는 뮤지컬을 만들었듯이. 조용필 콘서트를 열면 어제 부른 노래 목록과 오늘 부른 노래 목록이 다를 정도로 히트곡이 많고, 가사를 통해 망라하고 있는 주제가 다양하니 스토리를 짤 때 운신의 폭도 넓을 것이다. 조용필의 노래로 뮤지컬이 만들어진다면 이제는 50대 이상이 된 원조 ‘오빠부대’들에게, 조용필의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고 TV로 보며 즐거워해 온 수많은 팬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이 되지 않을까.

 

  # 4. ‘오늘’ 속의 조용필

  2019년 윔블던 테니스 대회 결승에서 5시간 가까운 대접전 끝에 평생의 라이벌 조코비치에게 패한 노장老將 페더러는 준우승 소감에서 “내가 보여준 모습(메이저 대회 준우승)이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면 좋겠다. 나는 37세의 나이에도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었다. 다른 37세들도 나처럼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라고 했다. 이어서 우승 소감을 전한 조코비치는 “페더러는 다른 이들에게 37살의 나이에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나도 그들 가운데 한 명이다.”라고 말하며 페더러에게 경의를 표했다. 37세의 나이는 테니스 선수로는 환갑이라고들 한다. 조용필은 칠순이다. 가수 경력만 50년. 화려하고 길었던 어제를 추억하면서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조용필은 여전히 ‘오늘’로써 ‘오늘’을 살아간다. 칠순 언저리의 나이에도 조용필이 여전히 잠실 주경기장 콘서트를 매진시키고 평양콘서트에 온 관객을 열광시키고 젊은 가수 못지않게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모습은 후배 가수에게는 물론 나 같은 일반인에게도 희망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미래에 조용필 정도의 위치에 올라갈 수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오늘’ 그렇게 꾸준히 자기를 관리하고 활동하는 모습만큼은 해내고 싶고 해낼 수 있다는, 그런 희망.

 

 

* 《쿨투라》 2019년 8월호(통권 6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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