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관 문화예술위원장] 박종관 문화예술위원장을 만나다
[박종관 문화예술위원장] 박종관 문화예술위원장을 만나다
  • 유성호(본지 주간, 한양대 교수)
  • 승인 2019.08.01 0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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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의 다짐과 새로운 모색의 시간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취임 후 8개월가량 지났는데, 길다고 할 수 없는 시간 이니 아직 뚜렷한 변화의 지표보다는 구상과 진행 가운데 있는 일이 많을 듯했다. 굴곡이 많았던 문화 예술위원회의 새로운 기관장으로서 포부도 많겠지만, 조심스러운 출발을 다짐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가는 기간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의 꿈을 만나 보았다.

  박종관(이하 박) 오랜 기간 위원장이 부재하는 곡절을 겪었지요. 이전 위원장님의 건강 문제도 있었고요. 7월에 직무수행계획서를 내고 8월에 인터뷰를 했어요. 취임이 2월이었는데 굉장히 휑했어요. 블랙리스트로 어지러울 때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조금 떨어져서 보니 저희가 블랙리스트의 실행기관 같은 모양을 갖추고 있었던 셈이지요. 블랙리스트 징계안이 그때 완성되어 임명장을 받자마자 징계 의결 관련 일에 사인을 해야 했어요. 인생은 언제나 실전이지만 참 가혹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명되자마자 징계부터 해야 하느냐는 생각을 했었죠. 3월에 조직개편이 이루어졌습니 다. 4월에 사무처장을 선임했고 지금까지 월별 계획을 세워 잘 끌고 왔습니다. 돌이켜보니 일은 열심히 했는데 과연 무슨 일을 해온 것이냐 물으시면 무언가 대답을 드릴 게 있어야 할 텐데 그게 마땅치가 않습니다. 그 점이 조금 송구스럽고요. 앞으로 해야 할 일거리들을 잔뜩 쌓아 놓고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는 중입니다. 과제가 참 많거든요.

  유성호(이하 유) 어쨌든 짧은 시간이었는데 조직 개편하시고 위원장님 브랜드랄까 그런 것을 정초하시는 데 8개월을 지나오신 것 같습니다. 사실 문화 예술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는 문화예술계가 인적 구성도 매우 다양하고 또 불만도 많이 터져나오는 곳이라는 제 경험적 견지에서 볼 때, 어떤 박종관만의 정책 방향이랄까 이런 것을 세우시는 데 정말 신중한 접근을 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 원형적인 것이라도 포괄적으로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우리 기관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딜레마는 신뢰를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신뢰받아야 할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지요. 조직 내적으로도 어려움을 굉장히 많이 안고 있어요. 그럼에도 저는 부분적으로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현장이 신뢰할 수 있는 길로 접어들었어요. 또한 예술인들을 위한 신뢰의 길이 있다면 조직 내적으로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것도 있지요. 그런 일들을 감히 했노라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리고 이제부터이지 않겠습니까? 새롭게 비전을 만들어내는 일, 가능하면 올해 안에 매듭지을 생각이에요. 제가 느낀 것은, 현장은 절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몸이 닳아 급하게 일을 한다 해도 좋은 결과를 못 얻는 경우는 많이 발생하고요.

  지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 관련하여 신뢰가 좀 떨어진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정부도 바뀌고, 위원장님도 새로 선임되셨고, 그동안 국가권력과 유착되면서 생겼던 관변 냄새 같은 것들은 일신되지 않을까 기대가 정말 큽니다.

  실제로 국가폭력에 의해 많은 부분이 손상되고 손해 보신 분들이 있죠. 물적으로 손해가 있었고 정신적으로도 피해가 있었다면 그 두 가지 모두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치유를 통해 해결해야 할 일이 많지요. 두 차례 이상 공식사과를 했는데 아직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보다 분명한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경우에는, 상대방이 납득할 만큼의 충분한 사과를 통해 새로운 신뢰 관계를 구축해갈 수밖에 없지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을 지향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 입장과는 또 다르게 “왜 자꾸 현장에 대고 이야기하느냐, 그건 네 일 이잖아.”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이 제 일이라고 해서 저희가 아주 급하게 무엇을 만들어내면 그것이 그다지 충분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현장과 함께 만들어내야 하는데 너무나도 다행인 건 황현산 선생님께서 우리 한국문화예술의 23개 혁신안이라는 것을 만들어 방향을 제시하신 것 입니다. 23개 혁신안이라는 것을 민간과 합의하여 만들어놓으셔서 어찌 보면 시간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고, 그중에는 이미 몇 가지 해결한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차근차근 해결해가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상처의 치유와 가치 생성의 준비

  그동안 상처가 깊었기 때문에 위원장님이 말씀하신 치유와 재생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대개 일반인들은 문화예술위원회의 수많은 역할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현장의 지원 혹은 후원에 큰 역할이 있지 않나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시간이 지나오면서 문화예술계 지원 폭도 많이 줄어들고 체감적으로도 많이 열악해졌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습니다. 정책 최전선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시고 계신가요?

  본원적 가치와 파생적 가치가 있다면, 우리 나라가 본원적 가치에 관한 투자는 참 소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문화예술위원회에서 2005년부터 3년간 위원 일을 했다가 2018년 11월에 위원장이 되어 다시 일하게 된 것인데 기초예술 진흥에 대한 450억 예산이 조금도 늘지 않았어요. 응용사업들에 의해 대국민 문화예술 지수를 높이는 쪽 사업들은 많이 늘어났는데, 그것에 비해 예술의 본원적 가치를 생산해내는 것들은 시장에서 대개 실패하거든요. 귀한 가치를 담고 있으니까 그 가치를 못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단계적으로 높여가야 한다는 게 제 목표입니다.

  다만 조금 낙관적인 건 박양우 신임 장관께서 이 맥락을 정확하게 보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목표치도 가지고 있고요. 어차피 저희는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정책을 실행하는 준정부기관인데, 이 입장에서는 정부 방침을 벗어나 어떤 것을 사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집행 방식과 그 안에서의 자율성은 저희가 얼마든지 담아낼 수 있고요, 더불어 얼마만큼 투자를 늘려가고 확장 해갈 것이냐는 문제는 송두리째 숙제로 남아 있는 것이죠.

  올해 목표치는 조금 늘렸고요. 청년 관련, 남북 관련 사업 등은 기본적으로 상승적이긴 합니다. 공연 쪽으로 넘어가면 창작지원 같은 것들은 한 해만 주면 성과가 안나거든요. 한 3년 정도 지속해서 주어져야 합니다. 청년 관련 사업들은 다양하게 개진해가고 있습니다. 순회 쪽 사업으로만 30억, 국제교류 쪽으로는 별도로 9억, 전부 다 청년 트랙을 이야기하는 것이고요. ‘첫술 프로젝트’는 새로 시작 하는 사람이 한 번만 딱 지원을 받게 하는 것인데, 10억 규모로 시작을 해보려 합니다. 이게 씨앗이 되어 내년으로 이어지면서 훨씬 더 확장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위원장님의 구상이 어느 정도 구체적인 윤곽을 그려가려면 재정이 확장되는 게 반드시 수반되어야겠습니다.

  조금씩 늘려온 것이 올해 성과라면 성과고요. 내년에 이런 걸 터전으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청년 일자리 사업을 예술 안에서 어떻게 크게 전개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예산 철이거든요. 문체부 가서 매일 교섭하는 등 여러 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 때는 문화콘텐츠 쪽으로 많이 지원이 이루어져 문화예술계 안에서도 약간 비대칭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콘텐츠 사업이 시작되었고 꾸준히 그 규모는 늘어났지만 그것에 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다소 정체되었습니다.

  어쨌든 문화예술위원회의 정체에는 물가 상승률 반영이 안 될 정도의 예산 정체가 한몫했던 것이군요.(웃음)

  볼멘소리를 낼 때 좀 정제해 이야기한다면 너무 허름한 기초공사로 생각하는 게 아니냐 하는 겁니다.

  그야말로 이게 본원적 가치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시장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냐 하면 무조건 뜨고 봐야 되는 거죠. 뜨지 않으면 다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고요. 그러니까 저희가 아주 촌스러운 비유를 하자면 별은 함께 빛나야 아름다운 건데 별들이 모여 있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정확한 질문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다양하고 인적 구성이 복잡한 곳이 문화예술계인데 위원장님은 전공하시는 분야의 귀속성도 있고 정책 집행자로서의 균형감 어린 다양성도 있으셔야 할 터인데, 그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난제들도 많으실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저는 취임하고 나서 많은 분들을 만나는 일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위원장을 맡았는데 제 분야 이야기를 하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틀림없이 그럴 것 같아요. 예술의 귀한 가치를 조금 더 귀하게 빛나도록 조력하는, 모든 문화예술인의 친구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중심에 두고 있지요. 그리고 제가 지역문화 구성원이었잖아요. 그래서 지역 쪽에서 기대하는 바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은 이렇다 할 만한 걸 내놓지 못했어요. 이것도 또 하나의 숙제거리죠.

  아까도 말이 나왔습니다만, 위원장님이 2003년에 위원회 초대위원으로 활동하실 때하고 지금 예산이 크게 증액되지 못한 현상을 말씀하셨는데 과연 지금 우리 문화예술계는 어떤 것 같습니까?

  그때가 문예진흥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바뀌던 시기입니다. 김병익 초대 위원장은 너무도 훌륭한 분이셨어요. 지금도 저희가 쓰고 있는 “훌륭한 예술이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같은 문장은 전부 김 위원장께서 만들어내신 거거든요. 그분의 세련된 문장으로 여전히 쓰고 있지요. 그런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한번도 위기 국면이 아니었던 적이 없어요.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때 그 유명한 ‘한 지붕 두 위원장’ 이라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위원장을 명령서 한 장으로 그만두게 만들었고, 재판에서 이겨 돌아오면서 위원장이 두 분이 되는 일이 있었죠.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대학로 주변에 있던 기관을 그때 구로동 쪽으로 강제 이전을 시켰어요. 2013년에 저희가 지방으로 이전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었어요. 그때 나주시로 이사를 하는 데까지 문화예술위원회를 중심에 놓고 보면 한 번도 국면이 유리 했던 적은 없어요. 그 최고 절정기에 결국은 기관이 와르르 무너지게 되는 블랙리스트까지 진행되었던 거지요. 그런데 저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을 합니다. 예술문화위원회가 흔들리면 한국 문화예술이 흔들리는 거거든요. 그게 지원기구가 가진 고유한 속성입니다.

  누구 못지 않게 예술을 지지하고 예술가를 지원해야 하는 문화예술위원회가 이른바 리스트를 만들어 누군가를 배제하고 일상적으로 무언가를 주지 않고 했던 게 문제이지 않습니까? 독립성, 자율성 문제도 지금보다 더 강화되어야 하고 그런 것들이 결국 보다 풍성한, 그리고 현장이 요구 하는 제도를 만들어가는데 합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른바 ‘신뢰사회’가 바탕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일차적으로는 올 연말까지 최소한의 비전을 현장에 제시할 생각이고요. 누군가 그렇다면 위원회 6기 박종관표 지원사업은 어떤 것이냐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는 몇 가지 사업을 세팅해서 말씀을 드릴 계획입니다.

  큰 방향으로 기초예술 관련 부분을 확대한다는 게 있다면, 급격한 매체 환경 변화가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 예술이 적응해가야 할 길도 숙고되어야 합니다. 일차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인간 소외 현상도 따져 봐야 하겠지만 다른 한쪽으로 본다면 매체 환경이 변하고 또 다른 형태의 감동을 조직해가는 현재의 내용들을 담을 수 있는 다양한 대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선도할 테니 따라와라 이렇게 말하는 시대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굉장히 다양한 지역 인구들이 생겼고 76개가 넘는 기초 시군구 문화재단들이 생겨났으며 광역문화재단도 16개나 있어요. 종적으로 횡적으로 지원사업을 확산시킬 수 있는 네트워크 체계를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가 변방 중심이라는 말 많이 하지만 거꾸로 변방이 중심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지역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대체적인 방향들을 설정하고 지금 대안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새로운 문화예술위원회를 위하여

  채 15년이 안 되었는데 제가 ‘한 지붕 두 위원장’을 미처 기억하지 못했네요. 굉장히 많은 파란과 곡절이 있었습니다.

  문화예술위원회만 중심으로 생각하면 한번도 순탄한 적이 없었던 셈입니다.

  향상성과 지속성이 신뢰 회복에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위원장님도 말씀하셨지만 매체적 여건이 획기적으로 달라지면서 말하자면 활자중심 세대들이 밀려나는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문화예술 인구 중에 문자 쪽 머릿수가 여전히 많을 것 같기도 한데요. 이분들이 결국 문학 종사자들이거나 출판하는 분들일 텐데, 이분들 가운데 매체 환경 변화에 적응해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마지막까지 활자의 수호자로 남을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럴 경우 정책이 변해가는 가운데 본인들이 홀대받는다거나 본인들 지분이 줄어들고 있다고 느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저조차도 이렇게 빨리 매체 변화가 있을 줄 몰랐어요. ‘문학의 종언’이라는 말을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고 급격하게 왔다고 생각해요. 저만 해도 적당히 꼰대 세대라 이런 걱정을 하는 것 같아요. 과연 이 토대 없이 어떤 걸 만들어낼 수 있을까, 좋은 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는 길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할 때가 굉장히 많지요. 그럼에도 저는 새롭게 시작하는 젊은 세대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별걸 다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고, 또 전혀 우리가 가지고 있지 못하던 수많은 결과들을 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양가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기초예술임이 틀림없고 어떤 여건들이 변하니까 성질 변화들을 해야 하는 것도 있는 거겠죠.

  젊은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제가 과거 느꼈던 문자가 주는 희열과 감동 그런 것들을 같이 느껴주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이전 세대라는 걸 역으로 증명하는 것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다는 소리를 내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거죠.

  《쿨투라》의 손정순 대표가 동석하셨는데, 잠깐 질문을 부탁해도 될까요?

  손정순(이하 손) 지역문화 운동을 많이 해오신 위원장님께서 문화예술위원장으로 오셔서 기대가 큽니다. 문화콘텐츠 시대이니까 문화예술 종사자분들이 참 좋아할 것 같아요. 사실은 그동안 위원장님들은 문학 쪽 분들이 많기도 했는데요. 문화예술의 사각지대를 비롯한 전체를 볼 수 있는 위원장님께서 자리를 맡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공연이 늘어난 추세이지만 시각이나 문학은 조금 위축된 상태이죠. 제가 정말 기가 막힐 일은 블랙리스트 이후 저희가 징벌적 예산 삭감이 있었다는 겁니다. 지금도 그게 회복이 안 됩니다. 문예지 발간 사업이 말썽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블랙 리스트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으면 조금 복원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 손해를 문예지 하시는 분들이 고스란히 감당한 겁니다. 그래서 지역에 계신 분이 이게 왜 줄어들어 왜 복구가 안 되는 거냐고 하시는데 원인은 거기에 있었던 거죠. 심지어 장르 혼합형 같은 경우에는 지원 제도가 아예 없어지기도 했습니다. 아주 안타까운 일이죠.

  중기적으로라도 복원을 해야겠네요?

  내년에 당장 복원을 해야죠.

  아직 우리 나라에서 서로 다른 장르의 콘텐츠를 지향하는 분들하고 얘기를 하다 보면, ‘융합의 시대’라고 말은 하지만 서로 너무 달라 융합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서로 너무나 다른 사고를 하는 것 같아요. 한 예로 제가 잠시 문화콘텐츠 공부를 하기위해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경제 경영이나 마케팅을 전공하신 교수님들과 학생들은 ‘통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모든 논문을 정확한 도표로 나타낼 수 있는 통계로 풀어내고 있는데, 문학 쪽에서는 문장을 중요시해서 얼마나 정확한 문장으로 그리고 창의적으로 논의를 이끌어내는가에 의미를 두다보니 서로 다른 논쟁을 벌이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어요. 문학, 음악, 미술, 영화 예술 장르뿐 아니라 경제, 경영, 컴퓨터 등 다양한 학문을 함께 교류할 수 있어서 참 괜찮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각자의 전공 장르나 지향하는 부분이 너무나 달라 융합하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문화예술 전체를 총괄하시는 위원장님은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르별 이기주의는 분명히 있죠. 장르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도 맞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예술가들에게 전위적인 걸 요구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예술만 해도 근본적으로 바쁜 사람들을 교육으로 내몬다거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까지도 예술가한테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정확하게 생산하는 사람, 운영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직접 소통하지 않아도 이런 시스템들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거라고 믿어요. 예술가들에게 너무 전위적인 걸 요구하는 것처럼 바보 같은 일도 없거든요.

  자기 거 하기도 바쁜데요.(웃음)

  그럼요. 좋은 걸 써야 하지 않겠습니다. 영화 자막으로 쓰든 어디에 걸든.

  저희가 잡지를 13년간 해왔는데 그동안 전혀 지원을 못 받았습니다. 문학잡지는 정부 지원이 따로 있는데, 문화잡지이다 보니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아요. 한국잡지협회에서 진행하는 우수콘텐츠 올해는 지원을 받았지만 그 지원금이 너무 작습니다. 해외 영화제나 행사 취재를 가보면 갈수록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그런데 한국 잡지를 찾을 수가 없고, 번역된 문화잡지는 아예 없는 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좋은 문화잡지를 정부에서 앞장서서 지원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위원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공간》 시대도 있었고 《객석》 시대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수많은 사기업의 투자로 만들어졌지 실제로는 이것만 가지고 생존할 수 있는 터전이 이미 없어지고 있지요.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창간한 건축 종합잡지 《공간》은 월간 《SPACE》로 이름이 바뀌었고, 공연 예술 잡지 《객석》은 주인이 바뀌면서 옛날의 영광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저희 《쿨투라》는 조금 힘이 들어도 광고에 연연하지 않고 우수한 문화콘텐츠로 잡지를 구성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광고가 들어가면 광고성 리뷰가 따라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 지양하게 되는데요. 그러다 보니 광고 없이 월간지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이런 부분에 지원이 된다면 좋은 문화잡지들이 사장되지 않고 더 생겨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잡지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업체는 살아남기 위해 광고 중심으로 영업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 측면에서 유료광고가 5페이지 미만인 우수한 콘텐츠 잡지에 지원이 있어야 우리의 좋은 문화를 제대로 세계에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번역료 같은 경우도 참 많이 비쌉니다. 이번 7월호에 저희가 봉준호 특집으로 영어랑 불어를 번역했는데 좋은 번역자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작은 매체에서 지불하기엔 번역료가 너무 높습니다. 이런 부분이 지원 된다면 해외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압축적 근대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은 정말 꼭 있어야 할 것들을 못 만들어냈다는 거지요. 차근차근 다져오면 그런 것들이 바탕이 이루어진 성숙한 사회일 텐데 우리가 겪은 게 압축적 근대니까요.

  순수예술도 많이 지원해야겠지만, 문화에 대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홍보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 외에는 문화에 대한 좋은 리뷰나 비평이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외국에 나가보면 요즘 들어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한글공부를 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은데 문화잡지에 대한 번역이 너무 없다고 아쉬워합니다.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도 나온 이야기인데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아 좋은 우리 소설들이 잘 안 된다는 거지요. 저희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어떤 뛰어난 개인한테 의존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은 것 같아요.

  오늘 위원장님께서 주신 이야기를 《쿨투라》 독자들께 잘 소개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쿨투라》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를 봉준호 감독, 진선미 장관의 급으로 대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잡지를 보니 편집이나 다루고 있는 내용이나 콘텐츠 그런 것들이 우수하고, 문화예술 부분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가 해외 취재도 많이 하기 때문에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지만 퀄리티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어쨌든 우리 박종관 위원장님, 연극계와 지 역문화 정책 전문가로서 활동하시다가 여기 문화 예술의 중심에 다시 오셔서, 저희는 지역과 중앙 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시는 것을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은 원래 비주류가 만들어가는 거지요. 박종관 위원장님 응원하겠습니다.

  요즘은 비주류라고 말하기도 어렵게 되었어요. 그게 참 아쉽죠. 제가 여기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을 하면서 비주류라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위원장님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작 하지 못해 송구스럽습니다. 찾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취임 초기, 박종관 위원장은 그동안 무너져버린 위원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가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었다. 현저하게 달라진 매체 환경에 따라 우리 문화 예술의 항상성과 가변성을 함께 고려하면서 그만의 문화예술 정책의 방향을 잉태하고 있는 듯했다. 벌써 6기를 맞는 문화예술위원회의 위상이 높아지고 박종관 위원장의 노력이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어가기를, 마음깊이 빌어마지 않는다.

 

 

* 《쿨투라》 2019년 8월호(통권 6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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