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열 명의 캐릭터가 모두 빛났던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칸 황금종려상을 넘어 한국영화 100년의 미래를 말하다
[봉준호 감독] 열 명의 캐릭터가 모두 빛났던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칸 황금종려상을 넘어 한국영화 100년의 미래를 말하다
  • 전찬일(영화평론가, 콘텐츠비평가협회장)
  • 승인 2019.08.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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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 인터뷰는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 인터뷰는 〈마더〉 때로 봉 감독은 베를린에, 나는 미국에 머물렀기에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첫 번째는 〈마더〉가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에서 최고 한국영화 수상자로 선정되어서였다. 두 번째는 〈설국열차〉가 「2014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에서 또다시 최고 한국영화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였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와 함께였다. 2019년 제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이라는, 역사적 쾌거를 이룬 이번 봉 감독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쿨투라》 7월 호 봉준호 특집에 실었더라면 더 좋았겠으나, 사정이 허락지 않았다. 서면이 한 차례 포함되어 있긴 해도, 동 세대의 한 감독과 한 평론가가 10년에 걸쳐 세 번이나 집중 인터뷰를 했다는 것은 참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일까, 그 감회가 더 남다른 것이 사실이다.

 

  전찬일(이하 전) 〈기생충〉이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개봉 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호평을 이어가고 있는데 정말 축하드립니다. 칸 이후 과도한 스케줄로 몸도 안 좋고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개인적으로는 〈기생충〉이 ‘천만 고지’를 넘을 거라고는 예상-7월 21일(일)을 기해 넘었다!-하나, 아직은 못 넘었죠. 그래도 대중적으로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고, 불편함을 넘어 더러는 불쾌하기까지 한 영화가 천만에 육박하는 것, 이거는 영화 역사에 예가 거의 없지요. 〈기생충〉에 대해서는 세계 영화사적관점에서 개인적 분석을 많이 하고 있는 편인데,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으면서 동시에 천만이라는 엄청난 대중적 흥행을 거둔 사례는, 제가 알기로는 없죠. 소감한 마디 부탁할까요?

 

  적나라함을 피하지 않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불편해진 것

  봉준호(이하 봉) 칸 영화제가 5월 하순에 끝났으니 영화제 이후 6, 7주쯤 지났고, 개봉은 4, 5주 됐네요. 프랑스에서 6월 5일 개봉했고, 많은 나라들에서 개봉하고 있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감독은 파이널 믹싱하고 프린트, 요즘은 DCP가 완성되고 나면 본업적으로는 마무리되는 거잖아요. 영화제니, 홍보니 이어지는 중노동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본업은 아니잖아요. 〈기생충〉은 3월 말에 마무리했죠. 그래서 이번엔 좀 시간 여유가 있었어요. 쫓기지도 않았고. 우리끼리는 3월 말에 잘 마무리를 했고, 그 후로 영화는 단 1㎝도, 0.1초도 바뀐 게 없거든요. 단지 그 영화를 둘러싼 소동들이 많이 생긴 거죠. 영화제 수상을 소동이라고 표현하니까 좀 이상한데, 좋은 의미의 소동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한국뿐 아니라 베트남에서도 1, 2위를 하고 있고, 대만, 홍콩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뭐 엄청난 히트가 되고 있죠. 모르겠어요.

  그런 현상들에 대해서는. 특히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뭐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거 같아요. 돌이켜서 따져볼 시간적인 거리도 필요한 거 같고. 그리고 평론가 선생님들이나 여러분들이 저보다 더 객관적으로 보실 거 같고요.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후회 없이 마무리했던 것 같긴 해요. 항상 허겁지겁해서 시간에 쫓길 때도 있는 것이고 여러 가지 사정들이 항상 있을 수 있는 건데, 이번에는 되게 차분하게 모든 것들을 잘 마무리해서, 영화제건 개봉이건 다 할 수 있었던 건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던 부분인데, 모르겠어요. 박스오피스 결과에 대해서는, 지금 아직도 상영을 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것도 당황스럽죠. 이걸 어떻게 본 거지? 외관만 해도 불편한데 영화가. 그런데 불편함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어요. 어차피 불편할 수밖에 없는 영화고, 괜히 어정쩡하게 어디선가 당의정을 입히려고 해봤자 오히려 더 영화가 멍청해질 것이다. 그래서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대신 인물이나 스토리, 그러니까 주인공들에 대한 연민은 있으니까, 그거는 관객들이 알아주리라는 생각을 하고 갔죠.

  사실 그 점에서 어쩔 수 없이 ‘봉준호 감독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거 같아요. ‘추의 미학’이라는 것도 있긴 하지만, 미학적으로 말할 때 미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건데, 대중영화인 〈기생충〉은 불편함을 대놓고 말하잖아요? 불편하면 보통은 타협을 하거나 판타지라는 기제를 작동시키거나 그러잖아요? 최근 한국영화의 흐름이 그렇죠. 리얼하게 가다가도, 결말은 관객들에게 만족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영화관을 나갈 때 기분 좋게 나가게 해야 하기 때문에 통쾌한 무언가를 주려 하거든요. 그런 게 바로 판타지죠. 대표적인 영화가 〈암살〉, 〈베테랑〉 같은 것들이죠. 강의할 때 늘 역설하는데, 일선 경찰이 재벌 3세를 팬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죠. 왜냐면 그 전에 경찰들이 다 잘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영화적으로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면 천만 못 넘는다고 말하곤 하죠. 그런 게 영화적 장치라고요. 현실역사에서는, 영화 〈암살〉에서처럼 실제 암살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우리네 욕망이기 때문에 반드시 암살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때문에 관객들이 통쾌해하면서 보는 것이다, 라고요. 제가 〈기생충〉을 인정하지 않을 길이 없다고 했던 것은, 보통 대중영화는 어쩔 수 없이 일부 타협을 하기 마련인데, 타협을 하지 않으면서 본인이 원하는 바를 끝까지 밀어 붙였다는 거죠.

  음 〈기생충〉이 결과적으로 불편하다는 것은 인정하는데요. 당연히 불편함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죠. 만들어 놓으니까 결과적으로 불편한 거죠. 불편한 게 무슨 훈장도 아니고, “이 영화는 불편해!” 라고 자랑할 일은 아니잖아요. 대신, 우리를 둘러싼 현재 이 시대의 상황이라든가 그런 것에 솔직하다 보니까, 더 강하게 말하면 적나라함, 그 적나라함을 피하지 않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불편해진 거죠. 저도 불편함을 목적으로 삼지는 않아요. 많은 제작비를 들여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무슨 뭐 “관객을 불편하게 해야지”, “극장을 나갈 때 기분 나쁘게 해야지” 하는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지는 않겠죠, 당연히. 대신 솔직하고 싶은 거죠. 우리 영화 마지막에 우식이가, 기우라는 젊은이가 그 집을 사겠다고 하는데, 사실 굉장히 슬프잖아요? 불편하기도 하고.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어떻게 보면 잔인하지만, 그걸 마지막에 어떻게 이상한 당의정을 심어서 포장하면 오히려 그게 관객에게 실례라는 생각을 했어요. 오히려 솔직한 게, 좀 다소 불편하게 극장을 나서더라도, 그게 관객을 향한 예의가 아닌가 하고, 그렇게 생각한 거죠.

  사실 불편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봉 감독은 영화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그 과정에서 장르 세공력, 장르 세공의 측면에서 봤을 때 장르적 재미를 참 많이 집어넣었죠. 〈기생충〉은 장르의 종합세트잖아요? 일찍이 봉 감독이 장르 세공력이 뛰어난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였나, 싶었어요. 작심하고 “나 봉준호야!” 하며 보여주려고 하진 않았더라도, 인터뷰할 때마다 남들이 하는 것은 하고 싶지는 않다고, 늘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고 그래왔죠. 그래서 다른 영화들을 압도하는 장르 혼성성과 장르 세공력을 봉 감독이 의식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구나, 를 느낄 수 밖에 없었죠. 만약 영화의 결말이 그렇게까지 불편하지 않으면, 그렇게까지 공들이지 않아도 됐을 거예요. 그런 영화적 불편함이 장르적 재미 등으로 상쇄가 되면서 관객들이 많이 본 게 아닐까, 싶어요.

  홀리는 거겠네요, 일종의….

  저는 그런 걸 봉준호식 맥거핀 장치라고 보는 데, 관객들이 영화를 보다보면 결말부에 많이들 죽어나가면서, 영화가 무겁고 암담해지죠. 가령 〈설국열차〉에서처럼 곰과 아이들, 그런 것도 없죠. 기우가 잠깐 꿈꾸는 것을 빼곤….

  오히려 더 슬퍼질 수도 있죠. 그런 꿈을 꾼다는 게….

  봉 감독의 향후 행보

  역설적으로 더 그럴 수 있겠죠. 봉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기생충〉이 큰 의미의 일단락일 텐데, 봉 감독의 향후 행보를 기대해봅니다. 이 감독이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보통은 칸 황금종려상 받으면 하강곡선을 타곤 하죠. 그건 역사가 입증하죠.(웃음)

  무서워요.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웃음)

  세계 영화역사가 입증한 거에요.

  아직 49세에요, 49세. 미국 나이로 49센데….

  저는 벌써, 봉 감독의 칸 두 번째 황금종려상수상을 개인적으로 기대합니다. 한국 나이로 치면 저와 같은 50대이긴 해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몇 십 년의 세월이 남아있으니까요. 저는 그걸 생명력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요즘 프로모션 다닐 때나, 해외 영화제 때 질문을 많이 받는데, “황금종려상 이전 이후가 뭐가 달라졌느냐, 이후에 이 상으로 인해서 당신의 계획이 바뀐 게 있느냐” 등이죠. 영화를 준비하는 패턴이 숙성기간을 길게 하는 편이죠. 〈마더〉를 준비한 게 2004년, 〈괴물〉 나오기 전에 이미 김혜자 선생님과 〈마더〉 관련 의논을 했단 말이죠. 〈설국열차〉를 촬영하기 전에 이미 〈옥자〉를 준비하고 있었고요. 〈기생충〉은 〈설국열차〉 후반 작업 때 이미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2013년 구상을 하고, 2014년과 15년 〈옥자〉 프리프로덕션 전에 이미, 스토리라인을 20페이지쯤 써서 다른 제작사랑 이야기했거든요.

  그래서 영화 준비 기간들이 다, 디졸브처럼 오버랩 되어 있어요. 그래서 〈기생충〉 개봉 전에, 〈기생충〉 이후의 둘 또는 세 가지 프로젝트가 이미 또 겹쳐져 있어요. 변함없이 지금도 그런 식으로 작업하고 있거든요. 칸에서 이런 상을 받았으니, 이제는 나 자신을 다르게 포지셔닝해야 해, 같은 그런 개념이 없어요. 지난 20년간 해온 저의 패턴이 있어서 그게 꾸준히 반복되고 있고, 지금 준비하고 있는 공식적으로는 두 가지, 비공식 혹은 개인적인 채널까지 포함하면 한 세 가지 정도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것은 전부 〈옥자〉 개봉 전부터 준비하던 것들이니까, 저는 최대한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죠.

  봉 감독이 그 평상심을 유지하려는 것을 나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일반적인 하강곡선을 타지는 않겠구나, 잘 해나가겠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영화역사를 특히 중시하는 영화 평론가인데,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이잖아요? 그래서 한국영화 역사를 둘러보고, 세계 영화 역사를 같이 짚어보면 정말 생명력들이 너무 짧지 않나, 싶어요.

  거시적으로 둘러보시니까, 그게 다 보이실 거 같아요.

  생명력이 중요한데, 수십 년간 지속되는 감독들이 거의 없어요. 대개들 잠깐 반짝하고 말죠. 그런 거는 다른 나라도 큰 차이는 없긴 하죠. 그래서 켄 로치가 위대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위대한 거죠. 그 분들은 수십 년에 걸쳐 생명력을 유지 해오고 있죠.

  〈더 뮬〉, 아 〈라스트 미션〉 보셨어요? 영화 대단하던데요?

  〈라스트 미션〉 봤어요 나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기를 조롱하고, 자기를 승화시키는 독보적인 감독이죠. 그러니 극보수인데도 불구하고 존경하게 되는 거죠.

  좌파 평론가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죠. 좌파 우파의 문제를 넘어서 있죠.

  그 감독을 부러워한다는 게 아니라, 그런 생명력과 꾸준함, 어떤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우쭐하지 않는 그런 태도를 높이 평가하는 거죠. 사실 개인적으로는 연기자들에게 그런 것을 바라죠, 거의 다 흔들리고 변하니까요. 송강호는 상대적으로 덜 흔들리는 배우이긴 한데, 평가마다 다르겠으나, 사실 〈마약왕〉으로 좀 흔들렸었죠. 한데 〈마약왕〉에서 흔들렸던 게 결과적으로 〈기생충〉에 약이 됐지 않았나, 싶어요. 송강호가 워낙 연기를 잘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전면에 부각이 되면 다른 배우들을 가렸을 텐데 그렇지 않아, 〈기생충〉에선 열 명의 배우들이 다 살아 있죠.

  〈마약왕〉을 의식하셨는지, 그러한 맥락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시나리오 받고 촬영 마칠 때까지 너무 즐거워하셨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좋은 후배들과 같이 앙상블을 이루는 걸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었죠. 〈택시 운전사〉도 그랬지만, 본의 아니게 본인이 많은 짐을 져야 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한데 〈기생충〉에서는 많은 인물들이 고른 비중으로 나오고, 〈기생충〉 촬영 중에도 후배들을 엄청 많이 챙겨주셨어요. 특히 처로 나온 장혜진 씨나, 지하세계에서 나오는 박명훈 씨 등 대중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그런 배우들을 더 많이 잘 챙겨 주시고, 앙상블을 이루면서 팀워크로 가니까 너무 좋다고 즐거워하시더라고요. 〈라스트 미션〉은 되게 쇼킹하게 봤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연세가 어떻게 되죠?

  구십대에 접어들었죠, 한국 나이로….

  이제 마노엘 데 올리베이라-포르투갈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1908~2015). 주로 문학과 연극 원작을 영화화하였으며 스타일적으로 롱 테이크와 움직임 없는 정지 숏으로, 주제적으로는 철학적 테마를 극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작으로는 <신곡>(1991), <아브라함 계곡>(1993), <편지>(1995) 등이 있다-의 경지로 가고 계시는 건데, 나이도 나이지만, 〈그랜토리노〉(2008)로 배우를 은퇴하신다고 했잖아요? 웬일로 그걸 번복하시고 다시 돌아오신 거지,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자신의 육체의 늙음, 그 늙음 자체가 캐릭터고 줄거리고 주제의 핵심에 가닿아 있는 건데, 분장조차 필요 없는 구십 세의 늙은 상태를 스스로 보여주면서, 왜 본인이 직접 연기도 할 수밖에 없었나, 가 이해되면서 “와, 이분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론가건 감독이건, 우리가 닮고 싶은 어떤 모델이 있기 마련인데, 일전에 베를린영화제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을 보는데,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존경의 감정이 일어 벅찼던 기억이 나요. 그 분에게는 이데올로기를 넘게 하는, 그런 힘이 있죠. 이념과 관계없이 존경이 일었죠. 그 분처럼 존경받는 감독이 한국에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봉 감독과 그 분과는 40년 가까운 터울이 있긴 해도, 봉 감독이 그런 감독이 되길 바라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네요.

  제가 인간으로서나 예술가로서나 그럴만한 역량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회의적이긴 해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죠. 노력을 해야겠죠. 저는 재작년에 〈옥자〉를 뉴욕에서 프리미어 상영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마틴 스코세지 감독님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같이 커피 한 잔 하면서 영화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굉장히 떨리더라고요. 사실 뭐 타란티노 형님하고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술 마시고 수다 떨며 논적도 있고, 기예르모 델 토로와도 친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도 일본에 가 대담도 한 적 있고 그런데, 이상하게 스코세지 감독님은 그런 경우들과는 무언가 느낌이, 레벨이 다르더라고요. 되게 우연히 뵙게 된 거였지만, 설레면서 약간 떨렸어요.

  한 시간 정도 커피 마시며 이야기를 했는데, 처음에는 조용히 이야기를 하시다가, 그때 그 분이 〈아이리시맨〉 후반 작업을 하고 계신 때였는데, 처음에는 차근차근 얘기하시다가 이야기 중 후반쯤에 본인이 준비 중인 작품을 이야기하다 보니까, 천상 감독은 숨길 수가 없나 봐요. 점점 흥분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더니 일어나서 막 설명을 하시는 거예요. “이런 카메라 워크를 할 거고.” 일어 나서 계속 테이블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설명을 하시는 거에요. 그때 “나도 일어나야 되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웃음)

  〈아이리시맨〉은 로버트 드 니로랑 알 파치노가 나오는, 넷플릭스 영화예요. 당시 감독님을 처음 딱 뵈었을 때 되게 놀랐던 것은, 외람된 말이나 너무 늙으셨기 때문이었어요. 연세가 70대 후반인가? 그 분이 워낙 DVD 서플에 많이 나오잖아요. 워낙 영화광이라 남의 영화 DVD에도 많이 나오고, 수다를 떠시잖아요. 실제 뵈었는데 나이가 너무 많이 드신 거예요. 약간 놀라면서 가슴이 짠하기도 하고, 〈택시 드라이버〉(1976) 때 사진도 막 생각이 나는데, 그때 출연도 하셨잖아요.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1990)에 고호 역으로 나와, 약간 어색한 연기도 하시고 그랬는데, 연세가 많이 드셔서 되게 놀랐어요. 한데 그때 감독님의 열정이 막 느껴져서, “이거구나” 했어요. 일어나서 입에서 침이 튈 정도로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시는데, 눈에서 막 광채가 나는 거예요. 호기심에 찬 고등학생의 반짝거리는 수정체 눈의 느낌이 보여서 되게 다시 한 번 존경스럽더라고요. 80세가 다 되어가는 나이에 저럴 수 있구나, 하는 동경이 들었어요. 그 분이 그렇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 환경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게 부럽기도 했고요.

  한국은 나이 50만 넘으면, 웬만한 감독들은 은퇴를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조성되어 있죠. 아주 극소수, 투자 가치가 있는 감독만 살아남죠. 심지어는 흥행작을 만든 감독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생명력에 계속 집착하고 있죠. 꾸준히 오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힘. 그래서인지, 임권택 감독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영화를 만든다고 할지라도, 그 분이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가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간에, 그 분이 현역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아름답다는 거죠.

  나도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봉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이나 김지운 감독이나 그런 감독들이 꾸준히 60대 70대가 되더라도, 죽을 때까지 현역 감독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해요. 데 올리베이라나 이스트우드 감독처럼. 켄 로치 감독도 은퇴한다고 하면서도, 계속 영화를 만들고 있잖아요. 한국에도 임권택 감독님 같은 감독들이 좀 더 많으면 좋겠어요. 늘 그런 게 아쉬워요. 봉 감독이나, 박찬욱, 김지운 등 나와 같은 연배의 감독들은 더불어 동세대를 보낸 사 람들이니까 더 각별하고 오래 가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어요. 참, 며칠 전에 〈아사코〉(2018)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기생충〉에 대해 쓴 글을 읽었는 데 인상적이더군요.

  〈아사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뇌수를 강타당한 듯 충격”

  그 감독과 잠깐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어요. 한데 그 감독 영화를 제대로 본 게 없네요….

  그 감독이 〈기생충〉을 보고 난 후 이런 평을 했어요. 세계 영화사를 잘 아는 것 같더군요. “뇌수를 강타당한 듯 충격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영화사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다”라고요. 현역 감독이 이렇게 말하는 건 사실 흔치 않은 경우거든요. “동시대 영화를 보고 그런 감각에 휩싸이리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기에 상영이 끝난 뒤 스스로의 체험을 믿을 수 없어 현기증마저 느꼈다”라고 덧붙였어요. 제 느낌과 비슷한 거 죠. 좀 더 인용해볼까요.

  “보고 나서도 내내 이 영화를 거듭거듭 생각한다. 모든 점에서 내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나의 영화 만들기를 근본부터 재검토하도록 강력히 떠밀고 있다. 아마도 물 때문이리라.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지극히 단순한 성질을 띠는 이 물질이 영화 속에서 꼼꼼히 배치된 상하관계를 사회적 메타포와는 차원이 다른 ‘사건’의 직접적인 비전으로 뒤바꿔버렸다. 또한 나는 물에 떠내려간 그 끝에서 마주했다. 노골적인 폭력을. 거기에서 폭력은 특정한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물과 마찬가지로 사람들 사이를 두루 훑으며 스며드는 무언가였다. 이 부분은 내게 직접적으로 두 영화를 상기시켰다.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그리고 로베르 브레송의 〈돈〉(1983). 이 영화를 만들어낸 한국 영화계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한편에는 홍상수를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봉준호를 품은 현재의 한국 영화는 진정한 황금시대를 맞이한 듯하다.”

  근자에 발행되고 있는 격월간 영화 전문지 《FILO》 7~8월 호에 실린 거라는데, 어느 인터뷰에서도 봉 감독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나 〈돈〉을 언급한 걸 본 적이 없는데, 류스케 감독은 〈기생충〉을 보면서 세계 영화사 에 우뚝 서 있는 두 거장을 떠올린 거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제가 예전에 《키노》 인터뷰할 때 개인적인 탑 10으로 뽑았던 적이 있습 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는데 최근에 블루레이가 나왔죠. 사서 다시 봤는데, 역시 좋더라고요. 〈돈〉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습니다. 평론가를 하다가 감독이 된 건가요? 느낌이 그렇네요.

  평론가 출신 여부는 모르겠으나, 그 정도의 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영화 만들기만으로는 안 되는 거고 영화 공부를 했을 거예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도 그렇지만, 브레송의 〈돈〉까지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감독의 수준이 남다르다는 의미죠. 봉 감독 영화 스타일은, 벨라 타르(<토리노의 말, 2011>)처럼 영화 미학적 스타일 때문에 플롯이나 캐릭터를 희생·억압시키는 감독들과는 다르잖아요. 전 일찍이 플롯과 캐릭터를 중시하고 사회적 시선이 강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버드 맨, 2014>,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2015>)이 심사위원장을 맡아서 〈기생충〉의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을 했었고 그런 결과가 나왔죠.

  이냐리투 감독이 자기 스타일이 없는 게 아니라 플롯이 강한 감독이잖아요. 봉준호 감독도 자신의 영화 스타일 때문에 플롯을 죽이거나 하지 않고, 플롯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살리면서도, 봉준호의 자기 색깔을 잃지 않는, 그런 점에서 특별한 감독이고, 그런 의미에서 또 ‘중간영화middlebrow cinema’의 대표적 감독이죠. 중간영화는 소위 순수문학의 작품성과 대중문학의 재미를 동시에 갖춘, 신개념의 문학 장르인 ‘중간문학’에서 제가 차용해 20년 가까이 사용해온 용어고요.

  전 장르 감독이죠. 장르인데 이상해서 그렇죠. 저는 장르의 흥분을 항상 원하니까요.

  장르의 흥분을 원하는 감독들이, 보통은 메시지, 본인이 왜 영화를 만들었는가를 잊고 그냥 장르의 흥분 자체로 가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거든요. 반면 봉 감독은 그러질 않죠. 자기가 영화를 왜 만들었는가, 영화를 통해서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잊지 않죠. 〈기생충〉은 두 가족이 아니라 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질서 체제, 월드 시스템을 비판하는 데로 나아가는데, 그게 먹힌 거고, 그래서 한국적 맥락을 넘어 외국에서 더 영화가 환영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가족은 모두에게 공통된 이슈이고, 경제적 불평등 문제라든지 빈익빈 부익부 문제 등은 쉬운 해결책이 나올 수 없죠. 거기에서 느끼는 공감이 큰 것 같아요.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아니까, 녹록치 않다는 걸 아니까….

  그러니까 당의정을 입혀서, 영화의 마무리를 달콤하게 했으면 그게 오히려 더 불쾌했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 현재 영화도 물론 불편하다고 하지만 만약에 그 불편함을 피해보겠답시고 거기에 뭔가 달콤하게 처리했더라면, 그게 더 불쾌하고 열받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어요. 차라리 솔직한 게 낫지, 현재 상황에 대해서….

  <기생충>은 두 가족 아닌 세 가족 이야기

  사실 영화 속으로 좀 더 들어가면 보도 자료도 그렇고, 많은 이들이 두 가족 이야기라고 쓰고 있는데, 처음에야 봉 감독이 각별히 요청한 스포일러 때문에 그렇다손 쳐도, 지금도 여전히 두 가족으로 푸는 건 이해하기 힘드네요. 저는 반지하와 지상의 두 가족을 지하의 세 번째 가족을 위한 일종의 맥거핀 장치로 해석하고 있거든요.

  실은 세 가족이죠.

  당연하죠. 평론가들마저도 두 가족으로 쓰는 걸 보면,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읽는가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세 번째 가족을 은폐시킨 거잖아요?

  네, 세 번째 가족을 드러내면 안 되니까요.

  저는 어딘가에 〈기생충〉에 대해 이렇게 썼어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흔히 거론돼왔듯 두 가족이 아니라 세 가족 이야기다…영화는 평범치 않은 세 가족 사이를 오가며, 감독이 역설했듯 희비극적으로, 더 이상 그럴 수 없으리만치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고.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대중들의 반응이 좋았던 걸 테고요. 만약에 드라마, 사연들이 약했다면,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 그렇게 많이 가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영화가 적잖이 불편하고, 어느 대목에서는 불쾌하기까지 하죠.

  세상은 보통 이분법적으로 나뉘곤 하나, 봉 감독은 세 개의 층으로 나눴어요. 지상, 반지하 즉 중간, 지하로. 그렇게 〈기생충〉은, 인물들을 통해 세상을 외연과 내포, 미스터리 세 부분으로 나눠 접근한 이창동 감독의 〈버닝〉과 연결이 되죠. 저는 〈버닝〉과 〈기생충〉을 이란성 쌍둥이로 보고 있어요. 세상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게 아니고, 사실은 삼층 구조, 나아가 다층구조로 이루어진다는 거죠. 보통은 지하와 지상인데 중간층을 설정해, 반지하에 있는 사람들이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바둥거리는데 그 수단과 방법이 옳지 않죠. 저는 그래서, ‘봉준호식 윤리’라고 진단하고 있죠. 아무리 힘들고 절망적이어도 그 수단과 방법이 옳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봉준호식 윤리를 제시한다고 해석하는 거죠.

  슬프지만 대가를 치르죠, 기택네 가족은. 막내 기정을 잃게 되고, 기택은 스스로를 어떻게 보면 셀프감금 하듯이, 햇빛이 없는 지하로 유배시키잖아요. 기택의 관점에서만 영화를 거칠게 요약하면, 계단을 올라가려 했던 자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끝나는 이야기죠. 어떻게 보면 슬픈 이야기인데, 그게 또 어떻게 보면 영화의 최소한의 윤리죠. 그런 전개 내지는 플롯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세 번째 가족 덕분이죠. 시나리오를 준비할 때 처음에는 세 번째 가족이 없었어요. 2015년에 바른손 제작사에 15쪽짜리 트리트먼트 비슷한 걸 주고, 〈기생충〉이라 는 영화를 하자고 했죠. 그때는 제목이 ‘데칼코마니’ 였어요. 데칼코마니라는 게 좌우대칭, 그야말로 두 가족이라는 말이잖아요. 제3의 것은 없는 거잖아요. 〈기생충〉으로 바뀌게 되는 건 훨씬 뒤죠. 제가 그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데요, 왜냐하면 그날 너무 기뻐서였죠.

  제 아이패드에 시나리오와 관련된 수십 쪽짜리 공책 같은 게 있어요. 2017년 8월 어느 날, 영화의 구조와 모든 게 다 떠올랐어요. 그때 기뻐서 메모를 해놨어요. 그게 세 번째 가족이 등장 하게 된 날이에요. 지하와 문광, 근세. 그 전에는 두 가족만 있었어요. 2017년 여름까지요. 제가 집중적으로 혼자 시나리오를 쓴 게 2017년 9월부터 11월인데, 그 직전인 8월에 그 구조가 만들어진 거죠. 시나리오를 쓰다보면, 작은 알감자 같은 게 넝쿨처 럼 쫙 올라올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그 날이에요. 2017년 8월 초의 어느 날. 그날의 기록들이 노트에 있는데, 그 세 번째 가족이 마케팅에서는 불가피하게 감춰졌지만, 그 지하의 커플이 없다면 영화는 훨씬 더 평범해졌겠죠. 평범하고 차별성 없고, 새로움이 없었을 거예요.

  계단을 올라가려 했던 남자가 계단을 더 내려갈 일이 없겠죠. 그리고 주인공 가족들이 반지하였다는 의미… 반지하는 뒤집어 말하면 반지상인 거잖아요. 길을 지나가며 반대 시점에서 반지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지하에 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인 거잖아요. 잔인한 앵글에 의해. 지하와 지상에 반씩 걸쳐 있는 인물들이 그 계단을 올라가서 지상의 2층집으로 침투해 들어갔는데, 결국은 오히려 더 자기보다 아래에, 지하에 있던 가족과 맞닥뜨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인 거죠. 주제뿐 아니라 플롯의 기술적인 면에서도 이 세 번째 가족이 아니었다면 시나리오를 풀어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들이 떠올랐던 게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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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과 <버닝> 그 닮은꼴

  윤리라는 용어 자체가 어릴 때 강제적, 강압적으로 그리고 주입식으로 배웠기 때문에 굉장히 거북스럽고 또 반감도 있긴 해도, 인간의 윤리 문제는 우리가 평생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봐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늘 윤리적이기 위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고 할까요. 영화를 통해 윤리 문제를 던지는 대표적 한국 감독이 이창동 감독이에요. 특히 〈시〉가 그렇죠. 제가 이창동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윤리, 염치 그런 거 없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 염치를 지키기 위해서, 윤리를 지키기 위해서 사는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개인에 집중하고, 사회적으로 확장시키는 데에는 소홀하고 관심이 적은 듯해도요.

  〈버닝〉과 〈기생충〉이 이란성쌍둥이라는 이유는, 〈버닝〉이 세 청춘에 집중하다 보니 사회적으로 안 읽히긴 하나, 〈기생충〉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회적 층위가 〈버닝〉에도 언더커버처럼 깔려 있기 때문이죠. 〈버닝〉을 다섯 번 봤는데, 〈기생충〉을 보면서 〈기생충〉이 〈버닝〉에 결여된 사회적 함의를 보완해줘 더 좋았어요.

  〈버닝〉에 대해서는 특히 북미 쪽에서 엄청나게 열광했던 것 같아요. 저는 〈버닝〉이 칸 영화제 이후 개봉했을 때, 이미 〈기생충〉 촬영이 시작된 뒤라 늦게야 봤어요. 되게 강렬한 느낌을 받았고요. 스티븐 연의 캐릭터가 뿜어내는 기이한 마력이 있어요. 위험한 매력 같은 거죠. 단순히 악당이라고 할 수는 없는, 되게 기묘한 공기를 품고 있는 캐릭터라서 스티븐 연의 그 캐릭터는 배우 입장에서나 연출자 입장에서나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데, 되게 묘하고 좋더라고요. 홍경표 감독의 촬영도 되게 인상적이었고요.

 

  <플란다스의 개>에서 <기생충>까지 이어지는 노숙자 모티브

  분위기를 바꿔 큰 맥락의 질문을 하나 할까요? 〈플란다스의 개〉부터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봉 감독 영화에는 노숙자가 반복적으로 나와요. 가령 〈괴물〉에서는 괴물을 죽이는데 윤제문이 분한 노숙자의 역할이 결정적이죠.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데,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 아니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지요?

  〈괴물〉은 어렸을 때 즐겁게 봤던, 그다지 고급스럽지는 않은 70년대 할리우드 영화 〈카프리콘 원〉-우리 말 제목은 〈카프리콘 프로젝트〉(1978, 피터 하이암스)다-과 관련 있어요. 미국 나사 달 착륙은 뻥이다, 다 스튜디오에서 연출된 장면이라는 유명한 음모론에 바탕한 오락영화인데, 그 비밀을 밝혀내는 주인공 얘기예요. 그 영화 클라이맥스에 주인공이 쫓기고 죽을 뻔하다가, 텔리 사발라스라는 개성파 배우가, 그 유명한 대머리 배우가, 초중반에는 전혀 나오지 않던 인물인데 갑자기 나타나서 주인공을 비행기에 태우고 가며 위기를 돌파하 죠. 어린 나이에 그걸 보면서 되게 통쾌했던 기억이 있어요. 오히려 초중반에 없던 인물이 갑자기 나타 나서 그렇게 하니까 더 신났던 거 같아요. 그런 원초적인 옛 할리우드식 그런 처리에 대한 쾌감이 있었는데, 그런 거를 한번 해본 거죠.

  〈플란다스의 개〉와 〈기생충〉은 묶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인물의 역할도 굉장히 비슷한 면이 있고요. 소위 정상이라고 부르는 세계에서, 인정하기 싫어하고 않으려고 하는 존재들이죠. 가족이건 아파트 단지건 간에. 한데 그들은 엄연히 존재하죠. 〈플란다스의 개〉 때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기에 실제로 그런 뉴스가 많았어요. 노숙자들이 겨울철에 힘드니, 공사하다가 중단된 아파트 단지가 텅 비어있고 경비도 없다고 하니까 거기에 들어가서 기거한다는 뉴스들이요.

  〈기생충〉의 경우, 그 집에 일했던 문광(이정은 분)이라는 가정부의 남편 근세(박명훈)가 어떻게 그 집에 들어온 건지에 대한 배경 설명이 대사로 나오잖아요. 배경의 세팅보다도 더 중요한 건, 엄연히 우리 옆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유령 취급당한다는 사실이죠. 심지어 조 여정이 분한 연교의 대사를 들어보면 언니 귀신 믿어요?, 같은 이런 말을 짜파구리 먹으면서 하죠. 그 이후에 근데, 뭐 귀신 나오는 집이 사업 잘되고 돈 잘 번다고 그러더라고, 라는 무당이나 할 법한 이야기를 하면서, 빚에 쫓겨서 지하에 숨어있는 사람을 유령 취급하는 것으로 모자라 일종의 자신들의 부적 정도로 생각하는 거죠. 조여정이 짜파구리 마지막 한 젓가락을 먹으면서 “실제로 우리사업이 잘 되긴 해”, 라고 말할 때 근세가 유령의 경지를 넘어서 살아있는 인간 부적이 되는 거죠. 웃기면서도 슬픈 거죠.

  〈플란다스의 개〉에서 김뢰하 캐릭터도 마찬가지죠. 엄연히 존재하고 살아있는 인간인데 유령 취급을 당하는 거죠. 유령이나 괴물로 취급하고 심지어 〈기생충〉 끝 부분 뉴스를 보면 그 사람이 그 집 지하에서 나왔다는 상상조차 못하기 때문에, 매스미디어는 그를 가리켜 노숙자라고 하잖아요. 신원을 알 수 없는 노숙자가 부잣집에서 묻지마 칼부림을 벌인 것이라고 말하죠. 끝까지 근세는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거예요. 그 집에서도, 부인에게서도, 그 집 막내아들에게서도. 그 집 막내아들이 본 유령 취급을 받다가, 그 사람은 노숙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마지막에는 뜬금없이 매스 미디어에 의해 노숙자로 네이밍되는 거죠. 그게 참 슬픈 운명인 거죠. 그래서 〈기생충〉에서는 근세 그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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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이 서민의 삶에 시선을 던지는 이유?

  편의상 노숙이라고 칭하죠. 봉 감독은 예술가 집안에서 성장하면서, 그 과정에서 생존에 고통을 느끼거나 그런 것 없이 무난하게 살아온 걸로 아는데, 그렇죠? 그럴 경우 시야가 자신이 살아온 환경을 벗어나기 어려운데, 본인이 살지 않고 경험하지 못한, 소위 서민보다 훨씬 밑에 있는, 제 표현으로 ‘프로박테리아’ 같은 삶, 그런 사람들의 삶에 시선을 던진다는 게 흔치는 않죠. 한데 어떻게 그런 시선을 취하게 된 것인지 궁금하네요. 봉준호의 인간에 대한 배려, 고려로 나름 해석은 하고 있는데, 어떤가요?

  네, 저는 중산층 가정에서 무난하게 자랐죠. 그래도 실제 경험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든 표현해 내야만 하는 것이 모든 창작자들의 공통된 십자가죠. 그렇지 않으면 사실 소설가들은 평생 고뇌하는 소설가들을 주인공으로만 써야 하고, 저 같은 경우는 정신없는 영화감독의 스토리만 써야 한다는 것인데, 그럴 수는 없잖아요. 기본적으로 자기가 체험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든 쓰고 극화하는 것, 제가 살인을 해보지 않고 <살인의 추억>을 찍었듯이, 그게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자 짐, 또 나쁘게 말하면 권리일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면 〈기생충〉의 경우 박 사장 집, 2층에 사우나가 있는 그런 부자들의 세계는 저도 경험해보지 못했거든요. 대학교 적 과외할 때 그런 집에 가본 적은 있어요. 중학생 과외를 하러 갔는데, 그때 아이가 자기 집 2층에 사우나가 있다고 데려가서 보여주더라고요. 단독주택은 아니고 되게 좋은 빌라였는데, 그 당시 저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어요. 집안에 사우나가 있다니! 영화에서 보면 영화 중반에 연교와 기택이 사우나에서 이상한 대화를 하잖아요. 손 씻으셨어요? 사우나 장면을 꼭 넣고 싶었어요. 대학교 다닐 때 과외하러 갔다가 본 그 집의 사우나가 제게는 되게 쇼킹 했었거든요.

  그때 과외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을 때였는지요?

  금지됐다가 풀리고 났을 때예요. 저는 88학번이니까요. 서민적인 가정에서 과외를 한 적도 있고 극중 기우처럼 엄청난 부잣집에 가서 한 적도 있어요. 물론 남자 중학생이었어요. 아르바이트 학생과 제가 사귀거나 하지는 않았어요.(웃음) 남자 중학생 아이가 저를 데리고 가더니 2층에 있는 사우나를 보여주더라고요. 애가 아직 천진난만해서인지 거리낌 없이 보여주는 거예요. 처음에 저는 그 빌라가 복층인 줄도 몰랐어요. 빌라인데 1층, 2층이 있다는 것에 1차 충격을 받고, 2층에 올라가니 사우나가 있는 거에 2차 충격을 받았어요.

  이번에 처음으로 부자 가족을 묘사해본 거예요. 한강에서 매점하는 식구들, 약재상의 과부, 남루한 형사 이런 것들만 다뤘는데, 그래서 그것이 제게는 가장 큰 도전이 었어요. 과연 내가 부자를 묘사할 수 있을 것인가? 박 사장이 젊은 신흥 부자잖아요, IT기업의 엄청나게 돈이 많은? 부자지만 뭐랄까 매너도 있고 세련된 취향을 과시하려고 하는 그런 인물들이죠, 박 사장 부부는. 그러니까 집도 남궁현자 같은 유명 건축가의 집을 샀겠죠. 무식하게 황금 샹들리에를 달아 놓은 가정이 아니잖아요. 되게 모던한 집이에요. 오히려 그것이 이번에는 더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홍경표 촬영감독도 “우리 부자는 처음 찍어본다”, 면서 배우 이선균 씨나 조여정 씨한테 의지해 잘 묘사 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부자에 대한 가치판단을 오히려 하지 않으려고 더 노력한, 보통 이런 유의 영화를 보면 선과 악까진 아니지만, 부자들을 천박하게 그린다든지 싸구려, ‘갑질’하는 것을 보여주곤 하는데, 그런 거 없이 그들도 인간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다소는 있었던 거겠죠?

  후반으로 가면 레이어layer가 벗겨지면서, 박 사장이 지하철 냄새를 이야기할 때 관객들은 약간씩 박 사장과 멀어지기 시작하고, 그런 감정을 느꼈을 거예요. 매너 있고 세련된 사람이고, 또 애들한테 하는 걸 보면 잘 하잖아요. 지 자식들이니 그렇겠지만. 인간적인 면모들을 보이지만, 한 꺼풀 한 꺼풀 얇게 겉껍질을 벗겨나가다 보면, 가까이 하기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조금씩 느끼게 되는데, 그 때는 이미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해 있는 거죠.

 

  기택이 박 사장을 그렇게까지 죽여야 했나?

  관객들의 제일 큰 불만은 기택이 박 사장을 그렇게까지 죽여야 했느냐 하는 것일 텐데요. 왜 죽음 까지 가야하느냐, 하는 불만이 많이 나오더군요. 저는 그래서 그렇지 않으면 너무 억울한 거 아닐까, 라고 반문하곤 하죠. 영화를 보면 반지하도 지하도 사람들이 죽잖아요? 그러니 지상에서도 한 명은 죽어야지 않을까요? 위선의 대가로 죽든, 냄새로 반복적으로 모멸감을 줘, 기택이 참다 참다 못해 죽인 것이든 간에요. 사실 저는 기정이 죽었다는 사실이 결정적이라고 보죠. 개인적으로는 그런 처리가 봉 감독의 공평함fairness이라고 봐요. 봉 감독의 윤리랄까요. 왜냐면 가뜩이나 안타까운 밑바닥 인생인데, 부자들은 다 살아남고 밑바닥 사람들만 죽는다면, 그건 너무 억울하니 명분을 내세워 죽여야 한다는 게 제 입장이죠.

  따져보니까 1번 가족은 기정이가 죽고, 2번 가족은 박 사장이 죽고, 3번 가족은 다 죽었네요. 그런 식으로 배분을 한 건 아니지만요 물론. 공식적으로 봤을 때 박 사장 캐릭터가 죽을 죄를 지은 건 없죠. 지하철 냄새 이야기를 했지만, 그걸 공식적인 석상에서 한 것도 아니고, 누구를 공격하기 위해 한 것도 아니니까요.

  〈베테랑〉의 유아인 캐릭터는 백 번 죽어야 마땅하나, 거기선 죽진 않고 맞기만 하죠. 반면 〈기생충〉에서는 〈베테랑〉에 비해 별 거 아닌데도 죽이는 게 과하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해석을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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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인 것, 그 행위를 한 건 기택인데, 기택조차도 스스로 후회할 정도로 우발적인 범죄였잖아요.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우리가 표면적으로 ‘우발적’이라고 치부하는 많은 범죄들이 있는데, 뉴스를 보면 그런 우발적인 범죄가 있었구나 하는데, 우리가 단순하게 우발적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그런 사건에도, 어떻게 보면 아주 미묘한 어떤 맥락이 있다는 거죠.

  물론 사회적 맥락이나 그런 것 때문에 그런 우발적 범죄의 나쁜 결과를 정당화할 수는 없죠. 그래서도 안 되고요. 박 사장이 죽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분명히 절대 타당한 일은 아니고, 죽어 마땅한 사람도 당연히 아니죠. 사실 박 사장에게 무슨 죄가 있어요? 말을 싸가지 없게 했다고 죽을 이유는 전혀 없는 거죠. 그건 명백히 기택의 우발적 범죄인데, 그 우발적 범죄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감정적으로 누적되어가는 과정을 영화는 최선을 다해서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물론 기택의 행동이 과하긴 하죠. 그런데 왜 그 과한, 우발적인 행동이 나올 수밖에 없었냐, 하는 그 미묘한 맥락은 있는 거 잖아요. 그 맥락이 있다고 해서 기택의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요. 당연히 그건 잘못된 거고, 공식적인 법리적인 세계에서는 감옥에 가야 마땅한 행위인데,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그 미묘한 맥락을 볼 수 있고, 그 미묘한 맥락이 우리에게 주는 공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영화에서 섬세하게 다뤘어요. 법리적, 법적 세계에 갔을 때는 전혀 고려조차 될 수 없는, 변호사의 의견서든 판사의 판결에서든 한두 줄로 요약되기조차 쉽지 않은 건데, 영화라는 섬세한 매체를 통해서 그 미묘한 맥락을 한 번 보여줄 수 있는 거죠. 기택 본인조차 아주 금방 후회하는 행동이잖아요. 자기가 우발적으로 저질러 놓고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가, 그 자리에서 도망쳐버리잖아요. 그래서 그 맥락을 짚어 보는 거죠. 필연적으로 죽였다, 또는 죽어 마땅하다, 같은 윤리적인 어떤 깃발을 꽂은 것은 절대 아니었고요.

  의도를 했든 안했든 그러면서 인물들을 적절하게 안배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가 대가를 치른 거죠. 세 가족이 다, 각각의 대가를 치른 거죠. 박 사장은 좀 과하게 대가를 치렀다고 볼 수는 있지만요.

 

  열 명의 캐릭터를 분배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고 그것이 배우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 때, 어쩔 수 없이 역점을 두는 지점들이 있기 마련이죠. 역점의 우선순위가 있는 거랄까요. 가령 100가지 요소가 있다면, 그 100가지를 동일하게 중시할 수는 없죠. 〈기생충〉에서 인물들을 그런 식으로 분배한 것, 그것이 굉장히 중요했고, 그런 분배가 배우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지 않았나, 싶어요. 연기 측면에서 최고 한국영화를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2005)라고 보거든요. 주변 인물들이 중심인물들 때문에 희생당하질 않기 때문이죠. 저는 그런 안배를 무척 중요시여기는 부류예요. 대부분의 영화들은 소수 주연 때문에 주변인들을 희생시켜요. 그렇지 않은 영화들이, 예를 들면 김성수 감독의 〈무사〉(2001)라든지 최동훈의 〈암살〉(2015) 같은 것들이죠. 〈기생충〉은 무려 열 명의 주, 조연을 멀티캐스팅했죠. 다들 살았는데, 특히 문광 역의 이정은 씨와 근세 역의 박명훈 씨 두 배우가 요새 가장 조명 받고 있죠.

  세 번째 가족이 중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기생충〉은 세 번째의 가족 이야기가 중심이라고 보고 있는데, 스포일러 때문에 감독이 숨긴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열 명의 배우들에게 연기 연출을 하면서, 아역까지도 살아 숨 쉬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배우들에게 최대한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의식하며 그렇게 한 것입니까, 아니면 그냥 캐릭터가 그렇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까?

  〈기생충〉은 사건이 숨가쁘게 전개되는 편이잖아요. 느긋하게 인물들 하나하나를 그리지는 않죠. 미니시리즈 16부작이라면 오늘은 이 인물을, 다음 회는 저 인물을 느긋하게 다루겠지만, 2시간 10분의 러닝타임 안에 숨 가쁜 여러 사건들이 있잖아요. 몰랐던 가족까지 하나 더 나오고, 또 뒤에 가면 에필로그까지 있잖아요. 사실 시나리오 때는 그렇게 배려할 여유는 많진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상황들, 특히 후반으로 갈수록 급변하는 전개를 매끄럽게 감당해내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어요.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아역까지 챙겼다고 말씀을 하시니까 굳이 말하자면, 시나리오에는 없었는데 제가 콘티를 그리면서 추가한 것이 있어요. 연교가 문광을 해고하는 장면이 있어요. 연교가 사우나에서 기택과, “저는 결핵 뭐 이런 거 얘기도 안할 거예요. 다른 핑계 대서 깔끔하게 해고할 거고. 그 방법이 좋더라고…” 이런 유의 대사인데, 장면이 바뀌면 도대체 무슨 핑계를 대서 해고하는지는 안 나오고 뒤에 잔디밭에 이런 자세로 앉아 있거든요 연교가. 이 자세를 제가 특별히 주문을 했어요. 어색한 침묵이 있고 햇빛이 들어오고, 당연히 이제 해고되겠구나, 하고 관객은 알죠. 시나리오에 그렇게 묘사되어 있는데 콘티에서 바꾼 게 무엇이냐면 그 장면을 다 송이, 부잣집 막내의 시점으로 바꿨어요.

  시나리오에는 두 여인들, 문광과 연교만 등장하기로 되어 있 었는데, 저의 콘티에서는 처음 씬이 바뀌면 인디언 모자를 쓴 다송이가 나와요. 다송이가 평소답지 않은 가라앉은 얼굴로 무언가를 보고 있어요. 숏이 바뀌면 이제 그 침묵의, 해고의 순간이 나오거든요. 그러고 다시 숏이 바뀌면 롱숏이고, 늦은 오후의 쓸쓸한 햇빛이 출렁거리면서 아이가 아주 작게 뒷모습이 보여요. 그 다송이라는 애가 처음으로 정적으로 나와요. 맨날 까불고 움직이고 그러는데, 상당히 정적인 그 아이의 쓸쓸한 뒷모습이 나오죠. 전체 메인 스토리하고는 상관이 없지만, 순간적으로 다송이, 그 부잣집 꼬마의 외로움을 보여주려 했어요. 실제 제가 과외했던 아이가 그랬기도 했고요.

  조여정 씨와 시나리오 이야기를 하며 설명했던건데, 이 엄마는 아들에 대한 집착은 매우 강하지만 의외로 영화 전체를 보면 연교와 다송이가 스킨십하는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일부러 그렇게 찍었어요. 조여정 씨가 연기한 그 부잣집 사모님 연교는 애를 안아주는 것보다는, 길에 나갔을 때 처녀처럼 보이고 싶고, 필라테스를 하고, 그런 스타일의 캐릭터인 거예요. 그래서 애를 안고 있거나 모유를 먹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이 되고, 스킨십이 아예 없는 거죠.

  그래서 다송이가 문광 아줌마와 막 뒤엉켜 노는 게 나오잖아요. 처음에 기우한테 월급을 주면서 얘기할 때 보면, 보이 스카우트 차림으로 다송이가 문광과 아이처럼 노는 게 나오거든요. 문광이 빙빙 돌리고 둘이 아주 강하게 얽혀서 노는데, 다송이에게는 문광이 유일한 친구인 거예요. 누나는 이미 나이 터울이 크죠. 누나가 얘랑 놀아주겠어요? 맨날 꿀밤 때리고 구박하고. 다송이의 유일한 친구가 문광인데, 문광이 해고되고 사라지는 순간인 거예요. 그래서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는데, 그 숏을 다송이 시점으로 스토리보드에 바꿨고, 그 느낌을 조여정 씨도 굉장히 좋아했어요. 콘티를 보고 “이 씬이 다송이 시점이 되니까, 훨씬 더 좋은 것 같아요”, 라고 여정 씨도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지만, 그런 것이 연출자가 계속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체 스토리에서 잠시 벗어나지만, 어쨌든 다송이를 위한 모멘트가 되는 거죠. 문광이 비오는 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러잖아요. 막내 다송이하고는 아직도 문자를 한다고요.

ⓒCJ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이 플롯 상으로 특이한 게 뭐냐면, 열 명의 캐릭터가 똑같이 중요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양적으로 비중 차이가 날 수밖에 없거늘, 양적 비중에 의해 감상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아주 특이한 경험을 했어요. 양적 비중이 작아지면 인물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 에서는 비중과 관계없이 캐릭터들이나 배우들의 존재감이 늘 살아 있어요. 박소담 씨 같은 경우는 정말 깜짝 놀랐죠. 개인적으로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배우들이 연기도 잘했지만, 연출이 좋았어요. 현실에서도 그렇잖아요? 누구 때문에 누구를 희생시키고, 누군가를 위해 나머지를 다 지워버리는데, 〈기생충〉에서는 열 명 중 누구 하나 지워지지 않았다는 게 개인적으로 좋았고, 그래서 영화를 극찬할 수밖에 없는 거죠.

  김성수 감독님 〈무사〉를 예로 드셨을 때, 공감이 되었어요. 영화도 그렇지만, 저는 그 영화의 시나리오를 봤거든요. 시나리오는 심지어 더 그래요. 마지막에 편집을 하시면서 러닝타임에 문제가 있으니까 불가피하게 줄어들었는데, 아마 그 시나리오 대로 다 해서 3시간 정도로 만들어졌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이미 모든 인물들을 배려하는 영화지만 더, 정말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처럼 더, 정우성 캐릭터나 모든 캐릭터들이 더 빛났을 거에요. 〈무사〉를 예로 드셔서 굉장히 반갑네요.

  캐릭터나 배우의 안배 면에서 〈무사〉는 기념비적인 영화죠. 그 뒤를 잇는 영화들이 장훈 감독의 〈고지전〉(2011) 등이고, 〈기생충〉이 그 정점을 찍은 거죠. 열 명의 캐릭터가 살아 숨 쉬고, 열 명의 배우가 다 살아있으니까요. 제 영화경험상 〈기생충〉 같은 영화는 없었어요. 영화에 나오는 계단 이미지나 계단 시퀀스들도 그렇죠. 사실 계단 이미지는 세상의 모든 영화들에서 중요해요.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가 높이 평가를 받는 이유가, 계단 이미지 때문이기도 한데, 〈기생충〉은 계단과 물 이미지를 굉장히 깊이 있고 길게 보여주죠.

  그래서 기우를 계단에서 한 번 세우기도 했어요. 빗속을 계속 가다가 한번 서서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잖아요. 계단을 타고 물이 막 폭포처럼 흘러 내려가는데. 그 장면을 정말 찍고 싶었어요.

  그래서 상승과 하강이라는 진단이 나오는 거죠. 사실 영화에서 단순하게 플롯 설정상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이미지로 상승과 하강을 보여주는 영화는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류스케 감독이 물이나 계단의 이미지 그런 것들에 반한 게 아닐까요. 많은 영화들이 물성을 구현하기보다는 대사로 처리하거나 그러죠. 한데 〈기생충〉은 복잡한 플롯이 진행되는 와중에 이미지로 물성을 확실하게 보여주죠. 그야말로 영화에 대한 극찬이죠.

ⓒCJ엔터테인먼트

  한국영화 100주년에 바라는 것은 한국영화가 조금 더 미래적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때가 왔는데,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이잖아요? 혹시 조명을 하거나 한번 좀 짚어주면 좋겠다 하는 게 있습니까?

  칸에서는 계속 언급을 하고 싶더라고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요. 100주년이나 된 지도 모르고, 워낙 해외에 널리 알려진 감독들이 홍상수, 박찬욱, 김기덕 감독들이다 보니, 그 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모르잖아요. 한국영화 역사가 얼마나 됐는지, 서구인들은 많이 모르니까 일부러 더 말했죠. 심사위원들도 잘 모르고, 기자회견을 해도 모르니까요. 우리가 갑자기 어느 날 나타나 상을 받는 게 아니라는 걸요. 김기영 감독님의 〈하녀〉 이야기도 했어요. 〈하녀〉 정도는 평론가, 기자들이 어렴풋이 알아요. 그래서 마틴 스코세지가 칸에서 소개한 〈하녀〉의 김기영 감독님을 제가 되게 좋아하는데, 그 영화도 계단이 나오는 영화고 〈기생충〉도 그런 맥락이 있다, 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했어요. 한국영화 역사를 모르니까요. 우리에게도 영화역사가 있고, 너희가 이제 시네마테크나 이런 곳에서 회고전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은근히 강압적으로,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했어요. 알리려고 이야기를 한 거죠. 한국 내부에서는 100주년 관련된 모든 행사들이…물론 ‘베스트 10’ 뽑고 그런 것도 좋은 거지만, 더 미래적으로 많이 하면 좋겠어요. 미래 100년이 어떻게 될 것이냐.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단편영화를 찍고 있고, 아무도 모르는 골방에서 막 시나리오 쓰고 있을 텐데, 그들을 우리가 어떻게 영화산업 안으로 맞아들일 것인가. 이후 100년을 감당할 재능들이 분명히 있는데, 현재 우리 영화산업이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지 조금 더 미래적 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면 좋겠어요. 한국 내의 관점에서는요. 외국에서는 김기영, 유현목, 김수용 등 그런 감독님들의 회고전을, 100주년을 핑계로 더 하면 좋겠고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다 되었네요. 오늘,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을 만나 봉 감독의 영화 세계에 대해 깊이 들어볼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인터뷰에 응해줘 고맙습니다.

 

 

* 《쿨투라》 2019년 8월호(통권 6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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