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음악] God Bless Paul! - 《In the Blue light》와 《Egypt Station》
[10월 음악] God Bless Paul! - 《In the Blue light》와 《Egypt Station》
  • 서영호(뮤지션, 음악평론가)
  • 승인 2018.10.01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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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의 최근 공연 모습

창작도 명백히 노동의 영역에 속하는지라 체력이 따라주어야 지속할 수 있다. 게다가 대중예술은 그 성패에 있어 동시대 감성과의 밀당이 얼마나 중요한가. 너무 앞서가도 이해받지 못하고 너무 친숙해도 관심 밖 처지가 된다. 대중음악가들에게도 이러한 대중과의 줄다리기가 늘 신경 쓰이는 과제이다. 대중음악에서의 소위 명반은 오로지 그 음악의 절대적인 미적 가치만으로 독야청청할 수 없으며 결국 동시대 대중의 공감과 지지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소개할 음악은 무려 50여 년 이상, 매우 성공적으로 이러한 음악활동을 지속해온, 인류에 몇 안되는 슈퍼-뮤지션들의 새 앨범이다.

In The Blue Light
《In the Blue light》 앨범 커버

폴 사이먼과 폴 매카트니가 공교롭게도 9월 7일 동시에 새 정규앨범을 내놓았다. 폴 사이먼의 《In the Blue light》와 폴 매카트니의 《Egypt Station》이 그것이다. 각각 ‘사이먼 앤 가펑클’과 ‘비틀스’라는 레전드 그룹 출신이며 미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인 이들은 팀의 해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해소했어야만 했을(어떻게든 부와 명성을 이어가야 했기에-가 아니라) 자신들의 창작욕을 쉼 없는 솔로활동을 통해 펼쳐왔다. 두 사람 모두 곧 80세를 바라보고 있으나 최근까지 끊임없는 창작과 공연활동을 이어왔다.    

그런데 이 두 폴의 음악은 여러모로 대비 된다. 어떤 면에서 이들은 어떠한 유형의 예술가가 더 좋은 작품을 낼 수 있을까라는 논의에 늘 등장하는 두 대립지점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두 사람 다 기본적으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으나 주로 포크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이먼의 음악은 섬세하고, 정교하고, 절제의 미덕을 중시하며, 수없이 다듬은 생각의 결과물이고, 지적이고, 다소 시니컬하다. 반면 초창기 비틀스 시절의 풋풋한 록 스피릿을 다치지 않고 여전히 품고 있는 매카트니의 음악은 떠오른 악상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은 것처럼 보이고, 어떠한 음악적 의견에도 열려있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것만 같은 오픈된 느낌이고, 꼬여있지 않고, 종종 해맑고 순수하며, 그래서 앨범 수록곡 수도 많은 편이다. 이번 앨범에도 인트로와 인터루드 트랙을 포함해 16트랙을 수록했다. 생각해보면 비틀스 시절 존 레논과의 ‘곡 내놓기 경쟁’에서도 ‘양 속의 질 전략’에 가까운 것은 매카트니 쪽이었다라고 볼 수 있다.  

사이먼은 생각이 어찌나 많은지 과거 한 앨범에 〈Think Too Much(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같은 제목의 서로 다른 두 곡을 싣기도 했다. 사실 이번 《In the Blue light》는, 추측컨대 지금까지 자신의 솔로 커리어 곡들 중에서 좀 더 주목받았어야 했을 곡들을 새롭게 편곡하여 내놓은, 일종의 셀프-리메이크 앨범이다. 최근까지도 꾸준히 새로운 곡들로 정규앨범을 발표해왔던 걸 보면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내놓은 프로젝트라고 생각되기보다는 자신의 지나간 곡들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붙잡고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거 같다. 이 앨범에서 특히 귀를 잡아끄는 것은 관현악기의 흥미로운 표현으로 새 옷을 입은 〈Can’t Run But〉과 〈Rene and Georgette Magritte with Their Dog After the War〉이다. 특히 후자는 그동안 개인적으로 폴 사이먼 베스트에 꼭 추가되어야 할 곡이라고 생각해왔던 곡이다. 재밌는 것은 어떤 곡은 딱히 원곡과의 차이를 며느리도 모를 지경이라는 점인데 다 사이먼 옹이 깊은 생각이 있으셔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귀를 쫑긋하고 들어보길 권한다. 

《Egypt Station》 앨범 커버

한편 매카트니는 그의 50여 년 음악인생 동안 줄곧 비틀스시절 자신의 스타일을 꾸준히 추구해오면서 오로지 새로운 멜로디와 가사를 만들어 내는 데에만 집중해왔다는 점이 늘 놀라웠는데 이번 앨범에서도 마찬가지다. 매카트니는 이번 앨범으로 36년만에 ‘빌보드 200’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음악들을 듣고 있으면 오직 변한 건 조금 늙어버린 그의 목소리일 뿐이다. 보통 음악가들이 오랜 기간 새로운 음반들을 발표하다 보면 새로운 음악 테크놀로지와 사운드에 심취에 이것저것 새로운 스타일 추구해보기도 하고 곡쓰기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보기도 하는데 매카트니는 질리지도 않나보다. 이번 앨범의 수작 중 하나인 〈Dominoes〉와 같은 곡은 옛 비틀스의 음반 중 하나에서 가져왔다고 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그의 에너지 넘치는 라이브 퍼포먼스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 아직 한참은 새 음악을 내놓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안타깝게 이제 두 사람에게도 인간이라는 종에 주어진 물리적 한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신이시여 부디 이 두 사람에게 마지막 한 숨을 불어넣어 주소서. 이들은 아직 할 일이 조금 더 남았습니다.

폴 사이먼의 최근 공연 모습
폴 사이먼의 최근 공연 모습

 

 

* 《쿨투라》 2018년 10월호(통권 5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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