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2019 여름, 한국영화는 디즈니 월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 월평] 2019 여름, 한국영화는 디즈니 월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 윤성은(영화평론가,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19.08.01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알라딘>, 1000만 명을 매료시킨 지니의 마법

  5월 23일 개봉한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이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지니의 마법이라 할 만큼,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다. 관객수가 400만 명을 넘어가면서부터 매체들은 작년 <보헤미안 랩소디>(2018)의 흥행 속도보다 빠르다는 점에 주목했는데, 결국 <알라딘>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아슬아슬하게 넘지 못했던(995만 명) 천만의 문턱을 넘어서고야 말았다. <기생충>,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토이 스토리 4> 등 굵직한 작품들의 공세 속에서도 꾸준히 박스오피스 1,2위를 지킨 결과라 더욱 의미가 크다. <알라딘>의 흥행요인은 우선, 영화의 단순함에 있다. 주인공들의 목표가 뚜렷하고, 그것을 방해하는 안타고니스트가 확실하다. 안타고니스트가 아무리 위협적이어도 영화는 주인공이 반드시 승리할 것임을 전제로 진행 되기에, 마음을 졸이기보다 통쾌한 결말을 기다리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익숙한 음악과 이국적인 춤, 넉살 좋은 지니.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주체적으로 변신한 쟈스민 등이 다소 매력이 떨어지는 알라딘 캐릭터를 압도하며 영화를 이끌어간다. 전체관람가 영화로서 전연령층이 부담 없이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은 한 주 늦게 개봉한 <기생충>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입소문을 탔다. <기생충>은 재미있고 잘 만든 작품이기는 하나, 뒷맛이 씁쓸하고 불편하다는 평가가 많았던 까닭이다. 하나 더. 최근 천만 관객 동원 가능성을 예측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N차 관람률이다. <알라딘>은 다양한 상영관을 돌며 여러 번 관람한 관객들이 많은 작품이었다. 싱어롱, 댄서롱 등 관객 참여형 상영관은 물론이고, 양탄자를 타고 나는 장면에서의 효과가 극대화된 4DX, 더빙판 상영관까지 인기를 끌었다. 그 중에서도 더빙판의 인기는 이례적인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전문 성우와 뮤지컬 배우가 동원된 더빙판은 그 자체로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가 받았으며, 더빙판은 어린 아이들만 본다는 편견을 넘어 성인들의 N차 관람을 유도했다. 앞으로 더빙판 제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해 볼만 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단짠단짠 <토이스토리 4>와 왕의귀환, <라이온 킹>

  <토이스토리> 시리즈가 가지는 애니메이션사적인 의미, 흥행 기록, 호평은 전무후무하다고 할 만하다. 게다가 3편에서 이미 완벽한 결말을 보여주었기에, 속편 제작은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던 작품이다. ‘앤디’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그의 장난감들은 그들을 필요로 하는 이웃집 소녀에게 기증된다. 앤디와 소녀가 우디 일행을 갖고 한바탕 놀이를 펼치는 마지막 장면에서의 먹먹함은 오히려 다음 편이 제작되지 않기를 바라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토이스토리 4>(감독 조시 쿨리)는 예상했던 ‘불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전작 들의 업적과 평가를 무너뜨리지 않을 만한 수작이다.

  우디는 장난감의 운명을 거부하는 ‘포키’를 주인의 품에 안겨주기 위해 위험한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이전 시리즈에 등장했었던 익숙한 인형들과 새롭게 등장한 인형들이 함께 모험을 해나가는 이 작품은 <토이스토리> 특유의 유머와 감동으로 가득 차 있다. 애니메이션을 넘어 다른 장르 영화들에서 익숙히 보아왔던 캐릭터와 신들을 차용함으로써 웃음을 유발시키는가 하면, 오래된 철학서적들에서도 담아내지 못했던 인생의 깊은 맛을 보여주며 눈물을 찔끔거리게도 만든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알라딘> 관객수의 1/3 정도 밖에는 동원하지 못했다. (그놈의) 음악과 춤이 없었기 때문일까. 아마도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 보는 거라는 인식, 그러나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공감할 만한 스토리라는 점이 <토이스토리 4>의 가장 큰 딜레마였을 것이다. 천만 관객이 보지는 않았지만, <알라딘>보다는 더 많은 관객들의 ‘인생영화’로 남을 것임은 분명하다.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를 진행하면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라이온 킹>(감독 존 파브로)이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내는 동물들이 얼마나 몰입감을 줄 수 있을지, 약육강식의 내러티브가 어떤 식으로 각색될 것인지에 초점에 모아졌다. 결과적으로 <라이온 킹>은 놀라운 기술력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거의 달라지지 않은 각본은 논쟁적이다.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살상과 결투가 동시대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알라딘> 만큼의 흥행을 점칠 수 없는 것은 가족 안에서의 살상이 이루어지는 만큼 영화가 어둡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도 세상에 늘 밝고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 올 한 올 살아있는 것 같은 사자들의 갈기, 스피디한 액션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 시절 그 음악들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엑시트>ⓒCJ엔터테인먼트
<나랏말싸미>ⓒ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달라도 너무 다른 접근법, <엑시트>와 <나랏말싸미>

  디즈니가 박스오피스를 점령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작년 연말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던 한국 상업영화들은 어떤 해결책을 내놓고 있는가? 올 여름 개봉작들은 최소 2년 전에 기획된 영화들이기에, 현재의 불황을 예견하지 못한 작품들일 공산이 크다. 그런 점에서 <엑시트>(감독 이상근)는 운이 좋았고,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는 염려스럽다.

  전반적인 작품성을 기준으로 하면 세종의 한글창제 과정을 찬찬히 담아낸 <나랏말싸미>가 우위를 점한다. 한글을 만든다는 것이 그 시대에 어떤 의미였는지, 그 무거움을 표현하려는 시도나 진정성이 담긴 작품으로서는 무리가 없고 매끈하다. 글을 다룬 영화인만큼 신경 쓴 대사들도 귀에 박힌다. 다만, 극장가 최고 성수기에 개봉하는 작품 치고는 오락성이 떨어진다. 이 영화에서 세종은 중용을 지키는 리더와 뛰어난 학자로서의 면모를 함께 보여준다. 눈병 때문에 우리 글 창제라는 과업을 완수하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에서 그의 성격도 두드러진다. 문제는 매력적인 인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왕 앞에서도 할 말을 다하는 까칠한 성격의 신미 스님이 오히려 흥미롭다. 그러나 그 또한 너무 뻣뻣하고 진중한 게 탈이다.

  <엑시트>는 <알라딘>만큼 단순하고, 여느 재난 영화 못지 않게 짜릿하다. 산악 동아리 출신의 취업준비생이 도시에 독가스가 분출되는 재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아찔한 부감 촬영, 음악과 편집으로 만들어내는 뛰어난 리듬감으로 관객들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온 힘을 다해 고층 건물벽을 기어오르고, 뛰어넘으며 자신들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있다. 논리와 개연성은 떨어지고 영화적 화법 또한 미숙한 면이 있으나 영화관 피서에는 적합한 작품이다. 까짓거, <알라딘> 보다 뒤처지라는 법은 없다.

  박스오피스에서 디즈니 월드를 공략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그보다 관객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작품을 개발하는 것밖에 없다. <사자>, <봉오동 전투>까지, 말 그대로 각양각색의 작품들이 여름 시즌에 개봉을 앞두고 있는 만큼, 관객과 평단의 호응을 공히 얻는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 《쿨투라》 2019년 8월호(통권 62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