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영의 필름포럼 시네나잇] 당신은 선善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가?
[이무영의 필름포럼 시네나잇] 당신은 선善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가?
  • 손희(본지 편집장)
  • 승인 2019.08.0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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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의 영화 '행복한 라짜로'

  <행복한 라짜로> 루카 치코바니 무대인사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의 <행복한 라짜로Lazzaro Felice, a.k.a. Happy as Lazzaro>를 지난 12일 오후 7시 30분 필름포럼에서 관람했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다른 예술영화들에 비해 상영관 수가 월등히 적은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잇따른 호평과 입소문 그리고 여기에 많은 셀럽들의 응원까지 가세해서 관람객 1만 명 돌파라는 쾌거를 이뤘다. <행복한 라짜로>는 작년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이자 단 세 편의 영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탈리아의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국내 영화팬들의 관심을 받아온 작품이다.

  또한 올해 칸영화제의 경쟁부문 심사위원을 맡은 1981년생 이탈리아 젊은 감독인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극찬하며 황금종려상 수상에도 기여했다는 보도가 전해지면서 그의 영화 <행복한 라짜로>가 더 관심을 받았다. ‘이무영의 필름포럼 시네나잇’으로 진행한 이 행사에 <행복한 라짜로> 1만 돌파를 기념하여 내한한 루카 치코바니(탄크레디 역)가 깜짝 무대인사를 했다. 댄디한 체크 정장 차림의 훤칠한 미남배우인 그는 <행복한 라짜로>에서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와 깊은 우정을 나누는 귀족 청년 탄크레디 역을 맡았다. 무대에선 루카 치코바니는 “사실 유럽에서는 유튜브 스타나 가수로 더 유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튜브에 유명 뮤지션들의 커버곡들을 올리다가 유니버셜 뮤직에 발탁되어 정식으로 가수로 데뷔하였으며, 또한 이태리에서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인들의 사랑에 깊이 감명받았다”는 루카 치코바니는 무대 인사 후 관객들과 객석에서 함께 사진 을 찍는 깜짝 포토타임을 갖기도 했다.

  라짜로라는 거울을 통해 세속의 풍경을 비추다

  영화 오프닝 시퀀스의 배경은 1980년대 이탈리아 산간벽지 인비올라타다. 라짜로, 라짜로, 라짜로, 라짜로…. 카메라 앵글은 쉼없이 불러대는 라짜로라는 신성한 거울을 통해 세속 풍경을 비춘다. 마을 사람들은 알폰시나 데루나 후작 부인(니콜레타 브라스키)이 소유한 담배 농장의 소작농으로 일하며 한 방에서 10여 명이 살을 맞대고 잠을 자는 공동체 생활을 한다.

  어른의 키만큼 무성히 자란 초록의 담배 밭이 나타난다. 순간 어린 시절 담배농사를 짓던 고향친구의 황초굴(담배 건조장)이 떠올랐다. 기계화된 부분이 전혀 없었던 담배농사는 벼농사보다 10배나 힘든 일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부분이 잎담배 수확인데 잎단배 수확은 1년중 가장 덮게 느껴지는 6월 말에서 7월 중순 사이에 이뤄졌다. 회관 앞에서 뛰노는 또래와 함께 어울리지도 못하고 뜨거운 한 여름 햇볕아래서 자기 키보다 큰 담배잎을 한 아름 안고 왔다갔다하던 친구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푸른 담뱃잎을 따던 사람들은 라짜로(아드리 아노 타르디올로)의 이름을 노래 후렴구처럼 쉴 새 없이 불러댄다. “라짜로, 할머니를 식탁으로 모셔!” “라짜로, 상자 좀 옮겨!” “라짜로, 이거 해! 라짜로 저거 해!” 사람들의 쉴새 없는 호명에도 그는 쉬지 않고 힘든 일을 하면서도 아무런 불평 없이 선한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일한다. 이 반복적인 호명은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가 늘 불러대던 ‘동주야!’처럼, 배경에 머물러 있는 라짜로의 존재를 전면에 드러내는 효과를 준다.

  외부와 소통 없이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던 마을 사람들은 소작이 법으로 금지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모른 채 평생을 뼈 빠지게 일만 한다. 후작부인은 중간관리자를 보내 이들에게 대가를 받아내는데 어찌나 과한 값을 요구했는지 소작농들이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빚은 줄어들지 않는다.

  젊고 반항적인 탄크레디(루카 키코바니)는 무지한 자들을 이용하는 어머니에게 “저들이 진실을 알게 될까봐 겁나지 않나요?”라고 질문하자 후작 부인은 “저들은 개돼지나 마찬가지야. 풀어주면 자신들이 비참한 노예임을 알게 되지. 라짜로를 봐. 난 농부들을 착취하지만 그들은 저 애를 착취한다”고 말한다.

ⓒ슈아픽처스

  시대와 공간이 변해도 착취는 계속된다

  착취당하는 자가 또 다른 자를 착취하는 연쇄반응 속에서 라짜로는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 위치한다. 그렇지만 라짜로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언젠가 잃어버린 순수 너머 절대 선善의 영역에 존재한다. 순수와 신성함,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존재가 바로 라짜로다.

  영화의 전반부는 ‘대사기극’의 전말이 폭로되면서 일단락되는데, 이 이야기는 1980년대 초반 이탈리아에서 소작이 폐지됐음에도 불구하고 한 후작 부인이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던 농부들을 노예처럼 착취했다는 그 실화를 차용한 것이다.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이 실화에서 길어올린 것은 낡은 사회 시스템과 인간의 이기적 욕망, 선한 피해자와 악독한 가해자의 이야기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다. 그는 라짜로라는 성자의 몸을 빌려 더 넓은 시점에서 과거와 현재, 봉건적 시대와 자본주의 시대를 연결한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로 리얼하고도 환상적인 이야기가 스크린 가득 펼쳐진다.

  진정 역사는, 사회는, 인간은 진보하고 있는가. 대사기극의 전말이 드러난 이후 뿔뿔이 흩어진 인비올라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적응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는 그 해답을 대신한다.

  영화가 후반으로 나아가면 이야기는 보다 선명해진다. 거대한 사기극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소작농들은 해방되지만 진정으로 변한 건 없는 듯 보인다. 알 리체 로르와커 감독의 표현대로 “노골적인 착취의 시대가 아닌 더 새롭고 더 유혹적인 착취의 시대”로 시간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슈아픽처스

  후작 부인 밑에서 일하던 니콜라는 후작 부인의 몰락 이후에도 여전히 가진 것 없는 자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살아간다. 더 낮은 임금으로 일할 사람들을 모객하는 일자리 중개인이 된 니콜라, 영화에서 유일하게 라짜로의 존재를 알아보고 그에게 무릎 꿇는 안토니아(알바 로르와커)의 가족은 좀도둑질과 사기로 근근이 입에 풀칠하고 있는 형편이다(앞서 순교한 성녀들의 사진에 입을 맞추는 존재 역시 젊은 시절의 안토니아다).

  소외된 자들은 여전히 소외당한 채 살아가고 있으며, 세상엔 변하지 않는 성질의 것도 존재한다는 것을 슬적 비추어준다. 대사기극을 전하는 신문 기사는 “그녀(후작 부인)는 이들의 사회적 진보를 가로막았고, 강제노역과 빈곤 속에 살게 했다”고 기록하지만, 이들의 진보를 진정 가로막고 있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니다. 이 사회가 함께 공범이다.

  무엇보다 이 세상의 선한 존재는 어디에 있는가. <행복한 라짜로>는 어쩌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선한 존재들, 무수한 라짜로들을 호명하는 의식 같은 영화이다.

  로르와커 감독은 이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신성함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여러 영화와 책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영웅들의 운명을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라짜로는 세상을 바꿀 수도 없으며, 아무도 그의 신성함을 알지 못한다. 오늘날 성자가 현대의 삶 속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를 알아볼 수 있을까? 그에게서 선한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영화 관람 후 이무영 감독과의 GV - 그것은 선한 사람의 냄새였다

  아무 정보도 없이 로르와커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과 이무영 감독과의 GV가 진행된다는 것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영화를 관람했다. 정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이 기적 같은 신성함은 라짜로가 절벽에서 추락했다. 깨어나는 부활의 장면 이후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늑대와 이야기할 수 있는 성자의 이야기가 내레이션으로 끼어들고 울음소리로만 등장했던 늑대가 진짜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죽은 듯했던 라짜로의 모습 위로 이런 이야기가 얹힌다. “늑대가 그를 발견한다. 그에게 다가간 늑대는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잡아먹으려 하지만 처음 맡는 냄새에 멈춘다. 무슨 냄새였을까. 그것은 선한 사람의 냄새였다.

  객석에서는 늑대는 누구인가? 라짜로는 성자의 부활인가? 등 늑대의 등장과 다시 살아난 라짜로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며 질문을 던졌다. 이무영 감독은 “라짜로는 성경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나사로로 알려진 인물로, 예수가 벌인 기적 가운데 유명한 대목이다”며 그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부모 없이 살던 가난한 세 남매는 일찍이 예수와 연이 있었다. 그중 오빠인 나사로가 병이 나자 동생 마리아와 마르타가 예수에게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한다. 소식을 들은 예수는 이들이 사는 도시로 찾아와 죽은 지 사흘째 되던 나사로를 다시 살려낸다.”는 이야기다. 이무영 감독은 <행복한 라짜로>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부활 이야기를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그랬다. 죽었다 살아난다는 믿기 힘든 설정부터, 다분히 의도한 것처럼 보이는 라짜로의 순결무구한 표정까지가 모두 그렇다. 때로는 부활한 주인공 라짜로의 모습에서 예수가 오버랩되기도 하는데 과연 감독 로르와커가 던지고자 했던 질문은 무엇일까? 객석에서 높이 손을 든 한 관객은 그것은 ‘계급’이라고 말했다. 인비올라타에서 가장 높은 자는 후작부인과 그의 아들 탄크레디(루카 치코바니 분)다. 그리고 다음은 중간관리자이며 마지막이 소작농이다. 그런데 이 소작농들이 착취하는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라짜로, 가장 낮은 자라는 것이다. 통쾌하지 않은가? 그리고 늑대에 대한 이야기도 GV 내내 이어졌다. 포스터에서도 라짜로 뒤에 숨어 응시하고 있는 늑대의 모습이 영화 속에 숨겨진 어떠한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듯해 보였다.

  이무영 감독은 “늑대는 일종의 경고이자 욕망 혹은 이탈리아의 뿌리인 동물로서 이탈리아의 현재 그 자체를 은유”하기도 하고, “신화적이고 영화적인 우화”로 상징해볼 수 있겠다고 말한다.

  늑대 떼로부터 가축을 지켜야 하는 사내는 제자리를 라짜로에게 넘기고는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 내내 라짜로는 쉼 없이 일한다. 농부들은 라짜로에게 험하고 귀찮은 일을 맡기면서도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대가는 커녕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싫은 소리까지 해댄다. 언젠가 라짜로가 몹시 앓았던 날엔 마을 사람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 침대를 내주지 않는다. 라짜로를 정말로 위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라짜로는 도시의 부랑자처럼 죽는다.

  세상을 향해 울부짖으며 쓸쓸히 사회를 거니는 부랑자처럼 오직 공포와 탐욕을 상징하는 늑대만이 라 짜로가 가진 진정한 성스러움을 알아보는 모습에 묘한 전율을 느꼈다.

  마지막 성당신은 영화의 백미라 할만하다. 여전히 선한 눈망울을 가진 라짜로는 추위와 배고픔마저 초월한 존재가 되어 안토니아의 가족을 만나고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탄크레디를 만난다. 라짜로의 손길과 눈길이 머무는 곳에선 작은 기적들이 일어난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는 변치 않는 선함. 그러나 성자의 수난은 끝나지 않고, 마지막 수난에 앞서 영화는 아름답고 먹먹한 기적의 자리를 마련한다. 라짜로와 안토니아 가족이 탄크레디의 집에서도 퇴짜 맞고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따라 어느 성당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선 한 사내가 오르간을 연주하고 몇몇 수녀들이 이를 듣고 있다. 변변치 않은 차림의 일행이 성당에 들어서자 수녀 하나가 손을 내저으며 “비공개 미사입니다. 들어올 수 없어요.”라고 말한다. 끝내 쫓겨나는 사람들 뒤로 음악소리가 함께 빠져나간다. 그때 터져 나오는 수녀의 외침이 일품이다. “음악이 떠나고 있어. 어서 문을 닫아!” 하지만 이미 늦었다. 연주자가 아무리 건반을 눌러대도 음악은 다시 흘러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성당에서 음악이 사라졌지만 사라진 음악이 길 위를 떠도는 사람들을 따르는 기적이 일어난다. “음악이 우릴 따라오고 있어.” 영화에서 가장 종교적이며 마술적인 색채로 칠해진 아름답고 거룩한 순간은 동시에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 되어버린다. 퍼진 차를 밀며 집까지 돌아오는 일행 뒤로 음악 소리가 따라붙는다. 라짜로는 일행 뒤로 떨어져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월계수 아래 앉아 눈물을 흘린다. 사철 푸르러 순결과 불멸의 상징이며 천사의 나무라고까지 칭하는 월계수가 아닌가.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라짜로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릴 때, 그럼에도 그 슬픔이 냉소와 분노로 향하지 않을 때 이 영화의 진가가 드러난다. 절대적 선으로 상징되는 라짜로와 신성함의 가치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눈먼 사람들에 관한 기묘한 우화 <행복한 라짜로>는 투명하게 우리안의 부끄러움을 내비춘다. 선한 사람의 냄새조차 맡을 수 없게 된 나의 마비된 감각을 일깨운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고 외면하고 내쳤던 무수한 라짜로들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 사회에는 절망 속에서도 매일매일 기적처럼 살아가는 수많은 라짜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감독 알리체 로르와커의 연출력에 정말 놀랐다. 개봉 6주차를 접어든 <행복한 라짜로>는 입소문을 타고 1만 4천여 명이 관객 수를 넘어섰다. 홍대에 위치한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굿즈패키지 앵콜상영회도 하는 등 행복한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독자들의 많은 동참을 바란다.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벌써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Tip <행복한 라짜로>의 캐릭터

  영화에서 라짜로는 절대적으로 선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존재다. 그런 라짜로를 연기한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는 이 영화 출연이 처음이다. 크고 둥근 눈, 아래로 부드럽게 처진 어깨, 공격적이지 않은 손, 부지런한 발을 가진 그는 1998년 이탈리아 오르비에토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재학 중 영화에 캐스팅돼 <행복한 라짜로>에서 생애 처음으로 연기를 경험했다. 일찌감치 라짜로의 존재를 알아본 어른 안토니아 역의 알바 로르와커는 감독인 알리체 로르와커의 언니다. 동생의 영화 <더 원더스>에 이어 <행복한 라짜로>에까지 출연했으며, <아이 엠 러브> <사랑하고 싶은 시간> <테일 오브 테일즈> <도우터 오브 마인> 등 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배우다. 알폰시나 데 루나 후작 부인으로 출연한 니콜레타 브라스키는 <인생은 아름다워>, <피노키오 >, <호랑이와 눈> 등 다양한 작품에서 매력을 발산한 배우이다. 15년 만에 출연한 <행복한 라짜로>에서도 마을 주민 전부를 소작농으로 부리는 후작 부인의 연기를 완벽히 소화한다.

 

 

* 《쿨투라》 2019년 8월호(통권 6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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