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공연] 나를 구원할, 내가 파괴한 "백치"
[10월 공연] 나를 구원할, 내가 파괴한 "백치"
  • 최교익 (연출가, 신한대 교수)
  • 승인 2018.10.01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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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공연 스틸컷
〈백치〉 공연 스틸컷

인간의 이중성은 탐구의 흥미로운 대상이며 종종 공연의 소재로 활용되곤 한다. 조승우의 매력을 가감 없이 보여준 <지킬 앤 하이드> (2018. 11. 13. ~ 2019. 5. 19. 샤롯데씨어터)와 9월호에 소개한 마당극패 우금치의 <천강에 뜬 달> 역시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고민을 무대에 옮겨놓은 공연이다. ‘이중성’을 소재로 한 공연 및 퍼포먼스가 주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그를 향한 내면의 호기심이 관객에게도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중성의 시작은 아마도 인간이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먹으며 부끄러움을 알게 된 순간이 처음이지 않을까? 부끄러움은 인간을 수축시킨다. 부끄러운 모습을 숨기기 위한 본능적인 외면. 당당하고 싶은 마음의 발현. 타인에게 비춰지는 본인의 모습을 정확하게 오픈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중성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중성을 한 인간의 눈으로, 그의 입장에서 시각화 시키는 소설이 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치>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양극적인 인물 소냐와 스비드리가일로프에 이어 <백치>의 미쉬킨, <악령>의 스타브로긴, <카라마조프형제들>의 조시마는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선과 악의 상극을 인물과 사건으로 체현시킨다.

도스토옙스키를 가장 극심한 창작의 고통으로 몰아넣었다는 <백치>. 그의 소설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백치>. 2018년 가을, 글자에서 벗어나 시·청각화되어 9월 대전예술의전당과 10월 국립극장에서 보다 쉽고 흥미로운 연출 미장센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절대 선善 미쉬킨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소설에 반해 연극에서는 미쉬킨과 미쉬킨을 만나 순수한 사랑을 알게 되는 거친 거리의 여자 나스타샤, 단순하고 사랑에 열정적인 로고진과 철없지만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예빤친 장군의 딸 아글라야의 관계와 오직 돈만을 위해 나스타샤와 결혼하려는 가냐, 돈이라면 뭐든 할 수 있는 박쥐같은 레베제프의 욕망이 극의 선과 악을 갈등으로 승화시켜 긴장감을 더해준다.

2016년, ‘MBC 연기대상 황금연기상’을 수상한 이필모(미쉬킨)의 고귀한 영혼의 섬세한 감성, 사랑에 대해 열정을 넘어 죽음을 무릅쓰는 열광적인 김수현(로고진), 거친 거리의 여자지만 사랑 앞에 갈등하는 황선화(나스타샤)의 개성적 매력은 관객을 압도하며 극의 집중을 높여준다. 이 가운데 주목해야 할 배우는 신준철(레베제프)이다. 심각하게 흐르는 서사에서도 희극적 캐릭터로 긴장을 풀어준다. 신준철은 단순히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의 웃음에 가려진 이중적 내면은 극이 가야할 방향성을 정확히 알고 웃음의 페르소나를 통해 극을 끌고 가는 것이다. 

연극 <백치>의 박정희 연출가는 <백치>를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겉모습은 초라하지만 예수와 같은 절대 선善의 미쉬킨, 그리고 상대적으로 비춰지는 다양한 인간의 어두운 그림자. 어떠한 상황에서도 악한 마음과 악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미쉬킨을 현실성 없는 인물이라 생각하고 비현실적인 인물로 전락할 수 있지만 섬세한 박정희 연출의 무대 미장센이 미쉬킨의 내면을 표면화하여 현실성을 보여준다. 예민하게 열과 행을 맞춘 의자와 테이블은 미쉬킨의 정신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백치>의 무대는 간결하고 정렬되어 있다. 때문에 고요하고 모던하다. 하지만 극이 긴장이 더할수록 의자들은 쓰러지고 또 부서진다. 그리고 다시 고요하다.

섬세한 박정희의 연출력과 예민한 무대 미장센, 그리고 감각적인 배우들의 호흡은 9월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초연 후 10월 국립극장에서도 이어진다.

대전 공연 – 2018. 09. 07 ~ 2018. 09. 15.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
서울 공연 – 2018. 10. 03 ~ 2018. 10. 07.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 《쿨투라》 2018년 10월호(통권 5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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