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 한국문학과 번역문학을 잇는 이민문학이 되길
[안도현 시인] 한국문학과 번역문학을 잇는 이민문학이 되길
  • 김준철(시인, 본지 미주 특파원)
  • 승인 2019.09.01 0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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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LA도 한껏 여름 본연의 열기를 아낌없이 뿜어내고 있는 날이다. 베니스 비치에서 열린 시낭송회(비욘드 바로크)에 초청받아 LA를 방문한 안도현 시인을 만나기 위해 코리아타운에 위치한 중앙일보 강의실을 찾았다. 시인은 6년 전부터 단국대 부설 국제문예창작센터에서 시, 수필 창작 강좌를 11회째 이어오고 있다. 그는 전국민 애송시인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는 시 「너에게 묻는다」로 ‘연탄재 시인’이 되었으며,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비롯해 『북항』까지 10권의 스테디셀러 시집을 펴냈다. 그의 글에는 맑고 은은한 울림과 더불어 인생과 세상을 통찰하는 날카로우면서도 참으로 여유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세상의 아름다움과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진실을 조근 조근 얘기해 줄 때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안도현 시인의 섬세하고 시적인 감수성이 아름답게 승화된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어른과 청소년 모두에게 순수 지향의 동심을 들려주었다. 1996년 출간 이후 22년 동안 142쇄, 106만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15개국의 언어로 해외에 번역 출간되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비견되며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게 된 이 책은 영상 시대에도 당당하게 출판 팬덤과 K-문학을 이끌어냈다. 또한 재미있는 한 에피소드로 그는 자신의 시에 절대 ‘자장면’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짜장면’이라고 쓴다고 한다. 지금은 자장면이나 짜장면이나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지만 과거엔 자장면만 표준어로 인정받았다. 그는 이것에 반발해 맞춤법 때문에 어린 시절 자신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쓸 수 없다고 짜장면으로 쓰기를 고집했다고 한다. 정말 통쾌하지 않은가?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그가 비욘드 바로크 행사의 특강 강사로 10여 년 만에 다시 미국을 찾았다. 20세기 말을 지나 21세기에 이르기까지 100만이 넘는 문학 독자의 팬덤을 이끌어낸 그 장본인 안도현 시인을 만났다.

김준철(이하 김)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서 대학시절을 보냈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기쁩니다. 바쁘신 중에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안도현(이하 안)  천만에요. 오늘이 강연 마지막 날이에요. 이제 막 끝나고 조금 심심했는데 너무 반갑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번 초청 강연으로 10년 만에 미국에 오셨는데요. 얼마나 머무르시나요?

  지난 8월 7일 들어와서 딱 일주일 머무르는 것 같네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습니다.

 

이민자의 문학적 삶, 단순한 위안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

  그렇군요. 짧은 일정이라 정말 아쉬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시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매체에서 많이 접할 수 있으니까 이 인터뷰는 시낭송 행사와 초청 강연 중심으로 여쭙겠습니다. 이번 강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말 그대로 시 창작을 위한 강연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참석하신 분들이 나이가 많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50대에서 80후반대까지 계셨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웠던 것은 참석하신 분들의 열정이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신다면?

  이민자의 위치에서 모국어를 사용하여 문학을 한다는 작업, 즉 문학을 생각하고 언어를 표현하려는 열정과 노력에 감탄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숨을 쉰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나 목이 말라 물을 마시는 자연적인 행동 같은 갈증해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이민자의 문학적 삶이라는 것이 단순한 조건만 맞아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전혀 다른 두 언어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기에 아무래도 그 집중력에서는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있겠으나 또 그만큼 간절함에서는 그 애틋함이 더하리라 생각됩니다. 그것은 단순한 위안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봅니다.

  정확히 보신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번 강연에는 일반인들도 있지만 현재 미주에서 문학을 하고 계신 분들도 상당수 참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민 문학에 대해 느끼신 점을 들려주시겠습니까?

  짧은 시간의 방문으로 세세히 알 수도 없고 또 뭐라 말 드린다는 것이 성급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부분에서는 어떤 문학적 표현보다는 읽기에 있어서 조금 늦거나 아쉬운 점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가능한 한 폭넓은 독서는 작가가 이용할 수 있는 도구를 늘리는 일인 거죠. 쓰기에 그 무엇보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읽는 행위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Input이 없이 Output을 끌어내는 것은 무모하며 불가능한 일입니다.

현재 이민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

  아무래도 독서물을 접하는 게 한국보다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또 그 독서의 범주 역시 다소 편협할 수밖에 없는 사례가 많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어떤 형식의 쓰기가 되어야 할까요?

  위에 말씀드린 것만으로도 너무 과하게 잘 모르고 한 말 같아서 걱정스러운데 더 깊은 질문을 하시는군요. 하지만 이민자이기에 가지는 단순한 그리움이나 모호성보다는 현재 이민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막연한 관념을 쓰는 게 아니라 이민자로써, 미국의 구성원으로써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타내는 것, 아마도 그것이 한국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일으키지 않을까 합니다.

  저희가 같이 참석했었던 시낭송회가 생각이 나는데요. 다소 딱딱한 분위기의 한국적 시낭송회와 달리, 외국 낭송자들의 모습은 매우 자연스럽고 그들의 작품 또한 지금 말하신 삶의 한 부분을 청중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 부분을 상당히 인상적으로 느꼈습니다. 텍스트에 집중하여 낭송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읽고 듣는, 그 공간에 함께하는 이들이 중간 중간 낭송을 끊고 또 이어가는 유연한 모습이 좋았습니다. 마치 예전 우리 한국 판소리에서 중간 중간 추임새를 넣듯, 청중들이 시 한 줄 한 줄에 반응하고 감동하고 그것을 바로 표현해 내는 것이 정겹기까지 했습니다.

 

롱비치 쪽에서 배를 타고 나가 만난 고래와 헌팅턴비치 쪽 식물원이 기억에 남고 인상적

  어쩌면 한국을 포함해서 한국 시를 낭송하는 분들과 또한 국어로 글을 쓰는 분들에게 말하신 부분이 좋은 아이디어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네요. 짧은 시간이지만 미국 방문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셨나요?

  너무 짧은 기간이라 아쉬움이 큰데요. 그나마 오래 기억에 남을만한 일은 롱비치 쪽에서 배를 타고 나가서 만난 고래입니다. 한국에서는 청고래, 대왕고래라고 불리는 고래였는데 쉽지 않은 일상의 목격담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헌팅턴비치 쪽에 있는 식물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식물에 관심이 많다보니 그곳처럼 크고 넒은 곳에 많은 식물을 자연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는 점이 부럽고 또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 문학 안에서 이민 문학 번역 문학과의 유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국 문학 안에서 이민 문학이 유지되는, 혹은 교류되어지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그렇게 거창한 주제에 답을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운데요……. 단순하게 제가 아쉬운 부분을 말드린다면 번역 문학과의 유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다른 장르 쪽에서는 그나마 그런 교류가 간간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유독 시에 있어서는 인색한 것 같습니다. 이민문학을 하시는 분들이 아무래도 번역문학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나 능력이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을 찾고 또 알리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한국문학과 이민문학 그리고 번역문학까지 근사한 다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소망해봅니다.

 

내년에는 시집을 출간할 계획, 시인은 시로 남고 시로 기억되어야

  선생님께 앞으로의 계획을 여쭙고 싶습니다. 그리고 문학을 사랑하고 또 문학을 하는 분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4~5년 시 쓰기에 안일했고 또 못 쓴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시집을 출간하려고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인은 시로 남고 시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시를 쓰는 사람의 모습이어야 하기도 하고 또 시를 읽어주는 독자들의 시선이 되어야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긴 시간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새 시집을 손꼽아 기다리며, 다음에는 더 넉넉한 시간으로 담소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안도현 시인은 이름 모를 시냇가에서 오랜 시간동안 부드럽고 둥글게 단련된 조약돌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가 들려주는 한 마디 한 마디 속에는 이민문학에 대한 우려와 배려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100만 부 베스트셀러 작가의 겸손과 미덕과 시인의 철학을 체감할 수 있는, 넉넉한 영혼의 시간이었다.
 

 

* 《쿨투라》 2019년 9월호(통권 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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