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Theme] 시청자의 요구로 드라마 결말이 바뀔 수 있나?
[9월 Theme] 시청자의 요구로 드라마 결말이 바뀔 수 있나?
  • 주찬옥(드라마작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19.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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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일수록 종방이 가까워지면 제작진에겐 스포일러 경계령이 떨어지고 그때까지 다양한 패러디와 전문적인 리뷰, 움짤, 주인공의 뇌구조 등 제2창작물을 생산하며 놀던 네티즌들은 아쉬움과 기대감으로 결말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2018년 겨울에 시작해서 2019년으로 넘어온 드라마 <스카이캐슬>도 비슷했다. 혜나를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냐며 온갖 추측이 올라왔고 디시인사이드 드라마 갤러리에선 결말에 대한 창의적인 분석과 예상, 토론이 이어졌다. 하필이면 그 무렵 17회 대본이 유출되는 사고가 터졌는데 제작진은 사이버 수사대에 최초 유포자 및 중간 유포자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기까지 했다. “불법 대본 유출·유포는 작가 고유의 창작물인 대본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본 방송을 기다리는 시청자들과 제작진의 사기를 저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곁들여서. 이 모든 소란이 지난 뒤 마침내 20회, 마지막 회가 방송되자 그때까지 칭찬과 찬탄 일색이던 공홈 시청자 게시판과 드갤은 이번엔 엄청난 분노로 끓어올랐다.

“마지막 회 작가가 바뀐 거냐” “이번 화는 반전이 없다는 게 최고의 반전이었다” “뻔한 주제와 어이없는 해피엔딩이 웬 말이냐” “교육방송인 줄. 웬 화해와 용서?” “해피가 아닌 헤픈 엔딩”등등 비난이 폭주했으며 극중에서 김주영이 영재에게 한 대사의 패러디, “시청자의 뜻대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순종하며 만들다가 그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 산산조각 내 버려. 그게 진짜 복수니까” 라는 신랄하고도 냉소적인 조롱도 떠돌았다. 압권으로 “마지막 회를 재촬영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으니 이쯤 되면 드라마 갤러리에선 분노조차 일종의 유희가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비슷한 시기에 역시 충격적인 결말로 벌집을 쑤신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있다. 이 드라마 또한 증강현실 게임이라는 신선한 소재 덕분에 화제성과 시청률 두 토끼를 잡으며 호평 일색으로 시작했는데 마지막 회가 끝나자 네티즌들이 폭발했다. 이들은 배신감에 “한반도 급으로 열린 결말이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정도” “용두 사미 괴작” “발암브라 궁전의 추억” “토레토의 추억” 등등 뼈아픈 야유를 쏟아냈다. 화제가 되고 시청률이 고공행진하는 드라마일 수록 마지막 회, 결론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물론 작가는 시놉시스 단계에서 미리 전체 줄거리를 만들어놓기 때문에 당연히 결말도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방송가에서는 “시놉시스 대로 나오는 대본은 없다”라고 알고 있다. 드라마 대본은 생물과 같아 서 변화무쌍하게 진화한다. 작가 중에는 드라마가 창작품이기 때문에 다른 조언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원래 설정한 작품 의도, 메시지에 끝까지 충실한 작가도 있다. 내 경우는 어떤가 하면 머리 위로 대형 레이더를 설치, 온갖 의견을 채집하는 편이다. 일차적으로는 보조작가 및 제작진들, 주변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게시판이나 개인 블로그, 드라마 갤러리 등의 의견도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많은 시청자들이 원하거나 예측하는 결말을 취하는 건 아니다. 멜로의 경우 아무리 대다수가 해피엔딩을 원하더라도 마지막 회에 결혼하면서 끝내는 것처럼 싱겁고 무난하고 고민없는 결론이 어디 있겠나. 오히려 예상을 뛰어넘는 통쾌한 결말을 찾아내야 한다. 시청자와 작가의 두뇌 싸움인 것이다.

2013년을 뜨겁게 달궜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방송 2회 분을 남겨뒀을 때, 마찬가지로 스탭 전원에게 대본 함구령이 떨어졌고 네티즌들은 각종 예상 엔딩으로 활화산처럼 들끓었다. 그래서 제작진은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 ‘나만의 엔딩 스토리’라는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5일 동안 전세계에 서 3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와 마지막 회 스토리를 상상했다. “천송이와 도민준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도민준은 천송이와 슬픈 이별을 하고 떠난다”, “자신의 별로 돌아가기를 포기한 도민준은 천송이 앞에서 죽어간다” 등등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 심지어 프랑스어로 댓을 달아놓기도 했다. 이때 등장한 결말 중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었을 거라고 장담한다. 네티즌 대다수는 평이했겠지만 틀림없이 놀라운 상상력이 보석처럼 숨어있었을 것이다. 여럿이 모이면 놀라운 반전이나 의외의 해결책 혹은 강렬하면서도 설득력이 있는 결말을 던지는 네티즌들이 나타난다. 집단지성의 힘이다.

이쯤에서 제목의 답을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시청자의 요구가 드라마의 결말을 바꿀 수 있나? 현실은 쉽지 않다고 본다. 시청자들은 점점 더 전문적인 식견과 놀라운 발상으로 멋진 결말을 제안하겠지만 아쉽게도 그 아이디어를 반하기엔 시간의 격차가 있다. 방송 전 탈고는 물론 촬영까지 마친 사전 제작하는 드라마들이 늘고 있고 전처럼 방송하면서 찍는다 해도 주 52시간 작업 환경 등으로 촬용 대본은 훨씬 앞서 가야 한다. 예전엔 미니시리즈 제작팀이 대본 4개를 들고 첫 촬영을 개시할 때가 많았다. 6회 대본이 나와 있다고 하면 “대본 많이 나왔네!”라고 했다. 물론 아슬아슬했다. 조금이라도 리듬이 끊기면 흔히 말하는 생방송 드라마, 밤샘 촬영의 원흉 쪽대본으로 몰릴 위험이 있었다. 대신 촬영물의 결과 혹은 시청자 반응이 대본 집필에 반영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최근 방송된 <열혈사제>는 우리 드라마의 병폐라고 해왔던 ‘실시간 대본’이었는데 덕분에 버닝썬 등 현실의 이슈가 빠르게 드라마에 활용되었고 토착왜구라든가, 라이징문, ‘라이징문은 누구 겁니까?’ 등 회자되는 익숙한 용어들이 패러디되어 바로 바로 등장하면서 생생한 현실 드라마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예전 방식이 더 좋나? 쪽지 대본이 숨 가쁘게 나오고 촬영팀이 둘로 나뉘어서 밤을 새는 초치기 현장이 더 바람직한가? 그 시절 그 엄청난 에너지가 한류드라마의 원동력이 되긴 했으나 그렇다고 열악한 제작현장으로 다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진리가 떠오르긴 한다. “세상엔 나쁘기만 한 일 없고 좋기만 한 일도 없다”
 

 

* 《쿨투라》 2019년 9월호(통권 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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