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Theme] K-팝의 객체에서 주체로, 진화하는 팬덤
[9월 Theme] K-팝의 객체에서 주체로, 진화하는 팬덤
  • 안진용(문화일보 기자)
  • 승인 2019.09.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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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인기요? 고정팬 1만 명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여러 아이돌 그룹을 성공시킨 한 가요기획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대다수 가요기획사 관계자들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1만 명은 앨범을 비롯해 MD를 구입하고 그들이 출연하는 방송 스케줄을 좇는다. 그리고 장당 10만 원이 훌쩍 넘는 콘서트 티켓을 얻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연다. 또한 좋아하는 그룹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SNS에 퍼나르고 주변에 알리며 스스로 홍보맨이 된다. 이 1만 명의 무리를 ‘팬덤’이라 부를 수 있다.

 

#팬덤의 시작

가수 조용필에서 시작된 ‘오빠 부대’를 팬덤의 시작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팬 심心보다는 팬들을 조직화하고 그들을 움직여 아이돌 가수들의 위상을 바꿔놓는다는 측면에서 팬덤의 시작은 기획형 아이돌이 탄생한 1990년대 중반 HOT, 젝스키스 시대로 보는 것이 옳다. 당시 팬들은 각 아이돌 그룹을 상징하는 색을 지정하고 이에 맞춰 준비한 풍선을 흔들었다. 팬클럽 회장 아래 각 지역장들이 존재하고 회원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프라인이 주 공간이었다. ‘음반의 시대’ 였기 때문에 신보가 발표될 때면 각 동네 음반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대형 브로마이드를 사서 방 벽에 붙여 놓고, 그들끼리 정모(정기모임)를 했다.

팬덤끼리 부딪히는 일도 발생했다. 1998년 12월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13회 대한민국 상음반상 골든디스크’ 시상식장 앞에서는 HOT 팬클럽 ‘클럽HOT’와 젝스키스 팬클럽 ‘D.S.F’가 각 그룹을 상징하는 색인 흰색과 노란색 우비를 입고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이 사건은 지상파 메인 뉴스에서 다뤘다. 팬덤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기성층에게는 꽤 충격적인 일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20년이 흐른 지난해 10월, 해체 후 17년 만에 열린 HOT의 콘서트. 2회 공연으로 10만 명을 동원했고, 입장권은 판매 시작과 동시에 동났다. 1990년대 중반, 공식 팬클럽인 클럽HOT의 회원수가 약 9만 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당시 HOT를 응원하던 대다수가 그들을 다시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콘서트를 전후해 HOT의 회원들은 다시 뭉쳤고, 오는 9월 열리는 공연 역시 7만 석에 육박하는 자리가 삽시간에 매진됐다. ‘원조 팬덤’의 귀환이라 할 만하다.

#팬덤의 진화

1세대 아이돌이 HOT, 젝스키스라면 2세대는 동방신기와 빅뱅으로 대변된다. 동방신기의 공식 팬클럽 ‘카시오페아’의 회원수는 무려 80만 명이 넘어, 2008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같은 소속사가 만들었던 HOT를 응원하던 클럽HOT의 회원수와 비교하면 무려 10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본격적인 인터넷 보급과 연관된다. 1세대 아이돌이 활동하던 때는 나우누리, 천리안 등 모뎀을 기반으로 한 PC통신을 사용하던 시기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다음,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가 사회를 바라보는 창으로 대두되고, 이를 중심으로 대중이 온라인 상에서 소통하는 횟수가 늘고 물리적 거리는 의미가 없어졌다. 대중은 오프라인 공간이 아니라 ‘다음 카페’에 모였고, ‘네이버 지식인’ 등을 활용해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참여하게 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명 아이돌 그룹의 팬덤은 국경을 뛰어넘었다.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을 뛰어넘어 미주, 남미, 유럽 등의 팬들까지 결집했고, K-팝이 대표적 한류 콘텐츠로 발돋움하는 초석이 됐다. 그 배경에는 가요기획사의 철저한 관리도 단단히 한 몫 했다. 팬덤이 수익과 직결된다는 것을 깨달은 기획사들은 팬클럽의 대형화를 지지하고,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를 열어줬다. 또한 앨범 및 콘서트 티켓 구매 시 우선권을 줌으로써 우월적 지위를 획득하도록 도왔다. 그들이 지지하는 오빠들의 성장에 도움을 줬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팬덤과 기획사의 공생이 시작된 셈이다.

#팬덤의 완성

2010년 이후 팬덤은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오프라인(1세대)에서 온라인(2세대)으로 옮겨온 후, 여전히 온라인 시장이 중심이지만 이를 활용하는 플랫폼이 달라졌다. 팬들은 손에 스마트폰을 쥐었고, 페이스북·유튜브·트위터·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더 빨리, 더 많은 정보를 소통하게 됐다. K-팝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놓은 아이돌 그룹으로 손꼽히는 방탄소년단은 2017년부터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3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 SNS 상에서 가장 유명한 스타라는 의미다. 팬덤 내 국적, 인종, 성별, 나이는 모두 지워졌다. 지구 상 전혀 다른 지역에서 똑같은 별자리를 볼 수 있듯, 전 세계인이 팬덤이라는 이름 아래 동시에 특정 K-팝 스타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게다가 진화한 팬덤은 주체성을 갖기 시작했다. 소속사와 주종 관계가 아니라 당당히 목소리를 내며 대등한 관계로 어깨를 견준다. 소속사의 잘못된 판단에는 단호한 입장을 내며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킨다. 지난해 9월 방탄소년단이 극우 성향을 가진 일본 그룹 AKB48 총괄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 시와의 협업을 진행하다가 팬들의 반대에 부딪혀 취소한 것이 그 예다.

방탄소년단의 팬덤 외에도 슈퍼주니어나 젝스키스의 팬덤은 각각 멤버인 강인, 강성훈 등의 그룹 퇴출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룹 전체를 유지하기 위해 잘못을 저지른 멤버를 먼저 엄단하려는 달라진 팬덤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한 중견 가요기획사 대표는 “팬덤이라고 무조건 그룹과 멤버들을 지지하던 시대는 지났다. 상황에 따라 지지를 철회하거나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그룹 운용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점점 더 많은 그룹이 생기고 산업 전체가 커지며 범대중적 인기를 얻기 보다는 팬덤 위주로 생명력을 유지하는 그룹이 많아지면서 향후 팬덤의 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쿨투라》 2019년 9월호(통권 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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