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Theme] 홍대 앞 팬덤
[9월 Theme] 홍대 앞 팬덤
  • 서영호(뮤지션, 음악평론가)
  • 승인 2019.09.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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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하면 대부분 요즘의 어마무시한 조직과 규모의 아이돌 팬덤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그 옛날 떡볶이집 인기 디제이에게도 선물과 편지는 쏟아졌고 이름 모를 미사리 가수에게도 흠모하는 무리는 있었으니, 홍대 앞 인디바닥에도 뮤지션을 둘러싼 ‘팬질’과 팬문화는 항상 존재해왔다. 장르를 막론하고 애정과 응원의 대상을 향한 팬들의 ‘액션’에는 공통적인 유형이 몇 가지 있을테지만 인디뮤지션과 그 팬덤에서만 볼 수 있는 그들만의 팬문화에는 어떤 게 있을까. ‘홍대 앞’이라 불리는 문화적 공간이 인디뮤지션의 대표적인 활동무대로 자리 잡은 것은 이 일대에 모여든 라이브클럽들 때문이다.

특히 공연 때 이외에는 일반적인 펍이나 카페로 기능하는 일부 라이브클럽의 공간적 특성은 고유한 인디-팬문화를 가능하게 한다. 클럽 사장님은 음악 매니아에 뮤지션들을 사랑하는 분일 가능성이 농후하니 클럽이 음악 덕후들의 커뮤니티 기반으로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라이브 카페, 클럽들은 뮤지션들이 평소에도 아지트처럼 찾거나 공연 후 그대로 공연자와 관람객 모두의 뒷풀이 장소로 이용되는 곳들이 꽤 있어 무대 위뿐만 아니라 무대 아래 뮤지션의 모습이 혼재하는 곳이다. 따라서 어느 뮤지션의 덕후질을 시작한 팬들은 뮤지션이 자주 출몰하는 클럽에 드나들다 보면 자연인으로서의 무대 아래 뮤지션과 대면 할 기회를 종종 얻게 된다. 특히 공연 후 뒷풀이 자리에서는 술 한두 잔은 오가기 마련이니 공연 얘기나 음악 얘기로 자연스레 접근, 공략(?)하다보면 뮤지션들과 개인적으로 대화하거나 밴드 무리와 합석해서 같이 어울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친분 있는 뮤지션끼리는 서로의 공연을 관람하러 오거나 뒷풀이 자리에 한잔 하러 합류하는 경우가 많으니 팬들 입장에서는 딱히 관심 있던 뮤지션이 아니었을지라도 사람을 먼저 알고 음악을 찾아 듣는 경로로 새로운 팬층으로 유입되기도 한다. 특히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뮤지션들이라면 이런 식으로 얼굴도장 찍어가며 교류하게 되는 팬들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소수일지언정 공연장마다 따라다니며 응원부대가 되어주니 소중한 (나만의)스타-팬의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이런 최초의 소수 정예 팬 무리는 힘든 시절을 견디게 해주는 버팀목이며 뮤지션들은 이들을 통해 앞으로의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도 있다. 여기에다 커뮤니티 같은 클럽 공간을 배경으로 뮤지션과 팬의 다소 격의 없는 관계 형성에서 발생하는 연애사는 옵션이다. 이제는 덩치가 커져버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거나 낯선 팬들과의 예정에 없던 만남이 다소 부담으로 느껴질 뮤지션들도 초창기 미숙하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충만했던 자신들의 성장 과정을 함께해준 팬들과의 시간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편 최근에 아이돌 팬덤이나 공연계에서도 다양한 굿즈나 공연의 제작비 등을 위해 펀딩이 활성화되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문화의 시작은 인디음악 쪽이었다. 2000년대 이후 컴퓨터와 홈레코딩 장비가 발달하면서 적은 금액으로도 큰 스튜디오에서 만든 음반 못지않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이는 특히 인디뮤지션들에게 큰 이점이 되었다. ‘인디’라는 것의 정의를 여러 측면에서 할 수 있겠으나 무엇보다 이윤추구가 지상과제인 큰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비록 가내수공업일지라도 뮤지션의 소신대로 음악을 만든다는 자세가 인디정신의 핵심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디음반은 대부분 뮤지션의 자비나 매우 작은 규모의 레이블에서 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최소 몇십만 원에서 보통 수백만, 크게는 천만 단위까지 들어가는 제작비는 부담이 되기 마련이므로 팬들의 펀딩을 통한 모금은 유용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뮤지션이 팬들의 펀딩을 통한 제작비 마련을 택하는 것은 비단 금액의 크기뿐만 아니라 그 방식과 의미에도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뮤지션에게는 제작비 해결은 물론 자신의 음악적 소신에 대한 팬들의 지지와 독려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이고 팬들에게는 뮤지션의 다음 앨범 제작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인 것이다. 음반이 완성되면 펀딩에 참여한 이들에게는 금액에 따라 공연 관람권이나 할인, 음반 증정, 작게는 음반 속지의 ‘Thanks to’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는 등의 혜택으로 보상이 돌아간다. 일찍이 대표적인 홍대 뮤지션 중 한 명인 오지은의 2008년 1집 《지은》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녹음파일을 올리고 선주문, 선입금을 받는 방식을 통해 제작되었다.

 

 

* 《쿨투라》 2019년 9월호(통권 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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