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Theme] 미저리를 제대로 살려내:애니의 사례로 본 작가와 팬(덤)
[9월 Theme] 미저리를 제대로 살려내:애니의 사례로 본 작가와 팬(덤)
  • 허희(문학·출판평론가) )
  • 승인 2019.09.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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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소설 『미저리』(1987)로부터 시작하려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소설보다 로브 라이너가 만든 영화 <미저리>(1990)의 이미지가 더 익숙하다. 눈을 치켜뜬 애니(케시 베이츠)의 모습은 여전히 으스스하지 않나. 그런데 출판 시장의 팬덤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미저리』라니? 글쎄, 이 주제에 나는 이 소설을 거론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팬(덤)과 작가의 관계를 면밀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범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 폴에게 애니는 끔찍한 고문을 가하는 팬이다. 하지만 그녀를 괴물로만 여겨서는 얻을 점이 없다는 게 나의 입장이다. 이런 주장에 동의해서다.

“역사적으로 팬들은 다소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알려져 왔다. (……) 그렇지만 이른바 컬트 팬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신화이며, 수용자들의 행동에 대한 시대에 뒤떨어진 편향된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마크 더핏, 『팬덤 이해하기』 중에서) 애니가 두 다리가 부러진 폴을 학대하는 것은 맞다. 그녀는 광기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애니는 누구보다 명민한 독자이기도 하다. 이전에 폴은 미저리 부인을 죽임으로써 ‘미저리 시리즈’를 끝냈다. 그런 그에게 미저리의 열성팬인 애니는 미저리 부인을 살려내 시리즈를 이어나가라고 강요한다. 마지못해 미저리의 후속편을 쓰는 폴.

그는 애니의 독해 수준을 깔보고 있었다. 한데 그녀는 폴이 대충 쓴 소설의 허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의사가 제때 도착하지 못해 미저리가 사망하는 것이 전작의 결말인데, 후속편의 시작이 의사가 제 시간에 도착해 미저리를 구하는 에피소드로 돼 있어서다. 애니는 폴에게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개연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폴은 뭐라고 변명하지 못한다. 그녀의 지적이 타당했기 때문이다. 애니의 강압으로 집필하기 시작했으나, 작가로서의 자존심에 그는 상처 입었다. 폴은 다시 소설을 쓰는 데 몰입한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논리적 허점이 없고, 재미는 있는 새로운 에피소드를 써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후 폴이 『돌아온 미저리』를 완성하는 일에 자신의 창작열을 모조리 쏟아 붓는다는 사실이다. 독자라고는 애니 밖에 없는 상황. 그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미저리 시리즈를 그토록 열심히 써나갔던 것일까. 애니의 마음에 들게 미저리 시리즈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폴의 목숨이 위험해서? 이것은 절반의 답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절반의 답은 팬의 기대에 부응하는, 아니 팬이 기대한 범위를 뛰어넘는 작품을 내놓겠다고 결심한 폴의 태도에 있다. 그러니까 『미저리』는 작가와 팬의 상호 작용에 관한 알레고리라고 부를 만한 소설이다. 스티븐 킹이 장르를 공포로 설정하긴 했지만.

보통은 작가가 작품을 먼저 쓰고 그 작품을 읽고 매료된 사람들이 팬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는 작품을 매개로 작가가 상위에 있고 독자가 하위에 있는 도식이다. 하나 출판에서 반드시 그런 위계가 작동하지는 않는다. 『미저리』의 애니처럼 열성팬 집단—팬(덤)은 때로 그 위계를 뒤집어버린다. 팬(덤)은 이런 압박을 가한다. ‘우리는 이미 원하는 것이 있다. 그러니 작가여, 우리가 열망하는 바로 그것을 만들어내라.’ 분명 팬(덤)은 작가의 든든한 후원자다. 하지만 그럴 때 팬(덤)은 작가를 불안에 떨게 하는 감시자의 역할도 겸한다. 스티븐 킹이 괜히 『미저리』의 장르를 공포로 설정한 게 아니다.

「감자」 등의 단편이 문학 교과서에 나오는 김동인이라는 소설가가 있다. 그는 자신의 창작 방법론으로 인형 조종술을 언급했다. “‘자기의 창조한 인생, 자기가 지배권을 가진 인생’을 지어놓고 자기 손바닥 위에 뒤채어본 문학자는, 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되는가.”(「자기의 창조한 세계」 중에서)라고 김동인은 썼다. 자기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의 주장대로 작가는 작품에서 전지전능한 힘을 행사할까. 그가 이 글을 쓴 1920년대에는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10년대에는 불가능하다. 작가가 작품을 ‘창조’하는 모든 과정에, 작가는 독자를 늘 ‘의식’하고 있어서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 출판 또한 자본 시스템 하에 놓여 있다. 작가는 생산자이고 작품은 생산물이며 독자는 소비자이다. 출판 시장에서 권력은 누구에게 있을까. 생산자? 그의 대체자는 차고 넘친다. 권력은 감히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갖는다. 소비자를 어떻게 대체할 수 있나. 소비자가 주권자다. 팬(덤)의 영향력은 자본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고도화될수록 커진다. BTS 팬클럽 ARMY의 전방위적 활동이 대표적이다. ARMY는 음반 시장뿐 아니라 출판 시장의 판도도 바꿀 수 있는 파워를 지녔다. 예컨대 분석심리학 개론서 『융의 영혼의 지도』가 그렇다. 이 책이 BTS 앨범 콘셉트에 영감을 주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융의 영혼의 지도』는 단숨에 한국과 미국 심리학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ARMY가 움직인 것이다.

BTS의 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출판 콘텐츠 사업을 담당하는 자회사 ‘비오리진’도 운영 중이다. 이와 같은 음악 산업의 확장과 융합의 배경에는 전 세계적인 BTS 팬덤이 자리하고 있다. 꼭 ARMY가 아니라도 출판 시장에서 팬(덤)의 중요성은 상술한 대로 계속 확대되리라. 관건은 이를 어떻게 다수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냐이다. 『미저리』로 시작했으니 『미저리』로 끝을 맺자. 애니를 예로 든다면 어떨까. 팬(덤)은 언제나 기로에 선다. 작가를 착취하고 자기도 파괴하는 블러디 애니가 될지, 아니면 작가의 창작열을 자극하고 거기에서 자기도 행복을 느끼는 크리틱 애니가 될지.

 

 

* 《쿨투라》 2019년 9월호(통권 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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