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Theme] 거대한 손, 캐릭터 팬덤이 꿈틀댄다
[9월 Theme] 거대한 손, 캐릭터 팬덤이 꿈틀댄다
  • 김현구(장르소설가·문화비평가)
  • 승인 2019.09.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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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오늘날 대중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는 키워드다. 마블 스튜디오의 프랜차이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줄여 ‘MCU’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영화적 세계’, 아니 ‘우주’를 완성했다. 역대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한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을 비롯한 MCU 영화의 폭발적 인기는 이제 ‘무조건 믿고 보는 마블’이란 수식어답게 흥행을 보증한다. 세계가 마블 시리즈에 열광한다. 애착을 넘어 광착狂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이 광적인 마니아들이 주연 배우나 감독, 스토리보다도 ‘캐릭터character’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몰입도 높은 이야기, 눈이 즐거운 화려한 연출도 매력적이지만, 마블의 진정한 성공 요인은 치밀한 세계가 구축한 ‘캐릭터’를 추종하는 거대한 ‘캐릭터 팬덤’이다. 

조용필의 ‘오빠 부대’, 서태지의 ‘광팬’, 동방신기의 ‘카시오페아’, BTS의 ‘A.R.M.Y’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대중문화 ‘팬덤fandom’은 주로 인기 스타에 집중되면서 성장했다. 팬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의 매체 출연, 앨범 활동, 콘서트, 심지어 해외 일정까지 스타의 공적 활동을 섭렵하고 참여한다. 또 소소한 일상까지 현미경처럼 꿰뚫는 신공을 보유한 이들은 이미 스타의 일부분이나 마찬가지다. 팬덤의 이런 열광적인 덕질은 지금의 팬덤 문화 자체를 상징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그야말로 팬덤은 연예계의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 자발적 헌신으로 무장한 엄청난 소비 주체이자 적극적 참여로 문화를 주도하는 주요변수가 되었다. 하지만 대중스타를 향한 팬덤 문화는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미디어의 엄청난 파급력은 ‘캐릭터 팬덤’이라는 광활한 대지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 중이다. 소위 서브컬처subculture라 불리던 부분 문화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화, 게임, 애니메이션, 스포츠, 장르 문화, 나아가 원본에서 진화한 스핀오프까지 캐릭터를 위한, 캐릭터를 향한 충성도 높은 팬층이 늘어가고 있다. 이들은 개인적 활동에 머물지 않고, 조직화, 체계화한 집단 활동을 벌임으로써 대중문화 소비를 신장시키는 주력부대가 됐다.

다양한 캐릭터 팬덤 활동은 전방위적인 방식으로 시장에 기여한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작품 구매, 관람, 수집, 코스프레, 플레이 등 캐릭터와 관련한 모든 행사나 상품을 적극적으로 선점한다. 마블이나 인기 스타의 팬덤처럼 미디어 이슈를 선도하지는 않지만, 각종 캐릭터 팬덤은 대중문화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소비층이다. 캐릭터 산업은 이제 단순 소비시장을 뛰어넘어 장르 확장에도 기여한다. 일명 ‘영업’ 활동은 이를 뒷받침한다. 팬덤 내에서 업이란 사전적 의미와 다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선호하는 장르를 알리고, 팬덤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 구애 활동이다. 이는 팬층을 단단하게 해서 해당 분야의 영향력을 키우는 작업이자, 함께 좋아하는 것을 소통하는 자신들의 놀이터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즉 팬덤 영업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사수하는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 불멸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즐겁게 헌납하는 활동이다. 특히 SNS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로 대중들은 많은 정보를 빠르게 접하고, ‘영업’ 활동은 이런 흐름에 맞물려 팬덤의 몸집을 키우는 든든한 발판이 된다.

무엇보다 캐릭터 팬덤 활동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2차 창작’이라는 영업 방식을 통해 작품과 캐릭터의 인지도를 높인다는 점이다. 소비층의 이미지가 강한 팬덤과 창작은 서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 있는 관계지만, 실제로 많은 캐릭터 팬덤은 왕성하 게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림이나 글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영상까지, 다수의 창작물이 팬덤 내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들은 SNS와 같은 개인적인 공간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코믹월드’와 같은 동인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2차 창작물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행사 내의 부스들이 매 회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이는 모습은 이 놀라운 창작 활동의 파급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원작을 기반으로 나름의 상상력과 해석을 더하는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2차 창작’은 팬덤 활동이 단순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중문화에서 파생한 새로운 2차 창작물들은 원작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한 모습과 놀라운 접근성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캐릭터 팬덤의 이 폭발적인 활동은 장르의 규모를 확장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지속력을 가짐으로써 대중의 관심이 식지 않도록 견인한다. 오래된 캐릭터들이 여전히 건재할 수 있는 것은 2차 창작과 장르 파생의 결과물일 것이다. 이는 기존 팬덤의 순기능을 여실히 증명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소비자와 창작자가 공존해 생산성 있는 팬덤 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움직임이다. 팬덤 문화의 의미와 기능은 날이 갈수록 확장하고 또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문화 시장에서 캐릭터 팬덤은 이미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며, 그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지금 시장의 흐름과 트렌드를 뒤바꿀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팬덤을 확보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경쟁력이다. 크고 작은 캐릭터 팬덤들이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캐릭터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팬덤은 믿음직한 소비층이자 작품에 끊임없이 생기를 불어넣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제는 대중 문화 시장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며 긍정적인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 팬덤’에 주목해야 할 때다.

 

 

* 《쿨투라》 2019년 9월호(통권 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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