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제13회 쿨투라 신인상] 당선작 및 심사평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19.09.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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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신인상 당선작 발표

문 화 평 론 부 문
고령 사회의 섹슈얼리티와 비대칭성 김세연

영 화 평 론 부 문
어떤 술래잡기의 기록 양진호

연 극 평 론 부 문
한국 근현대사와 역사극의 재현 장윤정

심 사 위 원
유성호(문학평론가), 김민정(드라마비평가), 손정순(문화평론가)

 

  심사평

  경험적 구체성의 비평

  《쿨투라》에서 비평가 세 분을 신인으로 배출한다. 세대와 지역을 넘어 많은 분들이 투고작을 보내오신 이면에는, 그동안 《쿨투라》가 쌓아온 역량과 그에 대한 신뢰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쿨투라》의 매체적 위상이 제고되는 이러한 순간이 더더욱 균질적이고 지속적인 진경을 얻어 중요한 지표들을 하나 하나 만들어 가리라 생각해본다. 응모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응모된 작품들은 주제 의식과 필치에서 개성적 성취를 보인 경우가 많았는데, 그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김세연, 양진호, 장윤정(가나다순) 씨의 작품에 깊이 주목하였고, 이분들 비평이 완결성과 참신성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하여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김세연 씨의 대중매체 비평은, 최근 방영된 방송 프로그램에서 여성과 남성을 어떻게 선택하고 성격화하는지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논의한 글이다. 가령 대중매체에서 남성은 나이나 외모나 성격 등이 다양하게 검증되고 평가받는 반면, 여성들은 대체로 외모 일색으로 선택되는 흐름을 보인다. 가부장 사회에서 여전히 ‘젊고 예쁜 여성’만이 진정한 여성으로 확인되는 고정된 흐름을 짚어낸 것이다. 잘생김과 못생김의 연기 가능성과 불가능성, ‘아재파탈-아줌돌’의 편차, ‘초연상남-초연하녀’ 커플의 흐름들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 비평문이었다.

  양진호 씨의 영화 비평은, 테리 길리엄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대상으로 하여 그 안에 반영되고 재현된 시대의 환부를 정확하게 짚어낸 글이다. 길리엄은 관객 스스로 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해 판단하게 했다는 점에서 영화와 세계에 대한 가장 무거운 질문을 던진 영화작가이다. 완벽하게 포개진 시선의 고정점에서 이 세계가 말끔하게 가려놓은 뒷면에 생겨난 균열을 발견하고, 그 촉감을 따라 이동하면서 모험의 무대에 서보는 경험을 하게끔 한 것이다. 작품 내적 분석으로부터 영화의 존재 방식에 대한 질문까지 던진 비평인 셈이다.

  장윤정 씨의 연극 비평은, 역사극 세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한국 근현대사가 작가 별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논의하였다. 이 작품들은 각각 전혀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는데, 가령 〈가미카제 아리랑〉은 역사적 사실 전달에 성공한 서정적 드라마이고, 〈세기의 사나이〉는 굵은 근현대사의 맥락 전체를 다루어낸 작품이다. 〈배소고지 이야기〉는 특정한 사건을 집중적으로 극화하여 여성 주의적 시각을 강조하였다. 역사극의 다양한 양상과 특성을 각 작품에 대한 꼼꼼한 리뷰를 통해 제시한 시선과 필치가 단연 돋보였다고 할 수 있다. 세 분 모두 오래도록 쌓아온 시간의 폭과 깊이를 보여 준 사례라 생각되었고, 비평을 해가는 기율과 방법에서 큰 발전이 기대된다고 할 수 있겠다. 모처럼 《쿨투라》가 선정한 이러한 선택이 우리 문화예술의 폭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기를 바란다. 세 분은 저마다 고유한 필력을 자산으로 삼으면서 오랜 학습과 연구 시간을 깊숙이 품고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었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정성을 들인 점도 퍽 긍정적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당선의 기쁨을 함께하지 못한 응모자 여러분의 정진을 기원하면서, 당선자들이 경험적 구체성을 바탕으로 하여 비평가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한 차원 높이 구현해가기를 마음 깊이 기대해 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유성호(문학평론가, 본지 주간),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손정순(문화평론가, 본지 발행인)

 


  당선소감

  문화평론 부문 - 김세연

희미한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기를

  글 쓰는 삶에 대해 생각한 것은 십 년 전이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병을 앓고 있었다. 때가 되면 (당연히) 평론가나 작가로 등단할 줄 알았고, 내로라하는 문화계 인사들과 어울리며 우리나라 평단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 믿었다. 오 년 쯤 지났을 때 나는 예상보다 일이 늦어진다고 생각했다. 공사가 다망하여 글쓰기에 집중하지 못한 탓이라 여겼다. 삼 년이 더 지나자 나는 실패의 경험을 꽤 많이 가진 사람이 되었다. 견고한 자신감에 녹이 슬기 시작했지만 모른 척했다. 이 년쯤 후에는 가끔 스스로를 비난했고, 서른이 넘어가면서 어쩌면 영원히 이 일을 허락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당선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긴 미련을 조금 더 연장하게 되었음을 알았다. 심사자 선생님들의 작은 격려가 나로 하여금 한 번 더 어리석은 꿈을 꾸게 만들었다.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준 《쿨투라》에 누가 되지 않도록 겸손한 자세로 노력할 것이다.

  지난 십 년 간 공수표를 많이도 날렸다. 당선소감에 이름을 넣어주겠노라고 다짐해둔 사람이 무수하다. 이렇게나마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선 가족들. 나의 자존감을 깎아먹지 않는 선에서 질책과 걱정을 늘어놓는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 채윤이와 함께 축배를 들고 싶다. 이들의 기도가 바로 나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다. 장영우 교수님과 이장욱 교수님을 비롯한 동국대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다. 항상 내 글과 사생활을 궁금해 해주는 세화 언니, 갑수 선배, 보해, 장근, 석주에게 고맙다.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난했던 대학원 생활을 버텨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수아, 민정, 현지, 찬송이가 축하해 줄 것 같다. 나의 가장 깊고 어두운 면을 감당해온 친구들에게 오늘만큼은 즐거운 소식을 전할 수 있어 뿌듯하다. 마지막으로 이름이 없던 오래 전의 ‘우리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의 우리를 미워하고 또 그리워한다. 희미한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기를.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앞으로 가리라 믿는다.

 

  영화평론 부문 - 양진호

귀신들을 태운 허름한 배들이 관객들에게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등대지기 역할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며,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라고 소설가 조지 오웰은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그가 봤던 귀신을 쿠엔틴 타란티노와 봉준호, 소노시온의 영화 속에서 보았습니다. 우리의 세상 위로 그들의 카메라가 닿았을 때, 시간은 딱딱한 껍질을 벗고 과거·현재·미래의 경계를 녹여 자신을 ‘세계의 밤’으로 만들었습니다. 귀신들은 나치 잔당을 살해하기도 하고, 끝없이 달리는 열차의 맨 앞 칸을 향해 돌진하기도 하고, 방사능으로 가득 찬 고향 마을에 남겨두고 온 소중한 무엇인가를 찾으러 가기도 하며 자신을 힘껏 부숴버렸습니다. 감독들은 그들의 흔적을 모아 스크린 위에 별자리로 장식해왔습니다. 그리고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던 관객들은 그 별들을 따라 힘겹게 발걸음을 옮겨 왔습니다.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출렁이는 환상의 밤들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관객들에게 무사히 도착하는 배는 극소수이며, 자본가들의 화려한 연회가 개최되는 대형 여객선 같은 블록버스터들이 부두(플랫폼)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저는 밤하늘 깊은 곳에서 데려온 귀신들을 태운 허름한 배들이 관객들에게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등대지기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관객들이 자기가 탈 배를 헛갈리지 않도록 안내하는 역할도 하고 싶습니다. 또한 감독의 항해를 충실하게 기록하는 승무원 역할도 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비평의 즐거움을 알려주신 한양대학교 서경석 교수님, 유성호 교수님, 이재복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지켜봐주고 돌봐주었던 대학원 동료들, 가족들과 함께 오늘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 부족한 글을 선택해주신 《쿨투라》 심사위원 분들과 손정순 대표님께도 진심을 다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연극평론 부문-장윤정

관객과 독자에게 사유의 범위를 확장시켜줄 수 있는 역할

  다양한 리뷰가 등장하는 이 시대에 평론과 평론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기록으로서의 평론 그 이상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생각의 꼬리를 물다보 면 끝에 가 닿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평가하지 않는 평론입니다. 공연에 대한 호불호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다만 평은 무대 위 세상을 무대 밖의 세상과 연결하는 매개가 되어, 관객과 독자에게 사유의 범위를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역할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혹여 미온적인 태도는 아닐는지 간혹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는 중에 받은 《쿨투라》의 수상소식은 매우 감사하고 반가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평론에 대한 불안한 신념을 다독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꾸준히 써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또, 평론과 평론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고 늘 성찰하는 자세를 견지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가르침을 주고 계시는 홍창수 교수님, 처음 평론쓰기를 제안해주시고 틈틈이 가르쳐주신 덕분에 이만큼이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택광 교수님, 민승기 교수님, 두 선생님의 가르침은 제 삶과 글쓰기에 큰 충격과 영향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국 재 선생님, 어린 시절 선생님의 가르침은 아직까지도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연옥 선생님, 장성희 선생님, 안치운 선생님, 김수미 선생님, 불성실한 학생이었기에 쑥스럽지만, 이렇게 인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참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복이 많은 덕에 진심이 오가는 동료들이 곁에 있습니다. 덕분에 위안도 얻고 많은 것을 보고 배웁니다. 그 동료들과 선후배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감사한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그저 묵묵히 믿어주시는 두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경제적이지 않은 일을 지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늘 두 분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기에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부터 감사한 삶입니다. 훗날 이 모든 사랑에 꼭 보답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동생의 가정과 이모를 비롯한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마음으로 아끼는 이에게도 모두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쿨투라》 2019년 9월호(통권 6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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