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Theme] 출판 2.0 - 출판 2.0 제안될 수 있는가
[11월 Theme] 출판 2.0 - 출판 2.0 제안될 수 있는가
  • 김미향(출판평론가),허희(문학평론가),장동석(문학평론가),김성신(사회,출판평론가)
  • 승인 2019.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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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다들 바쁘신 평론가분들이 한자리에 모였네요. 저는 오늘 우리가 나눌 주제를 ‘출판 2.0’이라는 키워드로 정해보았습니다. 현재 한국 출판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말은 아니죠. 하지만 최근 출판업계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단순히 ‘불황’이라는 단어로 지금의 상황을 봐도 되는가? 아니면, 출판의 산업 붕괴 징조로 봐야 하느냐? 이런 이야기가 나올 만큼 심각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도 이런 상황에 대해 진단만 할 것이 아니라, 출판에 새로운 가능성 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양상으로 한국의 출판 산업이 진화하게 될 것인지 함께 논의해보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장동석 한국의 출판 산업의 미래에 대한 큰 가닥과 방향을 제시해볼 수 있겠네요.

 

출판 2.0, 제안될 수 있는가

김성신 그렇습니다. 그래서 ‘출판 2.0’이라는, 선언적 의미의 키워드를 제안해보는 것입니다. 먼저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출판 2.0, 제안될 수 있는가’ 하는 주제를 가지고 좌담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먼저 우리 중에 가장 젊고, 또 출판 현장의 최전선에 서 있는 김미향 선생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미향 새로운 출판으로서의 ‘출판 2.0’을 제안하는 건 독자가 줄어든 것에 원인이 있습니다. 저는 뭐니 뭐니 해도 독자가 줄어든 가장 큰 원인은 최근의 디지털 안정화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이 급격하게 변했어요. 지금은 하이브리드 읽기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국면에서 우리 출판도 더 이상 전통적인 방식으로서의 출판, 과거의 출판으로는 독자들을 만나기가 더욱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허희 김미향 선생님 말씀처럼, 출판 2.0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독자를 어떻게 늘릴 것이냐 하는 출판계의 고민이 담긴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잃어버린 독자를 되찾자는 소극적인 의미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에는 수동적 독자였던 사람들을 능동적 독자라는 적극적 읽기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 새로운 출판 플랫폼의 구축과 상호 작용이 출판 2.0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장동석 출판 2.0을 논하기에 앞서 현실을 진단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오래전부터 이야기된 것이지만 지금 출판은 산업으로서 면모를 잃어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10년 전 2009년 산업은행 부설 산은경제연구소가 <산업별 생산성 분석 및 기업여신 방향성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출판업을 '좀비산업'으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좀비산업이란 부채에 의존할 뿐 아니라 그마저도 극히 비효율적이어서, 결국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라는 뜻이죠.

당시 광업과 봉제 의복 및 모피제품, 펄프, 종이 및 종이제품 등이 좀비산업의 ‘징후’가 확연한 산업으로 분류되었는데, 기가 막힌 것은 출판, 인쇄, 및 기록 매체 산업은 확연히 좀비산업으로 ‘식별’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만하면 한 나라의 지식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똘똘 뭉친 출판인들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는 일이죠. 그러나 출판계는 좀비산업이라는 오명을 쓰고서도 지난 10년간 별다른 자성의 움직임이 없습니다. 난마처럼 얽힌 출판 유통 구조의 혁신을 벌써 오래전부터 외치면서도 누구 하나 나서지 않고 있고요. 전자책을 비롯해서 시장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도 팔짱 끼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있는 게 오늘 우리 출판계의 현실입니다.

김성신 뼈아픈 지적입니다.

장동석 10년 전 진단이 맞다면, 지금 출판은 좀비 수준도 아니라고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걸 극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출판사 수의 급격한 증가입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출판사 수는 46,982개였습니다. 2015년 50,178개, 2016년 53,574개로 늘었고, 2017년 출판사 수는 57,153개로 늘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 출판사 수는 대략 6만 1,000여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5-6년 사이에 가파르게 늘어난 셈이죠.

늘어난 대부분의 출판사는 1인 출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들은 불황 극복법 중 가장 손쉽게 쓸 수 있는 조치는 인원을 줄이는 겁니다. 이때 1순위는 중견 편집자, 영업자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평생 출판 일을 했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결국 출판사인데, 1인 출판사의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알려진 자료가 없지만 100곳 문을 열면 1-2곳 성공할까요. 최근 1인 출판의 가능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아주 낮다는 점에서,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출판의 위기는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제가 될 필요는 없지만, 다양한 위기 징후를 바탕으로 출판 2.0이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성신 장동석 선생의 표현대로 한국의 출판계가 좀비산업이라는 오명을 쓰고서도 지난 10년간 별다른 자성의 움직임이 없다는 점에 대해 아프게 공감합니다. 저는 현실적인 시각에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제가 요즘 자주 하는 비유인데요. 저는 ‘화전(火田)’과도 같은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화전은 휴경지를 새로 경작할 때 불을 놓아 야초나 잡목을 태워버리는 방식의 농법이잖아요. 화전을 개척하면 그 동안에 쌓였던 부식물과 소각에 의해 생기는 재가 식물의 영양분으로 작용해서 몇 해 동안은 작물의 생육이 양호하죠. 이처럼 부분적인 개선으로 생존을 모색할 수 없다면, 화전과 같은, ‘전면적인 변화’라는 차원에서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한국 출판의 상황을 제발 ‘불황’이라고 부르지 말자고 제안하고 싶어요. 왜냐면 ‘불황’은 ‘호황’을 전제하는 단어잖아요. 그래서 마치 이 불황을 참고 견디기만 하면 언젠가는 호황이 온다는 식의 현실 인식을 관습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 출판산업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가령 ‘산업 붕괴 상황’이라고 명명하면 확실히 경각심을 가질 수 있고 그를 위해 출판사들이 대책을 위한 현실적인 논의와 실천을 시작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출판 2.0’이라는 개념이 현재로선 뭔가 혁명적인 버전업이나, 그만한 변화가 있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명명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혁명적인 조치와 변화가 분명히 필요하다는 ‘의지’를 선언하는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미향 현실적인 논의와 실천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저는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김성신 저는 지난 8월 디스커버21, 이와나미를 포함한 일본의 대형 출판사들의 대표와 실무책임자급들을 만났는데요. 일본 출판 산업의 변화를 계량화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일단 지난 20년간 책의 총 판매 부수의 증감 그래프가 한국과 일본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양상이었습니다. 1996년에 사상 최고의 판매 부수를 기록했고,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작년에는 1996년 최고치의 딱 절반의 수준이 되었더라고요. 한국도 이 양상이 거의 비슷합니다.

그래서 일본 출판사들에게 대책과 방안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훨씬 고차원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한껏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이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이 바로 가장 놀라운 점이었습니다. 여러 출판사들이 거의 같은 전략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게 고작 ‘해외저작권 판매에 더욱 주력하겠다’, ‘e-Book시장에 적절한 대응하려고 한다’ 이 정도뿐이었다는 것입니다.

허희 ‘대책’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많이 부족하네요.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요?

김성신 저도 이상해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현상을 해석할 수 있는 딱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시장 사이즈’였는데요. 우리는 인구가 5천 1백만 정도죠. 일본은 1억 2천 6백만 정도 되고요. 두 배가 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 비해 독서율도 높은 편이고요. 즉, 다시 말해서, 일본 출판은 지표는 나쁘지만 ‘아직 숨이 넘어갈 정도는 아닌 상태’ 라는 것입니다.

어떤 산업구조가 혁명적인 변화를 한다는 것은 이전의 방식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정도가 되어야 가능하겠죠. 이런 면에서 볼 때, 한국의 출판 산업이 일본보다 선제적으로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먼저 죽게 생겼으니까, 살길도 먼저 모색해야 한다는 거죠. 이 사례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런 건데요. 지금의 시점에서는 우리 출판 산업이 벤치 마킹을 할 수 있는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서입니다. 이런 인식을 배경으로, 저는 ‘출판 2.0’이 라는 개념이, 비평용어로서가 아니라, 변화를 추동 하는 ‘슬로건’으로서 효용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동석 먼저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살기 위한 방안도 먼저 만들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 국면에서 생존의 방법을 잘 찾아내기만 한다면, 그 이후엔 한국 출판이 세계 출판 시장에서 확실한 경쟁력과 우위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란 뜻이 되네요.

출판 1.0과 2.0은 무엇이 다른가

김성신 이 지점에서 그렇다면 ‘출판 1.0과 2.0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김미향 앞서 ‘출판 2.0’을 제안하는 건 독자가 줄어든 원인 때문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사실 국민 독서량이 줄었다는 이야기가 들린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다만 지역 중소서점 수가 급감하기 시작하면서 독자들이 신간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가 점점 어려워졌죠. 2012년 10월 25일, 문화체육 관광방송통신위원회 조해진(새누리당) 의원이 문화 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15년간 동네 서점 수 변화추이' 자료를 분석한 결과, 1995년 5,449개였던 동네 서점 수가 2012년 당시 1,723개로, 무려 68.4%(3,726개)나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5년 사이 동네 서점 수가 3분의 1로 줄면서 책 판매는 더욱더 요원해졌을 것입니다. 게다가 온라인서점의 양대산맥인 알라딘과 예스 24가 각각 2008년, 2010년 중고숍 서비스를 시작하며 촉발된 대형 중고책 시장은 2011년 알라딘 종로점을 필두로 세를 확장하기 시작해 온오프라인 재판매 시장이 활성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가속화되면서 2017년에 이르자 결국 주요 출판사의 매출액은 1.4% 감소하고, 영업이익은 20% 감소했죠. “단군 이래 불황”을 부르짖는 출판의 위기가 날로 가속화되고 있는 거죠.

『2017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1년간 (2016년 10월∼2017년 9월) 종이책을 읽은 한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은 59.5%, 초중고 학생은 91.7% 입니다. 2015년에 비해 성인은 5.4%, 초중고 학생 은 3.2% 감소했죠. 그런데 종이책과 전자책을 합한 종합 독서율은 성인 62.3% 학생 93.2%로, 감 소율은 2015년 대비 성인 5.1%, 학생 2.5%입니다.

왜 감소율이 소폭 줄었을까요? 전자책 독서율이 성인 14.1%, 학생 29.8%로 2년 전 성인 10.2%, 학생 27.1%보다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전반적으로 독서율이 감소하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통계와 시대적 상황을 종합해 유추해볼 수 있는 점은 시대적으로 디지털 안정화에 접어들면서 콘텐츠 소비 패턴이 변했다는 겁니다. 우리 출판이 변화해야 할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장동석 출판 현장에서 일해보신 분들은 다 공감하시겠지만, 책을 만드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기술적 요소들이 변화, 발전하면서 일의 효율과 편의가 향상되었을 뿐,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일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죠. 다만 채널이 어떤 분야에서는 분화되고, 어떤 분야에서는 집중됨으로써 나타난 다양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마케팅과 관련한 모든 채널은 이제 온라인 서점 중심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온라인 서점의 눈치를 보지 않는 출판사가 없다고 할 정도로 그 영향력은 막강해졌습니다. 반면 역시 마케팅 측면에서 다양하게 분화되고 소구점도 제각각인 SNS를 활용하지 못하면 출판사들은 홍보의 채널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두 가지 모두 기술의 변화와 발전에 따른 결과인데, 출판사들은 이 전선의 확대가 가져온 상황 변화에 충분히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1차적으로 출판 1.0에서 2.0으로의 변화는 기술의 변화와 발전에 따른 출판들의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책과 출판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독자들도 중요한데, 독자들의 변화도 이런 상황 속에서 같이 인식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허희 출판 생태계의 순환―유통에 포인트를 두고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대형) 서점 중심의 유통 체계를 출판 1.0, 플랫폼 중심의 유통 체계를 출판 2.0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종이책 위주의 콘텐츠가 오디오북과 멀티미디어 기능을 구현한 전자책 등으로 다변화되면서 그에 걸맞은 플랫폼에 대한 요구도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물론 오디오북과 전자책 시장 규모는 여전히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웹툰·웹소설 시장은 점점 성장하고 있지요. 특기할만 한 점은 웹툰·웹소설이 독자와 작가를 연결시키고, 독자에서 작가로의 변신을 권장하는 콘텐츠 플랫폼의 역할을 겸한다는 것입니다.

출판 2.0을 비전화하려면 여기에서 활용한 방법을 다각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몇몇 출판사는 자신들의 충성 독자 확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좋은 책을 출간하기만 하면 독자가 생긴다는 의식이 출판 1.0의 것이라면, 여러분이 읽기를 바라는 책이 무엇인지 의견을 수렴하고 그것을 출간함으로써 독자와의 신뢰 관계를 꾸준히 이어간다는 의식은 출판 2.0의 것입니다. ‘믿고 보는 출판사’의 브랜드 가치 창출은 SNS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고 이를 이용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책을 내도 입소문이 나지 않으면 그 책은 소리 소문 없이 묻혀버리기 때문이지요. 힘들고 귀찮을 수도 있지만 출판사는 SNS 환경에 하루빨리 적응해 독자와의 접점을 모색해야 합니다. 출판사와 독자가 비즈니스적 관계에 그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출판 2.0의 테마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김성신 저는 ‘저자 관리’가 출판 2.0의 핵심 영역이라고 확신합니다. 현재 한국의 출판사 업무영역에서 가장 낙후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가령 저자에게 지불해야할 인세나 꼬박꼬박 보고하고, 가끔 저자에게 연락해서 근황 묻거나 만나서, 자기 출판사에게 저자의 호의가 유지되도록 하는 정도를 ‘저자 관리’라고 합니다. 이 업무를 독립 부서로 운영하는 곳도 없지요. 그런데 저는 이 저자 관리가 출판산업을 2.0으로 버전업 시켜줄 매우 중요한 핵심 업무가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1.0시대의 출판이 책을 기획하는 것이었다면, 출판 2.0시대에는 저자를 기획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이게 어떤 확장성을 가지나 하면, 저술가가 출판을 기반으로 대중들의 신뢰를 받는 하나의 브랜드로 기능하게 되면, 그 브랜드 가치와 영향력을 유지하고 확장시켜서 2차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는데, 출판이 이 확장된 비즈니스에 적극 가담하거나 주도하는 방식이 가능해질 것이란 겁니다.

가령 제가 출판인으로서 한 권의 책만을 기획한다고 설정하면, 그 책 판매 수입밖엔 만들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치 연예앤터테인먼트 회사들처럼 저자를 기획한다면, ‘저자라는 브랜드’를 활용한 모든 비즈니스에서 동업자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책 판매 이외의 아주 다양한 분야의 산업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를 출판 산업 안으로 끌어올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김미향 출판을 기반으로 저술가의 2차 저작권을 아주 크게 확장할 수 있겠네요.

김성신 연예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가수의 에이전트 역할을 한다고 음반 판매 수입으로만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온갖 비즈니스를 다 구상해볼 수 있죠. 구체적인 예로서, 출판을 기반으로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는 미용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런칭했다고 가정하면, 이 미용 브랜드를 전 세계에 저작권 판매 할 수 있거든요.

지금 K-POP 등을 통해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전 세계 젊은이들과 청년들에게 말도 못하게 좋거든요. 그런 나라의 세련된 미용 브랜드라면 엄청난 경쟁력이 있지요. 이런 브랜드도 출판을 기반으로 충분히 브랜드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출판의 ‘저자 관리’ 업무를 거의 극단적 차원까지 확장시킨 ‘저술가 연예엔터테인먼트’라는 개념은, 출판 산업의 기반을 혁명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허희 말씀하시는 대로 출판이 진화한다면, 출판 산업의 규모가 정말 크게 확장되겠네요. 책 판매수입뿐이 아니라 미디어 콘텐츠 산업을 비롯해 온갖 산업에서 출판 산업 쪽으로 자금이 유입될 수도 있겠고요. 낙관적이면서도 혁명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출판의 현황 및 특징

김성신 그럼 여기서 ‘현대 출판의 현황 및 특징’을 한번 이야기 나눠보면 어떨까요?

김미향 앞서 독자의 콘텐츠 소비 패턴이 변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의 출판시장을 돌아보려면 독자들이 지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읽기 시대에서 독자들은 종이책만 읽지 않아요. 그들은 활자를 읽습니다. 특히 시장에서 바이럴력과 구매력을 갖춘 밀레니얼 세대들은 더이상 소유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독과 대여 서비스를 즐기고 있어요. 이들이 구독을 선호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선 세대적 특징에 주목해야 합니다.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고용 감소를 몸소 겪은 세대이지요. 따라서 이전 세대보다 평균 소득은 낮은데 학자금 대출이라는 어마어마한 부채를 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결혼보다는 비혼, 매매보다는 임대, 광고 등의 전통적인 마케팅보다는 개인적 정보를 더 신뢰합니다. 2001년, 『소유의 종말』(민음사)을 통해 소유의 시대는 끝났으며, 이제는 물건을 빌려 쓰고, 체험까지 돈을 주고 사는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한 제러미 리프킨의 주장이 유효한 거죠. 이제 밀레니얼 세대는 대여하고 구독합니다.

김성신 음악이나 영화를 주로 스트리밍의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소유가 아니라 소비를 하는 거죠. 책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단 말씀이군요.

김미향 책값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선호하는 것은 신간을 ‘사는’ 것이 아니라 ‘대여하는’ 것인데요. 현재 온라인서점에서 신간을 90일 간 대여하면 종이책 정가의 반값보다도 더 싸게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스24 북클럽의 요금제는 월 5,500원의 55 요금제와 월 7,700원의 77 요금제 두 가지로 운영되지요. 국내 전자책 구독 서비스 요금제 중 최저가입니다. 한 달에 5,500원만 내면 권 수 제한 없이 전자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리디북스(https://ridibooks.com)’의 리디 셀렉트는 월 6,500원, ‘밀리의 서재(https://www.millie.co.kr)'는 월 9,900원만 내면 되지요. 커피 한두 잔의 값으로 한 달간 무제한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데에 이들은 열광합니다.

특히 밀리의 서재의 경우 유명 배우를 내세운 리딩북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금은 과거와는 달리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독자들은 이제 더 이상 책으로 만족하지 않아요. 우리 출판이 뼈아프게 인식해야 할 것 은 이제 책은 그저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겁니다. 양질의 정보는 각종 뉴스레터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어요.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면서 출판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저만 해도 해외에서 바이럴되었던 디자인 아티클을 번역해 매주 보내주는 ‘REASIGN’, 브랜드 및 트렌드 스토리를 엄선해 보내주는 ‘생각노트’, 매일 아침 하루 동안 알아야 할 비즈니스 뉴스를 보내주는 ‘the hustle’,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시사 메일링 ‘뉴닉’, 스타트업의 한 주 뉴스를 보내주는 ‘스타트업 위클리’, 자기만의 시각으로 책을 큐레이션 한 마리아 포포바의 아티클 ‘Brain Pickings by Maria Popova’, 매일 받는 경제 뉴스 요약 노트 ‘Morning Brew’, 음악과 이야기를 보내주는 ‘oddity station’, 창작자 커뮤니티로서의 고민을 담아내는 ‘안전가옥’, 사실 전달을 넘어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시해 보여주는 ‘북저널리즘’,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퍼블리’ 등을 받아보는데, 콘텐츠가 아주 좋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밀레니얼 세대들은 신간은 사지 않을지라도 이렇듯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로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디지털 콘텐츠의 장점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게다가 이제 컴퓨터도 필요 없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누구나 디지털 콘텐츠에 편하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이외에 이들이 구독하는 서비스는 플랫폼과 관련이 있습니다. 종이 신문을 집으로 받아보던 1세대 구독 서비스가 아닙니다. 2세대 구독 서비스는 디지털 콘텐츠를 거래합니다. 디지털 콘텐츠는 애초부터 아날로그 상품과는 다른 유통과 구조, 가격이 특징입니다. 멜론과 넷플릭스의 사례를 볼까요? 이들 월정액 비즈니스는 디지털 콘텐츠를 스트리밍하는 서비스로 돈을 법니다. 넷플릭스의 경우 이미 2017년 매출이 약 116억 9,271만 달러였다네요. 지난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무려 35% 수준입니다. 이 명확한 수치가 가히 열풍이나 다름없는 사용자들의 반응을 일러줍니다. 우리 독자들은 이미 이런 서비스를 수용하고,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밀리의 서재만 해도 이미 한 해 동안 약 1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밀리의 서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처럼 자사에서만 구독 가능한 오리지널 소설도 출시했습니다.

허희 김미향 선생님께서 워낙 잘 정리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하나만 첨언하고자 합니다. 무엇인가 하면 책의 바다에서 필요한 정보를 에디팅해주는 역할의 증대입니다. 출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출간된 책들의 가치를 재인식―재발견하는 일 또한 지금의 출판이 관심을 둬야 하는 영역입니다. 예전에는 주요 신문 북섹션에서 소개하면 책 판매량이 느는 효과가 있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신문 독자의 이탈과 더불어 현재 그런 요행은 기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출판사들은 이제 유명인이 나오는 유튜브 채널에 많은 광고료를 지불하고 판매량이 오르기를 바라고 있지요. 유명해서 유명해지는 광고 흐름에 편승할 것인가, 아니면 출판 2.0에 어울리는 책 에디팅을 선보일 것인가. 현대 출판은 이와 같은 기로에 서 있다고 봅니다.

장동석 저는 앞서도 그랬지만, 이야기를 1인 출판사에 조금 집중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인 출판사는 출판 불황의 산물이면서도, 한편에서는 출판의 가능성을 벼리는 하나의 기회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최근 재기발랄한 기획으로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1인 출판사들이 제법 등장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몇 사례로 1인 출판이 출판의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숱한 1인 출판사들은 개점휴업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1인 출판사와 관련한 혹은 소규모 출판사들과 관련한 외국 사례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문해서 외국 사례를 많이,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영미권 출판사들은 이미 자본의 구조 속에서 인수합병이 무수하게 이뤄집니다. 덩치를 키운 출판그룹들은 세계 시장을 호령하죠.

반면 독일 등 몇몇 유럽의 출판사들은 인수 합병에 있어서도 새로운 가치를 추구합니다. 가능성 있는 1인이나 소규모 출판사 인력과 시스템까지 받아들임으로써 그 출판사의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다. 인수합병이 자유롭지도 않지만, 어떤 출판사가 작은 출판사를 인수할 때 브랜드와 콘텐츠만 쏙 빼오곤 하죠. 상생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쓰는 곳이 출판계인데, 요즘은 그런 행동들을 찾을 수 없어 아쉽습니다. 이는 결국 출판의 궁극적인 목적인 ‘다양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성신 장동석 선생께서 지적하신 ‘책의 생태계, 즉 다양성’이 유지되어야 하는 출판 산업의 목적에 대해서도 적극 공감합니다. 제가 제안하는 ‘저술가 연예엔터테인먼트’ 역시 ‘책의 다양성 유지’의 문제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최종적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제가 제안하고 있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출판의 목적이어야 할 책을, 도구화 수단화 시키는 것일 수 있거든요. 출판 산업의 경제적 안정성은 확보할 수 있지만, 자칫 종의 다양성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약점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법률이나 제도를 통해 그런 부작용들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최근 부쩍 많아진 1인 독립출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이 출판사들은 대표가 결정하면 사업의 방식을 곧 바로 바꿀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저술가 연예엔터테인먼트’로서의 출판 2.0 시스템에 가장 빨리 적응하고, 실적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1인 출판이라는 거죠.

세계가 변화하는 속도가 워낙 빠르게 때문에 그 변화 속도에 맞추는 것이 출판에 있어서도 가장 필요한 생존의 기술이잖아요. 1인 출판은 그 어떤 변화 속도에도 맞출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출판 산업을 이끌어 나갈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까운 미래의 출판사는, 여러 명의 인원이 하나의 회사를 구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편집, 홍보, 마케팅, 저자 관리, 기획 등등 출판에 필요한 각자의 주특기를 하나씩 가진 전문가들이 연대의 방식으로 이합집산하면서 프로젝트별로 모듈을 구성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 권의 책이나, 한 사람의 저자를 기획하는 프로젝트별로 인원이 계속 재구성되는 방식이죠. 연대의 방식에 익숙한 30대 이하 세대에겐 충분히 실현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미향 저희 세대가 한국 출판 산업의 주도권을 빨리 가져와야겠네요.(웃음)

김성신 농담이 아니라 정말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출판 산업이 새로운 시대적 요구나 조류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세대 주도권이 너무 늦게 넘어가고 있다는 점에도 그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출판 산업이 젊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출판 2.0’이라는 것, 즉 출판 산업의 혁명적 변화가 실현되기 위해서 어떤 점들을 검토해야 할 지를 한번 살펴보죠.

허희 출판 2.0이라는 용어가 마음에 안 든다면 다르게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출판 역시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시대와 조응해 혁신해나가야 한다는 테제만은 널리 공유되기를 바랍니다. 기술적인 면은 논의가 어느 정도 됐으니, 저는 출판 2.0의 실질적 담지자인 출판인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특히 이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서요. 여기에서 제가 언급하는 출판인은 편집자를 포함해, 저자와 번역자 등 책의 생태계에 속한 모든 이들을 포괄합니다.

(예외가 있긴 합니다만) 저자 인세는 책값의 10%, 번역자 번역료는 (염가로) 고정, 편집자 월급은 박봉입니다. 우스갯소리처럼 말했지만 거짓말은 아닙니다. 출판 2.0은 테크놀로지의 전환과 연동하지만 동시에 이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이냐에 따라 그 실현 수준이 달라질 것입니다. 합리적인 보상―상식적인 노동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여기에 모여들 리가 없으니까요.

장동석 이러한 상황에 대한 출판사의 현실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새로운 시대의 출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각이 필요한데, 여전히 우리는 종이책의 가치에만 집중합니다. 물론 규모 면에서 새로운 연구와 투자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출판 단체들이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출판 2.0으로 규정될 필요는 없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연구하고, 그 가치를 전파 하고,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결국 단체들이 나서줘야 합니다. 지금 출판 단체들의 연구 기능은 거의 제로라고 할 수 있어요. 출판 단체는 아니지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생길 때 가장 많은 요구가 ‘출판 통계’를 정확히 내달라는 것이었는데, 아직도 우리는 납본 통계조차 정확하지 않습니다.

출판사들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하겠죠. 홍보 채널이 페이스북에서 유튜브로 넘어갔다고 너도나도 유튜브 채널을 만듭니다. 하지만 구독자 수가 출판사 직원만큼도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20년 전 너도나도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 홈페이지에 누가 들어가던가요. SNS도 그렇습 니다. 독자의 니즈를 찾아가는 타깃팅은 가능할지 몰라도, 그건 그저 출판사의 생각일 뿐일 수도 있어요. 독자의 니즈는 다른 곳에 있으니까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김성신 책을 목적으로 기획을 하는 것과 책을 통해 저자를 기획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기획력을 필요로 합니다. 저자를 하나의 브랜드로 놓고 본다면, 브랜드는 일종의 콘텐츠거든요. 그래서 책이라는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방식의 상상력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영역으로 확장되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비유하자면 편집증적이기 보단 분열증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봤을 땐 출판의 세계가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저는 지금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출판 산업의 붕괴조짐’도 단순히 문화적 퇴행이기보다는 일종의 진화적 양상이라고 봅니다. 처음 언급했던 ‘화전(火田)’처럼 바닥을 짚는 순간부터 성장의 반동 에너지를 크게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재수 없게도 ‘붕괴’를 언급했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극히 낙관적이라는 겁니다.

출판은 인간의 지적 가치가 언어로 기록해 유통하고 저장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즉 인간의 문명 이 사라지기 전까지 없어질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산업 구조에 조정이 필요하다는 사인이 온 것뿐이죠. 출판과 출판 산업은 하나의 개념이 아닙니다. 지금의 산업은 붕괴될 수 있어도 출판은 없어질 수 없거든요. MP3가 나와서 레코드사는 거의 다 망했지만 그렇다고 대중음악이 사라졌나요? 레코드사가 지배하던 세상보다 지금의 한국 대중음악 시장이 아마 천 배는 더 커졌을 겁니다. 저는 출판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갈 것이라고 봅니다.

김미향 이제는 플랫폼과 독자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종이책 판매가 줄었다는 걱정만 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다시 독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출판인들의 마인드 전환이 필요합니다. 종이책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활자(콘텐츠)를 판다는 마인드로 태세를 전환해야 해요. 4차산업혁명으로 위시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에 접어들면서 오히려 우리는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직접 독자에게 책을 전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는 달라진 환경이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방증이지요.

웹과 모바일 기반에서의 디지털 퍼블리싱은 새로운 출판 네트워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저자, 출판사, 서점, 플랫폼, 독자는 상호작용을 통해 전혀 다른 출판의 모델을 만들어냅니다. 브런치의 콘텐츠들이 종이책이 되고 종이책은 다시 브런치 내에서 홍보되는 브런치 모델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지요. 이외에도 앞서 말한 뉴스레터 형식의 콘텐츠 판매,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 오디오북 출판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저런 장르와 미디어가 융합된 하이브리드 콘텐츠, 종이책 또는 디지털 콘텐츠로서의 프리미엄 모델도 노려볼 만합니다.

‘그 다음’의 출판 방식은

김성신 이제 오늘의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 볼까 합니다. 오늘 이 자리의 모인 우리 네 사람의 공통된 의견은, 한국의 출판 산업은 혁명적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 다음’의 출판 방식은 구체적으로 어떠해야 할까요?

허희 저는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책을 내는 ‘셀프 퍼블리싱’(self-publishing)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벌써 웹툰·웹소설 작가들은 이렇게 하고 있기도 하지요. 예전에는 ‘작가-출판사-유통사’가 당연한 고리였다면, ‘작가-유통사’의 고리가 당연해질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겁니다. 그럼 오늘날 화두로 떠오른 책 대여 시스템의 운영도 훨씬 간명해지겠지요.

한데 다르게 보면 이는 다음과 같은 숙제를 남깁니다. ‘누가 유통 시장의 공룡이 될 것인가? 그 공룡이 폭주하지 않게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 자본의 논리를 체화한 유통 시장이 자본의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견제 장치 역시 ‘그 다음’의 출판 방식을 구상하는 시기에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장동석 출판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가능성에 대해, 저는 독자들의 변화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다매체 사회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다매체 사회였는데, 그 경쟁력이 책이 다소 앞섰던 것뿐이죠. 지금은 확실히 다매체 사회이고, 책의 경쟁력은 이제 바닥입니다. 그렇다면 다매체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밖에는 없겠죠. 저는 SNS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들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영화나 드라마가 책, 광의로는 텍스트에 기반하고 있다고 출판계 사람들은 자랑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죠.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고 영화나 드라마만 봅니다. 그렇다면 영화나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책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 저는 그걸 ‘책으로 돌아갈 수 있는 퇴로’라고 보통 표현하는데, 그걸 연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술관에서 고흐 전시를 보고 마음만 흡족해 할 것이 아니라 텍스트의 향연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죠. 오래된 노래지만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라는 노래에서 <천일야화>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걸 누가 해줄까요. 경계를 허무는 독서, 그것을 가능케 하는 출판의 역할, 저는 그것이 다양한 SNS에도 적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미향 제가 올해 서울국제도서전 콘퍼런스에서도 비슷한 발제를 한 적이 있습니다만 제가 특히 주목하는 디지털 콘텐츠 구독 모델은 ‘퍼블리’와 ‘북저널리즘’입니다. 이들은 디지털 출판사 및 콘텐츠 창작자로서 기능합니다. 자사의 홈페이지에서 생산한 콘텐츠들을 올리고 콘텐츠들을 편집하고 기존 종이책을 큐레이션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지요. 자사의 플랫폼 내에서 검증받은 콘텐츠들은 좀더 많은 독자에게 읽히기 위해 종이책으로 펴내고 있습니다.

퍼블리의 경우 멤버십 유료결제 고객 주간 성장률은 5.1%, 유료결제 고객이 재결제하는 비율은 85%라고 합니다. 스위스의 금융기관 크레디스위스는 2015년 474조 원이었던 세계 구독경제 시장 규모가 2020년에 는 60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요. 앞서 말한 구독모델도 새로운 실험이 될 수 있겠지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면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쿠키, 원두, 면도기, 그림까지 정기 배송이 가능한 시대 아닙니까.

정리하자면 이제 출판사도 콘텐츠의 생산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자사의 브랜딩을 하고 스토리로 독자를 유혹해야 합니다. 소비를 주도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정보’ 즉 콘텐츠와 스토리를 중심으로 지갑을 열기 때문이지요. 혹자는 밀레니얼 세대인 독자들에 맞추다 책의 본질을 놓칠지도 모른다고 걱정합니다만 그러니 더더욱, 급변하는 시대일수록 정밀하게, 독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야 합니다. 당연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출판은 곧 콘텐츠 산업이라는 것이겠고요.

김성신 저는 한국 출판 산업의 혁명적 변화는, 이제 타진이 아니라, 의지로 작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이 거대한 변화는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하겠지만, 대신 성공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나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출판 산업이 양과 질 모든 면에서 크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재편 이후의 출판 산업은 다시 미디어 콘텐츠 산업의 중심 허브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니 충분히 의지를 가져볼 만하겠죠.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쿨투라》 2019년 11월호(통권 6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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