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새로운 한국영화들을 발견, 아시아영화의 성장 가능성을 높였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새로운 한국영화들을 발견, 아시아영화의 성장 가능성을 높였다
  • 손정순(본지 편집인)
  • 승인 2019.11.0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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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폐막작 <윤희에게>(감독 임대형) 상영을 끝으로 열흘 간의 영화 축제는 막을 내렸다. 본지의 영화 담당 기자와 에디터는 개막부터 폐막까지 부산영화제 현장에 있었다. 올해는 <더 킹>의 감독과 티모시 샬라메의 내한으로 더없이 뜨거웠지만, 그 외에도 실험적이고 흥미로운 다양한 작품들의 관람과 함께 그를 연출한 감독과 출연 배우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관객과의 대화(GV), 오픈 토크 등이 영화팬들을 들뜨게 하였다.

카자흐스탄과 일본의 합작 영화인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감독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리사 타케바)을 시작으로 올해 영화제는 지난 3일부터 열흘 동안 부산 6개 극장의 37개 스크린을 통해 85개국의 영화 299편을 상영했다. 이 중 월드 프리미어 118편,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27편 등으로 전체 상영작 절반 가량이 첫 공개 작품으로 채워졌다. 저마다 다양한 빛과 색깔을 지닌 영화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설렌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폐막 작을 비롯한 <엘렉트릭 걸>, <보이스>, <종말>, <엑시트>, <존 덴버>, <개는 바지를 입지 않는다>, <갈망>, <남매의 여름밤>, <시빌>, <화이트 라이>,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더 킹: 헨리 5세>, <99개의 노래>, <두 교황>, <잔 다르크>, <당신 다리 사이의 악마>, <롬>, <하이파 거리> 등 30편의 영화를 관람했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의미 있게 관람한 영화 <시빌>, <잔 다르크> 등을 한국어 자막으로 다시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하루 3-4편 영화를 관람하고, 늦은 밤까지 삼삼오오 영화인들과 모여, 그날 본 영화와 프로그램 을 이야기하며,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시간들은 참으로 소중했다. 그리고 인상 깊게 본 영화가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될 때에는 직접 영화에 참여한 스탭이라도 된 듯 뿌듯했다.  

그중 올해 부산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부문에 초청된 윤단비 감독의 가족영화 <남매의 여름밤>과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새로운 한국영화의 발견이라고 할 만했다. 제목에서 연상되듯 어느 평범한 남매가 여름방학 기간에 겪는 일상의 이야기를 다룬 <남매의 여름밤>은 아이들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가족의 민낯, 어른들의 지난한 가족 갈등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7기 졸업작품인 <남매의 여름밤>은 영화제 기간 내내 관객의 열띤 응원에 힘입어 넷팩상(아시아영화진흥기구, NETPAC)과 KTH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시민평론가상 등 4관왕을 수상했다. 지난해 <벌새>(2018) 에 버금가는 수작, <남매의 여름밤>이다. 김초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갑작스럽게 일을 잃은 영화 프로듀서 ‘찬실’이 도시 외곽의 작은 방에 세 들어 살면서 겪는 사건들을 그린 작품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 시상식에서 KBS독립영화상과 CGV아트하우스상, 한국영 화감독조합상 등 3관왕을 거머쥐었다. 

CGV아트하우스상은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된 한국독립장편영화 가운데 소재, 주제, 형식 면에서 참신하고 도전적인 시도를 보여준 작품에 수여된다. 수상작에는 1000만원의 개봉 지원금과 마케팅 현물 지원이 주어진다. 2011년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을 시작으로 <지슬>, <한공주>, <소공녀> 등 유수의 작품들이 역대 수상작으로 선정돼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또한 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만나는 제24회 BIFF 뉴커런츠 수상작 <하이파 거리>(짠 탱 휘)와 <롬>(모하나드 하이얄)을 폐막일인 12일 여성발행인들과 함께 단체 관람했다. 심사위원장 마이크 피기스가 <롬>에 대해 “영화에 압도돼 내 기운이 뺏길 정도였다”고 극찬했듯이 짠 탱 휘 감독은 배우의 훌륭한 연기와 빼어난 카메라 움직임을 이끌었다. 또 피기스 심사위원장은 <하이 파 거리>에 대해 “영화 언어에 대한 감독의 높은 이해와 초반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2006년 바그다드가 무대인 <하이파 거리>는 알 카에다가 점령한 생지옥이다. 20년 전 떠났다가 미군과 함께 돌아온 아흐메드는 수아드와 그녀의 딸 나디아를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하이파 거리에 왔다가 총에 맞는다. 아흐메드의 카메라는 무엇을 목격했을까? 그리고 이라크인들이 내전 중에도 지키고자 했던 그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랜 잔상이 남았다. 함께 관람한 여성발행인들은 “이라크 하이파 거리의 잔혹성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어 소름 돋았다. 우리가 잊고 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내전의 한가운데 직접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한편 고 김지석 선생을 기리는 지석상은 사마드 술탄 쿠사트(파키스탄) 감독의 영화 <인생의 곡예>, 프라디프 쿠르바(인도) 감독의 <낯선 가족>에 돌아 갔다. 영화 <인생의 곡예>는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양면적인 사회에서 인간 프라이버시의 취약성에 대해, <낯선 가족>은 사회 최하층에 대한 따뜻한 책임감을 소박하고 조화롭게 그려냈다는 평가다.

와이드 앵글 경쟁부문에 초청된 한국과 아시아 다큐멘터리 중 최우수작품을 가리는 비프메세나상은 김정근 감독의  <언더그라운드>와 후어 닝 감독의 <누들 키드>로 결정됐다. 선재상은 진성문 감독의 <안부>, 사이드 케샤바르 감독의 <용의 꼬리>에 돌아갔다. 올해의 배우상은 영화 <에듀케이션>의 두 배우에게 돌아가 눈길을 끌었다. 김준형, 문혜인이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 임선애 감독의 영화 <69세>는 KNN관객상, 멜라니 샤르본느 감독의 영화 <페뷸러스>는 BNK부산은행상의 주인공으로 결정됐다. 작년 정상화 이후 올해 재도약을 목표로 삼았던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올해 영화제는 베트남, 파키스탄 등 세계무대에서 소외된 지역의 재능 있는 감독과 작품들을 발굴·소개하면서 아시아 영화의 성장 가능성을 높였다”며, “비교적 영화산업의 규모가 작아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국가들 작품이 뉴 커런츠와 아시아영화의 창 섹션에서 약진이 돋보였다” 고 평가했다. 총 관객수는 18만 9,116명으로 지난해 19만 5,081명에 비교해 소폭 감소했지만 아시아필름마켓이 성황을 이뤘고, 베트남·파키스탄 등 세계무대에서 소외된 지역의 영화들이 소개되며 아시아영화의 성장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올 부산영화제에서 다양한 해외 영화들을 많이 관람할 수 있었으며, 한국영화 100년 포럼을 비롯한 정일성 감독 회고전 등 미래 100년의 한국영화를 그려볼 수 있어 좋았다. 내년에 펼쳐질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는 더욱 새롭고 다채로운 국제영화제로 도약하길 기대해본다.

 

 

* 《쿨투라》 2019년 11월호(통권 6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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