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발견: 소피 데라스페의 '소녀 안티고네'
[영화 리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발견: 소피 데라스페의 '소녀 안티고네'
  • 김시무(영화평론가)
  • 승인 2019.11.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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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나래미디어

캐나다의 소피 데라스페(Sophie Deraspe) 감독의 <소녀 안티고네>(Antigone)는 참으로 도발적인 영화다. 그리스의 고전 비극(悲劇)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이 영화에서 감독은 현대도시 몬트리올에서 벌어지는 불의(不義)에 대해 비판의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먼저 원작의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의 셋째 딸이다. 오이디푸스가 죽고 그의 두 아들이 왕좌를 두고 서로 다툰다. 동생인 에테오클레스는 테베를 지키다 명예롭게 죽고, 형인 폴리네이케스는 타국인 아르고스의 군대를 빌려 테베를 공격하다가 죽었다. 결국 왕좌는 그들의 외삼촌인 크레온이 차지하게 되는데, 그는 테베의 왕으로서 배신자의 시체를 고향 땅에 묻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린다. 그리고 이를 어긴 자는 처형할 것이라고 못을 받는다.

폴리네이케스의 매장을 금지한다는 포고령을 접한 안티고네는 비통한 마음으로 여동생 이스메네에게 오빠의 시신을 함께 매장하자고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나라의 법을 위반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안티고네는 할 수 없이 혼자서 일을 도모하다가 체포되어 법정에 세워진다. 안티고네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사실을 인정하지만, 옛날부터 전해지는 관습법이 왕의 포고령보다 우선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이에 크레온은 실정법에 따라서 안티고네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선처를 호소하지만 크레온은 한갓 여자 때문에 국가에 불충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결국 천륜(天倫)을 중시했던 안티고네는 테베에서 영원히 추방을 당한다.

영화 <소녀 안티고네>는 이러한 모티브를 차용하여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드라마 속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그대로 쓰이고 있다. 정치적 박해로 부모를 잃은 안티고네의 가족이 할머니와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해온다. 당시 안티고네는 고작 세 살이었다. 어느덧 고교생이 된 안티고네는 우등생으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머리가 뛰어난 학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큰오빠인 에테오클레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을 하는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은오빠인 폴리네이케스는 체포되어 추방될 위기에 처한다. 범죄조직에 가담한 두 형제의 뒷조사를 하던 경찰이 그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그린나래미디어

비통한 마음의 안티고네는 정신을 가다듬고 작은 오빠의 안위를 걱정한다. 그가 본국으로 추방될 경우 부모님처럼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작은오빠 폴리네이케스를 탈출시키기로 작정을 한다.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팔뚝에는 작은오빠처럼 문신도 한 안티고네는 할머니와 함께 면회를 신청하고는, 그 틈에 작은오빠와 옷을 바꿔 입고 밖으로 탈출을 시키는데 성공을 한다.

결국 범죄자를 탈출시킨 현행범으로 체포된 그녀는 오빠 대신 법정에 서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녀는 경찰로부터 갖은 압박을 당하기도 한다. 한 담당형사는 두 오빠의 범죄 신상기록을 그녀에게 낱낱이 까발리면서 범죄자 오빠를 돕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인가를 따져 묻는다. 안티고네는 새롭게 밝혀진 오빠들의 범죄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오빠들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게다가 그녀는 큰오빠가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음을 상기시키면서 오히려 형사에게 범죄의 책임을 묻는 당찬 태도로 일관한다.

언론에서는 오빠를 탈옥시킨 소녀의 무용담에 대해서 각종 찬반논쟁이 분분하고, 그녀는 졸지에 유명인사가 된다. 게다가 그녀가 사람들에게 남긴 “전 언제든 다시 법을 어길 거예요. 오빠를 도우라고 제 심장이 제게 말하고 있어요!”라는 말이 회자되면서 동정여론이 확산되기에 이른다. 처음에 범죄자의 동생이라고 그녀를 비난하던 네티즌들이 나중에는 그녀의 신념에 찬 행동을 적극 지지하며 석방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심지어 감방에 수감된 동료 여죄수들도 그녀의 진심을 알고는 그녀처럼 머리를 짧게 깎고 불복종 투쟁에 동참하기도 한다. 국선변호사는 10대 소녀 안티고네의 장래를 위하여 선처를 호소하며, 검사와 타협을 시도한다. 하지만 상황이 그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시점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고 만다. 그리하여 그녀는 범죄를 반성하고 캐나다 시민권을 획득하느냐, 아니면 끝까지 ‘마음의 법’에 따라 탈옥했던 오빠를 옹호할 것인가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소피 데라스페 감독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극중 안티고네의 가족과 흡사한 이민자 이야기가 지금도 캐나다 뉴스에서 자주 보도된다. 사회에서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이민자 가족을 끝끝내 지키려는 소녀 이야기를 그리스 비극과 연관지어 다루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감독은 20대 때 읽었던 희곡을 토대로 각본을 썼으며, 촬영까지 직접 담당을 했다. 안티고네를 연기한 나에마 리치(Nahéma Ricci)는 첫 출연작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연기를 펼쳐 보여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동료 영화평론가 전찬일은 이 영화를 ‘올해의 발견’이라고 극찬했고,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소녀 안티고네>는 영화제 기간 동안 단 3회에 걸쳐서만 상영되었지만, 이 영화를 보고 지난 몇 달 간 국내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그의 딸과 연관시켜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었을 터이다. 조국 가족도 역시 실정법과 천륜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통을 받고 있다는 점이 그런 해석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조민(28) 양은 본인이 기소가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이냐 질문에 “제 인생에 서 10년 정도가 사라지는 것이니 정말 억울하겠지만, 저는 고졸이 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답변을 했다. 감독이 2천 5백여 년 전에 공연된 고전 비극을 현대적으로 각색하여 캐나다의 이민현실을 반영했듯이, 이 텍스트를 보고 우리나라 사법정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범죄를 수사한다는 미명하에 한 가족을 파멸로 몰고 가는 검찰의 ‘선택적 정의(正義)’는 결코 올바른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 《쿨투라》 2019년 11월호(통권 6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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