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월평] 어머니의 품으로 노래하다 창극 '지리산'
[공연 월평] 어머니의 품으로 노래하다 창극 '지리산'
  • 최교익(연극연출가·신한대 교수)
  • 승인 2019.10.0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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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형식의 공연을 동양과 서양, 그리고 한국으로 크게 분류해보자. 서양극은 연극적인 양식과 무대메커니즘 그리고 문학적인 측면에서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지점· 발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반면에 동양극은 전통과 현대가 한 무대 위에 공존하거나 제의적이거나 혹은 민속극적인 양상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적인 극. 한국에서 보이는 극양식은 어떠할까? 개인적인 견해로 한국은 전통적(민속적)인 것과 현재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현재적인 것은 서양의 극형식에 영향을 받아 발전해 가는 양식으로 사실주의 연극과 뮤지컬 등이 그러하다. 또한 전통적인 것, 민속적인 것은 국악을 바탕으로 주를 이루는 마당극이나 판소리가 더해지는 창극 등이다. 결국, 민속적인 예술 중 하나는 창극이며 창극은 전통적인 한국의 극예술이라는 것이다.

남원에 위치한 국립민속국악원에서는 한국의 전통적인 극예술인 창극 <지리산>을 2019년 8월 15일~17일에 선보였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빨치산’으로 유명한 데 그 사연을 들여다보면 기구한 운명이 마음을 저리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빨치산이란, 6·25 전쟁 당시 산으로 들어가 연합군을 상대로 게릴라를 펼치던 공산군들을 말한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처자식이 보고 싶어 생존해야만 했던 사람들과 그들을 죽여야만 살 수 있었던 또 다른 사람들. 한민족간 겁에 질려 총부리를 겨누던 곳. 내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곳. 왜 싸워야 하는지 또 왜 죽여야 하는지 이유는 저 멀리 사라지고 내가 내 심장을 찌를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지리산. 지리산은 가슴 아픈 ‘서러운 산’이며 아픔을 머금은 ‘어머니의 산’이다. 차범석의 희곡 <산불>에서와 같이 창극 <지리산>에 등장하는 마을사람들은 이데올로기를 알지 못한다.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대립 앞에 초라해진 생명만이 꺼져갈 뿐이다. 

창극 <지리산>은 지리산 속 오래된 마을인 와운마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리산의 모든 역사를 지켜봐온 노고할매의 현신인 천년송에 의지하며 나눔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와운마을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마을 총각 길상과 처녀 반야가 있다. 일제강점기 말 어느날, 일제의 앞잡이(오덕술)에 의해 길상과 반야는 강제 징용과 위안부로 끌려가고 마을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해방이 되고 우여곡절 끝에 마을로 돌아온 길상과 반야는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결혼을 하고 딸(지아)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 빨치산의 일원이 마을로 숨어들고 이를 토벌하기 위한 토벌대와의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다. 극에 등장하는 노고할매, 길상, 반야 등 주인공은 모두 지리산 봉우리의 명칭이다. 세심하게 녹아있는 지리산의 기운이 민족정서가 되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극의 몰입을 도왔다. 신비한 몸짓으로 지리산을 표현했던 무용단과 작가와 연출의 뜻을 깊이 헤아리는 연주단. 그들은 배우들의 감정 표현과 함께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간만에 제대로 된 창극 한 편을 만들어 냈다. 무엇보다 창극 <지리산>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메타포! 사건의 줄기인 일본제국주의의 침탈과 패망, 미제국주의, 여순사건은 지리산이 품고 있는 상징이자 메타포였던 것이다. 창극 <지리산>을 일차원으로 단순하게 바라보면 절대 깨달을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극을 완성도 있게 무대화한 류기형 연출은 이데올로기를 거대하게 그리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념의 더럽고 거대한 추함을 비루한 인간으로 감싸 안 았다. 그 인간은 바로 아픔의 역사를 지닌 지리산이었고 지리산은 공연 내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침묵 그 자체였고 아픔의 역사를 가슴 저 깊은 곳으로 밀어 넣은 어머니였다. 지리산은 어머니의 메타포였다.


공연  2019년 8월 15일 ~ 8월 17일

장소  남원 국립민속국악원

연출  류기형

작곡  황호준

안무  김유미
 

 

* 《쿨투라》 2019년 10월호(통권 6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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