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Theme] '류준열 배우' 류준열, 만화경처럼 빛나는 청춘의 초상
[12월 Theme] '류준열 배우' 류준열, 만화경처럼 빛나는 청춘의 초상
  • 김시균(매일경제 기자)
  • 승인 2019.12.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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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중반 배우를 통틀어 요새 가장 핫한 남자는 단연 류준열(33)이다. 특별히 의식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굵직 굵직한 신작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일은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올해 주연 출연작만 세 편. 지난 1월 <뺑반>의 교통계 순경 민재로 출연한 그는 2개월 만에 개봉한 <돈>에서 증권사 신입 브로커 일현으로 분하더니 하반기엔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운동가 장하를 열연했다.

하나 같이 큰 영화였다. 세 편의 총제작비만 각 130억원(<뺑반>), 80억원(<돈>), 190억원(<봉오동 전투>)대다. 편수만 봐도 제일 많은데, 올해 그 이상 다작한 배우는 눈에 띄지 않는다. 40~50대 메인스트림 배우인 최민식(57), 송강호(52), 황정민(49), 정우성(46), 박해일(42), 하정우(41), 공유(40) 등도 한두 편 출연에 그쳤을 뿐이다. 그나마 송강호가 두편(<기생충> <나랏말싸미>)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
류준열은 만화경처럼 빛나는 배우다. 그것도 영롱하게. 보는 각도마다 인상이 조금씩 변한다. 그만큼 입체적이고, 그만큼 다면적이다. 전형적인 미남상이 아닌데, 조각 미모는 더더욱 아닌데, 그럼에도 그는 멋지다. 요컨대 그에겐 잘 생겼다, 라는 말보단 멋있다, 매력적이다, 라는 말이 썩 잘 어울린다.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과거 박해일에게 따라붙던 수식어처럼, 그의 얼굴엔 선과 악의 두 극단이 공존한다. 그 양극의 어딘가에서 펼치는 그의 연기는 쉽게 예단하기가 어렵다. 색채에 빗대면 회색일진대, 이는 언제 어디서 어떤 배역을 맡는지에 따라 캐릭터가 변모한다는 얘기다.

 

 

감독들이 그를 어떻게 운용하는지를 보면 이 점은 더 명징해진다. 작품성을 논외로 한다면, 올해 그가 맡은 배역은 그의 스펙트럼을 실험해보기 위한 세 장의 리트머스지였다. 이를테면 <뺑반>의 교통 순경 민재. 은테 안경을 쓴 이 부시시한 청년은 첫 등장부터 다분히 시골스럽다. 이제 갓 상경한 듯한 순박함에 도회적인 느낌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극이 무르익을수록 달라진다. 이 모두 그의 가장된 연기였음이 드러나면서다. 그가 교통순경을 자처하게 된 배경과, 베일에 감싸인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밝혀짐에 따라 앞선 편견들은 서서히 거두어진다. 선의 가면을 쓰고서 악을 은폐하고 있던 그를 부패 사업가 재철(조정석)이 자꾸만 도발한다. 이로 인해 감추어둔 과거가 폭로돼 버리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그는 고뇌한다.


<돈>의 일현도 닮은 듯 다르다. 여의도 증권가 신입 브로커인 그는 이 땅의 뭇 가난한 청춘의 대변자였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그는 서울 중심가에서 폼나게 한 번 살아보는 게 꿈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실적은 최하위고 밤마다 반복되는 술자리로 심신은 지쳐간다. 영화는 평범한 청년인 그가 선임의 꾐에 넘어가 작전 세력에 가담하는 것으로 본궤도에 오른다. 이윽고 월급쟁이로선 상상하기 힘든 거금이 줄곧 일현의 계좌로 입금되고 그의 일상은 빠르게 휘황찬란해진다.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여선임과 연애를 하고, 부잣집 아들인 후배도 남부럽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일상의 겉껍질이 화려해질수록 속살은 빠르게 썩어갈 뿐이다. 뒤늦게 제동을 걸어보려 하지만 이미 늦은 뒤다. 그는 다시 괴로워한다.


류준열의 첫 사극 <봉오동 전투>는 일제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힌 한 청년을 중심에 세운다. 독립군 분대장 장하다. 청명한 눈빛이 매력적인 그는 시종일관 표정이 없다. 대사 또한 최소화된다. 일본군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한 옛 과거의 상처 탓이다. 그래서 웃지 않는다. 울지도 않는다. 감정은 사치여서다. 한 마디로 그는 앞만 보고 질주한다. 오로지 뛰고 또 뛸 뿐이다. 상체 곳곳으로 총상을 입고 다리 하나를 잃으면서까지 그는 봉오동 골짜기 아래로 적군을 유인한다. 그것만이 최후의 사명이라는 듯이.


애석하게도 세 작품 모두 개봉 당시 호평을 이끌어진 못했다. 하지만 류준열이라는 배우에게만 국한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결과적으로 이들이 그러모은 관객만 1000여만명이다. <봉오동 전투>가 478만4352명, <돈>이 338만9125명, <뺑반>이 182만6804명에 이른다. 지난해 <독전>과 <리틀 포레스트>, 2년 전 1000만 영화 <택시 운전사>와 <더 킹> <침묵> 등이 있긴 하지만, 이번처럼 그의 전 배역이 주인공이진 않았다. 올해야말로 그가 진정한 원톱으로 비상한 해라는 소리다.


배우 최민식은 언젠가 그에 대해 이처럼 상찬한바 있다. “류준열은 탄성과 릴렉스가 다르다. (감정을) 유연하게 표현할 줄 아는 배우다. 카메라 앞에서 서로 마주보고 연기할 때 보통은 긴장해서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데, 준열이는 언제라도 연기할 준비가 된 것처럼 편안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


언제라도 연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 그만큼 안정감이 느껴진다는 것. 빈말이 아닐 것이다. 그가 밟아온 생의 궤적을 되짚노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좋은 연기가 삶 자체에서 우러나옴을 몸소 체득한 듯하다. 애초의 꿈은 배우가 아니었다. 사범대에 진학해 평범한 교사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수능시험에 낙방했고 애먼 재수생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 이내 공부 체질이 아니었음을 깨닫곤 수원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한다. 그 시절, 연기 못잖게 많이 한 일이 아르바이트였다. 그 자신 밝히기를 “2015년 상반기까지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막노동판은 기본이었다. 마트 상하차와 케이터링, 고깃집 서빙과 쌀국수집 서빙, 편의점·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 돌잔치·결혼식 사회, 피자 배달, 아이돌 콘서트 굿즈 판매, 초등학교 연극부 방과후 교사 등등. 그러다 <소셜포비아>(2015)에 전격 캐스팅되고, 그의 생은 일약 전환점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