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Theme] 경자해, 작고 오랜 벗들이 안내하는 볕들 날
[1월 Theme] 경자해, 작고 오랜 벗들이 안내하는 볕들 날
  • 김용선(설화연구자)
  • 승인 2019.12.27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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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서 한 마리 쥐가 튀어나온다. “깜짝이야.” 놀란 쥐도 소리를 낸다. “찍찍, 吱吱, チュチュ, quiek.” ···독의 쥐소리는 비슷한 듯 다르다. 2020, 경자년 새해는 서생원이라 속되게 불리는 쥐띠 해. 그들은 공룡멸망의 원인, 병균의 매개체이나 누구보다 인류를 질병에서 벗어나게 해준 공헌자들이기도 하다. 실험용 쥐들의 희생없는 의학·생명공학 발전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에게 병주고 약주는 쥐는미키마우스’, ‘마이티마우스’, ‘라따뚜이’, ‘톰과 제리와 같은 문화콘텐츠 아이콘으로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컴퓨터 보조장치마우스로 편리성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인류와 함께한 오랜 역사만큼 ‘쥐의 상징과 원형도 시대와 나라별로 다양하다. 동양권에서 비록 십장생에는 들지 못하나 십이지신의 으뜸이 된를 서양인들이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 「쥐덫」처럼 포획 대상의 상징으로만 파악했다면, 우리 선인들은 어떻게 전래서사 속 주인공으로 초대해 왔는지 알아보자.

짧은 글에 우리네 쥐 서사를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몽땅 불러모으기는 어렵겠지만 크게 문헌전승의 쥐 서사와 구술전승의 쥐 서사로 나누어 파악해 보고자 한다. 쥐구멍이 크게 두 개라 할 것인데, 먼저 문헌으로 전승되는 쥐 서사의 대표작으로 「셔동지젼」을 삼았다. 이는 곧 「서동지전(鼠同知傳)」으로 시중에 아동용 동화책이 여러 버전으로 출간되어 아이들도 쉬이 만날 수 있다. 고소설의 특성상 「셔동지젼」은 「서용전(鼠勇傳)·「서옹전(鼠翁傳), 「다람전」, 「서대주전(鼠大州傳), 「서옥기(鼠獄記)」 등 대체로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다양한 국·한문 필사(筆寫활자 이본을 갖는다. 이본마다다람쥐라는 소재만 동일할 뿐 구성과 내용에는 차이가 상당하다. 이본에 따라 지향하는 주제도 다르다.

이 중에서 한글본 「셔동지젼」을 소개하려 한다. 중국 옹주 땅 구궁산 속 토굴에는 서()씨 성에 별호가 대쥐인금수 중에 으뜸’인 쥐가 있었다. 그는 내용상 매우 부요(富饒)한 캐릭터이다. 반면 상대자로 설정된 다람쥐(다람, 타남주, 달암)는 당나라 학자 공영달(574~648), 후한 시기 문인 채옹(133~192) 등이다람쥐는 다섯 재주를 지님에도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벌레라 했던 것이나, 순자가다람쥐는 다섯가지 재주에도 불구하고 가난하다라 했던 말씀에서 모티프를 얻은 것인지, 끼니가 어려운 가난한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세민황제로부터 벼슬을 제수받은 서대쥐가 잔치를 연다기에 가난한 다람쥐 부부의 남편 다람쥐는 초대받은 적도 없는 잔치에 양식을 얻고자 찾아간다. 그의 가난은 나태함이 원인인 것으로 그려지는데 물질적 어려움은 인격의 결핍으로도 연결되어 묘사된다. 넉넉한 서대쥐가 베풀어 준 양식 덕에 한동안 굶주림을 해결한 남편 다람쥐는 아내 다람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다시뻔뻔하게서대쥐를 찾아가나 거절당한다. 이에 앙심 품은 다람쥐가 백호산군에게송사를 청한 바람에 오소리와 너구리가 서대쥐를 잡으러 가고 서대쥐가 백호산군에게 무죄를 주장하는 등 마치 오늘날 법정드라마를 보는 듯한 내용이 후반부에 전개된다. 끝내 백호산군은 서대쥐의 무죄를 인정하고 다람쥐를 벌하고자 하나, 인품마저너그러운서대쥐가 백호산군에게 다람쥐의 처벌을 용서해 달라는 청과 함께 다람쥐의 반성으로 소설은 끝맺는다. 이는 우화소설인 동시에 송사(訟事)소설이라 할 것이다.

구전 속의 쥐가 화소로 등장하는 서사는 크게 세가지로 ‘넋’, ‘둔갑’, ‘혼인의 유형으로 나뉜다. 「혼쥐 설화」라 불리우는 이야기에서 쥐는 우리들의 영혼을 상징한다. ‘도둑을 업으로 삼는 남편이 잠들었다. 아내가 깨어 지켜보니 갑자기 남편 콧구멍에서 쥐 두 마리가 연달아 어딘가로 달아난다. 이어 한 마리가 나온다. 아내가 세 마리의 쥐를 따라가보니 어떤 집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본래의 서식처라 할 남편의 콧구멍으로 세 마리가 복귀할 때 마지막 한 마리를 아내가 두들겨 죽이자 남편이 놀래 깨며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는다. 우리의 콧구멍이 둘이므로 쥐 두 마리는 분명 넋을 상징하나 남은 한 마리는탐욕을 상징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한다. 쥐는 우리의 정신을 상징하는만큼 우리들 자신으로둔갑하는 변신원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진가쟁주설화」 유형으로 분류되는 해당 설화는 대체로 『효경』의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를 어기는 금기파기의 댓가로 이야기의 주인공과 꼭 닮은 복제인간이 만들어지는데 그 실체는 주인공이 아무렇게나 버린 손톱을 먹거나, 아내가 떨어뜨린 쌀 등을 먹고 쥐가 사람으로 일시 둔갑한 모습이다. 서사 후반부 천적 고양이의 등장으로 쥐 둔갑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 역시 『사람으로 둔갑한 쥐』 등의 제목을 가진 동화책으로 시중에서 만날 수 있다. 혼인류의 설화에서는 두더지[田鼠]와 혼인하는 대상으로 쥐가 설정되기도 한다.

들쥐, 다람쥐[栗鼠], 날다람쥐, 박쥐. ‘가 붙는 생물군도 참으로 다양하다. 새해에 혹시 어디선가 서생원을 만난다면 반갑게 인사 건네보자. 우두두두 천정의 틈을 바삐 달리거나 파이프를 갉고 있는 그는 그저 설치류(齧齒類)의 동물에 지나지 않음 아니라 누군가의 넋이며 분신일지 모른다. 나에게 온 복을 서동지처럼 이웃과 나누며 손톱처럼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새해는볕들 날의 연속일 것이다. 어디선가 송대관의 노래쨍하고 해 뜰 날이 들리는 듯하다. 새해 설날이 다가오면 대문에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을 붙일 것이다. 쥐구멍보인다면 거기에도 작게 붙여주리라. 우리의 작은 벗이 숨쉬는 공간에도 볕들 날 오기를 기도하며.

 

 

* 《쿨투라》 2020년 1월호(통권 6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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