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Theme] 미키 마우스
[1월 Theme] 미키 마우스
  • 김시무(영화평론가)
  • 승인 2019.12.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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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庚子年) 쥐띠해가 밝았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용()이 신성시되어왔다. 반면 서양에서는미키라고 불리는 생쥐 한 마리가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쥐를 혐오하기를 멈추고 사랑하게 되었는가?(How They Learned to Stopdisgusting and Love the Mouse.) 미키 마우스는 인간이 창조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브랜드다. 미키 마우스는 1928년 월트디즈니사(the Walt Disney Studios)에서 탄생했다. 빨간색 반바지를 입고, 노란 신발에 하얀 장갑을 낀 이 생쥐 캐릭터는 태어난 지 9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 세계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한테도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처음 태어났던 모습 그대로는 아니다. 처음에 미키는 의인화된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쥐구멍을 드나드는 쥐의 크기만한 생명체로 묘사되었다가, 나중에서야 실물 사람크기로 등장하게 되었다.

미키가 탄생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일찍부터 애니메이션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할리우드에 입성한 월트 디즈니는 1927년 토끼 캐릭터인 오스왈드(Oswald) 시리즈를 제작했다. 하지만, 배급업자의 농간으로 캐릭터의 판권을 빼앗기고 자신의 회사에서도 쫓겨났다. 절치부심하며 새롭게디즈니 스튜디오’를 차린 디즈니는 애니메이터들에게 개와 고양이 같은 다양한 동물들을 스케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별 무소용이었다. 디즈니는 그가 캔자스시의 래프--그램 스튜디오(Laugh-O-Gram Studio)에서 일할 때 그의 책상 위에 있던 길들인 생쥐로부터 영감을 얻어 미키 마우스를 탄생시켰다. 1925년 휴즈 허만(Hugh Harman)이 디즈니가 찍은 사진들을 보고 쥐들을 몇 개 스케치한 것이 있었다. 다시 어브 아이웍스(Ub Iwerks)가 이 스케치들을 토대로 하여 생쥐 캐릭터를 창출했는데, 처음에는모티머(Mortimer)’라고 명명했다. 그러다가 디즈니의 부인 릴리언(Lillian)의 제안으로 결국 미키 마우스로 최종 결정했다. 미키가 처음으로 등장한 만화영화는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 1928)라는 작품인데, 월트 디즈니와 어브 아이웍스가 공동으로 연출을 했다.

디즈니가 이 작품을 제작한 것은 세 번째였지만, 배급사에 의해서 1928 11 18일 뉴욕에서 처음 개봉되었기 때문에 디즈니사에서는 이것을 미키의 공식 데뷔작으로 인정하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은 같은 해 5월에 개봉되어 인기를 끌었던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 <스팀보트 빌 주니어>(Steamboat Bill, Jr.)를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당시 관객들은 <증기선 윌리>에서 사용된 사운드 효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다른 카툰 스튜디오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무성으로 제작이 되었는데, 그리하여 처음으로 사운드 기법을 도입한 디즈니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다. 개봉 3주 동안 3만여 통의 팬레터를 받을 정도였다. 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미키는 그때까지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고양이 캐릭터인 펠릭스(Felix the Cat)의 막강한 경쟁상대로 부상했다.

후에 본격적으로 유성영화가 도입되면서 미키에게도 목소리가 더빙되었는데, 목소리 배우를 했던 디즈니 자신이 미키의 목소리의 원천이 됐다. 1929 <카니발 키드>(The Karnival Kid)에서 처음 미키의 목소리가 등장하는데, 그의 첫 대사는핫도그, 핫도그”(“Hot dogs, Hot dogs!”)였다. 이전에는 휘파람을 불거나, 웃거나 갉아 먹는 소리 등 효과음들만 있었다.

1930년대에 미키는 만화 캐릭터로는 아주 광범위하게 등장을 했는데, 심지어 포르노그래피에 출연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단순히 아동용 만화영화의 캐릭터가 아니라 성인용 영화에도 미키의 캐릭터가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요즘 입장에서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영화산업의 초창기에 검열제도가 아직 확립되지 못했던 시절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고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러한 오점에도 불구하고 미키는 수십 년에 걸쳐서 점잖고 정직하고 대담한 주인공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잘 알다시피 미키에게는 귀여운 여친 미니(Minnie Mouse)도 있고, 절친들인 도널드 덕(Donald Duck)과 구피(Goofy)도 있다. 애완견 플루토(Pluto)도 단골손님이다. <미키의 난봉>(Mickey's Follies, 1929)에서는 처음으로 미니가 부르는유후(Yoo-Hoo)’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이는 이후 수년 간 미키 마우스 영화의 주제곡이 될 정도였다.

1930 4 <선인장 키드>(The Cactus Kid, 1930)를 끝으로 어브 아이웍스가 그린 미키의 시대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가 디즈니와 결별하고 자신의 스튜디오를 차렸던 것이다. 그리하여어브가 작화한 월트 디즈니 코믹(A Walt Disney Comic, drawn by Ub Iwerks)’이라는 선전문구는 이후에는 월트 디즈니(Walt Disney)만의 작품으로 재편되었다. 디즈니는 남은 스태프들과 전열을 가다듬고 미키 시리즈를 계속해서 제작했는데, 경제대공황을 겪으면서 펠릭스 캐릭터까지 퇴조하면서 미키는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1932년 미키마우스 클럽(The Mickey Mouse Club)은 백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제5회 아카데미 시상식(the Academy Awards)에서 미키는 <미키의 고아들>(Mickey's Orphans)이라는 작품으로 처음 노미네이트되었고, 디즈니는 미키를 창조한 공로를 인정 받아 명예아카데미상(Honorary Academy Award)을 수상했다.

미키의 인기는 1935년 뽀빠이(Popeye)가 등장할 때까지 최고였으며, 수백 가지의 미키의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듯 잘나가는 미키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디즈니에서 스토리를 담당하는 작가들은 미키를 위한 소재발굴에 애를 먹었다고 하는데,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다보니 개그의 수준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디즈니는 좀 더 심술궂은 도널드 덕에게 메인을 맡겼고, 그리하여 미키의 역할이 부차적인 위치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역으로 이는 미키의 순수하고 착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1935년 총천연색 영화가 본격화되면서 미키의 외양에도 변화가 생겼다. 미키가 공식적으로 처음컬러 영화에 등장한 것은 그해 <밴드 콘서트>(The Band Concert)에서부터였다. 여기서 미키가 윌리엄 텔 서곡(The William Tell Overture)을 지휘하는데, 토네이도로 인해서 밴드가 휩쓸려간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이 뽑은 투표에서 통산 3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디즈니는 미키를 새롭게 채색하고 디자인을 바꾸어서 다시 톱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1939년 미키는 애니메이터 프레드 무어(Fred Moore)에 의해서 새롭게 단장이 되었고, <포인터>(Pointer, 1939)라는 작품에서 첫 선을 보였다. 종전에는 검정 일색의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후부터 눈동자를 갖춘 하얀 눈을 지니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하얀 피부색에 동글동글한 몸매를 소유하게 되었다.

1940년대 들어서 미키는 다시 한 번 변형을 겪었는데, <회오리바람>(The Little Whirlwind)에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바지를 애용하게 된 것이다. 또한 꼬리도 짧아지고 보다 쫑긋한 두 귀를 갖게 되었다. 이 시기에 미키는 최초의 장편영화인 <판타지아>(Fantasia)에 출연하게 되는데, 여기서 미키는 마법사의 도제 역을 맡아서 시적 교향곡을 연주한다. 이 작품은 미키가 등장하는 영화들 중에서 도상(icon)으로서의 미키가 가장 돋보였던 애니메이션중 하나였다.

4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미키의 인기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다가 1955년 미키는 텔레비전 아동용 매일 프로에서 캐릭터로 출연하면서 다시 재기에 성공을 했다. 영화에서 부진한 것을 TV에서 만회를 한 셈이었다. 이런 미키의 행보는 60년대와 70년대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1983년 미키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동명의 원작을 각색한 연극 <크리스마스 캐롤>(Mickey’s Christmas Carol)로 다시 화려하게 복귀를 했다. 90년도에는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에 출연하면서 미키의 명성을 이어갔다.

2000년대 들어서 미키의 이미지는 대폭 수정되었는데, 종전 친근하고, 상냥했던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다 도전적이고 강인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로 변신을 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비디오 게임인 <에픽 미키>(Epic Mickey)를 위해서였다. 2013 6월부터 디즈니 채널(Disney Channel) 3분짜리 미키마우스 단편들을 내보내고 있는데, 애니메이터 폴 러드시(Paul Rudish) 20년대 및 30년대에 제작된 것을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재편집을 한 것이다.

지난 2018년 8월 미키 마우스 탄생 90주년을 맞이해서 ABC 텔레비전은 두 시간 분량의 미키 특집(Mickey’s 90th Spectacular)을 방영하기도 했다. 미키는 현재까지 130여 편의 장-단편 애니메이션에 출연했는데, <밴드 콘서트>(The Band Concert, 1935), <용감한 양복쟁이>(Brave Little Tailor, 1938), 그리고 <판타지아>(Fantasia, 1940) 등이 그 대표작들이다.

 

 

* 《쿨투라》 2020년 1월호(통권 6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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