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Theme] 라따뚜이와 시궁쥐 레미
[1월 Theme] 라따뚜이와 시궁쥐 레미
  • 고형욱(시네아스트, 작가)
  • 승인 2019.12.27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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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것이 꿈과 생쥐 한 마리로 시작됐다는 걸 기억하라.” 미키마우스의 아버지인 월트 디즈니가 남긴 말이다. 2020년 쥐띠 해, 경자년을 시작하면서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애니메이션의 상징과도 같은 대기업으로 성장한 월트 디즈니 사는 이렇게 생쥐 한 마리로 시작되었다. 1928 <증기선 윌리>에 처음 등장한 미키마우스도 어느새 90살을 넘겼다. 미키마우스와 어린 시절을 보낸 많은 어른들은 쥐에게서 친숙함을 느끼면서 자랐다. 미키마우스처럼 귀여운 캐릭터와 별개로, 쥐가 등장하는 실사영화는 거의 호러 영화들이다. 유럽에서 만들어진 쥐 캐릭터도 대부분 부정적이거나 어두운 경향을 띤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에 대한 근원적 공포. 쥐로 인한 치명적 전염병을 겪었던 과거를 기억한다면, 구대륙 유럽에서 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란 무척이나 어려웠을 것이다. 신대륙 미국이기에 쥐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는 동물은 쥐다. 인간과 생활권이 겹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쥐는 인간 주변에 살면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훔쳐 먹었다. 농경사회에서 곡식을 훔치는 쥐의 존재는 최대의 적이었다.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먹는 잡식성이기에 그 피해는 더더욱 컸다. 고양이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쥐를 퇴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점에서 미키마우스는 얼마나 획기적인 캐릭터였던가. 쥐로부터 끄집어낸 최상의 친근감이었다.

미키마우스를 거치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다른 캐릭터 친구를 얻었다. 한나와 바바라가 창조한 생쥐 제리였다. 쥐 제리와 고양이 톰은 언제나 앙숙이다. 그렇다고 해서 힘으로 톰을 이길 수는 없다. 시종일관 제리는 톰에게 쫓긴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 잔꾀와 계략으로 톰을 골탕 먹인다. 자기보다 힘이 월등한 강자를 지혜로 무찌르는 제리의 모습은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꾀 많고 영리한 쥐가 우둔한 고양이를 물리치는 이야기.

이렇게 쥐는 인간과의 거리를 점점 좁혀왔다. 요즘은 애완용으로 쥐를 키우는 경우도 많다. 개나 고양이처럼 아직까지 ‘반려’라는 표현을 쓰기엔 조금 이른 느낌이다.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럽다거나 비위생적이라거나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완전히 지워내긴 어렵다. 국내에서는 ‘애완 쥐’의 존재가 이르다고 느껴지지만 외국의 펫샵에서 쥐를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쥐를 따로 분류하지 않지만, 생쥐(mouse)와 시궁쥐(rat)는 엄격하게 구분된다. 생쥐는 시궁쥐에 비해서 작고 귀여운 편이다. 미키마우스나 제리 같은 생쥐 캐릭터가 만들어진 이유일 것이다. 자그마한 생쥐는 재빠르지만 여리다.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그래도 귀엽게 눈을 똘망똘망 뜨고 바라본다.

그에 비하면 시궁쥐는 두툼하다. 생쥐에 비해서 훨씬 덩치가 크다. 우리가 흔히 ‘쥐’라고 부르는 녀석들이 바로 시궁쥐다. 둘은 결코 같은 쥐가 아니다. 생쥐와 시궁쥐가 함께 있으면 힘이 센 시궁쥐가 생쥐를 공격하기 때문에 같이 놓아두면 안 될 정도다. 시궁쥐는 자기보다 작거나 약한 동물에게는 공격성이 강하다. 그렇지만 겁이 많고 온순한 성격이라 사람이 기르면 의외로 잘 따른다. 시궁쥐는 동물 중에서도 지능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시궁쥐 중에서도 똑똑한 녀석이 등장해서 요리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드디어 시궁쥐 요리사 한 마리가 등장한다. 바로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의 주인공 레미다.

파리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 라 투르 다르장을 연상케 하는 명 요리사 오귀스트 구스토의 식당. 그곳과 확연히 대비되는 비 내리는 시골 집. 아무거나 먹는 다른 시궁쥐들과 달리 맛에 대해 관심이 많은 레미. 그는 시궁쥐들이 결코 도둑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요리의 매력에 빠져든다. 동생 에밀조차도 맛을 따지는 형 레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레미가 즐겨 보는 TV는 오귀스트 구스토의 요리 프로그램. 구스토는 “좋은 요리는 맛과 향이 있는 음악과 같다”고 말한다. 레미는 야생버섯과 염소치즈, 로즈메리를 두루 섞어 굴뚝에서 훈제 요리를 만들면서 그 향기에 흠뻑 젖는다. 구스토의 비법을 따르기 위해 샤프란을 찾던 레미는 구스토의 죽음을 알게 되고, 그와 동시에 시골 집 할머니의 총구를 피해 하수구로 도망친다.

죽음의 위협을 피해 빠져나온 곳은 어디인가. 이 이상 꿈 꾸기에 좋은 곳은 없다는 파리! 그중에서도 구스토의 식당 앞이 아닌가.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구스토의 모토와 달리 수프 요리를 망치고 마는 신참 링귀니. 링귀니를 대신해서 레미가 만든 수프는 마침 레스토랑을 찾은 비평가의 칭찬을 받는다. 요리를 하지 못하는 링귀니와 천재적인 요리 솜씨를 지닌 시궁쥐 레미의 만남. 그러나 주방에 쥐가 들어온 걸 알면 식당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남 몰래 링귀니의 모자 속에 숨어 요리를 조종하는 레미. 레미의 지휘 하에 링귀니가 만들어낸 곱창요리에 손님들은 열광하지만, 성공에 취한 링귀니는 레미를 등한시한다. 링귀니는 애인 콜레트와 가버리고, 사람들은 자기를 싫어하고, 동생 에밀은 쥐들을 끌고 나타나서 먹을 걸 내놓으라고 야단이다. 레미는 배신감을 느낀다.

잔인한 음식 비평가 안톤은 구스토의 식당이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자기 입으로 확인해 봐야만 한다. 식당에 나타난 안톤은 ‘진실’ 한 접시를 주문하는데, 주방 직원들은 모두가 떠나버린 후다. 도와줄 요리사가 아무도 없다. 이때 나타난 레미의 친구 시궁쥐들. 사회성이 높은 시궁쥐들답게 모두가 힘을 합쳐 요리를 만든다. 그렇게 해서 안톤 앞에 놓인 음식은 라따뚜이. 프랑스 남부 스타일의 서민적인 야채 요리다. 무뚝뚝하고 차갑기만 하던 안톤은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요리의 냄새를 기억해낸다. 영화는 진실과 행복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소박하고 하찮은 일상의 기쁨이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그러나 쥐들이 있다는 것 때문에 구스토의 식당은 문을 닫는다. 대신 보다 대중적인 식당 비스트로 라따뚜이가 문을 연다. 아래층에서는 링귀니와 콜레트가 요리를 하고, 안톤은 음식을 즐긴다. 위층에서는 시궁쥐들의 만찬이 벌어진다. 이렇게 인간과 쥐들이 어우러진 한바탕 축제가 열린다. 경자년 새해를 축복하듯이.

 

 

* 《쿨투라》 2020년 1월호(통권 6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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