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공론장 역할을 해왔습니다
[INTERVIEW]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공론장 역할을 해왔습니다
  • 임대근(한국외대 교수)
  • 승인 2020.01.01 0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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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19년 11월 오후 3시 30분
곳: 종각역 아티제
진행: 임대근(한국외대 교수)
때_2019년 11월 오후 3시 30분곳_종각역 아티제진행_임대근(한국외대 교수)

50, 37, 26. 가을을 보내려는 건지, 겨울을 맞으려는 건지 모를 추운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지난 11월 13일 오후, 잠시 우산을 접고 종각역 한 카페를 찾아 들어가 만난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은 세 개의 숫자를 콕 짚었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쿨투라> 3월호부터 12월호까지 열 번에 걸친 연재를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연재는 <의리적 구토>의 의미를 돌아보고, 베스트 영화 10편과 감독, 배우, 제작, 촬영 분야에서 빛나는 영화인 10인을꼽는 작업이었다. 그의 말처럼 “‘문화’라는 라틴어를 제호로 내세우고 월간 문화전문지를 표방해 온 <쿨투라>다운 특별대기획”의 결과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연재는 영화평론가는 물론 영화 선생, 영화 관객으로서 저 자신을 점검해본 계기였습니다. 그 동안 자랑인양 영화 보기 구력 50년, ‘영화 스터디’ 37년, 영화평론 26년을 떠벌여왔건만, 한국영화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절감하고 또 절감하곤 했으니까요. 이번 연재는 영화평론을 넘어 문화콘텐츠비평을 지향하는 저를 ‘재탄생’시켰다고 자평할 수 있겠네요. <쿨투라>에 진심으로 크고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한 세기를 관통하는 한국영화의 역사를 돌아본 소회에는 자신감과 성찰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완전하면서도 매듭을 짓는다는 의미에서 100이라는 숫자에 부여하는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그건 어쩌면 한 개인이 다가갈 수 없는 불가능의 숫자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 불가능의 숫자에 도전했던 뿌듯함과 아쉬움은 어떤 모양으로 얽혀 있을까.

“그야말로 더 이상 유익할 수 없을, 발견과 자극 등을 두루 안겨준 유의미한 학습의 장이었죠. 마감을 제때 지키지 못해 민폐를 적잖이 끼쳤지만요. 그 중에서도 영화음악 100선과 한국영화 100선을 발표한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간단하긴 해도 그 선정사유를 일일이 달았는데, 빈말 아니라 고생 죽도록 했답니다. 당연히 마저 짚지 못한 것들도 아쉽기도 하고요. 마음 같아서는 시나리오 작가, 음악·미술·편집·녹음 감독 등도 짚어보고 싶었는데 못했거든요.”

세기의 역사는 어떤 감독, 어떤 배우, 어떤 영화를 넘어서서 그물망처럼 얽히게 마련이다. 그 역사를 일구어온 노고에 순위를 매기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고도 남지만, 그럼에도 평론이라는 구실을 내세워 다시 우문을 던졌다. “한국영화의 정점에 이런 감독, 이런 배우, 이런 작품이 있었다”는 고백을 듣고 싶었다.

“<쿨투라>가 10월호 한국영화 100년 특집에서 20세기와 21세기로 나눠 최고 영화, 감독, 배우를 뽑았는데 그 결과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하녀>와 <기생충>, 임권택과 봉준호, 신성일과 송강호, 김지미와 전도연이었죠. 물론 다른 결과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20세기 최고 감독은 예나 지금이나 이만희이죠. 김기영 감독이 영화 모더니즘에서, 유현목·신상옥 감독이 영화 리얼리즘에서 일가를 이뤘다면 그 분은 두 사조 모두에서 최고 경지를 일궈냈어요. 리얼리즘적 모더니스트이자 모더니즘적 리얼리스트로서요. 장르나 연기 연출 측면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전설의 문제작 <만추>의 감독이기도 한데, 44세란 이른 나이에 고인이 된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한국영화는 그만큼 더 풍성해졌을 겁니다. 제 생애의 한국영화 베스트 3위에 올라 있는 유작 <삼포 가는 길>이 그 증거입니다.

배우의 목록에 신성일 대신 김진규, 김지미 대신 최은희가 선정됐더라도 상관없었을 겁니다. 스타성이라는 면에서 한국영화 100년 최고 배우가 신성일이라면, 연기와 그것이 낳은 산물이라는 면에서 그 주인공으로는 주저 없이 김진규를 꼽고 싶어요. 한국영화사의 숱한 문제적 수작과 걸작의 주역이었잖아요? 데뷔작 <피아골>부터 <하녀>, <오발탄>,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을 거쳐 <삼포 가는 길>에 이르기까지요. 최은희 여사의 일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죠. 무엇보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역할은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사회의 어머니 상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에서 영화로 넘어간 화제는 다시 사회라는 키워드를 만났다. 그는 한국영화와 사회의 밀접한 관계를 ‘공론장’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영화는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분야보다 훨씬 더, 우리 삶과 관련한 결정적 기능을 해왔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역설해왔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영화는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공론장(Public sphere) 역할을 해왔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예가 <고지전> 이후 6년여 만에 선보인,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일 겁니다. 그 영화를 계기로 5·18 민주화운동은 비단 광주만이 아니라 수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항쟁이요, 우리 모두와 관련된 현대사의 비극이란 사실이 비로소 드러났으니까요.”

겨울을 재촉하는 빗소리가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를 마감하려는 중이었다. 현장과 이론을 섭렵한 평론가로서 누구보다 한 세기를 갈무리하는데 의미있는 역할에 매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목말라 보였다.

과거 100년만 아니라, 앞으로 100년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당연한 명제다. 한국영화의 과제들, 그걸 극복해야만 할, 미래 비전은 어떻게 설정돼야만 할까.

“한국영화 향후 100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한국영화 100년의 기점인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첫선을 보인 날이 1919년 10월 27일이니까 지난 10월 27일을 기해 새로운 100년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죠. 지나치게 원론적 얘기긴 합니다만 무엇보다 상생·공생의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지금처럼 빈익빈부익부 상태가 방치되면, 한국영화건 외국영화건 소위 다양성 영화들은 고사하지 않을 수 없고, 또 목하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영화산업의 기형화는 극심해질 겁니다.

협력해 해결책을 도출해야 할 급선무는 독과점 문제겠죠? 우리나라 영화 독과점은 세계 어디에서도 사례를 찾기 힘든 기형인데, 관객의 볼 권리 이전에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난제입니다. ‘천만영화’가 1년에 두세 편씩 나오는 걸 죄악시해선 안 되겠지만, 50억 전후의 중간급 예산 영화나 저예산독립영화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최근 순제작비 50억여 원이 들어간 <82년생 김지영>이 선전한 건 고무적입니다. 제도적 보완만이 아니라 문화운동으로서 관객운동 같은 게 요청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제 다시 우산을 펼칠 시간이었다. 그는 한국영화를 영화 속에 가두려하지 않았다. 한국영화를 핵심으로 삼아 출판, 공연, 전시, 운동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올해 초 결성된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의 회장을 맡은 건 그 증거였다. 26년 동안 영화평론가로 불리던 그는 이제 다시 문화콘텐츠비평가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우리 시대에, 영화평론을 넘어서 문화콘텐츠비평이 필요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사실 문화콘텐츠 아닌 게 없죠! 장르는 우리가 편의상 나눈 분류에 불과해요. 문화는 서로 얽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문화콘텐츠라는 말이 생겨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개념조차 확립돼 있지 않습니다. 회장을 맡고 있는 동안 그런 초석을 다지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올해는 ‘월간 콘비협’이라고 해서 월례비평모임을 중심으로 조직이 굴러왔는데 내년엔 그 외연을 확대해 문화콘텐츠와 관련한 결정적 개론서부터 출간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 《쿨투라》 2019년 12월호(통권 6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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