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드라마 월평]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 김민정(드라마평론가·본지 기획위원)
  • 승인 2020.01.01 0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번에는 ‘얼룩말’ 대신 ‘펭귄’이다.

시즌제 미국드라마 <별나도 괜찮아>는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남자 고등학생 ‘샘 가드너’가 주인공인 미국 시트콤으로 스무 살 자폐 청년 ‘초원’이 주인공인 한국 영화 <말아톤>(2005)을 연상시킨다. 자폐 청소년과 그의 가족들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 <말아톤>의 초원이가 얼룩말을 좋아하는 것처럼 <별나도 괜찮아>의 샘이 펭귄에 유별난 애정을 보인다는 점에서 꽤 많은 에피소드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소재 면에서 본다면 두 작품은 거의 비슷한 출발점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 이야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다르다. 어쩌면 그 차이가 두 영상콘텐츠의 대중적 인지도를 결정지었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월평에서 언급했던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별나도 괜찮아>는 미디어에서 큰 주목을 받았거나 대중들에게 입소문이 난 화제작은 아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장애인’ 관련 영상콘텐츠를 연구하던 중 뒤늦게 발견한 드라마였고, 시즌 1을 몰아보다가 시즌 2가 또 있단 사실에 내심 놀랐다. 넷플릭스의 거대한 자본력에 감사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세상이 의외로 따뜻하단 사실에 감격해야 하는 건지. 외모와 매력도 자본이 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런 ‘별난’ 드라마가 계속 제작된다는 사실에 정서적 측면의 ‘지구 온난화’를 몸소 체험한 기분이었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관객의 마음은 대체로 비슷한 지점을 향해 있다.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장애인의 장애 극복 서사는 작은 영웅의 성공담과 닮았다. <말아톤>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평범한’ 영웅들은 적대자들과 싸우지만 ‘별난’ 초원이는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자폐’라는 나만의 장애물. 나와의 싸움만큼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두 시간 상영 시간 내내 초원이의 고난과 역경을 바라본 관객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초원이의 힘찬 발걸음을 응원하게 된다.

영화 <말아톤>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스펙터클한 롤러코스터라면 드라마 <별나도 괜찮아>는 남녀노소 누구나 탈 수 있는 평화로운 회전목마다. 극적 재미는 덜 하지만 일상 에피소드에서 묻어나는 소소한 재미가 꽤 중독성이 있다랄까. 시즌 1을 보고 더 볼까 말까를 고민했는데, 시즌 2까지 다 보고 나서는 시즌 3을 기다리는 애청자가 되고야 말았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정말 그 말이 정답이다. 영화와 드라마라는 장르적 차이 때문인지 모르지만, 하루 할 일을 끝내놓고 침대 헤드에 기대 나만의 시간을 가질 때 조용히 꺼내 보고 싶은 드라마가 바로 <별나도 괜찮아>다.

샘 가드너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별나도 괜찮아>는 누군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는 듯한 혹은 비밀친구의 일기를 공유하는 듯한 친밀한 느낌을 주는데, 30분 남짓 분량의 시트콤이란 형식에 걸맞게 일상적이고 소소한 일들, 십 대 시절 일기장에 끄적일 만한 일들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시즌1은 십 대 청소년이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이성 친구 찾기라는 보편적인주제로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샘 가드너’에 대한 소개를 시작하는 예고편의 성격을 가진다.

“난 별종이에요. 다들 그렇다고 하죠.”라는 그의 첫 대사는 그의 ‘별난’ 성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동물에 비유해 사람과 상황을 이해하고 정해진 룰이 없으면 혼란을 느끼고 비유나 상징, 또는 관용적인 표현은 이해하지 못하고. 물론 샘은 여느 자폐 청소년들과 달리, ‘고기능’ 자폐이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특정 분야 즉, 자신이 관심이 있는 생물학 과목에서는 탁월한 성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그를 더욱 별나게, 혹은 도드라지게 만든다. 장애인도 아니고 비장애인도 아닌 애매한 지점에서 그는 “별종”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엄마 엘사는 그런 별종 아들이 이성 친구와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에서 상처를 받을까 걱정한다. 그녀는 자기가 만들어놓은 무균의 세상에서 아들이 ‘아무런 문제’ 없는 삶을 살길 원한다. 그래서 그녀는 소음과 빛에 민감한 아들을 대신해 그가 입을 옷을 사 오고, 익숙한 환경을 떠나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반대한다. 딸 케이시가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아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을 때도 샘과 함께 학교에 다니며 보살피지 못할 것을 먼저 우려한다. 그렇게 그녀는 오로지 샘의 ‘순결한’ 삶을 위한 호위무사로서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평온한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샘이 아니라 엄마 엘사다. 자폐아들을 키우며 자신의 욕망을 애써 부인해왔지만, 그녀 역시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였고 한 사람이었다. 낯선 남자의 호의에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라는 답장을 보내는 그녀의 상기된 얼굴은 엘사 역시 엄마와 아내, 그리고 여자 사이에서 애매하게 서 있는 “별종”이라는 걸 보여준다. 별종이 뭐 별건가.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과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그게 바로 별종 아닌가. 낯선 남자와의 우연한 만남에 그녀는 마음이 설레기 시작하고 그 설렘은 육체적 관계로 이어진다. 그렇게 그녀는 불륜을 저지른다.

극중 인자한 아버지로 그려지는 엘사의 남편 더그 역시 그리 완전무결하진 않다. 딸 케이시와는 비밀 없는 친밀한 사이고, 서먹하던 아들 샘과도 최근 급격히 가까워지긴 했지만 사실 그는 십여 년 전 아들이 자폐가 있다는 걸 진단받자 그 사실을 견디지 못하고 가족을 떠난 전적이 있다. 그 일은 여전히 당시 혼자 남겨져 아이들을 보살펴야 했던 아내 엘사에게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시즌2에서 그는 자신과 화해를 원하는 아내를 외면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 다른 여자의 집을 찾아간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역겨워” 했던 아내가 걸어간 그 길을 답습한다.

그렇다. <별나서 괜찮아>는 자폐가 있는 ‘별난’ 샘가드너의 이야기이지만 등장인물 중에 별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연 없는 무덤 없다’라는 옛말처럼 드라마는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샘의 입을 통해 들려준다. 샘의 여동생 케이시는 뛰어난 달리기 실력으로 주목을 받지만, 집에서는 언제나 오빠 샘에게 밀리는 잡초 인생이고 그녀의 남자 친구 에반은 악기를 훔쳤다가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난 뒤 공고를 다니며 성실하게 살고 있지만, 온갖 소문의 주인공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별나도 괜찮아>에는 영화 <말아톤>의 주요 서사인 자폐 청소년의 장애 극복을 통한 극적인 성공담 같은 건 없다. “Nobody is normal”이라는 극중 대사처럼 드라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그러니까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엉망진창 상처투성이 삶을 보여줄 뿐이다.

시즌2에서 샘은 대학에 진학하기로 하고 대학에 제출할 자기소개서를 작성한다. 그런데 이때 지도교사의 조언과 달리, 샘은 자폐를 통한 성취를 포장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건 샘이 상담을 그만두고 자폐 청소년 또래 모임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첫 과제로 ‘도움 청하기’를 받은 것과도 같은 맥락에 있다. 샘은 ‘자폐’라는 장애를 극복하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에게 ‘자폐’는 그저 그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마치 샘의 여자친구가 된 ‘페이지’가 남들보다 말이 많고 조금 히스테릭한 것처럼 말이다. 누구는 키가 크고 누구는 키가 작은 것처럼, 누구는 머리가 검은색이고 누구는 머리가 금발인 것처럼.

약간 뜬금없는 스토리 전개이긴 하지만 시즌2 마지막 회에서 샘의 여동생 케이시는 육상팀에서 같이 훈련받는 동성 친구 ‘이지’와 마음을 확인한다. 이로써 <별나도 괜찮아>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더욱 명확해진다. 둘 다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멋진 이성 친구가 있음에도 서로의 곁에 있기로 결심한 건 분명 ‘비합리’적인 ‘별난’ 선택이다.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미래는 서로 다른 이성에게 마음을 준 엘사와 더그의 앞날만큼 우여곡절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지 않으면 어떠하리. 그런 게 인생인데. 별나도 괜찮은 게 아니라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다.

자, 허니 한 스푼으로 금세 행복해지는 곰돌이 푸우 선생의 달콤한 말씀으로 마무리하자. “다른 사람의 기분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세요."

 

 

* 《쿨투라》 2019년 12월호(통권 66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