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크리스마스와 뮤직 비즈니스
[음악 월평] 크리스마스와 뮤직 비즈니스
  • 서영호(음악가, 본지 편집위원)
  • 승인 2020.01.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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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 Cullumm의 'Christmas Don’t Let Me Down' 외

해마다 12월이 되면 가슴이 철렁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정신없이 보낸 해나 상대적으로 덜 바빴던 해나 매한가지다. 한 해 동안의 달력과 스케줄표를 들춰보며 도망가 버린 시간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 많은 시간을 다 어디에 썼는지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애쓴다. 나이가 들수록 뻔뻔해지는 건지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건지 자기합리화에 능숙해진다. 자책감에서 오는 감정적 데미지를 최소화하려는 자기방어 기제일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자기반성은 필요하지만 자기혐오가 너무 과해져 아예 기가 죽어버리면 또 곤란하니까. 올해도 12월도 채 안 된 시점에 벌써 쏟아진 크리스마스 캐럴을 보며 마음 한편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단순히는 특정 종교의 성자의 탄생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는 그 본래 의미뿐 아니라 그 위로 많은 것들이 얹혀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소외되거나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주고 받으며 온기를 나눈다. 나같이 삐딱한 사람들은 내가 왜 크리스마스에 덩달아 상기되거나 크리스마스를 이용해 한탕 해 먹어보려는 상업주의에 놀아나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겠지만 이런 생각은 이미 자책감으로 충분히 괴로운 연말에 머리 아픈 생각거리를 하나 더할 뿐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크리스마스 무드 속에 동화시키는 결정적인 것은 역시 음악이다. 온갖 번민 속에 맞이하는 연말이지만 캐럴을 들으면 멜랑콜리한 감정이 들면서도 어느새 따스한 온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나 우리가 익히 알고 수없이 들어온 캐럴 혹은 이 연말연시 홀리데이 시즌송이라 할 노래들은 그동안 무구한 세월을 지나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살아남은 생존곡들인 만큼 곡의 완성도가 높다. 음악의 힘은 실로 대단하여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나 같은 궁핍한 영혼도 자기도 모르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게 만든다.

한편 오늘날 인간이 이룩한 모든 양식에 스며든 문화산업은 크리스마스 시즌 속에서도 비즈니스를 발휘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11월 중순 이미 새로운 캐럴과 홀리데이 시즌송들이 꽤나 나와 있다. 아직 국내 음원은 보이지 않는 반면에 영미권에서는 이 시즌이 연중 가장 큰 휴일이라 그런지 확실히 움직임이 빠르다. 12월 초나 되어 이제 진짜 연말이구나 싶을 때 ‘짠’하고 공개되어 우리의 겨울 감성을 자극하는 곡들도 그 기획과 제작의 과정을 상상해보면 사실 무드를 해칠 수도 있다. 11월 중순에 음원이 발표되었다는 건 9월, 늦어도 10월부터는 기획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는데 순수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설렘이 창작의 발로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직은 크리스마스가 두세 달이나 남은 9월, 10월에 크리스마스 무드에 ‘강제 심취’해서 뽑아낸 곡들인 거다.

그런데 그간 수많은 가수가 수많은 버전으로 각양각색의 캐럴을 불러왔기 때문에 이 엄청난 아카이브 속에서 기억에 남는 캐럴로 돋보이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캐럴 시장은 편곡 기술의 각축장이다. 수백 번 들어왔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또 다른 방식으로 즐겁게, 그러면서도 원곡의 핵심 정취를 해치지 않으면서 만들어 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기존 곡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서 부르는 것 말고 아예 새로운 창작곡을 발표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익숙히 아는 캐럴 중에도 20세기 이후에 발표되어 이른바 뉴 스탠다드로 고전 캐럴 대열에 합류한 창작곡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아닐까 싶다. 셈이 빠른 분들은 눈치챘겠지만 가수들이 해마다 캐럴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이른바 이런 시즌송 하나 터지면 이건 죽을 때까지 해마다 통장에 입금 들어오는 연금이 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버스커버스커의 장범준이 <벚꽃엔딩>으로 매해 봄마다 거둬들인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공개해 이슈가 된 바도 있다. 하물며 전 세계인들이 즐기는 캐럴은 어떨까. 한 기사에 따르면 머라이어 캐리는 직접 작사, 작곡한 이 곡으로 그동안 거둬들인 저작권 수입만 대략 66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올해도 음악가들은 저마다의 사정이나 사연으로 캐럴을 발표했다. 21세기 프랭크 시나트라라 할 수 있는 마이클 부블레는 빅밴드를 대동한 전통적인 스윙풍으로 <White Christmas>를 내놓는 가장 전형적이고 안전한 방식을 택했다. 재즈 보컬계의 또 다른 스타인 제이미 칼럼은 보다 의욕적으로 오리지널 창작 캐럴을 두 곡 발표했다. 디지털화된 음악작업 시대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는 아카펠라 그룹 펜타토닉스는 그간 발표했던 캐럴에 4곡의 신곡을 추가 작업해 캐럴 베스트 앨범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R&B 싱어송라이터 존 레전드는 걸출한 보컬리스트 켈리 클락슨과 주고받는 <Baby, It’s Cold Outside>로 달콤한 대화를 들려준다. 친환경 뮤지션 잭 존슨이 어쿠스틱 기타반주로 들려주는 창작곡 <New Axe>로 소박한 한 가정의 따듯한 모닥불 앞으로 안내하는가 하면, 케이티 페리와 조나스 브라더스는 각각 크리스마스의 기대와 설렘을 담은 상큼한 창작 팝 캐럴로 제2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노려보는 듯하다.

창작곡에서는 브라스와 혼의 장중함과 서정미로 호소하는 제이미 칼럼의 <Christmas Don’t Let Me Down>이 돋보인다. 펜타토닉스는 인간이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로 해석한 캐럴의 즐거움 선사하는 한편 비치보이즈의 명곡 <God Only Knows>가 이 시즌과 얼마나 잘어울리는지 발견하게 해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만찬을 준비하는 겨울 저녁에는 잭 존슨의 <New Axe>가 흐르면 좋을 것 같다. 뮤직 비즈니스가 어쩌구저쩌구 해도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다.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 《쿨투라》 2019년 12월호(통권 6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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