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청년세대의 감각에 포착된 오늘의 팍팍한 현실풍경
[북리뷰] 청년세대의 감각에 포착된 오늘의 팍팍한 현실풍경
  • 해나(본지 에디터)
  • 승인 2020.01.01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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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연 소설집 『홀리데이 컬렉션』

2010년 《불교문예》에 소설 「탑」을 발표하며 창작활동을 시작하였으며, 2019년 《쿨투라》 문화평론 신인상에도 당선된 김세연 소설가의 첫 소설집 『홀리데이 컬렉션』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소설집에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자로 존재하는 소외된 삶의 군상을 명징하게 환기시키고 있는 표제작인 「홀리데이 컬렉션」, 입양아를 다룬 「미니」, 에로스적 욕망과 결핍을 다룬 「작업 중」, 「하찮은 거짓말」,「ATM」 등 현대사회 젊은이들의 우울하고 발랄 발칙한 7편의 중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염무웅 문학평론가는 “김세연의 소설은 청년세대의 감각에 포착된 오늘의 팍팍한 현실풍경이다. 그의 디테일 묘사는 섬세하고 꼼꼼하며, 등장인물들의 감정세계는 건조하면서도 우울하다. 그의 소설에는 농경문화의 기억조차 희미해진 신자유주의 시대의 삭막한 세태가 사막처럼 펼쳐지며 그 사막을 건너는 젊은이들의 파편화된 삶이 꿈결처럼 그려진다. 그의 소설은 이 시대를 구성하는 수많은 ‘생생한 디테일’들을 보여준다.”고 평한다.

이처럼 김세연의 소설집 『홀리데이 컬렉션』은 ‘의미가 산출되는 구조’를 적실하게 설정하고 배치하는 감각이 단연 빛난다. 그는 진실이란 주체의 시각에 의해 달라지고 사물의 본질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 우리가 구조해내고 감지한 관계들 속(T. 호커)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상은 관계들로 이루어지고 관계들에 의해 세워진 관계들의 구조물이 아닌가.

그는 스스로 「버블머신」의 서두에서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라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오늘 아침 내가 밥 대신 빵을, 맨다리 대신 살구색 스타킹을,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택했다면 그건 분명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을 하나의 시스템이 갖추어진 기계 장치로 비유해 보자. 기계는 스스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기계의 입장은 정해져 있다. 버튼이 눌리거나 그렇지 않거나, 그것만이 기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밝혔다.

인간 삶에서 스스로 행하는 선택까지도 사실은 구조의 시스템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구조가삶을 규정한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구조주의자가 된다는 명제와 상응한다. 구조주의자들은 인간이 창조한 문화 역시 언어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이고 고유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인위적으로 구조된 것이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틈새가 메꾸어져 자연스러운 것처럼 동화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마치 모든 언어들이 그 뒤에 숨은 보편 문법의 구조에 따라 작동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김세연의 소설을 읽는 것은 그가 배치한 구조의 매혹적인 통로와 계단을 경험하는 과정이며, 그가 제시하는 주제의식은 이러한 미적 여로의 경험 이후 느끼는 의미와 소회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보르메오 가문의 매듭처럼 팽팽한 구조가 가장 두드러진 작품으로 「미니」를 꼽을 수 있다. 생성하는 구조의 활동을 통해 우리 시대의 분방한 일상성에 대한 서술을 입체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작업 중」, 「하찮은 거짓말」은 에로스적 욕망을 다룬 서사이다. 절정을 향해 가는 상승적 힘이 작품의 전반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에로스적 욕망은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파국에 가까워진다. 어째서 그럴까. 사랑의 베일 속에 은폐된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사랑은 힘을 잃고 스러지는 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마치 생각의 속임수의 소행 같다. 그래서 사랑은 늘 불안과 동거한다. 김세연의 소설적 상상력은 이러한 사랑의 구조적 속성을 날카롭게 추적하고 있다.

에로스적 욕망의 가속도 역시 결핍의 구멍에 의해 자기조직화 운동을 시작하지만 다시 그것에 의해 와해된다. 「ATM」은 처음부터 에로스적 욕망보다 그 결핍의 뒷모습이 우위에 놓인다. 관음증이란 처음부터 상대와의 깊은 관계는 없이 관망하는 것, 즉 관계의 미달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전개 구조와 내용 역시 시도만 있지 제대로 성사되는 것이 없는 배회의 양상을 지속적으로 보인다.

표제작인 「홀리데이 컬렉션」은 주인공 희서의 이태리 패키지 여행과 물류센터에서의 아르바이트를 병치시켜 전개하고 있다. 이태리 여정과 아르바이트를 중심으로 한 일상이 서로 시간과 공간의 현상은 다르지만 거울처럼 동일한 반사체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희서의 독백이 머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놓아두기만 해도 물품을 운반해 주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시간은 계속 앞으로 갔다. (……) 지금 나는 벨트의 어디쯤에 있을까.”

일상성의 제국의 구성원으로서의 삶, “하나의 시스템이 갖추어진 기계 장치”(「버블머신」) 속의 일원으로서의 삶을 묘파하고 있는 것이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자로 존재하는 소외된 삶의 군상을 명징하게 환기시킨다 .

「헬로우」는 이러한 비관적인 수용과 체념의 정조가 더욱 심화된다. 「버블머신」은 “아빠의 해고”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소설은 어둡고 불우하다. 이미 텅 빈 결여가 작품 전반의 정조를 짙게 물들이고 있다. 서사의 전개가 우리 사회 도처에 만연해 있는 어둠의 블랙홀을 반사시키고 있다.

김세연 소설의 서사적 구조는 현실세계의 일상성의 근간이면서 입체적 서사의 방법론임을 좀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현대의 평범한 루저들의 일상을 그리고 싶었다. 새로운 시대의 리얼리즘은 거대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소설을 썼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개성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리데이 컬렉션」을 표제작으로 삼은 이유도 이와 관련되었다. 사실 더 애착이 가는 다른 작품들도 있었는데, 「홀리데이 컬렉션」이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자의식이 가장 많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사회구조의 결함으로부터 발생하는 청년들의 고민과 보편적 인간의 문제에 천착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저자 김세연은 1989년 대구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동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 《쿨투라》 2019년 12월호(통권 6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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