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자원봉사프로젝트] 세상에 뜬 작은 별
[국제자원봉사프로젝트] 세상에 뜬 작은 별
  • 심연주(숭의여대 미디어문예창작과)
  • 승인 2020.01.01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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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의 해외 봉사를 추억하며

대학에 신입생으로 입학하여 1년을 바쁘게 지내면서 항상 나 자신에게 물음을 던질 때가 많았다. 지금 하는 게 정말 하고 싶은 건지, 지금의 나는 행복한 건지…. 과제를 제출하기에 급급하고, 시를 필사하며 손에 통증을 느끼는 게 익숙해질 때쯤, 내 안에 글을 쓸 수 있는 소재는 아무것도 없었다. 문득,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학년을 마치고 나는 호주로 1년간 해외 봉사를 하러 가게 되었다.

사실 봉사라고 하면 다들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냐고 묻지만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다른 봉사자들처럼 ‘봉사에 내 젊음을 바치겠어!’ 라기보다는…. 도망갈 출구로 선택한 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그냥’이 대답일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닥친 봉사는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마음을 비우려고 왔는데, 마음은 오히려 더 복잡했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청소부터 빨래, 그리고 내가 먹지 않은 수십 가지의 설거지를 해야 했고, 시드니 센터에 오는 아이들을 봐주고 나면 딱 죽을 맛이었다. 밤마다 기절하듯 잠을 자고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란 적도 너무 많았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하는 것도 고작 3개월이 한계였다. 나는 봉사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정말 집에 가고 싶다….” 몇백 번은 고민하고 참았다.

그렇게 어느 날, <CHRISTMAS CANTATA>라는 공연 봉사를 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통해, 말괄량이 딸이 자신을 사랑하는 아빠의 마음을 확인하고 가정이 화목해지는 이야기였다.

풍족해서 어려운 것이 없어 보였던 호주는, 우울증과 마약으로 정신이 좋지 못해, 마인드 강연이 필요한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평소 우리는, 아카펠라나 댄스 봉사 정도는 해왔기 때문에 뮤지컬도 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영어도 잘못하는데 영어로 립싱크를 해야 했고, 심지어는 비중이 있는 엄마 역할까지 맡아, 연기도 자연스러워야 했다. 이젠 정말 한계라는 생각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여지까지 해왔던 청소 봉사는 그냥 더러운 곳을 빠릿빠릿하게 청소하면 되는 것인데, 영어는 뭔가 들려야 말을 할 수 있었고 연기는 감도 안 잡히니…. 그럼에도 시간은 지나갔고, 우리는 피곤한 것도 모른 채, 소품과 무대 세트를 준비하고 의상을 입고 연습하며 다가오는 공연 날에 긴장해야 했다.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시드니에서 이런 공연을 보러, 누가 올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첫 공연인 Ashfield 에서 500석 만석으로 두 번의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사실, 아직도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 안 날 정도로 나는 어리숙하고 부족했다, 나와 상관없이 감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놀라울 뿐이었다.

하지만 더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마지막으로 1,000석짜리 Hurstville 에서 공연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실패할 게 뻔한 일이었다. 어떻게 홍보는 잘 되어서 500석은 겨우 채웠다지만, 이런 부족한 공연으로 1,000석을 채운다는 건 모험이었다. 더군다나 함께 일했던 스텝 봉사자들은 비자 문제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이번 공연은 새로운 사람들과 합을 맞춰야 했고 스텝이 모자라 연기자인 나도 소품을 준비해야 했다. 어마어마하게 커져 버린 무대를 어찌 처리해야 할지 난감했다. 나와 달리 지부장님은 걱정하지 않으셨고, 공연은 이런 최악의 조건에서 시작되었다.

뮤지컬의 기적이 나에게 일어난걸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관객들은 800석이 넘는 좌석을 계속 채워나갔고 마지막 연습에서조차 맞지 않던, 스탭들과의 합이 맞아떨어졌다. 문제가 있었던 액자 소품도 미리 발견하면서 공연이 순조롭게…, 아니, 이전 공연보다도 완벽하게 끝났다. 공연 내내 큰 함성과 웃음소리에도 놀랐지만, 공연이 끝나자 수많은 관객이 일제히 일어나 손뼉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런데 놀랄 일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날, 지부장님께서는 공연 중간에,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제니’가 생각을 이기고 병원에서 나온 이야기를 메시지로 전했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한 아주머니께서 지부장님께 찾아오셨다. 자신의 아이도 ‘제니’와 같다고 도움을 청하러 오신 것이다. 그녀는 당신의 아이도 변할 수 있다는, 지부장님의 말에 매우 기뻐하며 집으로 가셨다고 했다. 돌아가는 그녀의 얼굴을 본 몇몇 봉사자들은, 변화할 가정을 생각하며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봉사하러 가기 전, 워크숍에서 강사님들이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내가 아무리 부족해 보이고 어려워도 우리는 모두 ‘별’이라고. 우리는 이미 전 세계에 희망의 빛을 비출 별이라고.” 내가 가볍게 생각했던 해외 봉사, 그리고 1년은 그저 힘들고 어려웠던 것으로 남은 것이 아니라 봉사자인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살다 보면 자주, ‘나’. 자신을 잃는 것 같다거나, 나는 여유가 없어서, 나는 뭔가가 부족해서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봉사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행복할까? 분명 아닐 것이다. 내 환경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정말 간단하게, “내가 행복하지 않다, 나를 잃는 것 같다.”라는 그 생각을 버렸을 때, 비로소 행복한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언제든 잘못된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힘들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어떻게 이겨내는지 아니까. 아마 그 시간이 없었다면 더 멀리, 어쩌면 더 오래,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꿈이 있는, 행복한 나를 찾아준, 그 1년이라는 시간을 다시 한번 추억하며, 계속해서 더 많은 별이 뜨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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